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빌리 도노반은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락빌 센터에서 빌 도노반 시니어와 조안 도노반 사이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의 위로는 마가렛이라는 누나가 있다. 아버지 빌 도노반 시니어는 보스턴 칼리지 이글스 농구팀 역사상 세 번째로 높은 득점을 기록한 선수였으며, 섬유 산업에 종사하면서도 아들의 유소년 농구팀을 직접 코치하기도 했다.
1.1. Childhood and Education
어린 시절부터 빌리 도노반 주니어는 "체육관에 사는 쥐"로 불릴 정도로 농구에 열정적이었다. 그는 가능한 한 자주 농구를 했으며, 심지어는 한밤중에 몰래 고등학교 체육관에 잠입하여 연습하기도 했다. 도노반은 락빌 센터에 위치한 세인트 아그네스 대성당 고등학교에서 프랭크 모리스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농구를 했다. 그의 활약으로 세인트 아그네스 고등학교는 그가 4학년이던 해 롱아일랜드 가톨릭 고등학교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 Playing Career
도노반은 고등학교 졸업 후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에 위치한 프로비던스 칼리지로부터 운동 장학금을 받았다.
2.1. Collegiate Playing Career
프로비던스 칼리지에서 도노반은 조 멀래니 감독 체제하에 느린 템포의 경기를 펼쳤으며, 교체 선수로 투입되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는 첫 두 시즌 동안 평균 5분 미만의 출전 시간과 경기당 3점 미만의 득점을 기록했다.
1985년 멀래니 감독이 은퇴하고 뉴욕 닉스의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릭 피티노가 후임으로 부임했다. 피티노는 선수들과 개별 면담을 진행했고, 이 자리에서 도노반은 출전 시간을 늘리기 위해 페어필드나 노스이스턴과 같은 작은 학교로 전학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티노가 이 두 학교의 감독들에게 전학 가능성을 문의했을 때, 경험이 적고 잠재력이 불분명한 선수에게 장학금을 할당하려는 관심은 없었다. 이에 피티노는 도노반에게 프로비던스에 머물면서 다음 시즌에 로스터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신체적으로 더 나은 상태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도노반은 피티노의 조언을 따랐고, 주니어 시즌에 프라이어스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 발탁되었다.
그는 피티노의 시스템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이 시스템은 공격에서는 새로운 3점 슛을, 수비에서는 공격적인 풀코트 프레스를 강조했다. 도노반은 주니어 시절 경기당 평균 15.1점을 기록했으며, 이 시기에 프로비던스 팬들로부터 19세기 무법자 빌리 더 키드의 이름을 따 "빌리 더 키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시니어 시즌에는 경기당 평균 20점 이상과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1987년 NCAA 파이널 포로 이끌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남동부 지역 최우수 선수(MVP)에 선정되었다. 또한 1987년 올-빅 이스트 퍼스트 팀, 1987년 빅 이스트 올-토너먼트 팀에 이름을 올렸고, 올-아메리칸 선수로도 명예롭게 언급되었다. 피티노 감독은 훗날 도노반에 대해 "내 평생 그(도노반)만큼 발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2.2. Professional Playing Career
도노반은 1987년 NBA 드래프트에서 유타 재즈에 3라운드 전체 68순위로 지명되었으나, 정규 시즌 시작 전에 방출되었다. 그는 CBA의 와이오밍 와일드캐터스와 계약하며 NBA에서 다시 뛸 기회를 모색했다. 프로비던스 팀의 파이널 포 진출 이후 피티노는 프로비던스를 떠나 뉴욕 닉스의 감독으로 복귀했다. 1987년 12월, 도노반은 뉴욕 닉스와 1년 계약을 맺으며 대학 시절 감독과 재회했다. 그는 1987-88 시즌 동안 벤치 가드로 활약하며 44경기에서 평균 2.4점과 2.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뉴욕 닉스는 1988년 3월 도노반을 방출했다. 그는 1988-89 프리시즌 동안 NBA 로스터에 들지 못했고, CBA로 돌아와 래피드시티 스릴러스에서 경기당 평균 10.1점을 기록했다.
3. Transition to Coaching
도노반은 1988년 말까지 NBA 제의를 받지 못하자 프로 농구 선수로서의 미래가 길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1989년 1월 CBA를 떠나 월스트리트의 투자 은행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그러나 도노반은 주식 중개인으로서의 짧은 재직 기간 동안 "비참함"을 느꼈으며, 특히 의무적인 콜드콜 주식 판매를 싫어했다. 회사에 입사한 지 몇 주 만에 그는 피티노에게 전화를 걸어 농구 코치가 되는 것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도노반은 선수 시절 목소리를 높이는 리더가 아니었기에 피티노는 그가 코칭에 필요한 소통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했고, 서둘러 진로를 바꾸기보다는 금융 분야에서 더 기회를 줄 것을 제안했다.
도노반은 1989년 4월 피티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농구 코칭에 대한 자신의 관심이 확고함을 재확인했다. 당시 피티노는 닉스를 떠나 켄터키 대학교의 감독이 되는 과정에 있었고, 도노반을 대학원 조교로 데려와 그가 코칭 분야에서 미래를 가질 수 있는지 지켜보기로 합의했다.
3.1. Assistant Coaching Experience
피티노 감독은 이전의 규정 위반으로 인해 NCAA의 제재로 황폐해진 켄터키 대학교 농구 프로그램을 재건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와일드캣츠는 빠르게 전국적인 명성을 되찾았고, 도노반의 코칭 경력도 빠르게 발전했다. 대학원 조교로 한 시즌을 보낸 후, 그는 1990년 어시스턴트 코치로, 1992년에는 어소시에이트 헤드 코치로 승진했다. 이 직책에서 도노반은 켄터키의 1993년 파이널 포 진출 당시 피티노의 수석 보조 코치로 일했으며, 1996년 전국 챔피언십 팀 선수들을 모집하는 데 기여했다.
4. Collegiate Coaching Career
빌리 도노반은 대학 농구 감독으로서 마셜 대학교와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광범위한 경력을 쌓았으며, 특히 플로리다 게이터스를 이끌고 두 번의 NCAA 전국 챔피언십 우승을 달성하는 등 주요 성과를 거두었다.
4.1. Marshall University
켄터키에서의 성공적인 경력과 피티노 감독의 추천 덕분에 도노반은 마셜 대학교 농구팀의 감독직 제안을 받았다. 마셜 선더링 허드는 1993-94 시즌에 9승 18패의 저조한 기록을 보인 팀이었다. 도노반은 이 제안을 수락했고, 당시 28세의 나이로 NCAA 디비전 I에서 가장 젊은 농구 감독이 되었다.
마셜 대학교에서 도노반은 피티노 감독이 사용했던 빠른 템포의 공격과 수비 전략을 도입했다. 1994년 12월, 일찌감치 예정되어 있던 마셜과 켄터키의 경기가 성사되었다. 경기 전 피티노 감독은 어린 제자에게 "켄터키를 박살 내려고 노력해라. 우리도 너희에게 똑같이 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럽 아레나 관중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노반의 팀은 116대75로 패하며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시즌의 나머지는 더욱 성공적이었다. 도노반의 첫 마셜 팀은 전년도보다 두 배 많은 승리(18승 9패)를 기록하며 서던 컨퍼런스 북부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고, 도노반은 1995년 서던 컨퍼런스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도노반의 두 번째 시즌인 1995-96년에는 팀이 17승 11패를 기록하며 서던 컨퍼런스 득점 및 3점 야투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도노반은 스카우트에서도 성공을 거두어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유망주 제이슨 윌리엄스가 더 유명한 프로그램의 장학금 제안을 거절하고 고향인 마셜에 남도록 설득했다. 윌리엄스는 훗날 도노반을 따라 플로리다로 가게 된다.
도노반의 마셜 팀은 두 시즌 동안 총 35승 20패의 기록을 달성했다.
4.2. University of Florida
1996년 3월, 플로리다 대학교 농구 감독 론 크루거가 일리노이 대학교로 자리를 옮기면서 사임했다. 플로리다 농구 프로그램은 역사적으로 짧은 성공만을 거두었으며, 크루거 감독 체제에서 1994년 처음으로 파이널 포에 진출했지만, 그의 팀은 다시 평범한 수준으로 돌아갔다. 플로리다의 운동 관리자 제레미 폴리는 지속적인 성공을 가져올 "젊고, 활기차고, 열정적인" 감독을 찾았고, 광범위한 물색 끝에 30세의 빌리 도노반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도노반에게 프로그램을 구축할 충분한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폴리는 그에게 6년 계약을 제안했다.
도노반의 첫 두 플로리다 팀은 로스터에 재능 있는 선수가 거의 없어 13승 17패와 15승 16패의 기록을 보였다. 그러나 1997-98 시즌 팀이 전미 초청 토너먼트 (NIT)에 초청되는 등 개선의 조짐이 보였으며, 이 시기의 도노반의 "끈질긴" 스카우트는 미래 성공의 토대가 되었다.
도노반은 1998-99 시즌에 마침내 플로리다 농구 프로그램에 지속적인 성공을 가져왔다. 게이터스는 22승 9패를 기록하며 역사상 다섯 번째로 20승 이상을 달성했고, 이후 16시즌 연속 20승 이상 시즌을 시작했다. 게이터스는 1999년 포스트시즌에서도 좋은 경기를 펼쳐 세 번째 NCAA 스위트 식스틴에 진출했으며, 학교 역사상 두 번째로 최종 상위 25위 AP/USA 투데이 폴에서 17위, ESPN 폴에서 23위를 기록했다.
1999-2000 시즌에는 도노반이 게이터스를 이끌고 학교 역사상 첫 번째 SEC 정규 시즌 챔피언십과 두 번째 NCAA 파이널 포 진출을 달성했다. 노스캐롤라이나를 전국 준결승에서 꺾었지만, NCAA 챔피언십 경기에서는 미시간 스테이트에 패했다.
게이터스는 2000-01 시즌에도 SEC 정규 시즌 챔피언십을 차지했으며, 2003년 2월 3일에는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ESPN/USA 투데이 폴에서 1위 자리에 올랐고, 다음 시즌인 2003년 12월 8일에도 다시 1위를 기록했다. 2004-05 시즌의 하이라이트는 플로리다가 SEC 토너먼트 챔피언십에서 켄터키를 70대53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었다. 이는 게이터스가 컨퍼런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첫 번째 사례였다.
정규 시즌에는 성공적이었지만,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도노반의 플로리다 팀은 NCAA 토너먼트에서 일관되게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다. 매년 하위 시드 팀에게 1라운드 또는 2라운드에서 패했으며, 이는 높은 평가를 받은 선수들로 구성된 로스터에도 불구하고 발생했다. 30대였던 일부 논평가들은 도노반이 뛰어난 스카우트 능력을 가졌지만, UF 캠퍼스에 선수들이 입학한 후에는 경기 중 조정 능력이나 재능 있는 선수들을 개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추측했다.

4.2.1. Back-to-Back National Championships

2005-06 시즌에 도노반의 2학년 중심 게이터스 팀은 학교 역사상 최고의 시즌 시작 연승 기록을 세웠다. 17연승을 기록하며 AP 폴에서 전국 2위에 올랐다. 그러나 테네시 볼룬티어스에게 시즌 첫 SEC 경기에서 패하며 1위 자리를 놓쳤다. 이어서 2006년 NIT 챔피언이 된 사우스캐롤라이나 게임콕스에게 예상치 못한 스윕패를 당하며 플로리다는 10승 6패의 컨퍼런스 기록으로 SEC 동부 디비전 2위를 차지했다.
도노반의 젊은 게이터스 팀은 포스트시즌에서 힘을 합쳤다. 플로리다는 SEC 토너먼트 챔피언십에 진출하여 결승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를 꺾고 정규 시즌의 예상치 못한 패배를 설욕하며 학교의 두 번째 컨퍼런스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했다. 2006년 NCAA 토너먼트에서 3번 시드를 받은 게이터스는 마침내 스위트 식스틴을 넘어섰다. 그들은 지난 시즌 토너먼트에서 자신들을 탈락시켰던 빌라노바를 꺾고 파이널 포에 진출했으며, 챔피언십 경기에서는 UCLA를 73대57로 물리치고 학교의 첫 NCAA 농구 타이틀을 획득했다.
오코넬 센터에서 열린 우승 축하 행사에서 게이터스의 주전 다섯 명(리 험프리, 조아킴 노아, 알 호포드, 코리 브루어, 토렌 그린) 모두 NBA 드래프트 조기 선언 대신 다음 해에 돌아와 또 다른 챔피언십 우승(마지막 2연패 팀은 1991년과 1992년의 듀크)에 도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게이터스는 많은 언론 매체로부터 2연패의 유력 후보로 지목되었다. 게이터스는 빠르게 출발하여 비컨퍼런스 경기에서 단 두 번만 패했다(캔자스 전과 플로리다 스테이트 원정). 2006년 12월 20일, 도노반은 236승을 기록하며 노름 슬론의 기록을 넘어 플로리다 역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농구 감독이 되었다. 2007년 게이터스는 이타심, 패싱, 슈팅 능력, 그리고 전반적인 팀 플레이 면에서 더욱 성숙해 보였다. 비록 SEC 경기에서 밴더빌트에게 패한 것을 시작으로 네 경기 중 세 경기를 지는 등 막판에 주춤했지만, 아치 라이벌인 켄터키 와일드캣츠를 상대로 6연승을 거두며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SEC 정규 시즌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게이터스는 이후 아칸소 레이저백스를 결승에서 꺾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SEC 토너먼트 챔피언십을 다시 차지했다.
플로리다는 2007년 NCAA 토너먼트에서 전체 1번 시드를 받았고, 잭슨 스테이트, 퍼듀, 버틀러, 오리건을 꺾고 파이널 포에 진출했다. 준결승은 2006년 챔피언십 경기의 재대결로 UCLA를 상대로 펼쳐졌으며, 도노반의 게이터스가 76대66으로 승리했다. 이틀 후 게이터스는 태드 매타가 감독을 맡은 오하이오 스테이트 버키스를 84대75로 압도하며 2연패를 확정 지었다. 3개월 전 플로리다 게이터스 풋볼 팀이 2007년 BCS 내셔널 챔피언십 게임 (역시 오하이오 스테이트를 상대로)에서 우승한 것에 이어, 플로리다 대학교는 NCAA 역사상 처음으로 축구와 농구 전국 챔피언십을 동시에 보유한 학교가 되었다.
4.2.2. Later Years and Program Legacy
도노반의 게인즈빌에서의 첫 10년은 플로리다 대학교 농구 프로그램에 새로운 수준의 성공을 가져왔다. 게이터스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매 시즌 NCAA 토너먼트에 초청받았으며 (9시즌 연속 진출), 세 차례 전국 챔피언십 경기에 진출했고, 두 번의 NCAA 타이틀을 획득했다. 대조적으로, 도노반 부임 전 81년 동안 플로리다 농구팀은 단 5번의 NCAA 토너먼트(무효 처리된 슬론 감독 시절 2회 제외)에만 진출했으며, NCAA 챔피언십 경기에는 한 번도 진출하지 못했다. 컨퍼런스 경기에서는 도노반 부임 전에는 단 한 번의 SEC 정규 시즌 챔피언십을 차지했고 컨퍼런스 토너먼트 우승은 없었다. 1996년부터 2007년까지 게이터스는 세 번의 SEC 정규 시즌 타이틀과 세 번의 SEC 토너먼트 타이틀을 획득했다.
게인즈빌로 복귀를 발표한 후, 도노반은 Rivals.com이 선정한 2007년 최고의 신입생 클래스를 영입했다. 전년도 주전 5명 전원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이터스는 도노반의 10번째 20승 시즌을 기록하며 많은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18승 3패의 시작 후, 팀은 시즌 마지막 3분의 1 기간 동안 부진을 겪으며 마지막 11경기 중 3승만을 거두었고, 게이터스의 9년 연속 NCAA 토너먼트 초청 기록이 끊겼다. 젊은 게이터스 팀은 반등하여 2008년 NIT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매사추세츠 민맨에게 패했다.
2008-09 게이터스는 시즌을 19위, 5승 0패로 시작했으나 시러큐스에 패했다. 2주 후 플로리다 스테이트 세미놀스에게 패하며 게이터스는 상위 25위 팀에서 벗어났다. 팀은 정규 시즌 22승을 거두었지만, 다시 NCAA 토너먼트 출전권을 얻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나 게이터스는 2009년 NIT에서 1번 시드를 받았고, 펜실베이니아 스테이트 니타니 라이온스에게 8강에서 패했다.
게이터스는 2009-10 시즌에 NCAA 토너먼트로 복귀했으나, 1라운드에서 BYU 쿠거스에게 연장전 접전 끝에 패했다. 이 시즌 동안 플로리다는 플로리다 스테이트를 꺾으며 3연패를 끊었다. 또한 그들은 2009년 레전드 클래식 토너먼트 우승을 향해 NCAA 토너먼트 우승 후보로 점쳐졌던 미시간 스테이트를 꺾었다.
세 명의 주전 시니어 선수가 돌아온 2010-11 게이터스는 개선된 기록을 세웠다. 그들은 SEC 정규 시즌 타이틀을 획득했고, 2011년 SEC 토너먼트 준우승을 차지했다. 2011년 NCAA 토너먼트에서 게이터스는 지머 프레데트가 이끄는 BYU 쿠거스를 꺾었지만, 버틀러 불독스에게 엘리트 에이트에서 연장전 끝에 패했다. 2011년 3월 8일, 도노반은 2011년 SEC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세 차례 전국 챔피언십 경기에 진출하고 두 차례 전국 타이틀을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상은 도노반의 첫 수상이었다. 게이터스 포워드 챈들러 파슨스 또한 SEC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최초의 게이터스 선수가 되었다.
2011-12 게이터스는 다시 NCAA 토너먼트에 초청받았으며, 이번에는 7번 시드를 받았다. 그들은 10번 시드의 버지니아 캐벌리어스와 15번 시드의 노퍽 스테이트(2번 시드의 미주리를 꺾은 팀)를 물리치고 스위트 식스틴에 진출했고, 이어서 마켓을 68대58로 꺾고 2년 연속 엘리트 에이트에 복귀했다. 엘리트 에이트에서 도노반과 게이터스는 루이빌과 도노반의 전 감독인 피티노를 만났다. 게이터스는 매우 접전 끝에 72대68로 패했다.
도노반은 2013년 1월 19일 미주리 타이거스를 83대52로 꺾으며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400번째 경력 승리를 기록했다. 게이터스는 2013년 SEC 정규 시즌 챔피언십(도노반의 5번째 정규 시즌 컨퍼런스 챔피언십)을 차지했고, 2013년 SEC 토너먼트 준우승(챔피언십 경기에서 올 미스에 패)을 기록했다. 또한 3년 연속 엘리트 에이트에 진출했다(2라운드에서 노스웨스턴 스테이트, 3라운드에서 미네소타, 스위트 식스틴에서 플로리다 걸프 코스트를 꺾었지만, 지역 결승에서 미시간에 패했다).

도노반의 2013-14 시즌 팀은 여러 선수들이 부상이나 징계로 인해 시즌을 시작했고, 대학 농구에서 가장 도전적인 비컨퍼런스 일정 중 하나에 직면했다. 플로리다는 랭킹 팀과의 두 번의 접전 원정 경기에서 패했으며, 컨퍼런스 일정에 11승 2패와 전국 10위 랭킹으로 진입했다. 게이터스는 정규 시즌 동안 더 이상 패하지 않았고, SEC 역사상 최초로 18승 0패의 컨퍼런스 기록을 달성했으며, 동시에 수많은 학교 기록을 경신했다. 플로리다는 이후 2014년 SEC 남자 농구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SEC 상대 전체 기록을 21승 0패로 만들었다.
SEC 정규 시즌 챔피언십은 도노반의 게이터스에게 4시즌 중 세 번째 우승이었으며, 컨퍼런스 토너먼트 챔피언십은 학교 역사상 네 번째 우승으로, 모두 도노반 감독 체제에서 달성되었다. 그는 세 번째로 SEC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고, 그의 선수들은 많은 컨퍼런스 개인상을 수상했다. 시니어 포인트 가드 스코티 윌베킨은 SEC 올해의 선수와 SEC 토너먼트 MVP로 선정되었고, 시니어 센터 패트릭 영은 올해의 수비 선수와 학자 운동선수, 주니어 포워드 도리안 피니-스미스는 올해의 식스맨으로, 시니어 가드 케이시 프래서는 올-SEC 퍼스트 팀에 선정되었다.
게이터스는 2014년 NCAA 토너먼트에서 전체 1번 시드를 받았고, 토너먼트 첫 네 상대 팀을 모두 두 자릿수 점수 차로 꺾으며 파이널 포에 진출하면서 연승 기록을 30경기로 늘렸다. 그러나 게이터스의 시즌은 전국 준결승에서 7번 시드이자 최종 전국 챔피언인 코네티컷 허스키스에게 패하며 끝났다. 코네티컷은 지난 12월 플로리다를 마지막으로 꺾었던 팀이었다.
2015년 2월 28일, 도노반은 테네시 볼룬티어스를 66대49로 이긴 플로리다 게이터스 경기에서 500번째 경력 승리를 달성하며 NCAA 디비전 I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이 기록을 달성한 감독이 되었다. 도노반은 50세가 되기 전에 500승을 달성한 유일한 감독인 밥 나이트와 함께 이 기록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게이터스 팀은 시즌을 16승 17패로 마쳤고, 이로써 게이터스의 연승 시즌과 20승 시즌 연속 기록은 각각 16년 만에 막을 내렸다.
플로리다에서 18년 동안 도노반은 게이터스를 14번의 NCAA 토너먼트 진출, 6번의 SEC 정규 시즌 타이틀(단독 4회, 공동 2회) 및 4번의 SEC 토너먼트 타이틀로 이끌었다. 이에 비해 도노반이 부임하기 전 플로리다 게이터스는 역사상 단 3번의 "공식적인" NCAA 토너먼트 진출(슬론 감독 시절 무효 처리된 2회 제외), 1번의 정규 시즌 컨퍼런스 타이틀, 그리고 토너먼트 타이틀은 없었다.
5. Professional Coaching Career
도노반은 대학 농구에서 압도적인 성공을 거둔 후 NBA로 무대를 옮겨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5.1. Orlando Magic Stint
플로리다의 전국 챔피언십 우승 기간 동안, 도노반이 켄터키 대학교의 감독직 제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는 나중에 켄터키가 관심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자신은 "켄터키와 공식적인 접촉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2007년 전국 챔피언십 우승 후, 도노반은 다른 대학 팀으로 플로리다를 떠날 계획이 없으며 플로리다 대학교와 계약 연장을 논의 중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5월 말, NBA의 올랜도 매직이 도노반에게 2시즌 연속 패배 기록 후 해고된 브라이언 힐을 대체할 감독직을 제안했다. 도노반은 2007년 6월 1일까지 결정을 고심한 끝에 올랜도 매직의 계약 제안을 수락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5년간 약 2750.00 만 USD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플로리다 운동 관리자 제레미 폴리는 당시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 감독이었던 도노반의 전 보조 코치 앤서니 그랜트에게 도노반의 후임직에 대한 관심을 문의했다.
도노반은 2007년 6월 1일 올랜도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열었고, 그날 늦게 게인즈빌에서 감동적인 작별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도노반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 재고하기 시작했고, 제레미 폴리와 매직 프런트 오피스에 플로리다를 떠나기로 한 마음을 바꿨다고 통보했다. 도노반을 설득하지 못한 매직은 2007년 6월 6일 도노반과의 합의에 도달하여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그가 플로리다 게이터스 농구팀의 감독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했다. 계약 해지 조건으로, 그는 향후 5년 동안 NBA에서 감독을 맡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노반은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에게 사과를 표했고, 올랜도 매직은 곧바로 스탠 밴 건디를 감독으로 고용했다.
5.2. Oklahoma City Thunder
2015년 4월 30일, 도노반은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며, 약 3000.00 만 USD에 달하는 5년 계약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선더에서 7시즌 동안 감독을 맡았던 스코트 브룩스의 후임으로 부임했다.
팀에서의 첫 시즌인 2015-16년에 선더는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고,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3대1로 시리즈를 앞서나가던 상황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게 7차전 끝에 패했다. 도노반 감독 체제하에서 이후 시즌에도 선더는 승률을 기록하며 한 번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지 않았지만,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는 2019-20 시즌 후 NBA 코치 협회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선더 프런트 오피스와의 "팀의 미래 방향"에 대한 논의 끝에 상호 합의하에 팀을 떠났다.
5.3. Chicago Bulls
2020년 9월 22일, 시카고 불스는 도노반을 새로운 감독으로 영입했으며, 4년 계약에 약 2400.00 만 USD를 받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도노반은 12월 29일 워싱턴 위저즈를 115대107로 꺾고 불스 감독으로서 첫 승을 거두었다.
6. National Team Coaching
도노반은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세 차례 선임되었다. 그는 2012년 U18 팀을 이끌고 2012년 FIBA 아메리카 U-18 챔피언십에 참가하여 토너먼트에서 5승 0패를 기록했다. 이후 그는 같은 선수들 중 다수를 이끌고 2013년 FIBA U-19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9승 0패를 기록했다. 이듬해 여름, 그는 다시 2014년 FIBA 아메리카 U-18 챔피언십에서 미국 팀을 코치했으며, 5승 0패를 기록하며 다시 토너먼트 챔피언십으로 이끌었다. 일부 논평가들은 도노반이 마이크 슈셉스키의 뒤를 이어 2020년 하계 올림픽에서 미국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7. Awards and Honors
빌리 도노반은 선수와 코치 경력 전반에 걸쳐 다음과 같은 중요한 상과 영예를 받았다.
- 선수 시절:
- 올-빅 이스트 퍼스트 팀 (1987)
- 코치 시절:
- 아모스 알론조 스태그 어워드 (2006)
- 존 R. 우든 어워드의 "레전드 오브 코칭 어워드" (2010)
- SEC 올해의 감독 (2011, 2013, 2014)
- NBA 코치 협회 올해의 감독상 (2020)
- NCAA 챔피언 (2006, 2007)
- NCAA 토너먼트 파이널 포 (2000, 2006, 2007, 2014)
- SoCon 올해의 감독 (1995)
- SEC 토너먼트 챔피언 (2005, 2006, 2007, 2014)
- SEC 정규 시즌 챔피언 (2000, 2001, 2007, 2011, 2013, 2014)
8. Personal Life
도노반은 1989년 8월 5일 크리스틴 해스브룩(구 이름 D'Auria도리아영어, 1964년생)과 결혼했다. 그녀는 앤서니 J. 도리아와 패트리샤 앤 코너 도리아의 딸이며, 해스브룩 가문의 후손이다. 도노반 부부에게는 코너, 브라이언, 해스브룩 앤, 그리고 윌리엄 도노반 3세 등 네 자녀가 있다. 윌리엄 도노반 3세는 가톨릭 대학교에서 플로리다로 전학 와서 아버지의 팀에서 워크온 선수로 예비 가드를 맡기도 했다.
2000년에는 다섯 번째 자녀인 재클린이 사산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도노반은 여러 아동 자선 단체에 참여하고 게인즈빌의 어린이 병원 기금 모금을 돕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러한 비극은 피티노 감독과 전 보조 코치인 앤서니 그랜트, 존 펠프리의 가족에게도 유사하게 닥쳐, 이들 사이에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게 했다.
도노반의 부모님은 1996년 게인즈빌에 집을 샀고, 빌 도노반 시니어는 아들의 플로리다 감독 재임 기간 동안 대부분의 게이터스 경기와 훈련에 꾸준히 참석하는 모습으로 유명했다.
도노반은 로마 가톨릭 신자이다. 그는 일부 선수들과 언론에서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묘사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등록된 무소속 유권자이다.
9. Philanthropy
2008년 10월, 도노반 감독과 당시 플로리다 게이터스 풋볼 감독이었던 어번 마이어는 플로리다 기회 장학금 프로그램 지원을 위해 5000.00 만 USD를 모금하는 노력의 공동 의장으로 임명되었다. 플로리다 기회 장학금 프로그램은 버니 매천 플로리다 대학교 총장이 2006년에 만들었으며, 학업 준비가 되어 있지만 상당한 차등적 필요와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1세대 대학생들에게 기회를 늘려주기 위함이다.
도노반은 1996년 플로리다 대학교에 부임했을 당시 가톨릭 중고등학교가 없던 게인즈빌에 가톨릭 고등학교 설립을 위한 기금 모금 및 추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인트 프란시스 고등학교는 도노반의 많은 도움으로 2004년에 개교했으며 2008년에 확장되었다. 그의 자녀들도 이 학교에 다녔다.
10. Coaching Record
10.1. College Coaching Record
시즌 | 팀 | 전체 기록 | 컨퍼런스 기록 | 컨퍼런스 순위 | 포스트시즌 |
---|---|---|---|---|---|
마셜 선더링 허드 (서던 컨퍼런스) | |||||
1994-95 | 마셜 | 18-9 | 10-4 | 북부 1위 | |
1995-96 | 마셜 | 17-11 | 8-6 | 북부 3위 | |
마셜 총계 | 35-20 | 18-10 | |||
플로리다 게이터스 (SEC) | |||||
1996-97 | 플로리다 | 13-17 | 5-11 | 동부 5위 | |
1997-98 | 플로리다 | 14-15 | 6-10 | 동부 6위 | NIT 1라운드 |
1998-99 | 플로리다 | 22-9 | 10-6 | 동부 3위 | NCAA 디비전 I 스위트 16 |
1999-00 | 플로리다 | 29-8 | 12-4 | 동부 공동 1위 | NCAA 디비전 I 준우승 |
2000-01 | 플로리다 | 24-7 | 12-4 | 동부 공동 1위 | NCAA 디비전 I 2라운드 |
2001-02 | 플로리다 | 22-9 | 10-6 | 동부 공동 1위 | NCAA 디비전 I 1라운드 |
2002-03 | 플로리다 | 25-8 | 12-4 | 동부 2위 | NCAA 디비전 I 2라운드 |
2003-04 | 플로리다 | 20-11 | 9-7 | 동부 2위 | NCAA 디비전 I 1라운드 |
2004-05 | 플로리다 | 24-8 | 12-4 | 동부 2위 | NCAA 디비전 I 2라운드 |
2005-06 | 플로리다 | 33-6 | 10-6 | 동부 2위 | NCAA 디비전 I 챔피언 |
2006-07 | 플로리다 | 35-5 | 13-3 | 동부 1위 | NCAA 디비전 I 챔피언 |
2007-08 | 플로리다 | 24-12 | 8-8 | 동부 4위 | NIT 준결승 |
2008-09 | 플로리다 | 25-11 | 9-7 | 동부 3위 | NIT 8강 |
2009-10 | 플로리다 | 21-13 | 9-7 | 동부 4위 | NCAA 디비전 I 1라운드 |
2010-11 | 플로리다 | 29-8 | 13-3 | 동부 1위 | NCAA 디비전 I 엘리트 에이트 |
2011-12 | 플로리다 | 26-11 | 10-6 | 공동 2위 | NCAA 디비전 I 엘리트 에이트 |
2012-13 | 플로리다 | 29-8 | 14-4 | 1위 | NCAA 디비전 I 엘리트 에이트 |
2013-14 | 플로리다 | 36-3 | 18-0 | 1위 | NCAA 디비전 I 파이널 포 |
2014-15 | 플로리다 | 16-17 | 8-10 | 공동 8위 | |
플로리다 총계 | 467-186 | 200-110 | |||
경력 총계 | 502-206 |
10.2. NBA Coaching Record
팀 | 연도 | G | W | L | W-L% | 마감 | PG | PW | PL | PW-L% | 결과 |
---|---|---|---|---|---|---|---|---|---|---|---|
오클라호마시티 | 2015-16 | 82 | 55 | 27 | 0.671 | 노스웨스트 1위 | 18 | 11 | 7 | 0.611 | 컨퍼런스 결승 패배 |
오클라호마시티 | 2016-17 | 82 | 47 | 35 | 0.573 | 노스웨스트 2위 | 5 | 1 | 4 | 0.200 | 1라운드 패배 |
오클라호마시티 | 2017-18 | 82 | 48 | 34 | 0.585 | 노스웨스트 2위 | 6 | 2 | 4 | 0.333 | 1라운드 패배 |
오클라호마시티 | 2018-19 | 82 | 49 | 33 | 0.598 | 노스웨스트 4위 | 5 | 1 | 4 | 0.200 | 1라운드 패배 |
오클라호마시티 | 2019-20 | 72 | 44 | 28 | 0.611 | 노스웨스트 2위 | 7 | 3 | 4 | 0.429 | 1라운드 패배 |
시카고 | 2020-21 | 72 | 31 | 41 | 0.431 | 센트럴 3위 | - | - | - | - |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
시카고 | 2021-22 | 82 | 46 | 36 | 0.561 | 센트럴 2위 | 5 | 1 | 4 | 0.200 | 1라운드 패배 |
시카고 | 2022-23 | 82 | 40 | 42 | 0.488 | 센트럴 3위 | - | - | - | - |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
시카고 | 2023-24 | 82 | 39 | 43 | 0.476 | 센트럴 4위 | - | - | - | - |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
경력 | 718 | 399 | 319 | 0.556 | 46 | 19 | 27 | 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