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클라우지우 이브라잉 바스 레아우는 1964년 4월 4일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주 바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재능을 보였으며, 유소년 시기에는 바제, 구아라니, 그리고 인테르나시오날의 유소년팀에서 뛰며 성장했다.
2. 클럽 경력
브랑코는 현역 시절 브라질과 유럽 등 여러 클럽에서 활약하며 풍부한 경력을 쌓았다. 그의 클럽 경력은 중요한 업적과 함께 몇몇 어려움을 동반하기도 했다.
2.1. 클럽 활동 및 주요 업적
브랑코는 SC 인테르나시오날에서 1980년부터 1981년까지 활약하며 15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했고, 1981년 캄페오나투 가우슈 우승을 경험했다.
이후 플루미넨시로 이적하여 1981년부터 1986년까지 그리고 1994년과 1998년에 다시 팀에 합류하며 총 46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었다. 플루미넨시 소속으로는 1984년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에 A 우승과 1983, 1984, 1985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는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브레시아 칼초로 임대되어 50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했다.
포르투갈의 포르투에서는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뛰면서 60경기에 출전해 7골을 기록했으며, 1989-90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과 1990년 수페르타사 칸디두 드 올리베이라 우승을 달성했다.
이탈리아로 돌아와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제노아에서 71경기에 출전해 8골을 넣으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1990년 11월 25일 삼프도리아와의 제노바 더비에서는 직접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넣어 팀이 13년 동안 이어온 더비 무승 기록을 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1-92 시즌 UEFA컵에서는 리버풀과의 8강 1차전에서 직접 프리킥 골을 넣는 등 팀의 준결승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브라질로 돌아와 그레미우에서 1992년부터 1994년까지 6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으며, 1993년 캄페오나투 가우슈에서 우승했다. 이후 플라멩구 (1995년, 35경기 9골), 코린치앙스 (1994년 혹은 1995년, 32경기 5골), 그리고 잉글랜드의 미들즈브러 (1996년, 9경기 0골), 미국의 메트로스타스 (1997년, 11경기 1골), 모지 미링 (1997년), 마지막으로 플루미넨시 (1998년) 등 다양한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2. 도전과 주요 사건
선수 경력 말년, 특히 잉글랜드와 미국에서의 활동은 과체중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미들즈브러 시절에는 풋볼 리그 컵 2라운드 헤리퍼드와의 경기에서 홈 1차전과 원정 2차전에서 각각 한 골씩 총 두 골을 기록했으나,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단 9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고, 결국 1년도 채 되지 않아 1996년 크리스마스 무렵 자유계약으로 팀을 떠나게 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
브랑코는 1985년 4월부터 1995년 2월까지 약 10년간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72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으며, 세 차례의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중요한 순간들을 만들었다.
3.1. 국가대표 데뷔 및 초기 대회
브랑코는 1985년 4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이후 빠르게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1986년 FIFA 월드컵 멕시코 대회와 1990년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대회에 연이어 참가하며 국제 대회 경험을 쌓았다.
3.2. FIFA 월드컵 출전 기록
브랑코는 총 세 번의 FIFA 월드컵에 출전하여 12경기를 소화했다.
-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대회: 브랑코는 이 대회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8강 진출에 기여했다. 특히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는 귀중한 페널티킥을 얻어냈으나, 팀 동료 지쿠가 이를 실축했고, 결국 승부차기 끝에 브라질은 패배하며 탈락했다.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대회: 이 대회 16강에서 아르헨티나를 만났다. 이 경기에서 아르헨티나 측이 브라질 선수들의 컨디션 난조를 유도하기 위해 스포츠 드링크에 이물질을 섞었다는 '오염된 음료수' 논란이 불거졌다. 이로 인해 브라질 선수들이 경기 중 체력 저하를 겪었고, 결국 아르헨티나에 패하며 16강에서 탈락했다.
- 1994 FIFA 월드컵 미국 대회: 이 대회에서 브랑코는 초반 4경기 동안 주전 자리를 레오나르두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레오나르두가 미국과의 16강전에서 탭 라모스에게 고의적인 팔꿈치 가격을 하여 레드카드를 받고 남은 대회 출장 정지 처분을 받자, 브랑코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그는 약 35 m 거리에서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성공시켜 팀을 준결승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는 연장전까지 승부가 나지 않아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브랑코는 자신의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브라질의 통산 4번째 FIFA 월드컵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3.3. 코파 아메리카 및 기타 국제 경기
브랑코는 코파 아메리카에도 두 차례 출전했다. 그는 1989 코파 아메리카에서 브라질이 우승하는 데 기여했으며, 1991년 대회에도 참가했다.
다음은 브랑코의 브라질 국가대표팀 경기 출전 기록이다.
연도 | 출전 | 득점 |
---|---|---|
1985 | 5 | 0 |
1986 | 9 | 0 |
1987 | 0 | 0 |
1988 | 0 | 0 |
1989 | 17 | 1 |
1990 | 7 | 0 |
1991 | 9 | 3 |
1992 | 3 | 0 |
1993 | 14 | 3 |
1994 | 7 | 2 |
1995 | 1 | 0 |
총계 | 72 | 9 |
4. 감독 경력
선수 은퇴 후 브랑코는 축구 지도자 및 행정가로 변신하여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4.1. 유소년 육성 역할
2006년부터 브랑코는 브라질 유소년 대표팀의 총괄 매니저를 역임하며 젊은 선수들의 육성에 주력했다. 2007년부터 2009년 12월까지는 친정팀인 플루미넨시의 유소년팀 총괄 매니저로 일했으며, 브라질 축구 연맹 (CBF) 유소년 대표팀의 기술 고문으로서도 젊은 축구 인재 발굴 및 성장에 기여했다.
4.2. 클럽 감독 활동
유소년 육성 외에도 브랑코는 몇몇 클럽팀의 감독을 맡아 성인팀을 이끌었다. 그는 2011년부터 2012년까지 피게이렌시의 감독을 역임했으며, 2013년에는 소브라지뉴와 과라니의 감독직을 맡기도 했다.
5. 플레이 스타일 및 특징
브랑코는 주로 레프트백 포지션에서 활약했으며,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강력한 수비력과 더불어 공격적인 오버래핑, 그리고 특히 정교한 프리킥 능력이 돋보였다. 그는 프리킥 전문가로서 직접 프리킥을 통해 득점을 올리거나 동료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제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현대 축구의 풀백에게 요구되는 공격 가담 능력을 일찌감치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브라질의 전설적인 레프트백인 로베르투 카를루스는 브랑코를 역대 최고의 풀백 중 한 명으로 꼽으며, 자신이 브랑코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6. 수상 경력
브랑코는 선수 경력 동안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다수의 중요한 우승 타이틀을 획득했다.
6.1. 클럽 수상
- 인테르나시오날
- 캄페오나투 가우슈: 1981
- 플루미넨시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에 A: 1984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1983, 1984, 1985
- 포르투
- 프리메이라 리가: 1989-90
- 수페르타사 칸디두 드 올리베이라: 1990
- 그레미우
- 캄페오나투 가우슈: 1993
6.2. 국가대표팀 수상
- 브라질
- FIFA 월드컵: 1994
- 코파 아메리카: 1989
7. 유산 및 평가
브랑코는 1990년대 브라질 축구를 대표하는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기억되며, 특히 1994 FIFA 월드컵 우승의 주역으로서 브라질 축구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정확하고 강력한 프리킥은 많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7.1. 후대에 미친 영향
브랑코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후배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의 후계자로 평가받는 또 다른 프리킥 전문가인 로베르투 카를루스는 브랑코를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꼽으며, 자신이 브랑코의 플레이를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이는 브랑코가 단순히 뛰어난 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브라질 축구의 한 시대를 이끌며 다음 세대에 영감을 준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