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Background
빈센트 캔비의 어린 시절과 교육,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해군 예비역으로 복무했던 그의 군 경력에 대한 배경 정보는 그가 비평가로서 성장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1.1. Childhood and Education
빈센트 캔비는 1924년 7월 27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캐서린 앤(성 비센트)과 로이드 캔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버지니아주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기숙학교에 다녔으며, 그곳에서 소설가 윌리엄 스타이런과 친구가 되었다. 캔비는 스타이런에게 E.B. 화이트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을 소개했고, 두 사람은 리치먼드까지 히치하이크하여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구입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그는 모교인 다트머스 대학교로 돌아와 1947년에 졸업했다.
1.2. Military Service
캔비는 1942년 10월 13일 미국 해군 예비역의 소위로 임관했다. 1944년 7월 15일에는 상륙함 LST 679에 배치되었다. 그는 일본 근해를 항해하던 LST 679에서 1946년 1월 1일 소위로 진급했다.
2. Career
캔비의 직업적 경력은 초기 언론 활동과 영화 비평을 시작으로 뉴욕 타임스의 수석 영화 평론가, 그리고 이후 수석 연극 평론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펼쳐졌다.
2.1. Early Journalism and Criticism
캔비는 1948년 『시카고 저널 오브 커머스』에서 첫 언론인 직업을 얻었다. 1951년에는 시카고를 떠나 뉴욕으로 이주했으며, 6년 동안 잡지 『버라이어티』의 영화 비평가로 활동한 후 뉴욕 타임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2. Chief Film Critic at The New York Times
1969년 2월, 캔비는 레나타 애들러의 뒤를 이어 『뉴욕 타임스』의 수석 영화 평론가로 임명되었다. 그는 1994년 12월까지 이 직책을 맡으며 수천 편의 영화에 대한 비평을 작성했다. 그의 비평은 우디 앨런의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에 대한 극찬이 앨런의 경력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2.3. Chief Theatre Critic at The New York Times
1994년 12월, 캔비는 영화에서 연극으로 관심을 돌려 『뉴욕 타임스』의 일요일 연극 평론가로 임명되었다. 그는 자넷 매슬린에게 수석 영화 평론가 자리를 넘겨주었다. 캔비는 2000년 사망할 때까지 수석 연극 평론가로 활동했다.
3. Critical Style and Characteristics
빈센트 캔비의 비평 스타일은 그가 높이 평가한 작품과 감독들, 그리고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혹평을 통해 독특한 특징을 드러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영화 평론가 중 한 명으로 여겨졌지만, 그의 평가에는 다소 편향된 경향이 있어 만점을 주는 경우가 드물었다.
3.1. Praised Works and Directors
캔비는 여러 유명 영화감독들의 작품에 대해 지속적으로 높은 평가를 내렸다. 그가 높이 평가했던 감독들로는 스탠리 큐브릭, 우디 앨런, 마틴 스코세이지, 스파이크 리, 잉마르 베리만, 앨프리드 히치콕, 로버트 올트먼, 마이크 리, 제인 캠피온,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제임스 아이보리 등이 있다.
특히, 게리 시니즈 감독의 1992년 영화 『생쥐와 인간』과 샘 페킨파 감독의 대표작 『와일드 번치』(이전에 페킨파의 『어둠의 표적』은 혹평했음에도 불구하고)는 만점을 주며 극찬했다. 일본 영화 중에서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피안화』와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가족 게임』을 높이 평가했다.
3.2. Criticized Works and Controversies
캔비는 때로는 평론가들 사이에서 극찬받았거나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들에 대해서도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혹평했던 영화 중에는 현재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록키』, 『스타워즈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 『스타워즈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애프터 아워스』, 『블레이징 새들스』, 『크리스마스 이야기』, 『위트니스』, 『마스크』, 『내추럴』, 『레인 맨』, 『엑소시스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딜리버런스』, 『대부 2』, 『에이리언』, 그리고 『괴물』 등이 있다.
특히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영화 『천국의 문』에 대한 그의 극도로 부정적인 평론은 매우 유명하다.
4. Other Literary Works
빈센트 캔비는 영화 및 연극 비평 외에도 소설과 연극 작품을 집필했다. 그가 쓴 소설로는 1975년의 『Living Quarters』와 1979년의 『Unnatural Scenery』가 있다. 연극 작품으로는 1978년의 『End of the War』, 1981년의 『After All』, 그리고 미국 남북 전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 1984년의 『The Old Flag』가 있다.
5. Personal Life
빈센트 캔비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수년 동안 영국 작가 페넬로페 길리엇의 동반자였다. 길리엇은 1993년에 사망했다.
6. Death
빈센트 캔비는 2000년 10월 15일 뉴욕주 맨해튼의 한 병원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76세였다. 흥미롭게도 그의 사망으로부터 거의 3년 후, 밥 호프가 사망했을 때 캔비의 이름이 『뉴욕 타임스』 1면을 장식했다. 이는 캔비가 이미 수년 전에 밥 호프의 부고 기사 대부분을 작성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7. Legacy and Evaluation
빈센트 캔비는 미국 영화 및 연극 비평 분야에 지대한 유산을 남겼다. 그의 경력은 다큐멘터리 영화 『영화 사랑: 미국 영화 비평 이야기』에서 다루어졌으며, 이 영화에서 『더 네이션』의 스튜어트 클론스와 같은 현대 비평가들이 캔비의 영향력을 언급했다. 그는 천 편 이상의 영화를 평가하며 광범위한 비평 활동을 펼쳤고, 그만의 독특하고 때로는 논쟁적인 평가 스타일은 영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캔비는 당대의 주요 영화감독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후대의 영화 평론가들에게도 중요한 비평적 관점과 기준을 제시하며 비평가로서 확고한 위상을 정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