1. 개요
아라이 다쓰노리(新居 辰基, 新居 辰基아라이 다쓰노리일본어)는 1983년 12월 22일 홋카이도 도베쓰초에서 태어난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포워드였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콘사돌레 삿포로 유스팀에서 활약했고, 2001년 일본 클럽 유스 선수권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MIP를 수상했다. 2002년 콘사돌레 삿포로에서 프로 데뷔하여 J리그에서 주목받는 신예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004년 음주운전 및 뺑소니 사고로 소속팀에서 해고되는 큰 논란을 겪었다. 이후 시즈오카 FC를 거쳐 사간 도스로 이적하며 J리그 무대에 복귀했고, 2005년과 2006년 두 시즌 연속으로 J2리그 일본인 득점왕을 차지하며 뛰어난 골 결정력을 증명했다.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와 쇼난 벨마레 등 J1리그 팀에서도 활약했으며, 2011년 사간 도스로 돌아와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사간 도스와 AGGRE 스포츠 클럽에서 유소년 축구 코치 및 감독으로 활동하며 지도자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선수 경력은 뛰어난 득점력과 함께 논란을 극복하고 다시 성공적인 활약을 펼친 극적인 이야기로 평가받는다.
2. 생애 초반 및 축구 입문
아라이 다쓰노리는 1983년 12월 22일 홋카이도 이시카리군 도베쓰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관심을 보이며 성장했다.
2.1. 어린 시절과 교육
아라이 다쓰노리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당시 야구를 하고 있었지만, 축구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역의 도베쓰 축구 소년단에 입단했다. 중학생 시절에는 에베쓰시에 위치한 유니온 주니어 유스 FC에서 뛰었다. 고등학생이 될 무렵, 유니온에서 유스(U-18)팀이 창단된다면 계속 유니온에서 활동할 계획이었으나, 결국 유니온에서는 고등학생 연령대 팀을 만들지 않았다. 이에 코치의 권유로 자신에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클럽팀인 창단 3년 차의 콘사돌레 삿포로 유스팀에 입단하게 되었다. 유스팀 시절 그는 북성학원대학 부속고등학교에 재학했다.
2.2. 프로 데뷔 이전 경력
콘사돌레 삿포로 유스팀 시절, 아라이 다쓰노리는 연령별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고등학교 1학년 가을부터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하여 2학년 때 주전 자리를 꿰찼다. 그는 경기 중에는 느긋하게 걷는 듯하다가도 순간적으로 수비 라인 뒤로 빠져나가는 영리한 플레이와, 볼이 떨어지는 지점으로 달려들어 득점하는 탁월한 골 감각을 보여주었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능글맞은 표정을 짓거나 오프사이드 깃발을 드는 부심에게 눈을 흘기는 대담한 태도로 주목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1년에는 일본 클럽 유스 축구 선수권 (U-18) 대회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끄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대회 MIP(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3. 선수 경력
아라이 다쓰노리는 2002년 J1리그의 콘사돌레 삿포로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한 이래 여러 클럽을 거치며 활약했다. 그의 선수 경력은 뛰어난 득점력과 함께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다.
3.1.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
2002년 아라이 다쓰노리는 유스팀에서 콘사돌레 삿포로 성인팀으로 승격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같은 해 4월 20일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홈 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 경기에서 데뷔골을 포함하여 2골을 기록했다. 2002년 시즌에는 포워드로서 총 5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넣었다. 하지만 콘사돌레 삿포로는 2002년 시즌 J1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며 J2리그로 강등되었다.
2003년에는 J2리그에서 교체 포워드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35경기에서 3골을 기록했다. 2004년에도 27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넣는 등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콘사돌레 삿포로 유스 출신 선수로서 장차 팀의 주축이 될 가능성을 가진 선수로 기대를 모았으며, 당시 장외룡 감독은 그를 AS 로마의 토티에 비유하며 "콘사돌레의 왕자"라고 칭하기도 했다. 서포터들 사이에서는 전년도에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던 윌에 빗대어 "푸치 오레오"(プチ俺王푸치 오레오일본어, '작은 나님')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큰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2004년 8월,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켜 구단에서 해고되었다.
3.2. 시즈오카 FC 및 첫 사간 도스 재적
2004년 8월 콘사돌레 삿포로에서 해고된 후, 아라이 다쓰노리는 약 2개월 동안 해체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밤에는 헬스장에서 훈련을 이어갔다. 같은 해 10월, 지역 리그의 시즈오카 FC에 입단했다. 시즈오카 FC는 당시 JFL 승격을 목표로 하는 도카이 사회인 리그 소속 팀이었다.
2005년, 아라이 다쓰노리는 J2리그의 사간 도스로 이적하며 J리그 무대에 복귀했다. 시즌 초반에는 슈퍼 서브로 기용되었으나, 곧 선발 라인업에 정착했다. 그는 2005년 J2리그에서 39경기에 출전하여 17골을 기록하며 하세가와 타로와 함께 J2리그 일본인 득점왕에 올랐다. 또한, 동료인 스즈키 다카아키가 기록한 15골과 합쳐 두 선수가 총 32골을 기록했는데, 이는 2004년 팀의 총 득점 수와 맞먹는 기록이었다. 이 활약으로 다른 팀으로부터 이적 제의가 있었으나, 그는 "나를 받아준 팀을 1년 만에 떠날 수는 없다"며 사간 도스에 잔류했다.
2006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시즌 후반기 절반 가까이 결장하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전년도보다 적은 출장 경기 수에도 불구하고 23골을 기록하며 2년 연속 J2리그 일본인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 해 사간 도스는 J리그 참가 이후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하며 약진했는데, 아라이 다쓰노리는 팀의 상위권 진입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3.3.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 및 쇼난 벨마레
2007년 아라이 다쓰노리는 J1리그 팀인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로 완전 이적했다. 그는 이 팀에서 3시즌 동안 꾸준히 출전했다. 2007년에는 25경기에서 5골을 기록했으며, 2008년에는 알렉스 밀러 감독 체제 하에서 본래의 포워드 포지션뿐만 아니라 측면에서도 기용되며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2008년에는 23경기에서 3골, 2009년에는 24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많은 골을 넣지는 못했고,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는 2009년 시즌 종료 후 J2리그로 강등되었다.
2009년 시즌 종료 후, 그는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고, 2010년 새롭게 J1리그로 승격한 쇼난 벨마레로 이적했다. 2010년 3월 6일 몬테디오 야마가타와의 경기에서 쇼난 데뷔전을 치렀다. 이 시즌에 17경기에 출전했지만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으며, 1년 만에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3.4. 두 번째 사간 도스 재적 및 선수 은퇴
2011년, 아라이 다쓰노리는 5년 만에 J2리그의 사간 도스로 복귀했다. 그는 2011년 시즌 동안 12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같은 해 시즌 종료 후인 2011년 12월 2일, 그는 현역 선수 경력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아라이 다쓰노리는 신장 172 cm, 체중 65 kg의 체격으로, 수비 라인의 배후 공간을 파고드는 스피드를 가장 큰 무기로 삼았다. 그는 오른발을 주로 사용하는 '골잡이'로 평가받았다. 빠른 속도를 이용한 침투와 기회를 놓치지 않는 골 결정력은 그의 주요 강점이었다. 전술적으로는 주로 포워드로 활약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5. 논란 및 사건
아라이 다쓰노리는 선수 경력 중 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사건이 있다. 2004년 8월, 콘사돌레 삿포로 소속이던 그는 팀 동료인 나카오 고지와 함께 음주운전 및 인명 사고를 일으켜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라이 다쓰노리와 나카오 고지 두 선수 모두 소속팀으로부터 즉시 해고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은 그의 선수 경력에 큰 오점을 남겼고, 이후 그의 행보에 영향을 미쳤다.
6. 선수 은퇴 후 경력
아라이 다쓰노리는 2011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도 축구계에 남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2년부터는 그가 선수로 활약했던 사간 도스의 아카데미 스태프(스쿨 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2013년에는 사간 도스 U-18팀의 코치를 맡았으며, 2014년에는 U-18팀의 감독으로 승격하여 어린 선수들을 지도했다. 2015년에는 사간 도스 U-12팀의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2016년에는 고향인 홋카이도로 돌아와 AGGRE 스포츠 클럽의 U-15 코치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7. 개인 타이틀 및 수상
- 2001년: 일본 클럽 유스 축구 선수권 (U-18) 대회 MIP (Most Impressive Player)
- 2007년: J리그 어워드 우수 신인상
8. 클럽별 기록
아라이 다쓰노리의 프로 선수 경력 동안 각 클럽에서의 시즌별 출장 경기 수 및 득점 기록은 다음과 같다.
클럽 성적 | 리그 | J리그컵 | 천황배 | 총계 | |||||||
---|---|---|---|---|---|---|---|---|---|---|---|
시즌 | 클럽 | 리그 | 경기 출장 | 득점 | 경기 출장 | 득점 | 경기 출장 | 득점 | 경기 출장 | 득점 | |
2002 | 삿포로 | J1리그 | 5 | 2 | 3 | 0 | 1 | 0 | 9 | 2 | |
2003 | J2리그 | 35 | 3 | - | 0 | 0 | 35 | 3 | |||
2004 | 27 | 3 | - | - | 27 | 3 | |||||
2004 | 시즈오카 | 도카이 1부 | - | - | |||||||
2005 | 도스 | J2 | 39 | 17 | - | 2 | 1 | 41 | 18 | ||
2006 | 36 | 23 | - | 1 | 0 | 37 | 23 | ||||
2007 | 지바 | J1 | 25 | 5 | 5 | 0 | 1 | 0 | 31 | 5 | |
2008 | 23 | 3 | 5 | 2 | 1 | 0 | 29 | 5 | |||
2009 | 24 | 2 | 4 | 1 | 3 | 1 | 31 | 4 | |||
2010 | 쇼난 | 17 | 0 | 3 | 0 | 1 | 1 | 21 | 1 | ||
2011 | 도스 | J2 | 12 | 1 | - | 1 | 1 | 13 | 2 | ||
J1 통산 | 94 | 12 | 20 | 3 | 7 | 2 | 121 | 17 | |||
J2 통산 | 149 | 47 | - | 4 | 2 | 153 | 49 | ||||
도카이 1부 통산 | - | - | |||||||||
총 통산 | 243 | 59 | 20 | 3 | 11 | 4 | 274 | 66 |
9. 일화 및 개인적 측면
- 아라이 다쓰노리는 J2리그에서 해트트릭을 3회 달성했는데, 이는 일본인 선수로서는 J2리그 역대 단독 최다 기록이다. 외국인 선수를 포함한 최다 기록은 주니뇨의 6회이다.
- 그의 이름인 다쓰노리(辰基, 辰基다쓰노리일본어)는 소년 야구 지도자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이었던 아버지가 거인의 인기 선수였던 하라 다쓰노리의 이름을 따서 지어준 것이다. 아라이 본인도 초등학생 시절에는 축구와 병행하여 야구를 했으며, 자이언츠의 열렬한 팬이었다.
-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탓치"(タッチ탓치일본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프로 선수가 된 후에는 팀 동료들로부터 "다쓰"(タツ다쓰일본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에서 활약할 당시에는 이치하라 미쓰요시, 구마가이 도모야와 함께 사설 응원단을 결성하기도 했다.
- 어릴 때부터 존경했던 선수는 미우라 가즈요시였다.
10. 평가
아라이 다쓰노리는 포워드로서 특히 J2리그에서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며 '골잡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년 연속 J2리그 일본인 득점왕을 차지하며 사간 도스의 약진에 크게 기여한 것은 그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이다. 특히 2006년 사간 도스가 J리그 참가 이래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하는 데 그의 23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4년 음주운전 및 뺑소니 사고로 소속팀에서 해고된 사건은 그의 경력에 큰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고 시즈오카 FC와 사간 도스를 거치며 J리그에 복귀했고, 그라운드 위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다시금 존재감을 증명하며 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이야기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개인적인 잘못으로 어려움을 겪은 후, 다시금 노력하여 성공적인 활약을 펼친 극적인 선수 경력으로 기억되고 있다. 은퇴 후에도 유소년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일본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