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Background
1.1. Childhood and Education
빈스 루소는 뉴욕 주 파밍빌에서 이탈리아계로 성장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시칠리아인이었다. 그는 1983년에 서던 인디애나 대학교 (당시 인디애나 주립 대학교 에번즈빌)를 저널리즘 학위로 졸업했다. 루소는 대학 신문인 더 실드에서 스포츠 담당 부편집장을 거쳐 편집장으로 일했다. 1983년 에이미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으며, 2003년 10월에는 거듭난 기독교인이 되었다.
1.2. Early Career and Entry into Professional Wrestling
루소는 롱아일랜드에서 비디오 가게 두 곳을 소유하고 있었다. 또한 1992년부터 1993년까지 프리포트의 WGBB에서 매주 일요일 밤에 방영되는 지역 라디오 쇼 비셔스 빈센트의 레슬링 세계를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정확히 1년간 방영되었으며, 마지막 방송은 1주년 기념 방송이었다. 프로레슬링 업계에는 브루클린의 글리슨스 짐에서 조니 로즈의 가르침 아래 훈련을 시작하며 발을 들였다.
2. Professional Wrestling Career
빈스 루소의 프로레슬링 경력은 WWF, WCW, TNA와 같은 주요 단체에서 크리에이티브 팀을 이끌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각본 스타일로 시대를 정의하고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1. World Wrestling Federation (1992-1999)
1992년, 루소는 린다 맥마흔에게 편지를 보낸 후 WWF 매거진의 프리랜서 작가로 고용되었고, 이후 1994년에는 '빅 베놈'이라는 가명으로 편집자가 되었다. 1996년에는 WWF 크리에이티브 팀으로 승진했다. 당시 먼데이 나이트 로의 시청률은 1.8이라는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었고, 경쟁사인 WCW 먼데이 나이트로는 로를 상대로 83주 연속 시청률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먼데이 나이트 워 참고).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 (WCW)이 WWF를 앞지르자, WWF 회장 빈스 맥마흔은 루소에게 TV 프로그램의 변화를 요청했다.
루소는 성적인 내용, 욕설, 예상치 못한 악역 전환 또는 워크된 슈트 등 선정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스토리라인을 도입했으며, 짧은 경기, 백스테이지 비네트, 충격적인 각본, 그리고 묘사된 폭력의 수준을 높였다. 루소의 각본 스타일은 "크래시 TV"(Crash TV영어)로 알려지게 되었고, 제리 스프링거 쇼에서 크게 영감을 받았다. "크래시 TV"는 WWF TV에 출연하는 모든 캐릭터가 스토리라인 (페드)에 참여해야 한다는 루소의 철학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단순히 페드에 얽매이지 않는 레슬러들 간의 경기를 포함하는 기존 레슬링 부킹과 대조되었다. 루소는 지속적으로 스토리라인 자료를 화면에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이 뭔가를 놓칠까 봐 채널을 돌리지 않으리라 믿었다.
1997년, 루소는 WWF의 헤드 작가가 되어 주력 쇼인 로 이즈 워와 월간 페이 퍼 뷰를 집필했다. 그가 만든 각본들을 통해 루소는 애티튜드 시대 동안 WWF가 WCW를 제치고 먼데이 나이트 시청률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5년 제프 레인과의 인터뷰에서 루소는 WWF 헤드 작가로서 처음 쓴 것이 1997년 12월 15일에 방영된 로 에피소드였다고 언급했다. 1998년 킹 오브 더 링 페이 퍼 뷰에서는 에드 페라라가 WWF 크리에이티브 팀에 합류하여 루소와 짝을 이루었다. 루소의 비평가들이 종종 언급하는 이 시기의 논란이 많은 캐릭터로는 세이블, 발 비니스, 갓파더 등이 있다. 루소는 또한 악명 높은 WWF 브롤 포 올 토너먼트를 고안했다. 그는 D-Generation X의 형성, 언더테이커 대 케인 페드,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대 미스터 맥마흔 페드, 더 락의 부상, 믹 폴리의 세 차례 푸시에도 기여했다. 루소가 헤드 작가로 승진한 이후 2년 동안, 로는 WCW의 나이트로를 직접 대결 시청률에서 능가했다.
1999년 10월, 루소가 회사를 떠난 후 크리스 크레스키가 WWF의 헤드 작가를 대체했다.
2.2. World Championship Wrestling (1999-2000)
빈스 루소는 WCW로 이적하여 WWF에서 시도했던 '크래시 TV' 스타일을 적용하려 노력했지만, 이는 WCW의 몰락에 대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될 만큼 많은 논란과 문제를 야기했다.
2.2.1. Hiring and Creative Approach
1999년 10월 3일, 루소와 에드 페라라는 WCW와 계약을 체결했다. 루소는 WWF를 떠난 이유가 새로운 스맥다운 방송 도입으로 인한 업무량 증가와 맥마흔이 자신의 가족을 무시한 것에 대한 빈스 맥마흔과의 불화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루소와 페라라는 먼데이 나이트로에 로 이즈 워와 유사한 "크래시 TV" 스타일을 더 빠른 속도로 적용하려 했다. 여기에는 더 감성적인 스토리라인, 길어진 비 레슬링 세그먼트, 끊임없는 악역/선역 전환, 쇼에서의 여성 출연 증가, 가짜 은퇴, 더 많은 백스테이지 비네트, 확장된 스토리라인 깊이, 빈번한 타이틀 변동, 미드카더(중위권 레슬러)의 더 효과적인 활용 등이 포함되었다. 루소와 페라라는 종종 WWF를 조롱하는 데 집중했다.
루소의 각본 스타일은 "크래시 TV" 철학을 반영하여 빈번한 타이틀 변동을 야기했다. 1999년 말 나이트로에서 쥬신 썬더 라이거가 IWGP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십을 잃고 되찾는 과정은 2007년까지 신일본 프로레슬링 (NJPW)의 타이틀 계보에 인정되지 않았다. 라이거는 후벤투드 게레라에게 테킬라 병으로 머리를 맞고 타이틀을 잃었다. 스와브와 "슈트"로 다뤄지는 시나리오가 크게 강조되었는데, 레슬러들이 "내부자"(insider영어) 용어를 사용하여 대본 없는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보였고, 이는 인터넷 스마크(열성 팬)들에게만 인식되는 혼란스러운 방송이 일반화되었다.
2000년 1월, 루소는 브렛 하트 (당시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와 제프 제럿 (당시 WCW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헤비웨이트 챔피언)으로부터 각각 부상으로 경기를 할 수 없어 타이틀을 반납해야 한다는 전화 두 통을 받았다. 이로 인해 루소는 하트와 신세계 질서에 대한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루소와 그의 부킹 위원회는 솔드 아웃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결정하기 위해 모였다. 한 아이디어는 탱크 애벗이라는 전 UFC 격투기 선수에게 빈 WCW 타이틀을 안기는 것이었다. 현실적인 시도를 위해, 원래는 "럼블 매치"를 통해 시드 비셔스가 초반에 등장하여 끝까지 버티다가 애벗이 들어와 한 방에 그를 탈락시키는 아이디어였다. 루소는 이 타이틀 변동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애벗이 24시간 이상 타이틀을 보유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와 위원회가 아이디어를 낸 다음 날, 그는 헤드 작가가 아닌 위원회에서 일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루소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회사를 떠났으며, 그의 즉각적인 후임은 케빈 설리번이었다. 설리번은 다른 부커들과 함께 레슬러 크리스 벤와가 심판 안 안데르손이 있는 싱글 매치에서 비셔스로부터 타이틀을 획득하도록 결정했다.
루소가 떠난 지 3개월 후인 2000년 3월, 설리번은 결국 해고되었고 루소는 에릭 비쇼프와 함께 리드 작가로 복귀했다. 이는 루소와 비쇼프가 WCW를 더 현대적이고 효율적인 회사로 리부트하여 젊은 인재들이 기존 스타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2000년 4월 10일 WCW 먼데이 나이트로 에피소드에서 루소는 화면상의 악역 권위자로 소개되었다. 그의 캐릭터가 관여했던 주요 스토리라인으로는 "더 뉴 블러드 대 더 밀리언에어스 클럽", 릭 플레어와의 페드 (그와 데이비드 플레어가 릭 플레어의 머리와 리드 플레어의 머리를 깎는 사건), 골드버그와의 페드, 그리고 그의 짧은 월드 챔피언 재임 기간 등이 있다. 2000년 5월 8일, 루소는 미스 엘리자베스가 대프니와의 첫 공식 레슬링 경기를 가지도록 부킹했으며, 엘리자베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떠났다.
2.2.2. Major Incidents and Title Reign
배시 앳 더 비치 2000에서 루소는 헐크 호건과 관련된 사건에 연루되었다. 당시 호건은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제프 제럿과의 경기에서 패배하도록 부킹되어 있었다. 호건은 루소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패배를 거부했으며 (계약서의 "크리에이티브 통제" 조항을 발동하여 루소의 결정을 뒤엎었다), 결국 루소는 제럿이 호건에게 문자 그대로 누워 패배하도록 부킹했다. 이에 호건은 루소에게 "이 회사가 이 모양 이 꼴인 건 이런 엿 같은 일 때문이야"라고 말하며 워크된 슈트를 날린 뒤, 제럿의 가슴에 발을 올리고 핀폴 승리를 거두었다. 루소는 방송 후반에 나타나 이 경기의 결과를 무효화하고 호건을 공개적으로 해고했다. 이 조치로 타이틀은 제럿에게 돌아갔고, 이는 제럿과 부커 T 사이의 새로운 타이틀 매치를 성사시켰으며, 부커 T가 경기에서 승리하며 타이틀을 획득했다.
루소의 약속대로 호건은 WCW에 다시는 등장하지 않았고, 루소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이 소송은 2003년 "근거 없는" 것이며 "단지 레슬링 각본의 일부"였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호건은 자신의 자서전 헐리우드 헐크 호건에서 루소가 각본을 슈트로 바꿨으며, 터너 경영진 브래드 시겔이 자신의 출연료 문제로 더 이상 자신을 고용하고 싶어 하지 않아 자신을 더블 크로스했다고 주장한다. 에릭 비쇼프는 자신의 자서전 논란은 돈을 만든다에서 호건이 타이틀을 따고 떠난 것은 몇 달 후 할로윈 해벅에서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할 계획이었던 워크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루소가 호건을 해고하기 위해 나온 것은 실제로 슈트였고, 이는 호건의 소송으로 이어졌다고 비쇼프는 말한다. 비쇼프는 자신과 호건이 이벤트 후 이 각본에 대해 축하했지만, 호건이 경기장을 떠난 후 루소의 링 내 슈트 소식을 듣고 비탄에 잠겼다고 주장했다. 호건의 조카 호러스 호건의 사촌인 마이크 어섬 (이 사건 이후 회사를 떠났다) 또한 하이스포츠(Highspots)에서 발표한 슈트 인터뷰에서 이 분쟁과 사건이 자신의 WCW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루소가 헐크 호건과의 문제를 어섬에게 표출하며, 어섬이 호건과 "너무 가까운 친척"이라는 이유로 좋지 않은 기믹들을 부여했다고 언급했다.
2000년 중반, 루소는 릭 플레어와의 각본에 참여했다. 이 각본에는 루소가 스테이시 키블러와 플레어의 아들 데이비드 플레어의 결혼식 도중 경찰을 링으로 보내 플레어를 체포하게 하는 사건이 포함되었다.
2000년 8월 뉴 블러드 라이징에서 루소는 골드버그가 경기 도중 "각본을 따르지 않았다"며 그와 대립하기 시작했다. 다음 페이 퍼 뷰인 폴 브롤에서 루소는 골드버그와 스캇 스타이너의 경기에 난입하여 골드버그의 패배를 유도했다.
2000년 9월 18일 나이트로 에피소드에서 루소는 스팅 및 부커 T와 함께 스캇 스타이너 및 제프 제럿을 상대로 태그 매치에 나섰으며, 핀폴을 따내는 레슬러는 부커 T의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에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루소는 부커 T가 의식을 잃은 루소를 스타이너 위로 끌어올려 3카운트를 얻어 승리했다. 다음 주, 루소는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놓고 부커 T와 철창 경기에서 맞붙었다. 이 경기는 루소가 골드버그에게 스피어를 맞고 철창 옆을 뚫고 나가는 동시에 부커 T가 철창을 빠져나오면서 명확한 승자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틀 후 썬더에서 루소는 승리자이자 새로운 챔피언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루소는 자신이 레슬러가 아니라는 이유로 즉시 타이틀을 반납하여 그의 재임 기간은 짧았다. 루소는 스피어 기술로 인해 심한 뇌진탕을 겪었으며, 뇌진탕 후 증후군으로 인해 휴식기를 가졌다.
루소의 헤드 작가로서의 활동과 신생 레슬러로서의 경력은 뇌진탕과 다른 부상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AOL 타임 워너는 2001년 5월 WCW 인수가 완료된 직후 루소의 계약을 해지했다.
2.3. Brief Return to WWE (2002)
루소는 2002년 6월 WWE로 돌아와 로와 스맥다운의 크리에이티브 방향을 총괄하는 컨설턴트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2주 만에 "이것은 절대 제대로 될 수 없다"고 선언하며 빠르게 회사를 떠났다. 그가 제안했던 주요 스토리라인 아이디어는 WCW 인베이전을 완전히 재시작하여, 당시 미계약 상태였던 골드버그, 스캇 스타이너, 에릭 비쇼프, 브렛 하트와 같은 인재들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스테파니 맥마흔과의 전화 통화에서 무례함을 느낀 후, 루소는 자발적으로 떠났다 (WWE의 연봉 12.50 만 USD의 재택 '자문' 역할을 거절하고, TNA의 연봉 10.00 만 USD 풀타임 직책을 선택했다).
2.4. Total Nonstop Action Wrestling (2002-2014)
빈스 루소는 TNA의 창립 초창기부터 중요한 역할을 맡아 크리에이티브 방향에 깊이 관여했지만, 그의 각본 스타일은 팬들의 비판과 함께 내부 갈등을 빚기도 했다.

2.4.1. Creative Roles and On-Screen Character
2002년 7월, 루소는 제프 제럿과 제리 제럿의 NWA-TNA 프로모션에 크리에이티브 작가로 합류하여 쇼의 각본 작업과 제작을 도왔다. 루소는 "토탈 논스톱 액션"이라는 이름과 개념이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며, 원래의 개념은 페이 퍼 뷰 독점 콘텐츠로서 WWE보다 더 선정적인 ("T&A," 즉 "가슴과 엉덩이"를 의미하는 약어) 제품이 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놓고 창의적인 권력 다툼이 많다는 보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이러한 소문이 돌던 시기에 루소는 결국 화면상의 캐릭터로 데뷔했다. 그는 미스터리한 가면을 쓴 레슬러 "미스터 레슬링 3"(Mr. Wrestling III영어)로서 제프 제럿이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따는 것을 도왔고, 결국 그가 루소임이 밝혀졌다. 각본상에서 제럿은 루소의 도움을 원치 않았고, 이는 둘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루소는 자신의 팩션인 S.E.X.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익스트림, Sports Entertainment Xtreme영어)를 만들었으며, 글렌 길버티, 써니 시아키, B.G. 제임스, 레이븐, 트리니티 등을 영입했다. S.E.X.는 제프 제럿이 이끄는 전통적인 TNA 레슬러들과 대결했다. 결국 루소는 화면상의 역할에서 물러났고 길버티가 S.E.X.의 리더가 되었다.
잠시 떠난 후 루소는 2003년 5월 28일 페이 퍼 뷰에서 다시 화면상의 캐릭터로 복귀하여 레이븐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길버티가 월드 챔피언십 1위 도전자가 되도록 도왔다. 다음 주 2003년 6월 4일, 길버티가 제럿을 상대로 월드 챔피언십 경기를 치렀을 때 루소는 길버티를 야구방망이로 때려 제럿이 타이틀을 방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 다음 주 페이 퍼 뷰 (2003년 6월 11일)에서 A.J. 스타일스와 레이븐이 제럿을 상대로 트리플 쓰레트 매치로 월드 타이틀을 겨루었을 때, 루소는 스타일스를 제럿의 트레이드마크인 기타로 때리려는 듯 했지만, 결국 제럿을 때려 스타일스가 월드 챔피언십 벨트를 획득하게 했다.
루소는 이후 2003년 남은 기간 동안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A.J. 스타일스의 매니저 역할을 맡았고, S.E.X.는 스토리라인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2003년 10월 1일, 루소는 더스티 로즈와 제프 제럿과의 태그 팀 경기에서 자신의 첫 링 내 패배를 기록했지만, 그의 파트너 스타일스가 핀폴을 내주었다. 2003년 10월 15일 페이 퍼 뷰에서 루소는 제럿과의 스트리트 파이트에서 그해 마지막 모습을 보였다. 루소가 헐크 호건이 자신과 함께 TNA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보고 때문에 회사에서 각본상 퇴출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2004년 2월, 호건이 TNA와 계약을 확정하지 못하자 루소는 결국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스토리상 "권한의 국장"(Director of Authority영어)으로서 순전히 온에어 캐릭터로만 활동했다. 이번에는 선역으로, 자신이 변모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루소의 실제 기독교 개종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2004년 11월 빅토리 로드 페이 퍼 뷰에서 더스티 로즈가 TNA 웹사이트의 인터랙티브 "선거"에서 자신을 제치고 새로운 권한의 국장으로 "선출"된 후 2004년 말에 다시 사라졌다. 루소는 2004년 빅토리 로드 페이 퍼 뷰 이후 회사를 떠났다. 2005년 11월 인터뷰에서 루소는 이 기간 동안 TNA에서 단 한 번도 단독으로 쇼를 작성하지 않았으며, 이 시기를 "완전한 악몽"으로 묘사했다.

2.4.2. Return as Head Writer and Departure
2006년 9월 21일, TNA 사장 딕시 카터는 루소를 TNA 크리에이티브 팀의 작가로 재계약했다. 루소는 TNA 크리에이티브 팀에서 더치 맨텔과 제프 제럿과 짝을 이루었다.
2007년 3월 TNA 페이 퍼 뷰 데스티네이션 X에서 어비스와 스팅의 "라스트 라이츠"(Last Rites영어) 경기에서 발생한 사건들로 인해 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경기장 관중석에서는 "루소 해고하라!"("Fire Russo!"영어)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루소 해고하라!"는 구호는 다음 달인 2007년 4월 15일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페이 퍼 뷰 락다운에서도 들렸다. 이 구호는 팀 3D와 LAX의 전기가 흐르는 철창 경기 동안 들렸는데, 레슬러가 철창을 만질 때마다 조명이 깜빡이며 감전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딕시 카터는 이후 이 기믹이 작가 더치 맨텔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2011년 인터뷰에서 맨텔은 이를 부인했고, 이후 몇 달 동안 둘은 트위터에서 논쟁을 벌였다.
루소는 2009년 7월경 TNA의 크리에이티브 헤드가 되었다. "루소 해고하라!" 구호에 대해 루소는 당시 자신이 크리에이티브 헤드가 아니었으며, 전기가 흐르는 철창 아이디어가 자신에게 제시되었을 때 그 개념이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구현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내놓지 않은 아이디어로 인해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2009년 9월 노 서렌더 페이 퍼 뷰에서 에드 페라라가 TNA에 합류하여 빈스 루소와 주니어 기여자 맷 콘웨이와 함께 크리에이티브 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009년 10월 27일, 헐크 호건과 에릭 비쇼프는 TNA와 계약을 체결하고 루소와 짝을 이루었다. 이들은 WCW에서 루소와 갈등을 겪었으며 배시 앳 더 비치 2000 이후 함께 일하지 않았다. 2010년 TNA에서 루소와의 관계에 대해 질문받자 호건은 TNA에 평화롭게 왔으며, 루소, 에드 페라라, 맷 콘웨이, 제레미 보라쉬로 구성된 작가진이 정말 "발전했다"고 말하며 루소를 "멀리서 사랑한다"고 밝혔다. 루소에 따르면, 세 사람은 만나서 차이점을 해결했다. 루소와 함께 일하면서 비쇼프 또한 2010년 2월 인터뷰에서 "매우 긍정적인 경험"이었고 그들의 협업이 생산적이었다고 말했다.
2011년 10월 6일까지 루소는 기고 작가 역할로 물러났고, 브루스 프리차드가 헤드 작가 역할을 맡았다. 2012년 2월 14일, TNA 사장 딕시 카터는 TNA와 루소가 그 주에 상호 합의 하에 관계를 종료했다고 설명했다.
2.4.3. Secret Consultant Role
2014년 4월, PW인사이더 웹사이트는 루소가 TNA 레슬링의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이 보도를 부인했지만, 7월 15일 PW인사이더는 루소가 TNA 해설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담긴 이메일을 실수로 자신들에게 보도했다. 그 결과, TNA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려 했던 루소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자신이 이미 TNA 레슬링의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으며 TNA 해설자들과 협력하고 있었고, TNA의 조건 중 하나는 루소가 자신의 관여를 비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음을 인정했다. 2일도 채 되지 않아 루소의 성명은 그의 웹사이트에서 삭제되었다.
2014년 7월 30일, 루소는 TNA와의 관계가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주장하며, "오늘 그들이 휴식을 '제안'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종결이 나에게는 더 나았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소는 2013년 10월 24일부터 TNA에서 일해왔으며, 크리에이티브 회의에 참여하고 매주 방영되는 임팩트 레슬링 에피소드를 비평했다고 밝혔다. 그는 TNA 컨설턴트로서 한 달에 약 3000 USD, 연간 평균 3.60 만 USD를 받았다고 말했다.
2.5. Aro Lucha (2017-2018)
2017년 12월 8일, 루소는 내슈빌에 본사를 둔 애로 루차(Aro Lucha영어) 프로모션과 스크립트 컨설턴트로 계약했다. 2018년 4월 5일, 애로 루차의 CEO인 제이슨 브라운은 WeFunder (크라우드 펀딩 웹사이트)의 질의응답 세션을 통해 루소가 직원이 아닌 독립 계약자로 고용되었다고 설명했다. 2018년 4월을 기준으로 루소는 더 이상 이 프로모션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3. Writing Style and Philosophy
루소는 프로레슬링 각본에서 독특하고 논란이 많은 스타일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종종 경기 내 액션보다 스토리와 캐릭터를 우선시했으며, 현실과 각본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을 즐겼다. 그의 각본 스타일은 "크래시 TV"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극적인 반전, 대형 이벤트, 그리고 과장된 캐릭터에 중점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루소는 쇼의 스토리와 캐릭터 요소가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핵심이라고 주장했으며, 따라서 링 내 프로레슬링의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엔터테인먼트를 강조했다. 그는 "크래시 TV" 철학에 따라 WWF TV의 모든 캐릭터가 스토리라인(페드)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는 레슬러들이 반드시 페드에 얽매이지 않는 다수의 경기를 포함하는 기존 레슬링 부킹 방식과 대조되었다. 루소는 화면에 끊임없이 스토리라인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시청자들이 뭔가를 놓칠까 봐 채널을 돌리는 것을 꺼리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뉴스데이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WWF TV 프로그램 중 일부를 집필했고, 이후 WCW와 TNA에서도 같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루소는 레슬링 사업에 대한 때때로 비전통적인 시각 때문에 여전히 레슬링에서 가장 미움받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고 보도했다. 루소에 따르면, 그가 미움받는 한 가지 이유는 현재 WWE 제품에 대한 그의 시각 때문인데, 그는 현재 WWE에 실제 레슬링은 너무 많고 스토리라인은 부족하다고 믿는다. 루소는 자신의 책 로프 오페라에서 자신이 "WWF의 구원자"이자 "WCW를 파괴한 사람"으로 상반되게 불렸다고 썼다.
4. Other Activities
4.1. Online Media
2014년, 루소는 영국 기반 웹사이트 왓 컬처(What Culture영어)에 프로레슬링 칼럼 시리즈를 기고했다. 그는 2023년 3월까지 크리스 제리코의 웹사이트 웹 이즈 제리코(Web Is Jericho영어)에 주간 칼럼을 썼다.
2015년부터 루소는 자신의 팟캐스트 네트워크인 빈스 루소의 더 브랜드(Vince Russo's The Brand영어) (이전에는 더 렐름 네트워크(The RELM Network영어)였다)에서 수많은 일간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루소는 또한 2016년 파이트풀 레슬링(Fightful Wrestling영어) 웹사이트에서 잠시 팟캐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루소는 현재 "채널 애티튜드"(Channel Attitude영어)라는 팟캐스트 네트워크에서 프로레슬링, 엔터테인먼트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이 네트워크에는 디스코 인페르노, 저스틴 크레더블, EC3, 스티비 리처즈, 앨 스노우, 스티비 레이와 같은 레슬링 인물들이 출연한다. 그는 또한 스포츠키다(Sportskeeda영어)에서 로를 리뷰하고 레슬링 뉴스를 논의하는 팟캐스트도 진행한다.
4.2. Publications
루소는 두 권의 자서전을 썼다. 2005년 11월 29일에 출간된 용서받은 자: 자기 영광에서 성화로 가는 한 남자의 여정(Forgiven: One Man's Journey from Self-Glorification to Sanctification영어)은 그의 어린 시절, WWF 활동, 그리고 거듭난 기독교인이 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일부에게 레슬링 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묘사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원래 비자르로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Bizarroland영어)라는 제목이었으나, 그의 새로 찾은 신앙에 맞춰 제목과 내용이 수정되었다.
루소의 두 번째 책인 로프 오페라: WCW가 빈스 루소를 죽인 방법(Rope Opera: How WCW Killed Vince Russo영어)은 2010년 3월 1일에 출간되었으며, 그의 WCW와 TNA 레슬링 재직 기간을 기록하고 있다. "로프 오페라"라는 제목은 그가 WWF 재직 당시 네트워크에 제안했던 TV 시리즈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5. Personal Life
5.1. Family and Faith
루소는 1983년부터 아내 에이미와 결혼했으며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2003년 10월에는 거듭난 기독교인이 되었다. 2004년에는 단명한 온라인 기독교 사역인 용서받은 자(Forgiven영어)를 설립했다. 2005년 말에는 자신의 기독교 독립 프로모션인 링 오브 글로리(Ring of Glory영어)를 위해 두 개의 쇼를 제작했다.
5.2. Notable Relationships and Conflicts
루소는 2016년 사망하기 전까지 조니 로러 (차이나)와 절친한 친구였다.
루소는 1990년대 WWF에서, 그리고 2000년대 초 TNA 레슬링에서 짐 코넷과 함께 일했다. 그들은 레슬링 사업에 대한 상반된 견해 때문에 정기적으로 갈등을 겪었다. 2010년 4월, 한 법률 회사는 코넷이 "빈스 루소가 죽었으면 좋겠다. 감옥에 가지 않고 그를 살해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을 내 인생 최고의 업적으로 여길 것이다"라는 편지를 쓴 후 "테러리스트 위협"을 가했다고 비난하며 그에게 연락했다. 2017년 6월, 루소는 코넷이 자신과 가족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하겠다는 반복적인 언어적 위협을 가하자 코넷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을 신청했다. 코넷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자선 기금을 모으기 위해 이 명령서 사본을 판매했다. 그들의 현실 속 라이벌 관계는 바이스 TV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링의 두 에피소드에 다뤄졌는데, 하나는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다른 하나는 WWF 브롤 포 올을 다루었으며, 2019년과 2020년에 방영된 이 에피소드에는 코넷이 루소의 묘비에 소변을 볼 것이라는 약속까지 포함되었다.
6. Legacy and Reception
빈스 루소는 프로레슬링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그의 각본 스타일은 WWF의 애티튜드 시대 성공에 크게 기여했지만, WCW의 몰락과 관련된 비판 또한 끊이지 않아 그의 유산은 극명하게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다.
6.1. Impact and Positive Views
루소는 레슬링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종종 쇼의 스토리와 캐릭터 요소가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말하며, 따라서 링 내 프로레슬링의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엔터테인먼트를 강조한다. 뉴스데이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WWF TV 프로그램 중 일부를 집필했고, 이후 WCW와 TNA에서도 같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루소는 레슬링 사업에 대한 때때로 비전통적인 시각 때문에 여전히 레슬링에서 가장 미움받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고 보도했다. 루소에 따르면, 그가 미움받는 한 가지 이유는 현재 WWE 제품에 대한 그의 시각 때문인데, 그는 현재 WWE에 실제 레슬링은 너무 많고 스토리라인은 부족하다고 믿는다. 루소는 자신의 책 로프 오페라에서 자신이 "WWF의 구원자"이자 "WCW를 파괴한 사람"으로 상반되게 불렸다고 썼다.
WWE는 루소가 애티튜드 시대의 많은 스토리라인을 책임졌다고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SLAM! 레슬링의 밥 카푸르는 루소가 1990년대 초중반의 만화 같은 스타일에서 벗어나 더 성숙한 스토리라인과 캐릭터를 프로모션에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WWF의 더 락은 루소와의 작업에 대해 "미친 듯이 틀을 깨는 아이디어"를 칭찬하며 호감을 드러냈다. 부커 T는 루소가 자신의 메인 이벤트 급 위상 상승에 기여했다고 말하며 "...만약 빈스 루소가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세계 챔피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절대로!"라고 언급했다. 루소는 부커의 칭찬에 감사하며, 배시 앳 더 비치 2000에서 부커가 WCW 챔피언이 된 것을 "내 경력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자, 사업에 내가 기여할 수 있었던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불렀다.
전 TNA 사장 딕시 카터는 2014년에 루소를 "놀랍도록 재능 있는" 인물이라고 칭찬했지만, 그의 존재가 "업무 관계를 지속하기에는 너무 방해가 되었다"고 인정했으며, 루소가 프로모션에 돌아올 가능성에 대해 "절대 없다고 말하지 말라"고 언급했다. TNA에서 루소와 함께 일했던 여러 레슬러들 (에르난데스, 커트 앵글, A.J. 스타일스)은 그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했다. 벨벳 스카이와 안젤리나 러브는 루소가 TNA의 녹아웃 디비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평가한다.
6.2. Criticisms and Controversies
진 오커런드는 2004년에 루소의 WWF 아이디어가 빈스 맥마흔이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릭 플레어는 WCW 시절 루소의 WWF 영향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후 WCW의 무질서에 대해 루소를 비난했다. 에릭 비쇼프는 루소가 WWF에서의 자신의 영향력을 과장하여 WCW에 고용되었으며, 비쇼프는 이를 "사기적"이라고 불렀다. 레슬링 프로모터 토니 칸과 조디 해밀턴은 WCW 몰락에서 루소의 역할을 비판했으며 (칸은 루소가 WCW를 "10배 더 나쁘게" 만들었다고 언급), TNA 공동 설립자 제리 제럿은 루소를 영입하기로 한 결정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루소가 데이비드 아퀘트를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으로 만든 결정은 매우 논란이 많았지만, 루소는 주류 미국 신문들이 이 스토리를 다뤘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결정을 옹호했다. 레슬크랩은 아퀘트를 역대 최악의 레슬링 챔피언으로 지목하며, 루소의 결정이 "이미 죽음의 문턱에 있던 회사에 기념비적인 손상을 입혔다"고 평했다. WWE의 WCW의 흥망성쇠 다큐멘터리 또한 WCW의 몰락을 대체로 루소의 탓으로 돌렸고, DVD 토크 평론가 닉 하텔은 "루소가 많은 비난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그가 유일한 책임자는 아니었다"고 썼다. R.D. 레이놀즈 또한 루소의 많은 부킹 결정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터너 브로드캐스팅 경영진 제이미 켈너의 WCW 프로그램 취소 결정이 궁극적으로 WCW의 종말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WCW 재직 기간에 대해 개인적으로 "WCW와 나는 결코 같은 페이지에 있지 않았다. 그저 그랬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7. Championships and Accomplishments
-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
-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1회)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 최악의 기믹 (1999) - 파워스 댓 비(The Powers That Be영어)로서
- 최악의 인터뷰 (2000)
- 최악의 비레슬링 인물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