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이삭은 7세기경(기원후 613년경 ~ 700년경)에 활동한 시리아 기독교 주교이자 신학자로, 주로 기독교 금욕주의에 관한 저술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니네베의 이삭, 시리아의 성 이삭, 아바 이삭, 이삭 시루스, 카타르의 이삭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동방교회, 가톨릭 교회,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추앙받으며, 그의 축일은 4세기 신학자이자 찬송가 작가인 시리아의 에프렘과 함께 1월 28일이다.
이삭은 동부 아라비아의 베스 카트레이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짧은 기간 동안 니네베의 주교로 재직한 후 은둔 생활로 돌아가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저술은 인간적인 폭넓음과 초월적인 신학적 깊이를 지닌 영적 강론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성령의 역할과 자비를 강조했으며, 그의 우울한 문체와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에 대한 깊은 연민은 동방 정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삭은 게헨나의 영원한 고통을 통한 신의 처벌이라는 개념이 신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랑과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이는 그의 신비주의적 가르침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이다. 그의 저술은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위 디오니시우스, 고독한 요한, 시리아의 에프렘, 나르사이,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 등 초기 기독교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후대 시리아 작가인 달리아타의 요한과 하짜야 요셉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이삭의 개인적인 배경과 삶의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2.1. 출생 및 초기 생애
이삭은 기원후 613년경 메소포타미아 남동부와 아라비아 반도 북동부를 포함하는 혼합 시리아어 및 아랍어 사용 지역인 동부 아라비아의 베스 카트레이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현재의 카타르를 포함한다. 그는 아직 어린 나이에 형제와 함께 수도원에 입문하여 금욕주의적 실천에 전념했다. 수도원 부속 도서관에서 수년간의 학업을 통해 신학 분야의 권위 있는 인물로 부상했다. 그는 평생을 수도원 생활에 헌신했으며, 베스 카트레이 지역 전반의 종교 교육에도 참여했다.
2.2. 수도원 생활
이삭은 수도원에 들어간 후, 그의 숙련된 수도 생활이 다른 수도사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면서 수도원의 지도자로 추천되었다. 그러나 평온을 선호했던 이삭은 이를 거절하고 수도원을 떠나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그는 형제들의 수도원으로 돌아오라는 설득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는 마트아우트산의 황야에서 수년간 고독하게 살았으며, 일주일에 빵 세 덩이와 익히지 않은 채소만을 먹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그의 전기 작가들을 늘 놀라게 한 세부 사항이었다.
2.3. 주교직과 사임
이삭의 성스러운 삶에 대한 명성이 널리 퍼지자, 동방교회의 카톨리코스 기와르기스 1세 (661년 ~ 680년)는 676년 베스 카트레이를 방문하여 시노드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삭을 멀리 북쪽 아시리아의 니네베 주교로 임명했다. 그러나 행정 업무는 은퇴하고 금욕적인 그의 성향에 맞지 않았다. 그는 불과 5개월 만에 주교직에서 사임을 요청하고 수도 생활의 침묵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그는 많은 수도 생활에 관한 저작을 남겼다.
2.4. 말년과 죽음
결국 실명과 노령으로 인해 이삭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아시리아 수도원인 라반 샤부르(Rabban Shabur)로 은퇴했다. 그는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다 사망하여 묻혔다. 그가 사망할 당시 그는 거의 눈이 먼 상태였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를 그의 학업에 대한 헌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삭이 살았던 시대는 이슬람교의 부흥기였으나, 그의 시대에는 기독교인과 이슬람교도 간의 관계가 항상 적대적이지는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3. 저술과 사상
이삭의 주요 저작들과 그가 발전시킨 신학적, 금욕적 사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3.1. 저술 개요
이삭은 영적 삶, 신성한 신비, 심판, 섭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수십 편의 강론을 저술했으며, 이를 일곱 권의 책으로 엮었다. 오늘날 이 일곱 권의 책은 '제1부'부터 '제5부'까지 다섯 개의 '부'로 보존되어 있다. 1983년 이전에는 '제1부'만이 아람어 사용 공동체 외부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이후 시리아학자들이 오래된 문헌 기록 보관소에서 나머지 부분을 재발견했다.
그의 많은 저술은 사비노 키알라에 의해 이탈리아어로, 세바스티안 P. 브록, 메리 T. 핸스베리, 홀리 트랜스피규레이션 수도원 등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다. 또한 그리스어, 아랍어, 조지아어, 슬라브어, 프랑스어, 카탈루냐어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일본어로는 1909년 정교회 편집국에서 출판된 『シリヤの聖イサアク全書시리야의 성 이사악 전서일본어』, 1896년 호리에 후쿠가 번역한 『祈祷惺々集기도성성집일본어』의 한 장, 그리고 1990년 카지와라 시로가 번역한 『同情の心동정의 마음일본어』 등이 있다.
3.2. 금욕적 설교집 (제1부)
'금욕적 설교집'으로도 알려진 '제1부'는 이삭의 저작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부분이다. 이 책은 82개의 강론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원고나 판본에 따라 강론의 수와 순서는 크게 다를 수 있다. 아렌트 얀 벤신크는 1923년 이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하여 『신비주의 논문집(Mystic Treatises)』으로 출판했다. 홀리 트랜스피규레이션 수도원은 1983년에 비판적 판본인 『시리아의 성 이삭의 금욕적 강론집(The Ascetical Homilies of Saint Isaac the Syrian)』을 출판했으며, 2011년에 개정 2판이, 2020년에 3쇄가 발행되었다.
3.3. 제2부
'제2부'는 4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제3장은 가장 길다. 제3장은 '영지적 장(Kephalaia Gnostica)'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400개의 절이 4개의 세기(100개 절씩 묶음)로 조직되어 있다. 최근에는 '영지적 장'의 일부가 투르판에서 발견된 소그드어 단편들에서 확인되었다.
'제2부'는 1983년 4월 세바스티안 브록에 의해 보들리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1898년 6월 29일 아시리아 사제 야루 미카엘 니산이 보들리 도서관에 기증한 MS syr. e. 7이라는 필사본이 서구 학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리아어 독자들에게는 정기적으로 읽히던 이삭의 저술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들리 MS syr. e. 7은 10세기 또는 11세기에 코움의 마르 압디쇼 수도원에서 서기관 마르코스가 벳 비디 마을의 라반 이쇼를 위해 필사한 양피지 필사본이다. 이 필사본은 길이 195 mm ~ 200 mm, 너비 145 mm ~ 150 mm이며 190개의 폴리오로 이루어져 있다. 페이지당 약 26줄이 있으며, 초반에는 약 23줄이다.
1983년 이후, '제2부'의 불완전한 필사본들이 케임브리지 MS Or. 1144와 프랑스 국립도서관 MS syr. 298(11세기~13세기경)에서도 발견되었다. 영어 번역본으로는 브록이 2022년에 제1장~제3장을 번역했으며, 제1장~제2장은 1997년에도 출판되었다. 제4장~제41장의 영어 번역본과 원본 시리아어 텍스트는 1995년 브록의 번역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어 완역본은 앙드레 루프가 2003년에 출판했고, 그리스어 부분 번역본은 카바다스가 2006년에 출판했다. '제2부'의 일부는 1985년 베티올로에 의해 이탈리아어로, 2005년 닌에 의해 카탈루냐어로 번역되었다.
'제2부'를 포함하는 필사본 목록은 다음과 같다.
필사본 이름 | 연대 | 특징 |
---|---|---|
옥스퍼드, 보들리 도서관, MS syr. e.7 | 10세기/11세기 | 완전한 필사본 |
테헤란, 마르 이사야 컬렉션, MS 4 | 1895년 | MS syr. e.7에서 복사됨 |
파리 MS syr. 298 | 11세기/12세기 | |
하버드 대학교, 호튼 도서관, MS syr. 57 | 13세기/14세기 | |
바그다드, 칼데아 수도원, MS syr. 680 (구 알코시 237) | 1288년/1289년 | 제7, 9, 15.1-6, 11, 18.18-22, 32, 34-36장 포함 |
밍가나 컬렉션 syr. 601 | 1932년 | 바그다드 MS syr. 680에서 복사됨 |
밍가나 syr. 86 | -1300년 | 제24.11-13, 20.25, 25장 포함 |
영국 도서관, Add. 14632 | 10세기 | 제16-17장 포함 |
영국 도서관, Add. 14633 | -11세기 | 제16-17장 포함 |
테헤란, 마르 이사야 컬렉션, MS 5 | 1900년 | 제25장 포함 |
폴 베잔 판본 | 1909년 | 제1부 제54-55장(=제2부 제16-17장) (1235년 필사본 기반), 분실된 우르미아 필사본(제5.5,22-26,29-30장 및 제11장) |
3.4. 제3부
'제3부'는 메리 T. 핸스베리가 2016년에 영어로, 앙드레 루프가 2009년에 프랑스어로, 사비노 키알라가 2004년과 2011년에 이탈리아어로 번역했다. 이 부분은 이란 테헤란에 보관된 이사야 MS 5를 기반으로 한다. 이 필사본은 14세기 원본 필사본의 1903년 사본으로, 원본은 현재 소실되었다. 이사야 MS 5는 칼데아 테헤란 대주교인 유한난 사마안 이사야 몬시뇰이 고서점에서 발견하여 그의 개인 서재에 보관했다. 1999년 그의 사망 후, 벨기에 학자 미셸 반 에스브로크가 테헤란에 있는 이사야의 서재에서 이 필사본을 발견하고 국제 학계에 그 발견을 알렸다. 이사야 MS 5는 133개의 폴리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111개의 폴리오에는 이삭의 저작으로 볼 수 있는 17개의 강론이 포함되어 있다. 이 17개 강론 중 14개는 '제3부' 내에서 1~13번, 16번으로 번호가 매겨진 다른 텍스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고유한 강론이며, 나머지 3개 텍스트는 기존 '제1부' 및 '제2부' 필사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3.5. 제5부
'제5부'의 일부는 샤르페트의 MS 라흐마니 80, 바그다드에 보관된 MS 다우라 시르. 694 및 MS 다우라 시르. 938, 그리고 바티칸 MS 시르. 592에서 발견되었다. 핸스베리의 2016년 저서에는 '제5부'의 두 강론에 대한 영어 번역이 포함되어 있으며, 다른 '제5부' 강론들은 핸스베리의 2015년 저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3.6. 핵심 신학 및 금욕 사상
이삭은 그의 저술을 통해 자비, 겸손, 기도, 신성한 사랑, 그리고 신의 정의에 대한 중심 사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특히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며 내면의 삶에 대한 영적 강론을 펼쳤다.
그의 사상에서 두드러지는 핵심 개념들은 다음과 같다.
- 자비와 회개**: 이삭은 "회개는 자비로 가는 문이며, 이 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사람은 자비를 찾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라. 그들을 통해 너는 자비를 찾을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 겸손**: 이삭에게 겸손은 영적 성장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는 "자기 자신을 낮추고 멸시받고 거부당하는 모습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너는 너 자신 안에서 신의 영광을 볼 것이다. 겸손이 꽃피는 곳에는 신의 영광이 빛난다"고 말했다. 또한 "마음이 겸손하지 않는 한, 마음의 방황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겸손이야말로 마음을 집중시키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겸손이 내면의 평온과 집중을 가져온다고 보았다.
- 신성한 사랑과 보편적 연민**: 이삭의 가장 독특한 사상 중 하나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 보편적인 연민이었다. 그는 "동정심이란 모든 피조물, 인간, 새, 동물, 악령,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위해 불타는 마음이다"라고 정의하며, 신의 사랑이 모든 존재에게 미치는 지극한 자비의 반영임을 역설했다.
- 기도와 침묵**: 이삭은 기도를 통해 신과 깊이 교감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기도 중에 때로는 성경 말씀이 입안에서 달콤해질 것이다. 그리고 기도의 아주 짧은 한 구절이 셀 수 없이 여러 번 반복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기도의 깊은 경험을 묘사했다. 또한 그는 수도 생활에서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지식과 믿음**: 이삭은 지식과 믿음의 관계에 대해 독특한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지식은 믿음에 반대한다. 믿음은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에서 지식에 의한 방식을 파괴하는 것이며, 비영적인 지식의 파괴이다... 믿음은 고안하고 방법을 탐색하는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사상의 방식에서 오직 순수하고 단순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지식은 두려움을 동반하고, 믿음은 희망을 동반한다"고 덧붙였다.
이삭의 저술은 경험 많은 은둔자가 쓴 방대한 금욕주의 텍스트의 드문 사례를 제공하며, 초기 기독교 금욕주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의 우울한 문체와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에 대한 공감은 동방 정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4. 만물회복설에 대한 견해
이삭은 모든 피조물이 궁극적으로 구원될 것이라는 만물회복설을 주장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는 그의 신학에서 독특하고 논쟁적인 입장을 차지한다.
4.1. 만물회복설 지지 논거
일부 학자들(예: 바츠와프 흐리니에비치, 일라리아 라멜리)은 이삭의 '제2부'에 나타난 견해가 그가 만물회복설을 옹호했음을 확인시켜 준다고 주장한다. '제2부' 제39장에서 이삭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자비로운 창조주께서 이성적인 존재들을 창조하시어, 그들이 형성되기 전부터 그들의 결과를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영원한 고통에 무자비하게 넘겨주는 것은 그분의 방식이 아니다." 이 구절은 신의 본질적인 자비가 영원한 처벌과 양립할 수 없다는 이삭의 믿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제3부' 제5장에서 이삭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것이 신비이다. 모든 피조물이 한 분을 통해 신비하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고, 그 다음 모든 이에게 전달되어, 모든 것이 그분과 연합된다... 이 행위는 모든 피조물을 위해 이루어졌으며, 진실로 어떤 부분도 전체에서 부족함이 없을 때가 올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모든 피조물이 신과 연합되어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그의 견해를 명확히 드러낸다.
이삭의 잘 알려진 '금욕적 강론집'(제1부)에도 만물회복설에 대한 여러 암시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제5장에서는 "하나님은 아무도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말한다. 제26장에서는 "죄가 존재하지 않던 때가 있었고, 죄가 존재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라고 언급하여 죄의 일시적인 성격을 시사한다. 제50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대양에 던져진 한 줌의 모래처럼, 모든 육체의 죄는 하나님의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풍성하게 흐르는 샘물이 한 줌의 흙으로 막히지 않듯이, 창조주의 자비는 피조물의 악함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만일 그분이 여기서 자비로우시다면, 우리는 그분에게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하나님이 자비로울 수 없다고 사악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나님의 속성은 필멸의 존재들처럼 변동하지 않는다... 부활의 은혜에 비하면 지옥이 무엇인가? 와서 우리 창조주의 은혜에 경탄하자." 이삭의 저술 전체에 걸쳐 이와 같은 많은 관련 구절들이 궁극적인 보편적 구원에 대한 그의 믿음을 입증하는 데 인용될 수 있다.
5. 시성 및 평가
이삭은 기독교 전통에서 성인으로 추앙받으며, 그의 저술은 역사적, 학술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았다.
5.1. 성인 칭호와 축일
이삭은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동방교회 전통에서 오랫동안 성인으로 존경받아 왔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2024년 11월 9일, 이삭을 로마 순교록, 즉 라틴 교회가 공경하는 성인들의 공식 목록에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그의 축일은 4세기 신학자이자 찬송가 작가인 시리아의 에프렘과 함께 1월 28일이다.
5.2. 역사적 및 학술적 평가
이삭의 저술은 8세기와 9세기 동안 그의 교회 외부의 수도원 공동체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되었다. 그는 동방 전통에서 오랫동안 존경받았지만, 서방 교회에서는 19세기 말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가 이후 연구되기 시작했다. 이삭의 저작들은 경험 많은 은둔자가 쓴 방대한 금욕주의 텍스트의 드문 사례를 제공하며, 이는 초기 기독교 금욕주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6. 영향
이삭의 사상과 저술은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6.1. 후대 작가 및 전통에 미친 영향
이삭의 사상은 후대 시리아 작가들인 달리아타의 요한과 하짜야 요셉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의 내면의 삶에 대한 영적 강론, 인간적인 폭넓음과 초월적인 신학적 깊이, 그리고 성령의 사역에 대한 강조는 동방 정교회 영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게헨나 (불의 호수 또는 지옥)의 신비에 대한 신의 영원한 처벌 개념이 신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랑과 양립할 수 없다는 이삭의 확신은 그의 두 번째 신비주의 가르침의 핵심 주제로 여겨지며, 이는 후대 기독교 신비주의 전통에 중요한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
7. 관련 항목
- 시리아의 이삭의 금욕적 설교
- 대 안토니우스
- 만물회복설
- 아랍 기독교인
- 금욕주의
- 기독교 보편주의
- 교부
- 동방교회
- 다디쇼 카트라야
- 동시리아 전례
- 시리아의 에프렘
- 요한네스 클리마쿠스
- 수도원 침묵
- 필로칼리아
- 시리아 기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