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아나톨리 피르소프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반디 선수로 시작하여 아이스하키에 입문하기까지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심을 통해 성장했다.
1.1. 어린 시절과 초기 스포츠 활동
피르소프는 1941년 2월 1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의 가족은 세 명의 자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피르소프가 태어난 지 불과 한 달 만에 아버지가 제2차 세계 대전 중 전사하면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유년 시절 피르소프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그의 어머니는 급여가 많지 않은 유치원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피르소프는 처음에는 아이스하키가 아닌 반디를 했다. 당시 소련에서는 아이스하키보다 반디가 더 인기가 많았다. 두 스포츠는 많은 유사점을 공유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반디가 공을 사용하는 반면 아이스하키는 퍽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피르소프는 처음에는 동네 뒷마당 팀에서 반디를 했으며, 주로 체구가 작거나 장비가 없는 아이들에게 배정되던 수비수 포지션에서 뛰었다. 여름에는 축구를 하며 일 년 내내 몸을 단련했다.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피르소프는 자신의 스틱과 스케이트를 직접 만들어야 했다. 그의 스틱은 벚나무 줄기를 깎아 만든 샤프트와 밤에 마구간에서 훔쳐 온 말의 멍에 활(shaft bow)로 만든 블레이드로 구성되었다. 이 스틱은 쉽게 부러져 피르소프는 정기적으로 새 스틱을 만들어야 했다. 한편, 그의 스케이트는 부츠에 끈으로 날을 묶어 만든 것이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피르소프는 빠르게 최고의 젊은 재능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11세 무렵에는 16세 아이들과 경기를 했고, 12세 무렵에는 소련군에 복무한 성인들과도 경기를 치렀다.
1.2. 아이스하키 입문
피르소프가 아이스하키에 대해 알게 된 것은 15세 무렵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다른 장비에 적응하는 데 약간 어려움을 겪었다. 반디 스틱은 하키 스틱에 비해 블레이드가 작았기 때문에 피르소프는 더 큰 블레이드가 다소 방해가 된다고 느꼈다. 그러나 피르소프는 반디 경기장이 하키 경기장(60 m)에 비해 약 100 m 길이로 더 길었기 때문에 더 긴 거리를 스케이트해야 했고, 이것이 자신의 지구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회고했다.
2. 선수 경력
아나톨리 피르소프는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수많은 우승과 개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2.1. 클럽 경력
피르소프는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59년부터 1974년까지 활약했다. 이후 그는 CSKA 모스크바에서 뛰며 소련 아이스하키 역사상 최고의 포워드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신장은 1.5 m (5 ft) 0.2 m (9 in)였고, 체중은 70 kg (154 lb)였다.
2.2. 소련 국가대표팀 경력
피르소프는 소련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1964년부터 1972년까지 총 166경기에 출전하여 134골을 기록했다. 그는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서 수많은 국제 대회에서 소련의 우승에 기여했다.
2.3. 주요 대회 성과
피르소프는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 올림픽
- 1964년 인스브루크 동계 올림픽: 금메달
- 1968년 그르노블 동계 올림픽: 금메달
-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 금메달
-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 1964년 인스브루크: 금메달
- 1965년 탐페레: 금메달
- 1966년 류블랴나: 금메달
- 1967년 빈: 금메달
- 1968년 그르노블: 금메달
- 1969년 스톡홀름: 금메달
- 1970년 스톡홀름: 금메달
- 1971년 베른: 금메달
한편, 피르소프는 1972년 서밋 시리즈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이는 당시 아나톨리 타라소프 감독이 코칭 스태프에서 제외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3. 지도자 및 기타 활동
선수 은퇴 후 피르소프는 지도자로서 아이스하키 발전에 기여했으며, 정치 활동을 통해 사회 개혁에도 참여했다.
3.1. 지도자 경력
피르소프는 1972년 CSKA 모스크바에서 선수로 뛰는 동안 보조 코치로 활동을 시작했다. 1976년부터 1977년까지는 소련 주니어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1977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197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는 어린이 아이스하키 코치로 활동하며 미래의 아이스하키 스타들을 양성하는 데 헌신했다.
3.2. 정치 활동
1989년 피르소프는 선거를 통해 소련 인민대표대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건강 상태 개선과 스포츠 시설 확충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되었으며, 이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자 했다.
4. 개인 생활
아나톨리 피르소프의 결혼, 가족, 취미 등 개인적인 삶의 측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5. 사망
아나톨리 피르소프는 2000년 7월 24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5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6. 수상 및 영예
아나톨리 피르소프는 선수 경력 동안 수많은 개인 및 단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 국제 아이스하키 연맹(IIHF) 명예의 전당 헌액 (1998년)
- 소련 리그 최우수 선수(MVP): 1968, 1969, 1971년
- 소련 리그 득점왕: 1966년
- 소련 리그 득점 선두: 1966년
-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득점왕: 1967, 1968, 1969, 1971년
-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득점 선두: 1967, 1968, 1969, 1971년
-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 최우수 포워드: 1967, 1968, 1971년
- 노동적기훈장 (1972년)
- 명예훈장 2회 (1965년, 1968년)
7. 저술
아나톨리 피르소프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저서를 남겼다.
- 《승리의 빛을 켜다 (To Switch on the Light of Victory)》 (1973년, 피즈쿨투라 이 스포르트 출판, 모스크바, 러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