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스콧 키건 어윈(Scott Keegan Irwin영어, 1952년 5월 14일 ~ 1987년 9월 5일)은 미국의 프로레슬링 선수였다. 그는 강력한 힘과 자연적인 거대한 체구를 바탕으로 벌목꾼, 바이킹, 마스크맨, 모터사이클 갱 등 다양한 기믹을 소화하며 거구의 악당으로 활약했다. 특히 자신의 친형제인 빌 어윈과의 태그팀 활동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프로레슬링에서 널리 사용되는 슈퍼플렉스 기술을 고안하고 대중화하는 데 기여하며 레슬링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뇌종양으로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업적과 기술은 여전히 프로레슬링 역사에서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있다.
2. 생애 초기 및 배경
스콧 키건 어윈은 1952년 5월 14일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지는 미네소타주덜루스로 알려져 있지만, 플로리다주세인트피터즈버그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스콧에게는 자신과 함께 프로레슬링 선수로 활동한 친형제 바니 "빌" 어윈이 있었다.
3. 프로레슬링 경력
스콧 어윈은 1975년 버른 가니에 밑에서 훈련을 시작하여 프로레슬링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그는 다양한 기믹과 태그팀 활동을 통해 미국 전역과 일본을 넘나들며 폭넓은 경력을 쌓았다.
3.1. 데뷔 및 초기 경력
가니에의 트레이닝 캠프에 참가한 스콧 어윈은 1976년 3월 13일 아이오와주대븐포트에서 AWA 소속으로 데뷔 경기를 치렀다. 그는 또 다른 신인이었던 딕 블러드와 시간 제한 무승부를 기록했다. 초기에는 주로 예비 경기(프렐리미너리 매치)에 출전했으며, 1976년 6월까지 AWA에서 활동하다가 조지아 챔피언십 레슬링으로 옮겨 1977년 봄까지 활동했다. 이후 그는 미드 아틀랜틱 챔피언십 레슬링에서 1978년 초까지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다.
3.2. 월드 와이드 레슬링 페더레이션 (WWWF) 활동
1978년 3월 14일, 어윈은 WWWF에 데뷔하며 "유콘 럼버잭스"의 한 멤버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럼버잭 에릭"이라는 링 네임을 부여받았고, 그의 태그팀 파트너인 자리노프 르뵈프는 "럼버잭 피에르"라는 링 네임을 사용했다. 데뷔 직후, 유콘 럼버잭스는 디노 브라보와 도미닉 데누치를 상대로 WWWF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두고 격돌했으나, 6월 2일 경기는 더블 실격으로 끝났다.
럼버잭스는 브라보와 데누치와의 대립을 이어갔고, 여러 차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6월 26일 마침내 그들을 꺾고 타이틀을 획득했다。이후 럼버잭스는 몇 달 동안 브라보와 데누치, 고릴라 몬순과 S.D. 존스, 헤이스택 칼훈과 토니 가리아 등 여러 팀을 상대로 타이틀을 방어하며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11월 21일, 럼버잭스는 가리아와 래리 즈비스코에게 타이틀을 상실했다. 이 타이틀 상실 이후 피에르는 은퇴했고, 에릭은 WWWF를 떠났다.
3.3. 기믹 변화 및 지역 챔피언십 활동
WWWF를 떠난 어윈은 1978년 12월 챔피언십 레슬링 프롬 플로리다에 "토르 더 바이킹"이라는 기믹으로 데뷔했으며, 올리버 험퍼딩크가 그의 매니저를 맡았다. 플로리다에서 어윈은 챔피언십의 성공을 거두었다. 1979년 1월 20일에는 테리 펑크로부터 NWA 서던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플로리다 버전)을 획득했으며, 2월 17일에는 조 르둑과 팀을 이뤄 잭 브리스코와 제리 브리스코로부터 NWA US 태그팀 챔피언십 (플로리다 버전)을 빼앗았다. 토르 기믹으로 치른 그의 마지막 경기는 1979년 10월 14일 스티브 키언을 상대로 한 승리였다.
그 다음 달, 어윈은 복면레슬러 "슈퍼 디스트로이어"로 챔피언십 레슬링 프롬 플로리다에 복귀하여 스탠 레인과 태그팀 경기를 펼쳐 키언과 마이크 그레이엄을 꺾었다. 슈퍼 디스트로이어는 1979년 남은 기간 동안 올리버 험퍼딩크의 패밀리에 합류하여 레로이 브라운, 벅시 맥그로, 니콜라이 볼코프 등과 협력하며 더스티 로즈, 매니 페르난데스, 미스터 플로리다 등 해당 지역의 선역 레슬러들과 대립했다.
슈퍼 디스트로이어 기믹은 이후로도 계속 사용되었으며, 1980년 11월 27일 미드사우스 레슬링에 데뷔하여 테드 디비아시에게 패배했다. 1981년 4월 18일, 슈퍼 디스트로이어는 미드사우스로 돌아와 더 그래플러와 태그팀 챔피언십 토너먼트 결승에서 딕 머독과 정크야드 독을 꺾고 미드사우스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그러나 며칠 뒤인 4월 27일 머독과 정크야드 독에게 타이틀을 상실했다. 이 타이틀 상실 직후, 디스트로이어는 5월 1일 루이지애나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획득하며 부활했다. 그는 2개월 이상 타이틀을 보유하다가 7월 22일 밥 룹에게 패배했다. 이후 어윈은 콘티넨탈 레슬링 어소시에이션에 합류하여 슈퍼 디스트로이어로 계속 활동했으며, 마스크드 슈퍼스타와 함께 성공적인 태그팀을 결성했다.
3.4. 마스크드 슈퍼스타와의 태그팀
스콧 어윈은 콘티넨탈 레슬링 어소시에이션에서 마스크드 슈퍼스타와 "슈퍼 디스트로이어스"라는 태그팀을 결성했다. 이 팀은 곧 조지아 챔피언십 레슬링으로 이적하여 1982년 1월 22일 암스트롱 형제(밥 암스트롱과 브래드 암스트롱)로부터 NWA 내셔널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하며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3월부터 마스크드 슈퍼스타는 자신의 타이틀 절반을 빅 존 스터드에게 넘겨주었다. 7월 2일, 슈퍼 디스트로이어와 스터드는 더 패뷸러스 프리버즈에게 타이틀을 상실했다. 이 타이틀 상실 이후 슈퍼 디스트로이어는 싱글 경쟁으로 돌아갔으며, 한때 안드레 더 자이언트와도 경기를 가졌다.
3.5. 슈퍼 디스트로이어스 (빌 어윈과)
이후 스콧 어윈은 그의 친형제인 빌 어윈과 함께 "슈퍼 디스트로이어스" 태그팀을 결성했다. 빌 어윈은 슈퍼 디스트로이어 1호가 되었고 스콧은 슈퍼 디스트로이어 2호가 되었다. 이 형제는 1983년 10월 WCCW에서 불독 브라우어와 로디 파이퍼로부터 첫 NWA 아메리칸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데뷔 직후 그들은 스캔도르 악바르를 매니저로 영입했다.
디스트로이어스 팀은 12월 25일 브라이언 아디아스와 아이스맨 킹 파슨스에게 타이틀을 상실했으나, 1984년 1월 30일 타이틀을 되찾았다. 디스트로이어스는 넉 달 동안 타이틀을 보유하다가 록앤소울(파슨스와 벅 줌호프)에게 상실했다. 디스트로이어스는 13일 만에 다시 타이틀을 되찾았지만, 경기 직후 록앤소울에 의해 그들의 가면이 벗겨지는 사건을 겪었다.
3.6. 롱 라이더스
가면이 벗겨진 후, 형제는 디스트로이어 기믹을 버리고 실제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태그팀은 "롱 라이더스"로 변경되었다. 롱 라이더스는 록앤소울과의 대립을 이어갔고, 8월 4일 파슨스가 빌과의 싱글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타이틀을 상실했다. 롱 라이더스는 9월 28일 록앤소울을 꺾고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NWA 아메리칸 태그팀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러나 형제는 10월 22일 더 판타스틱스(토미 로저스와 바비 풀턴)에게 타이틀을 상실했다.
11월 18일, 어윈은 조지아 챔피언십 레슬링으로 돌아와 형제와 함께 브래드 암스트롱과 자크 루조를 꺾고 NWA 내셔널 태그팀 챔피언십 원데이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 다음 날 밤, 롱 라이더스는 암스트롱과 토미 리치를 상대로 새로 획득한 타이틀을 방어했다. 1985년 1월 11일, 롱 라이더스는 올레 앤더슨과 선더볼트 패터슨에게 타이틀을 상실했다. 다음 날 밤 리매치에서 패한 후, 빌이 GCW를 떠났기 때문에 스콧은 카림 무함마드와 더그 소머스를 파트너로 삼아 앤더슨과 패터슨를 상대로 두 차례 리매치를 가졌지만 타이틀을 되찾지 못했다. 어윈은 GCW에서 몇 경기를 더 치른 후 해당 프로모션을 떠났다.
롱 라이더스는 1985년 중반 AWA에 등장했으며, 7월 14일 로드 워리어스를 상대로 그들의 A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데뷔 경기에서 패배했다. 9월 28일, 롱 라이더스와 할리 레이스는 슈퍼클래시에서 텐류 겐이치로, 자이언트 바바, 점보 츠루타를 상대로 6인 태그팀 경기에서 패배했다. 롱 라이더스는 1986년 4월 20일까지 AWA에서 활동했으며, 레슬록에서 커트 헤닝과 스콧 홀에게 태그팀 타이틀 매치에서 패배했다. 롱 라이더스는 또한 몬트리올 지역의 지노 브리토가 운영하는 인터내셔널 레슬링에서도 활동했으며, 1986년 3월 6일 대니 크로팟과 솔로파 파투로부터 캐나디언 인터내셔널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이 시기 스콧 어윈은 암 치료 중이었고 머리카락을 잃었다.
3.7. 일본에서의 경력
스콧 어윈은 일본의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총 세 차례 참전했으며, 모두 복면레슬러로 활동했다.
첫 일본 방문은 1980년 10월 '자이언트 시리즈' 때로, 그는 지 아스테로이드(The Asteroid영어)라는 이름으로 참전했다. 베테랑 지 어벤저와 거구의 복면 태그팀을 이뤘지만, 테리 펑크, 압둘라 더 부처, 와후 맥다니엘, 빌 로빈슨, 딕 머독, 킬러 토어 카마타 등 쟁쟁한 선수들이 총집결했던 해당 시리즈에서는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두 번째 방문은 1982년 11월, 슈퍼 디스트로이어로서 ''82 세계 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에 우에다 우마노스케와 팀을 이루어 출전했다. 임시 태그팀이었던 탓에 득점 없이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이 시리즈에 심판으로 왔던 루 테즈는 그의 완력이 스탠 핸슨이나 브루저 브로디보다 낫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개최한 제3회 MSG 태그 리그전에도 조지아에서 팀을 이뤘던 마스크드 슈퍼스타와의 복면 태그팀으로 참가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마지막 일본 방문은 1984년 2월 '익사이트 시리즈'로, 빌 어윈과의 슈퍼 디스트로이어스 팀으로 참전했다. 2월 26일 오사카 부립 체육관에서 아슈라 하라와 이시카와 다카시의 아시아 태그 왕좌에 도전했다. 그는 한 번도 맨얼굴로 일본에 오지 않았지만, 첫 일본 방문 전인 1980년 6월 29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맨얼굴의 스콧 어윈으로서 브루저 브로디의 파트너로 기용되어 자이언트 바바와 점보 츠루타의 인터내셔널 태그 왕좌에 도전한 바 있다.
4. 주요 기술
스콧 어윈은 다양한 기술을 구사했으며, 특히 그가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기술은 오늘날에도 프로레슬링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 슈퍼플렉스(Superplex영어): 상대방을 상단 로프에서 브레인버스터 자세로 들어 올려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는 설맹식 기술이다. 어윈이 이 기술의 고안자로 알려져 있으며, 기술의 명칭은 그의 링네임인 슈퍼 디스트로이어의 약자인 '슈퍼 디'에서 따왔다.
- 캐나디안 백브레이커: 주로 유콘 럼버잭스 시절에 사용했다.
- 애벌랜치 홀드
- 엘보 드롭
5. 챔피언십 및 업적


스콧 어윈은 그의 프로레슬링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수많은 챔피언십 타이틀과 업적을 달성했다.
- 콜리플라워 앨리 클럽
- 사후 공로상 (2007년) - 베티 조 호킨스와 함께
- 챔피언십 레슬링 프롬 플로리다
- NWA 플로리다 태그팀 챔피언십: 1회 - 벅시 맥그로와 함께
- NWA 서던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플로리다 버전): 1회
-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십 (플로리다 버전): 1회 - 조 르둑과 함께
- 조지아 챔피언십 레슬링
- NWA 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1회
- NWA 내셔널 태그팀 챔피언십: 3회 - 빅 존 스터드 (1회), 마스크드 슈퍼스타 (1회), 빌 어윈 (1회)와 함께
- 루트 앵테르나시오날 (Lutte Internationale)
- 캐나디언 인터내셔널 태그팀 챔피언십: 1회 - 빌 어윈과 함께
- 프로레슬링 일러스트레이티드
- 2003년 "PWI 시대의 100대 태그팀" 중 마스크드 슈퍼스타와 함께 77위 선정
- 미드사우스 레슬링 어소시에이션
- 미드사우스 루이지애나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1회
- 미드사우스 태그팀 챔피언십: 1회 - 더 그래플러와 함께
- 월드 클래스 챔피언십 레슬링
- NWA 아메리칸 태그팀 챔피언십: 4회 - 슈퍼 디스트로이어 1호/빌 어윈과 함께
- WCWA 텔레비전 챔피언십: 2회
- 월드 와이드 레슬링 페더레이션
- WWWF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1회 - 유콘 피에르와 함께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 최고의 레슬링 기술 (1982년) - 슈퍼플렉스
6. 사망
스콧 어윈은 1987년 9월 5일, 35세의 나이로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그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자신과 함께 프로레슬링의 길을 걸었던 동료들이나 라이벌들의 집을 직접 찾아가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7. 유산
스콧 어윈은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프로레슬링 역사에 의미 있는 유산을 남겼다. 특히 그가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슈퍼플렉스는 오늘날 프로레슬링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강력한 기술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기술은 이후 수많은 레슬러들이 자신만의 변형을 만들어낼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기술적 혁신은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가 1982년 '최고의 레슬링 기술'로 슈퍼플렉스를 선정하며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사후에도 프로레슬링계는 그의 공로를 기억했다. 2007년에는 콜리플라워 앨리 클럽에서 사후 공로상을 수여하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스콧 어윈은 다양한 기믹을 소화하며 탁월한 운동 능력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고, 태그팀 파트너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프로레슬링계에 큰 안타까움을 주었지만, 그가 남긴 기술적 유산과 레슬링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많은 후배 레슬러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