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마리우스 소푸스 리는 1842년 12월 17일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1899년 2월 18일에 사망한 저명한 노르웨이의 수학자이다. 그는 연속 대칭 이론을 창안하고 이를 기하학 및 미분 방정식 연구에 응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변환군을 선형화하여 리 군과 리 대수 이론을 발전시킨 업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이는 현대 수학과 양자역학을 포함한 다양한 과학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핵심적인 공헌은 연속 변환군을 무한소 생성원과 교환자 괄호(commutator bracket)를 통해 이해하는 방식을 제시한 것으로, 이는 오늘날 리 군과 리 대수라는 개념의 기반이 되었다. 리는 또한 아벨상의 설립을 강력히 추진하는 등 수학계 발전을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2. 생애
마리우스 소푸스 리의 생애는 19세기 후반의 중요한 수학적 발견과 그의 개인적인 역경이 교차하는 시기였다.
2.1. 유년기 및 교육
마리우스 소푸스 리는 1842년 12월 17일 노르웨이 노르피오르데이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루터교 목사 요한 헤르만 리와 그의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자녀 중 막내였다. 그의 어머니는 유명한 트론헤임 가문 출신이었다. 리는 모스 남동부 해안에서 초등 교육을 받았고, 당시 크리스티아니아로 알려진 오슬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군인의 길을 걷고자 했으나, 시력 문제로 군에서 거부당하면서 이러한 포부는 좌절되었다. 이후 그는 크리스티아니아 대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이어나갔다.
2.2. 초기 활동 및 주요 만남
소푸스 리의 첫 수학 연구 논문인 『평면 기하학의 허수 표현(Repräsentation der Imaginären der Plangeometrie)』은 1869년 크리스티아니아 과학 아카데미와 크렐레 저널에 게재되었다. 같은 해 그는 장학금을 받아 베를린으로 여행을 떠났고, 1869년 9월부터 1870년 2월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베를린에서 그는 펠릭스 클라인을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베를린을 떠난 뒤 리는 파리로 이동했고, 두 달 후 클라인도 파리로 합류했다. 파리에서 그들은 카미유 조르당과 장 가스통 다르부를 만났다. 그러나 1870년 7월 19일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하면서 프로이센인이었던 클라인은 서둘러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리는 퐁텐블로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독일 스파이로 오인받아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노르웨이에서 유명세를 얻었다. 그는 다르부의 개입 덕분에 한 달 만에 풀려났다. 리는 1871년 크리스티아니아 대학교에서 『기하학적 변환의 한 종류에 대하여(Over en Classe geometriske Transformationer)』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다르부는 이 논문을 "현대 기하학의 가장 아름다운 발견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듬해 노르웨이 의회는 그를 위해 특별 교수직을 신설했다. 같은 해 리는 당시 에를랑겐-뉘른베르크 대학교에 재직하며 에를랑겐 프로그램을 연구하던 클라인을 방문했다.
2.3. 학술 경력
1872년, 리는 피터 루트비히 메이델 실로우와 함께 8개월간 협력하여 동료 노르웨이 수학자 니엘스 헨리크 아벨의 수학 저술을 편집하고 출판했다. 1876년부터 리는 의사 야코프 보름-뮐러와 생물학자 게오르그 오시안 사르스와 함께 학술지 『수학 및 자연과학 기록(Archiv for Mathematik og Naturvidenskab)』의 공동 편집자를 맡았다. 1884년, 프리드리히 엥겔이 클라인과 크리스티안 구스타프 아돌프 마이어 (당시 라이프치히 대학교 교수)의 지원을 받아 크리스티아니아에 도착하여 리의 연구를 도왔다. 엥겔은 리가 1888년부터 1893년까지 라이프치히에서 세 권으로 출판된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 『변환군 이론(Theorie der Transformationsgruppen)』을 저술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수십 년 후 엥겔은 리의 전집의 두 명의 편집자 중 한 명이 되기도 했다. 1886년, 리는 클라인이 괴팅겐 대학교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 후임으로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1898년에는 그를 위한 강좌가 개설되면서 다시 고향인 크리스티아니아 대학교로 돌아와 교수로 재직했다.
2.4. 개인 생활과 말년
1872년 말, 소푸스 리는 당시 18세였던 안나 비르치에게 청혼했고, 이들은 1874년에 결혼했다. 부부는 세 자녀를 두었는데, 마리(1877년생), 다그니(1880년생), 헤르만(1884년생)이다. 1889년 11월, 리는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 1890년 6월까지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직위로 복귀했으나, 몇 년 동안 빈혈이 악화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1898년 5월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같은 해 9월 고향으로 떠났다.
2.5. 사망
마리우스 소푸스 리는 1899년, 즉 고향으로 돌아온 이듬해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 원인은 비타민 B12 흡수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악성 빈혈이었다.
3. 수학에 대한 주요 공헌
소푸스 리는 수학, 특히 대칭과 미분 방정식 분야에 혁신적인 공헌을 했다. 그의 이론은 현대 수학의 여러 분야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3.1. 리 군 및 리 대수 이론의 발전
리는 연속 대칭 이론을 창안하고 이를 기하학 및 미분 방정식 연구에 적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또한 대수학 발전에도 상당한 공헌을 했다. 리의 주요 도구이자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연속 변환군 (현재 그의 이름을 따 리 군이라 불림)을 "선형화"함으로써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발견이었다. 이는 해당 벡터장 (소위 무한소 생성원)을 연구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 생성원들은 현재 교환자 괄호라 불리는 선형화된 군 법칙에 종속되며, 오늘날 리 대수라 불리는 구조를 가진다. 이를 통해 그는 복잡한 연속 변환군을 더 다루기 쉬운 선형 대수적 대상으로 변환하여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3.2. 기하학 및 미분 방정식에 대한 응용과 영향
리 군과 리 대수 이론은 기하학과 미분 방정식 연구에 광범위하게 응용되었다. 리는 미분 방정식의 해법을 찾는 데 대칭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그의 이론은 미분 방정식의 대칭군을 분석하여 해의 성질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 그의 연구는 펠릭스 클라인의 에를랑겐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리 자신도 연속군 이론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착상을 얻었다. 리 본인의 연속군 이론은 오늘날의 리 변환군 싹에 해당하며, 그는 미분 방정식과 기하학을 활용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미분 방정식 등에 응용했지만 생전에는 그 업적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
3.3. 후대 수학자 및 관련 분야에 대한 영향
리의 업적은 20세기에 들어서야 헤르만 바일과 엘리 카르탕과 같은 후대 수학자들에 의해 완성되고 위상군으로서의 성질이 명확히 밝혀졌다. 헤르만 바일은 1922년과 1923년 자신의 논문에서 리의 군 이론 연구를 활용했으며, 오늘날 리 군은 양자역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리 군 이론은 현대 수학과 물리학의 넓은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리는 수많은 박사 과정 학생들을 지도했으며, 그들은 성공적인 수학자가 되었다. 특히 엘리 카르탕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수학자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았다. 카지미에시 주라프스키의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성이 입증되었고, 한스 프레데리크 블리히펠트는 다양한 수학 분야에 기여했다.
3.4. 아벨상 설립 추진에서의 역할
소푸스 리는 아벨상의 설립을 열렬히 지지했다. 그는 프리됴프 난센의 이름을 딴 난센 기금에서 영감을 받았고, 노벨상에 수학 분야에 대한 시상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순수 수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기리기 위한 상의 설립을 위해 지지를 모으는 데 기여했다. 이는 노르웨이 수학계와 국제 수학계 발전에 대한 그의 폭넓은 관심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4. 주요 저서
마리우스 소푸스 리는 여러 중요한 수학 서적과 논문을 집필하거나 공동 집필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는 다음과 같다.
- 『변환군 이론 I (Theorie der Transformationsgruppen I)』 (1888년, 라이프치히, B. G. 토이프너 출판): 프리드리히 엥겔의 도움으로 집필되었다.
- 『변환군 이론 II (Theorie der Transformationsgruppen II)』 (1890년, 라이프치히, B. G. 토이프너 출판): 프리드리히 엥겔의 도움으로 집필되었다.
- 『알려진 무한소 변환을 가진 미분 방정식 강의 (Vorlesungen über differentialgleichungen mit bekannten infinitesimalen transformationen)』 (1891년, 라이프치히, B. G. 토이프너 출판): 게오르그 셰퍼스의 도움으로 집필되었다.
- 『연속군 강의 (Vorlesungen über continuierliche Gruppen)』 (1893년, 라이프치히, B. G. 토이프너 출판): 게오르그 셰퍼스의 도움으로 집필되었다.
- 『변환군 이론 III (Theorie der Transformationsgruppen III)』 (1893년, 라이프치히, B. G. 토이프너 출판): 프리드리히 엥겔의 도움으로 집필되었다.
- 『접촉 변환 기하학 (Geometrie der Berührungstransformationen)』 (1896년, 라이프치히, B. G. 토이프너 출판): 게오르그 셰퍼스의 도움으로 집필되었다.
- 『전집 (Gesammelte Abhandlungen)』 (7권, 1922-1960년, 라이프치히, 토이프너 출판): 프리드리히 엥겔과 폴 헤고르가 편집했다.
5. 영향 및 평가
소푸스 리의 업적은 19세기 수학의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했지만, 그가 사망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그의 이론의 진정한 중요성이 완전히 이해되고 확장되었다. 그의 연속 변환군 이론은 오늘날 리 군과 리 대수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기하학, 미분 방정식, 위상수학을 넘어 양자역학과 같은 물리학 분야에까지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있다. 그의 선구적인 아이디어는 20세기 수학의 발전에 필수적인 토대가 되었으며, 후대의 많은 수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19세기 대가들 중 리의 작업은 '세부적으로' 오늘날 가장 덜 알려져 있다"는 평가도 존재하는데, 이는 현대에 연구되는 리 군의 주제가 소푸스 리가 연구했던 내용과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속 대칭의 수학적 구조를 체계화하고 이를 분석하는 강력한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현대 수학의 중요한 한 축을 세운 인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