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education
스티브 하우는 미시간주 폰티악에서 태어났다. 그는 클락스턴 고등학교에서 야구를 한 후, 미시간주 앤아버에 위치한 미시간 대학교에서 대학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대학 시절 그는 두 차례 빅 텐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 Baseball career
스티브 하우는 1980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후 여러 팀을 거치며 활약했지만, 약물 문제로 인해 그의 선수 경력은 많은 부침을 겪었다.
2.1. Early career and Dodgers era
스티브 하우는 1979년 드래프트에서 16순위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입단했다. 1980년 22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으며, 그해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는 릭 서트클리프,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스티브 색스에 이어 다저스 소속으로 4연속 신인왕을 배출한 사례 중 두 번째였다. 신인 시즌에 그는 17개의 세이브를 기록하며 신인 구원 투수 최다 세이브 신기록을 세웠다. 다음 해인 1981년 단축 시즌에 하우는 다저스가 1981년 월드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1983년 처음으로 약물 중독 치료 시설에 입소하는 등 약물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재발로 인해 1984 시즌 전체를 출장 정지 당했다.
2.2. Career interruption and comebacks
다저스에서 활약한 후, 스티브 하우는 미네소타 트윈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잠시 뛰었다. 이후 4년간 메이저리그를 떠나 있었던 그는 1987년 일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스프링 캠프에 테스트 선수로 참가하기도 했으나, 과거 코카인 사용 이력이 문제가 되어 불합격했다.
이후 하우는 뉴욕 양키스와 계약하며 다시 효과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그러나 1992년, 그는 약물 남용으로 인해 야구계에서 영구 제명된 두 번째 선수(첫 번째는 퍼거슨 젠킨스)가 되었다. 그는 성공적으로 영구 제명에 대한 항소를 제기하여 번복시켰고, 양키스와 재계약했다. 1994년 1994 시즌에는 양키스의 마무리 투수로 15세이브와 1.80의 자책점을 기록하며 마지막으로 뛰어난 시즌을 보냈다. 그는 이듬해에도 같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셋업맨 역할로 강등되었으며, 1996년 6월에는 0승 1패 6.35의 자책점을 기록한 후 방출되었다. 하우는 1997년 독립 리그인 노던 리그의 수폴스 캐너리즈에서 뛰면서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다. 그의 17년간의 경력 동안 그는 약물 문제로 인해 총 7차례의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2.3. Career statistics
스티브 하우의 메이저리그 통산 및 연도별 주요 투수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 | 팀 | 경기 | 선발 | 완투 | 완봉 | 마무리 등판 | 승 | 패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수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몸에 맞는 볼 | 폭투 | 탈삼진 | 보크 | 실점 | 자책점 | 자책점율 | WHIP |
---|---|---|---|---|---|---|---|---|---|---|---|---|---|---|---|---|---|---|---|---|---|---|---|---|
1980 | LAD | 59 | 0 | 0 | 0 | 0 | 7 | 9 | 17 | -- | .438 | 359 | 84.2 | 83 | 1 | 22 | 10 | 2 | 39 | 1 | 33 | 25 | 2.66 | 1.24 |
1981 | LAD | 41 | 0 | 0 | 0 | 0 | 5 | 3 | 8 | -- | .625 | 227 | 54.0 | 51 | 2 | 18 | 7 | 0 | 32 | 0 | 17 | 15 | 2.50 | 1.28 |
1982 | LAD | 66 | 0 | 0 | 0 | 0 | 7 | 5 | 13 | -- | .583 | 393 | 99.1 | 87 | 3 | 17 | 11 | 0 | 49 | 1 | 27 | 23 | 2.08 | 1.05 |
1983 | LAD | 46 | 0 | 0 | 0 | 0 | 4 | 7 | 18 | -- | .364 | 274 | 68.2 | 55 | 2 | 12 | 7 | 1 | 52 | 3 | 15 | 11 | 1.44 | 0.98 |
1985 | LAD | 19 | 0 | 0 | 0 | 0 | 1 | 1 | 3 | -- | .500 | 104 | 22.0 | 30 | 2 | 5 | 2 | 1 | 11 | 2 | 17 | 12 | 4.91 | 1.59 |
1985 | MIN | 13 | 0 | 0 | 0 | 0 | 2 | 3 | 0 | -- | .400 | 94 | 19.0 | 28 | 1 | 7 | 2 | 0 | 10 | 1 | 16 | 13 | 6.16 | 1.84 |
1985 합계 | 32 | 0 | 0 | 0 | 0 | 3 | 4 | 3 | -- | .429 | 198 | 41.0 | 58 | 3 | 12 | 4 | 1 | 21 | 3 | 33 | 25 | 5.49 | 1.71 | |
1987 | TEX | 24 | 0 | 0 | 0 | 0 | 3 | 3 | 1 | -- | .500 | 131 | 31.1 | 33 | 2 | 8 | 1 | 3 | 19 | 2 | 15 | 15 | 4.31 | 1.31 |
1991 | NYY | 37 | 0 | 0 | 0 | 0 | 3 | 1 | 3 | -- | .750 | 189 | 48.1 | 39 | 1 | 7 | 2 | 3 | 34 | 2 | 12 | 9 | 1.68 | 0.95 |
1992 | NYY | 20 | 0 | 0 | 0 | 0 | 3 | 0 | 6 | -- | 1.000 | 79 | 22.0 | 9 | 1 | 3 | 1 | 0 | 12 | 1 | 7 | 6 | 2.45 | 0.55 |
1993 | NYY | 51 | 0 | 0 | 0 | 0 | 3 | 5 | 4 | -- | .375 | 215 | 50.2 | 58 | 7 | 10 | 4 | 3 | 19 | 0 | 31 | 28 | 4.97 | 1.34 |
1994 | NYY | 40 | 0 | 0 | 0 | 0 | 3 | 0 | 15 | -- | 1.000 | 152 | 40.0 | 28 | 2 | 7 | 1 | 0 | 18 | 1 | 8 | 8 | 1.80 | 0.88 |
1995 | NYY | 56 | 0 | 0 | 0 | 0 | 6 | 3 | 2 | -- | .667 | 230 | 49.0 | 66 | 7 | 17 | 3 | 4 | 28 | 1 | 29 | 27 | 4.96 | 1.69 |
1996 | NYY | 25 | 0 | 0 | 0 | 0 | 0 | 1 | 1 | -- | .000 | 76 | 17.0 | 19 | 1 | 6 | 3 | 1 | 5 | 2 | 12 | 12 | 6.35 | 1.47 |
통산: 12년 | 497 | 0 | 0 | 0 | 0 | 47 | 41 | 91 | -- | .534 | 2523 | 606.0 | 586 | 32 | 139 | 54 | 18 | 328 | 17 | 239 | 204 | 3.03 | 1.20 |
2.4. Awards and achievements
스티브 하우가 야구 경력 동안 달성한 주요 개인상 및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신인왕: 1980년
- 세이브: 1981년 월드 시리즈 우승 확정 경기에서 세이브 기록
- 올스타 선정: 1982년
3. Substance abuse and controversies
스티브 하우의 야구 경력은 알코올 및 코카인 남용 문제와 그로 인한 논란, 징계로 점철되었다. 그의 약물 문제는 선수 생활 내내 큰 영향을 미쳤다.
3.1. Impact on career
하우의 경력은 알코올과 코카인 남용으로 인해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1983년에 처음으로 약물 중독 치료 시설에 자발적으로 입소했지만, 재발로 인해 1984년 시즌 전체를 출장 정지 당했다. 17년간의 메이저리그 경력 동안 그는 약물 정책 위반으로 총 7차례나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반복적인 징계는 그의 야구 선수로서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3.2. Lifetime ban and appeals
1992년, 스티브 하우는 약물 남용으로 인해 메이저리그로부터 영구 제명 처분을 받았다. 이는 약물 문제로 영구 제명된 메이저리그 역사상 두 번째 사례였다. 그러나 그는 이 결정에 성공적으로 항소하여 번복시켰고, 뉴욕 양키스와 재계약하며 메이저리그에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이 복귀는 그의 끈질긴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지만, 그의 약물 문제는 경력이 끝날 때까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4. Post-baseball life
야구 선수에서 은퇴한 후, 스티브 하우는 애리조나주 레이크하바수시티에서 목재 골조 건설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로 일했다. 그의 회사는 '올스타 프레이밍(All Star Framing영어)'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다.
5. Autobiography
하우는 그의 야구 경력 중반인 1989년에 자서전 Between the Lines: One Athlete's Struggle to Escape the Nightmare of Addiction영어 (ISBN 9780940279254)를 출판했다. 이 책은 그의 약물 의존증과 새로 발견한 복음주의적 기독교에 대한 헌신을 바탕으로 한 회복 노력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필라델피아 지역의 변호사 짐 그린필드와 공동으로 집필되었다.
6. Death
2006년 4월 28일, 스티브 하우는 캘리포니아주 코첼라에서 자신의 픽업트럭이 전복되는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그는 안전띠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사고 후 부검에서 실시된 독성학 보고서에 따르면, 그의 체내에서 메스암페타민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향년 48세였다.
7. Legacy and evaluation
스티브 하우의 야구 선수로서의 유산은 뛰어난 투수로서의 재능과 함께 약물 남용 문제로 얼룩진 경력으로 인해 복합적으로 평가된다. 1980년 신인왕과 1981년 월드 시리즈 우승 기여 등 그의 초기 성공은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보여줄 수 있었던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알코올과 코카인 중독은 그의 선수 생활을 지속적으로 방해했고, 반복적인 출장 정지와 영구 제명이라는 극단적인 징계를 초래했다. 그의 사례는 메이저리그가 약물 정책을 강화하고 선수들의 약물 남용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끊임없는 복귀 시도와 1994년 양키스에서의 재기는 역경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려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지만, 결국 약물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그의 삶은 운동선수와 약물 중독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