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초기 경력
사샤 일리치는 1977년 12월 30일 포자레바츠에서 태어났다. 그는 1986년 아버지 밀란의 손에 이끌려 파르티잔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고, 플로리얀 마테칼로의 지도 아래 훈련을 받았다. 1988년 9월 5일, 그는 파르티잔에 정식으로 등록되어 구단의 모든 유소년 단계를 거치며 성장했다. 1군 경험을 쌓기 위해 일리치는 텔레옵티크에서 한 시즌을 보내기도 했다.
1996년 10월 26일, 일리치는 보라츠 차차크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전하며 파르티잔 소속으로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파르티잔은 10-0 대승을 거두었으며, 당시 일리치는 등번호 1번을 달고 출전했다. 이 경기는 1996-97 시즌 그의 유일한 출장이었지만, 파르티잔은 이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 시즌, 일리치는 1997년 7월 23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 막판 드라간 이사일로비치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하지만 파르티잔은 원정 경기에서 5-0으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탈락했다. 1997년 8월 23일, 일리치는 보이보디나와의 원정 경기에서 자신의 파르티잔 첫 골을 기록했으며, 이 경기에서 파르티잔은 3-2로 승리했다. 이 시즌 그는 총 25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2. 클럽 선수 경력
사샤 일리치는 파르티잔에서 두 번의 기간을 포함하여 여러 해외 클럽에서 활약하며 인상적인 선수 경력을 쌓았다.
2.1. 파르티잔 (첫 번째 기간)
1998년 여름, 이반 토미치가 로마로 이적한 후, 당시 20세에 불과했던 사샤 일리치는 파르티잔의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새로운 역할에 힘입어 파르티잔이 1년 만에 리그 우승을 탈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그는 UEFA 컵 위너스컵에 출전하여 라치오에게 2라운드에서 패하며 탈락했지만, 라치오는 그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일리치는 팀의 리더로 자리매김했으며 팬들 사이에서 우상이 되었다. 2000년에는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2001년 국내 컵 결승전에서는 숙명의 라이벌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려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또한 일리치는 이 시즌 모든 대회를 통틀어 26골을 기록하며 구단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일리치는 이어서 2002년과 2003년에 구단의 2회 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유럽 대항전에서는 2003-04 시즌에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최종 예선에서 꺾고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포르투, 레알 마드리드, 마르세유와 한 조에 편성된 파르티잔은 일리치가 6경기 모두 출전했지만, 3무 3패를 기록하며 탈락했다.
2004년 겨울 이적 시장에서 일리치는 스페인 클럽 셀타 데 비고로 6개월 임대되었고, 완전 이적 옵션이 포함되었다. 그는 감독 라도미르 안티치와 공격수 사보 밀로셰비치 등 동료 선수들과 함께했다. 일리치는 2004년 2월 8일 비야레알과의 홈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셀타 데 비고 데뷔전을 치렀다. 그 달 말, 그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었지만, 셀타 데 비고는 2-4로 패배했다. 결국 셀타 데 비고가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강등되면서 일리치는 비고를 떠났다.
2004년 여름, 일리치는 셀타 데 비고에서의 6개월 임대를 마치고 파르티잔으로 돌아왔고, 그 여름 구단을 떠난 블라디미르 이비치로부터 다시 주장 완장을 물려받았다. 그의 복귀는 전 파르티잔 주장인 드라간 치리치와 이반 토미치의 복귀와도 일치했다. 이 경험 많은 세 트리오와 함께 파르티잔은 무패 기록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기억에 남을 만한 시즌을 보냈다. 또한 그들은 UEFA컵 16강에 진출했지만, 결국 우승을 차지한 CSKA 모스크바에게 패배했다.
2.2. 해외 리그 경력
2.2.1. 셀타 비고 (임대)
2004년 겨울 이적 시장에서 일리치는 스페인 클럽 셀타 데 비고로 6개월간 임대되었다. 완전 이적 옵션이 포함된 계약이었다. 그는 당시 셀타 데 비고의 감독이었던 라도미르 안티치와 공격수 사보 밀로셰비치와 함께 뛰었다. 일리치는 2004년 2월 8일 비야레알과의 홈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데뷔전을 치렀다. 그 달 말, 그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었지만, 셀타 데 비고는 2-4로 패배했다. 결국 셀타 데 비고가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강등되면서 일리치는 비고를 떠났다.
2.2.2. 갈라타사라이
파르티잔에서 성공적인 복귀 시즌을 보낸 후, 일리치는 두 번째 해외 이적을 추진하여 2005년 7월 8일 튀르키예 클럽 갈라타사라이와 3년 계약을 맺었다. 그는 구단으로부터 명예로운 등번호 10번을 제안받았지만, 전통적인 등번호 22번을 선택했다. 2005년 8월 7일, 일리치는 쉬페르리그 데뷔전에서 코니아스포르를 상대로 두 골을 터뜨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2005년 10월 12일에는 베식타시와의 홈 경기에서 두 골을 추가하며 3-2 승리에 기여했다. 일리치는 2005-06 시즌 총 12골을 기록하며 팀 내 세 번째로 높은 득점자가 되었고, 4년 만에 구단에 리그 우승을 안기는 데 일조했다.
이후 일리치는 2006-07 시즌 초반 리그 4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훌륭한 시작을 보였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PSV와 리버풀을 상대로 득점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갈라타사라이는 조 4위로 마감하며 아쉽게 UEFA컵 진출 기회를 놓쳤다.
2.2.3. 레드불 잘츠부르크 및 라리사 (임대)
2007년 6월, 일리치는 레드불 잘츠부르크로 공식 이적하여 3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파르티잔에서 함께 성공적으로 협력했던 로타어 마테우스의 권유로 오스트리아 팀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며칠 후 마테우스는 잘츠부르크에서 해임되었다. 일리치는 2007년 8월 8일, 라트비아 팀 벤츠필스와의 챔피언스리그 예선전에서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했다.
2009년 1월, 일리치는 그리스 클럽 AEL에 2008-09 시즌 말까지 임대되었다. 그는 AEK 아테네와의 수페르리가 그리스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자신의 유일한 골을 기록했다.
잘츠부르크로 돌아온 후, 일리치는 레드불에서 출전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2009년 9월, 그는 UEFA 유로파리그에서 라치오와의 경기에 잘츠부르크에 반대되는 베팅을 했다는 의혹으로 구단 이사회에 의해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일리치는 자신의 팀에 반대하는 베팅 혐의를 부인했지만, 다른 경기에 베팅한 것은 인정했다. 그의 팀 동료이자 동국인인 조르제 라키치도 연루되었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처벌이 없었다.

2.3. 파르티잔 (두 번째 기간 및 은퇴)
2010년 1월 22일, 사샤 일리치는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자유 계약으로 파르티잔에 공식 재합류하며 2년 반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즉시 그의 옛 등번호 22번을 배정받았고, 고란 스테바노비치 감독에 의해 믈라덴 크르스타이치의 부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010년 2월 27일, 일리치는 14년 전 자신의 첫 경기를 치렀던 바로 그 장소에서 보라츠 차차크를 상대로 공식 복귀전을 치렀다. 그는 2009-10 시즌 후반기 15번의 리그 경기 중 단 한 경기만을 결장했으며 3골을 기록하며 팀의 3연속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일리치는 2010-11 시즌 캠페인의 첫 골을 핀란드 챔피언 HJK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예선에서 기록하며 과거의 기량을 선보였다. 그는 구단이 그 시즌 7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 진출하고 국내 더블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2011년 여름 크르스타이치가 은퇴한 후, 일리치는 세 번째로 주장이 되어 그 시즌 말에 또 다른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12년 7월, 일리치는 구단과 새로운 1년 계약을 체결하여 2013년 6월까지 선수 생활을 연장했다. 그는 2012-13 수페르리가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팀이 6회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일리치는 2013년 여름과 2014년 여름에도 1년 계약 연장에 서명했다. 그는 2014-15 시즌에 파르티잔에서 10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15년 5월 22일, 일리치는 파르티잔과 또 다른 1년 계약을 체결했다. 2015년 7월 29일,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와의 원정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여 UEFA 클럽 대항전에서 자신의 100번째 출전을 기록했다. 2016년 4월, 일리치는 라드니크 수르둘리차 (3-2)와 믈라도스트 루차니 (4-0)를 상대로 한 두 번의 홈 리그 경기에서 각각 두 골을 넣었다. 그는 또한 2015-16 세르비아 컵 결승전에서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파르티잔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2016년 6월 10일, 일리치는 파르티잔과의 계약을 1년 더 연장했다. 2016년 10월 22일, 그는 792번째 출전을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최다 출전 선수로 기록되었다. 2016년 12월 27일, 일리치는 파르티잔과 새로운 계약 연장에 서명하여 2018년 6월까지 구단에 남게 되었다. 그는 결국 2017년 5월에 구단에서 두 번째 국내 더블을 달성했으며, 이는 주장으로서의 첫 번째 더블이었다.
2017년 11월 5일, 일리치는 마츠바 샤바츠와의 원정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역사상 최고령 득점자가 되었다. 그는 2018년 5월 9일 세르비아 컵 준결승 2차전 추카리치키와의 경기에서 극적인 90분 골을 기록하며 파르티잔이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결승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합계 4-4).
2019년 5월 23일, 일리치는 2018-19 세르비아 컵 결승전에서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와의 경기에서 후반 막판 교체 출전하며 파르티잔에서의 마지막 공식 경기를 치렀다. 이 경기에서 파르티잔은 1-0으로 승리했다. 파르티잔의 전설적인 주장은 중간에 잠시 팀을 떠나기도 했지만, 20년 이상을 구단에서 보냈다. 이 기간 동안 사샤 일리치는 많은 기록을 경신했다. 그는 몸칠로 부코티치를 넘어 873경기를 출전했으며, 2014년 3월 30일 OFK 베오그라드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119번째 리그 골을 기록하며 스티예판 보베크의 기록을 넘어섰다.
3. 국가대표 경력
사샤 일리치는 밀란 지바디노비치와 밀로반 조리치 감독 아래 21세 이하 대표팀에서 이미 뛰었고, 2000년 8월 16일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이 이끄는 유고슬라비아의 성인 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는 북아일랜드와의 원정 친선 경기에서 네나드 그로지치와 교체 출전하여 2-1 승리에 기여했다. 2001년 1월, 일리치는 밀레니엄 슈퍼 축구컵에서 팀의 주장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비록 결승전에는 출장 정지로 결장했지만, 그는 4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 기록들은 FIFA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는 결국 2002년 4월 17일 리투아니아와의 홈 친선 경기에서 4-1 승리의 첫 골을 넣으며 국가대표팀 공식 첫 골을 기록했다.

데얀 사비체비치 감독 하의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일리치는 모두 교체 선수로 3경기에 출전했다. 또한 그는 UEFA 유로 2004 예선 2경기에 출전했으며, 2003년 9월 10일 이탈리아와의 홈 경기에서 1-1 무승부의 동점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는 두 대회 모두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일리야 페트코비치가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복귀하면서 일리치는 더 많은 출전 시간을 얻게 되었다. 그는 2005년에 8경기에 출전했으며,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리투아니아를 상대로 한 골을 기록했다. 2006년 5월 16일, 일리치는 2006년 FIFA 월드컵에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대표팀으로 참가할 최종 23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코트디부아르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하고 골을 넣었지만, 팀은 2-3으로 패배했다.
2006년 8월 16일, 일리치는 세르비아의 첫 경기인 체코와의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또한 UEFA 유로 2008 예선에서 두 경기에 출전했으나, 세르비아는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일리치는 2008년 3월 미로슬라프 주키치 감독이 우크라이나와의 친선 경기를 위해 그를 선발할 때까지 국가대표팀에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는 라도미르 안티치 감독 아래 페로 제도와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 경기였다 (2008년 9월 6일).
4. 감독 경력

사샤 일리치는 선수 은퇴 후 다양한 연령별 대표팀 및 클럽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세르비아 U-16 대표팀과 세르비아 U-18 대표팀을 지도했으며, 세르비아 U-17 및 세르비아 U-21 대표팀의 수석코치를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세르비아 성인 대표팀의 수석코치로도 활동했다.
2021년 8월 17일부터 2022년 4월 11일까지 추카리치키의 감독을 맡았다. 이후 2022년 6월 2일부터 2023년 7월 28일까지 불가리아의 CSKA 소피아를 지휘했다. 2023년 10월 24일에는 그리스 클럽 아트로미토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2024년 5월 2일까지 팀을 이끌었다.
2024년 5월 4일, 일리치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클럽 파리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지휘 아래 파리 니즈니 노브고로드는 강등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강등을 피했다. 하지만 2024년 10월 5일, 일리치는 상호 합의에 따라 파리 니즈니 노브고로드 감독직을 떠났다.
5. 통계
5.1. 클럽 통계
|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 컵 | 대륙 대회 | 기타 | 총합 |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 파르티잔 | 1996-97 |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 1 | 0 | 0 | 0 | 0 | 0 | - | 1 | 0 | |
| 1997-98 | 25 | 3 | 9 | 5 | 2 | 0 | - | 36 | 8 | |||
| 1998-99 | 23 | 14 | 7 | 5 | 6 | 1 | - | 36 | 20 | |||
| 1999-00 | 32 | 17 | 2 | 1 | 7 | 3 | - | 41 | 21 | |||
| 2000-01 | 30 | 19 | 4 | 3 | 4 | 4 | - | 38 | 26 | |||
| 2001-02 | 28 | 12 | 3 | 0 | 3 | 0 | - | 34 | 12 | |||
| 2002-03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1부 리그 | 25 | 11 | 2 | 0 | 8 | 2 | - | 35 | 13 | ||
| 2003-04 | 14 | 6 | 1 | 0 | 10 | 2 | - | 25 | 8 | |||
| 2004-05 | 22 | 16 | 4 | 1 | 10 | 2 | - | 36 | 19 | |||
| 합계 | 200 | 98 | 32 | 15 | 50 | 14 | - | 282 | 127 | |||
| 셀타 (임대) | 2003-04 | 라리가 | 13 | 1 | 0 | 0 | 0 | 0 | - | 13 | 1 | |
| 갈라타사라이 | 2005-06 | 쉬페르리그 | 30 | 12 | 4 | 0 | 0 | 0 | - | 34 | 12 | |
| 2006-07 | 29 | 10 | 4 | 0 | 8 | 3 | 1 | 0 | 42 | 13 | ||
| 합계 | 59 | 22 | 8 | 0 | 8 | 3 | 1 | 0 | 76 | 25 | ||
| 레드불 잘츠부르크 | 2007-08 |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 30 | 8 | 0 | 0 | 1 | 1 | - | 31 | 9 | |
| 2008-09 | 3 | 0 | 0 | 0 | 2 | 1 | - | 5 | 1 | |||
| 2009-10 | 1 | 0 | 1 | 0 | 4 | 0 | - | 6 | 0 | |||
| 합계 | 34 | 8 | 1 | 0 | 7 | 2 | - | 42 | 10 | |||
| 라리사 (임대) | 2008-09 | 수페르리가 그리스 | 17 | 1 | 1 | 0 | 0 | 0 | - | 18 | 1 | |
| 파르티잔 | 2009-10 |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 14 | 3 | 1 | 0 | 0 | 0 | - | 15 | 3 | |
| 2010-11 | 25 | 1 | 5 | 1 | 12 | 1 | - | 42 | 3 | |||
| 2011-12 | 25 | 4 | 5 | 1 | 6 | 0 | - | 36 | 5 | |||
| 2012-13 | 25 | 5 | 0 | 0 | 12 | 0 | - | 37 | 5 | |||
| 2013-14 | 26 | 5 | 2 | 0 | 6 | 0 | - | 34 | 5 | |||
| 2014-15 | 27 | 3 | 5 | 0 | 11 | 0 | - | 43 | 3 | |||
| 2015-16 | 28 | 6 | 5 | 0 | 8 | 0 | - | 41 | 6 | |||
| 2016-17 | 22 | 0 | 2 | 0 | 1 | 0 | - | 25 | 0 | |||
| 2017-18 | 20 | 1 | 4 | 1 | 7 | 0 | - | 31 | 2 | |||
| 2018-19 | 12 | 0 | 4 | 0 | 1 | 0 | - | 17 | 0 | |||
| 합계 | 224 | 28 | 33 | 3 | 64 | 1 | - | 321 | 32 | |||
| 커리어 총합 | 547 | 158 | 75 | 18 | 129 | 20 | 1 | 0 | 752 | 196 | ||
5.2. 국가대표 통계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 유고슬라비아 | 2000 | 4 | 0 |
| 2001 | 2 | 0 | |
| 2002 | 6 | 1 | |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 2003 | 4 | 1 |
| 2004 | 3 | 0 | |
| 2005 | 8 | 1 | |
| 2006 | 2 | 1 | |
| 세르비아 | 2006 | 3 | 0 |
| 2007 | 0 | 0 | |
| 2008 | 5 | 0 | |
| 총합 | 37 | 4 | |
:점수 및 결과 목록은 세르비아의 득점을 먼저 표시한다.
| No. | 날짜 | 경기장 | 상대 | 점수 | 결과 | 대회 |
|---|---|---|---|---|---|---|
| 1 | 2002년 4월 17일 | 스메데레보 스타디움, 스메데레보 | 리투아니아 | 1-0 | 4-1 | 친선 경기 |
| 2 | 2003년 9월 10일 | 레드 스타 스타디움, 베오그라드 | 이탈리아 | 1-1 | 1-1 | UEFA 유로 2004 예선 |
| 3 | 2005년 9월 3일 | 레드 스타 스타디움, 베오그라드 | 리투아니아 | 2-0 | 2-0 | 2006년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
| 4 | 2006년 6월 21일 | 알리안츠 아레나, 뮌헨 | 코트디부아르 | 2-0 | 2-3 | 2006년 FIFA 월드컵 조별리그 |
5.3. 감독 통계
| 팀 | 국가 | 시작 | 종료 | 기록 | |||||||
|---|---|---|---|---|---|---|---|---|---|---|---|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률 % | ||||
| 추카리치키 | 2021년 8월 17일 | 2022년 4월 11일 | 12|11|4|45|21|+24|44.44 | ||||||||
| CSKA 소피아 | 2022년 6월 2일 | 2023년 7월 28일 | 31|9|7|77|26|+51|65.96 | ||||||||
| 아트로미토스 | 2023년 10월 24일 | 2024년 5월 2일 | 10|11|8|43|41|+2|34.48 | ||||||||
| 니즈니 노브고로드 | 2024년 5월 4일 | 2024년 10월 5일 | 4|5|13|21|46|-25|18.18 | ||||||||
| 총합 | 58|35|33|184|138|+46|46.03 | ||||||||||
6. 수상 경력
사샤 일리치는 선수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주요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파르티잔
-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1998-99, 2001-02, 2002-03, 2004-05
- 유고슬라비아 컵: 1997-98, 2000-01
-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2009-10, 2010-11, 2011-12, 2012-13, 2014-15, 2016-17
- 세르비아 컵: 2010-11, 2015-16, 2016-17, 2017-18, 2018-19
갈라타사라이
- 쉬페르리그: 2005-06
개인
-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올해의 팀: 2012-13
7. 유산 및 평가
사샤 일리치는 파르티잔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그의 업적은 구단에 깊은 유산을 남겼다. 그는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중간 이적 기간 포함) 파르티잔에서 활약하며 수많은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873경기에 출전하며 몸칠로 부코티치의 기록을 넘어선 구단 역대 최다 출전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2014년 3월 30일 OFK 베오그라드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119번째 리그 골을 기록하여 스티예판 보베크의 기록을 넘어섰다.
일리치는 뛰어난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탁월한 시야, 패스 능력, 그리고 득점력을 겸비하여 파르티잔의 수많은 리그 및 컵 대회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과 같은 유럽 대항전에서의 활약은 그의 기량을 국제적으로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단지 뛰어난 선수일 뿐만 아니라, 20세의 어린 나이에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끌었던 리더십과 팬들 사이에서 우상으로 존경받았던 상징적인 존재로 평가받는다. 그의 헌신과 충성심은 파르티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은퇴 후에도 그는 구단의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8. 같이 보기
- FK 파르티잔
- 갈라타사라이 SK (축구)
-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 2006년 FIFA 월드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