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아구스틴 산초 아구스티나는 1896년 7월 18일 스페인 발렌시아주 카스테욘도의 벤요치에서 태어났다. (일부 출처에서는 그의 출생일이 1896년 9월 3일로 기록되어 있다.) 어린 시절 그는 바르셀로나의 산츠 지역으로 이주하여 성장했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산츠로 이주한 후, 그는 그곳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하며 지역 클럽에서 활동했다. 그의 어린 시절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축구 경력을 병행하며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1.2. 초기 축구 경력
산초는 어린 시절부터 산츠 지역의 여러 클럽에서 활약했다. 그는 글래디에이터 데 산츠(Gladiator de Sants스페인어)에서 뛰었으며, 이 클럽은 이후 우니오 에스포르티바 산츠(Unió Esportiva Sants스페인어, UE 산츠)로 재출범하게 된다. 산츠에서의 뛰어난 활약은 바르셀로나의 주요 클럽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는 RCD 에스파뇰과 사전 계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1916년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하게 되었다.
2. 클럽 경력
아구스틴 산초는 프로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FC 바르셀로나에서 보냈으며, 잠시 다른 클럽으로 이적하기도 했다. 그는 미드필더로서 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수많은 우승을 경험했다.
2.1. FC 바르셀로나 시기
1916년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한 산초는 이후 12시즌 동안 팀에서 활약했다. 그는 잭 그린웰 감독이 이끌던 FC 바르셀로나의 전설적인 팀의 일원이었다. 이 팀에는 파울리노 알칸타라, 에밀리오 사기 리냔 (사기바르바), 리카르도 사모라, 조제프 사미티에르와 같은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산초는 이들과 함께 FC 바르셀로나가 9번의 카탈루냐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과 4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1920년, 1922년, 1925년, 1926년)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25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는 아레나스 클루브 데 게초를 상대로 바르셀로나의 두 번째 골을 기록하며 팀의 2대0 승리를 이끌었다.
2.2. 이적 및 복귀
1922년 6월, 산초는 체중에 대한 비판 등으로 인해 불만을 느끼고 FC 바르셀로나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산츠로 돌아가 FC 인테르나시오날과 자신이 이전에 뛰었던 우니오 에스포르티바 산츠의 합병으로 새롭게 창단된 UE 산츠에 합류했다. 당시 UE 산츠는 그에게 바르셀로나 시의회의 건설 계약자 일자리도 제안했다. 이는 1920년대 말까지 스페인에서 축구의 프로페셔널리즘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산초가 선수 경력 내내 벽돌공으로서의 직업과 축구를 병행했기 때문이다. 산초는 UE 산츠에서 한 시즌만 보냈고, 1923년 6월 FC 바르셀로나의 설득으로 다시 바르셀로나로 복귀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아구스틴 산초는 스페인 국가대표팀과 카탈루냐 국가대표팀 양쪽에서 활약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3.1. 스페인 국가대표팀
산초는 1920년 하계 올림픽 축구에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벨기에와 이탈리아를 상대로 두 경기에 출전했으며, 스페인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1923년 12월 16일 포르투갈과의 친선 경기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를 치렀다.
3.2. 카탈루냐 국가대표팀
FC 바르셀로나 선수였던 산초는 카탈루냐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소집되었다. 그는 스페인 왕립 축구 연맹(RFEF영어)이 주관하는 지역 간 대회인 아스투리아스 공컵(Copa del Príncipe de Asturias스페인어)에 참가하여 1923-24 아스투리아스 공컵 우승을 차지한 팀의 일원이었다. 산초는 카스티야/마드리드 XI를 상대로 치러진 결승전의 두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으며, 재경기에서 카탈루냐가 3대2로 승리하여 팀의 두 번째 아스투리아스 공컵 우승을 확정하는 데 기여했다.
4.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 후 아구스틴 산초는 축구 지도자로서의 길을 걸었다.
4.1. 초기 지도자 활동
1922년 여름, 산초는 카스테욘데라플라나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지역 축구팀인 CD 카스테욘(CE Castellón스페인어)의 창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해당 지역에서 가장 경험 많고 대표적인 축구 선수였기 때문에, 새로 창단된 팀의 첫 경기들을 이끌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발렌시아에서도 몇몇 경기를 지도했다. 그는 1922년부터 1923년까지 발렌시아 CF의 감독을 맡았으며, 1928년부터 1929년까지는 CE 사바델 FC의 감독을, 1943년부터 1944년까지는 CF 레우스 데포르티우의 감독을 역임했다.
4.2. FC 바르셀로나 코치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후, 산초는 조제 플라나스(José Planas스페인어) 감독의 보조 코치로서 FC 바르셀로나의 기술 관리 부서에서 활동했다.
5. 포지션 및 플레이 스타일
아구스틴 산초는 주로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그는 공수 양면에 걸쳐 팀에 기여하는 다재다능한 선수였으며, 특히 FC 바르셀로나의 전설적인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팀의 수많은 우승에 기여했다.
6. 개인사
아구스틴 산초는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과 함께 벽돌공이라는 직업을 병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1920년대 말까지 스페인에서 축구의 프로페셔널리즘이 충분히 확립되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그는 1922년 FC 바르셀로나를 떠나 UE 산츠로 복귀했을 때, 바르셀로나 시의회로부터 건설 계약자 일자리를 제안받기도 했다.
7. 수상 경력
아구스틴 산초는 선수로서 다음과 같은 주요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 FC 바르셀로나
- 코파 델 레이: 4회 우승 (1920년, 1922년, 1925년, 1926년)
- 카탈루냐 축구 선수권 대회: 9회 우승 (1918-19, 1919-20, 1920-21, 1921-22, 1923-24, 1924-25, 1925-26, 1926-27, 1927-28)
- 스페인 국가대표팀
- 올림픽 축구: 1920년 은메달
8. 사망
아구스틴 산초 아구스티나는 1960년 8월 25일 카탈루냐주 바르셀로나에서 사망했다.
9. 영향 및 평가
아구스틴 산초는 FC 바르셀로나의 황금기를 이끈 전설적인 팀의 핵심 미드필더로서 당대 스페인 축구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꾸준한 활약과 다수의 우승 기여는 그를 바르셀로나 역사상 중요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게 했다. 또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원년 멤버로서 1920년 하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것은 스페인 축구 역사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중요한 업적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