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아마추어 경력
브라이언 벌링턴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1.1. 고등학교 시절
벌링턴은 매디슨 통합 고등학교 4학년 시절 15승 무패를 기록했으며, 1999년 인디애나 고등학교 체육 협회 야구 주 챔피언 결정전에서 1안타 완투승을 거두었다. 그는 1999년 인디애나주 최고의 고등학교 야구 선수에게 주어지는 '미스터 베이스볼'로 선정되었다. 벌링턴은 1999년 MLB 드래프트 37라운드(전체 1111위)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계약하지 않고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그는 볼 스테이트 대학교, 퍼듀 대학교, 에반스빌 대학교, 인디애나 대학교로부터 입학 제안을 받았다.
1.2. 대학 시절
벌링턴은 부모님과 누나를 따라 볼 스테이트 대학교에 진학했다.
- 2000년 (1학년)**: 신입생 시즌, 팀의 주전 투수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금요일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9승 4패, 평균자책점 3.83을 기록했으며, 미드-아메리칸 컨퍼런스 시즌 최다인 99 탈삼진을 기록했다. 그는 'MAC 올해의 신입생'으로 선정되었고, 첫 번째 올-컨퍼런스 팀에 이름을 올렸다.
- 2001년 (2학년)**: 벌링턴이 로테이션의 선두를 맡으면서 볼 스테이트 카디널스는 2001년 MAC에서 21승 5패를 기록하며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벌링턴은 정규 시즌 9승 3패, 컨퍼런스 최고 평균자책점 3.01을 기록했으며, 만장일치로 'MAC 올해의 투수'로 선정되며 카디널스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았다. 컨퍼런스 토너먼트 개막전에서 마이애미 대학교를 상대로 선발 등판했으나, 1회에 강습 타구에 얼굴을 맞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카디널스는 13-5로 패했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벌링턴은 3일 뒤 준결승전에서 켄트 스테이트를 상대로 등판했지만, 6이닝 동안 10안타 7 자책점을 허용하며 패배했고, 카디널스는 토너먼트에서 탈락했다. 시즌을 9승 4패, 3.50 평균자책점으로 마쳤다. 특히 119 탈삼진으로 다시 한번 컨퍼런스를 이끌며 볼 스테이트 역대 단일 시즌 탈삼진 기록을 경신했다. 그 여름에는 미국 국가대표팀에 합류하여 뛰었다.
- 2002년 (3학년)**: 주니어 시즌을 앞두고 벌링턴은 미국 최고의 대학 투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시즌 세 번째 등판에서 당시 17위이자 전년도 전국 챔피언인 마이애미 허리케인스를 상대로 8이닝을 호투하며 승리했다. 5월 3일 이스턴 미시간을 상대로 개인 최고 기록인 15 탈삼진을 잡아내며 밥 오윈친코를 넘어 MAC 역사상 최다 커리어 탈삼진 기록을 세웠다. 그는 8이닝 동안 5안타 1실점만 허용하며 시즌 9승을 달성했다. 정규 시즌을 10승 2패, 컨퍼런스 최고 평균자책점 2.11로 마쳤다. 벌링턴과 카디널스는 컨퍼런스 토너먼트 4번 시드를 받았고 개막전에서 켄트 스테이트를 만났다. 2년 연속으로 켄트 스테이트는 토너먼트에서 벌링턴을 상대로 1회에 6점을 뽑아내며 13-4로 승리했다. 카디널스는 결승까지 진출하여 3일 뒤 다시 켄트 스테이트를 만났다. 첫 경기 패배를 피하기 위해 리치 말로니 감독은 벌링턴을 불펜에서 구원 등판시켰다. 벌링턴은 4회에 등판하여 6이닝 동안 5자책점을 허용했지만, 타선의 16점 지원 덕분에 개인 최고 기록인 시즌 11승을 올렸다。 그는 그 해 11승 3패, 컨퍼런스 최고 평균자책점 2.86을 기록했으며, 자신의 단일 시즌 탈삼진 기록을 139개로 경신했다. 2002년 시즌에는 MAC에서 승리, 평균자책점, 탈삼진, 투구 이닝에서 선두를 달렸다. 8번의 선발 등판에서 두 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했다. 그는 다시 한번 'MAC 올해의 투수'로 선정되며 2년 연속으로 이 상을 받은 최초의 선수가 되었고, 3년 연속으로 첫 번째 올-컨퍼런스 팀에 이름을 올렸다. 전국적으로는 만장일치로 퍼스트-팀 올-아메리칸에 선정되었고, 딕 하우저 트로피 최종 후보에 올랐다. 전체 1순위로 지명된 후, 그는 4학년 시즌을 포기하고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계약했다. 그는 볼 스테이트 대학교를 떠날 때 학교 역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투수였다. 그는 여전히 학교 기록인 통산 최다승(29승),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139개), 통산 최다 탈삼진(357개)을 보유하고 있으며, 단일 시즌 최다승(11승)에서는 타자와 타이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그는 미드-아메리칸 컨퍼런스 통산 및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3년 연속으로 MAC 퍼스트-팀 올-컨퍼런스에 선정된 12명 중 한 명이다. 2010년 볼 스테이트 데일리 뉴스는 벌링턴을 1990년 이후 학교 출신 세 번째 최고의 운동선수로 선정했다.
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경력
브라이언 벌링턴은 메이저리그 여러 구단에서 활동했으나,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2.1. 피츠버그 파이리츠
벌링턴은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의해 2002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되었다. 이 지명은 당시 파이리츠가 드래프트의 다른 상위권 선수들보다 벌링턴을 계약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계약 가능성'을 고려한 선택으로 널리 알려졌다. 당시 단장 데이브 리틀필드는 "어디로 갈지 많은 논의가 있었다. 교묘하게 행동하려던 상황은 아니었다. 그 해는 특정 선수가 다른 누구보다 뛰어난 해가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느꼈다. 벌링턴을 지명한 것에 대해 매우 편안하고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대학 투수이기 때문에 고등학교 드래프트 선수보다 조금 더 빨리 올라올 것이다... 몇 년 안에 그를 보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벌링턴은 주요 스포츠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선정된 미드-아메리칸 컨퍼런스 출신 최초의 선수였다. 2002년 10월 30일, 벌링턴은 파이리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했는데, 여기에는 400.00 만 USD의 계약금이 포함되어 있었다.
- 2003년**: 프로 데뷔 전부터 벌링턴은 베이스볼 아메리카로부터 2003년 시즌을 앞두고 야구에서 52번째로 뛰어난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파이리츠는 그를 클래스-A 산하 히코리 크로다즈에 배정했고, 그는 8경기(선발 7경기)에 등판하여 5승 1패, 1.39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후 어드밴스드-A 린치버그 힐캣츠로 승격되었다. 린치버그에서는 17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8승 4패, 3.05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벌링턴은 두 팀을 합쳐 13승 5패, 2.52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 2004년**: 2004년 시즌을 앞두고 베이스볼 아메리카로부터 야구에서 97번째로 뛰어난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파이리츠의 더블-A 산하 알투나 커브에 배정되어 첫 17번의 선발 등판에서 6승 5패, 3.89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이스턴 리그 올스타 게임에 선정되었다. 벌링턴은 2004년 올스타 퓨처스 게임에 미국 대표팀으로도 선정되어 6회 무실점 투구를 선보였다. 시즌 나머지 기간 동안 6승 2패를 기록한 후 휴식에 들어갔다. 시즌 총 26번의 선발 등판에서 12승 7패, 4.10 평균자책점으로 마쳤다.
- 2005년-2006년**: 2005년 시즌 초, 벌링턴은 파이리츠의 트리플-A 산하 인디애나폴리스 인디언스로 승격되었다. 그는 시즌을 오른 어깨 건염으로 인한 부상자 명단에서 시작했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18번 선발 등판하여 9승 5패, 3.38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9월 16일, 파이리츠는 벌링턴을 호세 바티스타, 맷 캡스, 톰 고젤러니, 로니 파울리노와 함께 메이저리그로 승격시켰다. 9월 18일, 그는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는데, 3회 2사 상황에서 선발 투수 올리버 페레즈를 구원 등판했다. 그는 1.1이닝 동안 1안타, 1볼넷, 1 몸에 맞는 볼, 2 자책점을 허용했다. 벌링턴은 그 시즌 나머지 기간 동안 더 이상 등판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팔꿈치 수술을 받을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10월 17일, 벌링턴은 오른쪽 팔꿈치 관절와순 손상을 치료하는 수술을 받았다. 당시 단장 데이브 리틀필드는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손상이 조금 더 있었다"고 말했다. 이 수술로 인해 그는 2006년 시즌 전체를 결장했다.
- 2007년**: 벌링턴은 2007년 시즌을 트리플-A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보냈다. 그는 첫 5번의 선발 등판에서 4승 0패, 1.17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뜨거운 시작을 보여주었고, 4월 '인디애나폴리스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다음 7번의 선발 등판에서는 5승 2패, 3.83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6월 10일, 벌링턴은 어깨 통증으로 1이닝만 투구한 후 경기를 떠났고,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그는 6월 25일에 다음 선발 등판을 가졌는데, 2.1이닝 동안 6자책점을 허용하며 부진했다. 벌링턴은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인터내셔널 리그에서 10승으로 리그 선두를 달렸고, 89이닝 동안 4.04 평균자책점, 49 탈삼진, 37 볼넷을 기록했다. 그는 트리플-A 올스타 게임에서 인터내셔널 리그의 선발 투수로 선정되었고, 2이닝 동안 2자책점을 허용했지만, 그의 팀이 1회에 4점을 내고 리드를 내주지 않으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그는 마이너리그 시즌을 마무리하기 위해 10번 더 선발 등판했는데, 1승 5패, 3.94 평균자책점으로 고전했다. 힘든 마무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디언스 올해의 재기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시즌을 11승 9패, 4.00 평균자책점으로 마쳤고, 팀 내에서 승리(11승), 선발 등판(26경기), 투구 이닝(150.2이닝)에서 선두를 달렸다. 파이리츠는 9월 3일 9월 확장 로스터의 일환으로 벌링턴을 콜업했다. 그는 5경기(선발 3경기)에 등판하여 0승 3패, 5.29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 2008년**: 벌링턴은 파이리츠의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어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가했다. 3월 17일, 그는 트리플-A 인디애나폴리스로 이적되었다. 그는 첫 9번의 선발 등판에서 1승 6패, 6.95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좋지 않은 시작을 보였다. 그러나 다음 두 경기에서 2승 0패, 1.38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반등했고, '인터내셔널 리그 주간 투수'로 선정되었다. 5월 29일, 파이리츠는 그를 메이저리그로 다시 콜업했다. 그러나 그는 메이저리그 경기에 등판하지 못했다. 6월 13일, 벌링턴은 인디애나폴리스로 다시 이적되었다. 7월 3일, 파이리츠는 크리스 더피를 40인 로스터에 넣기 위해 벌링턴을 지명 할당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벌링턴은 "파이리츠가 저에게 해준 모든 것에 감사하지만, 이 시점에서 다른 팀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벌링턴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15번 선발 등판하여 4승 6패, 5.52 평균자책점으로 시즌 전반기를 마쳤다.

2.2.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08년 7월 10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벌링턴을 웨이버 공시를 통해 영입하고 그를 트리플-A 산하 버팔로 바이슨스로 배정했다. 그는 버팔로에서 10경기(선발 8경기)에 등판하여 1승 3패, 4.75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그의 첫 프로페셔널 세이브를 기록했다. 9월 8일, 벌링턴은 선발 로테이션의 부상으로 투수가 부족해진 인디언스로 콜업되었다. 벌링턴은 인디언스에서 3경기(선발 2경기)에 등판하여 0승 2패, 4.91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직후, 그는 지명 할당되었고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웨이버 공시를 통해 그를 영입했다.
2.3. 토론토 블루제이스
2008년 10월 24일,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웨이버 공시를 통해 벌링턴을 영입했다.
- 2009년**: 벌링턴은 블루제이스의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가했고, 3월 3일, 블루제이스는 그를 트리플-A 산하 라스베이거스 51스로 이적시켰다. 스프링 트레이닝 후, 그는 버팔로에서의 경험에 대해 "투수 코치 스콧 라딘스키가 제 팔 각도를 낮추도록 했고, 대학 시절의 느낌으로 돌아와 더 편안함을 느끼고 공에 더 많은 움직임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해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도 그 느낌을 이어갔고, 공이 손에서 빠져나오는 방식이 마음에 듭니다"라고 말했다. 벌링턴은 51스에서 롱 릴리버로 불펜으로 이동하여 스팟 스타터 역할도 수행했다. 그는 4월에 라스베이거스에서 4번 구원 등판하여 1승 1패, 1.86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4월 23일, B. J. 라이언이 어깨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자 토론토가 벌링턴의 계약을 매입하여 콜업했다. 그는 블루제이스에서 4번 등판했는데, 그 중 3번은 무실점 투구였다. 4월 30일, 벌링턴은 라스베이거스로 다시 내려갔고, 5월 6일에는 아웃라이트되었다. 그는 5월과 6월에 51스에서 24번의 구원 등판을 더 한 후,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그는 시즌 나머지 기간 동안 부상자 명단에 머물렀고, 라스베이거스에서 28번의 구원 등판에서 3승 1패, 7 홀드, 3 세이브, 3.52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시즌 후, 블루제이스는 그와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11월 24일,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그와 2010년 시즌을 위한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했다.
2.4. 캔자스시티 로열스
브라이언 벌링턴은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후 메이저리그 첫 승을 기록하며 재기를 노렸다.
- 2010년**: 벌링턴은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스프링 트레이닝 캠프에 합류했으며, 이곳에서 그는 원래의 선발 투수 역할로 복귀했다. 그는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5번 선발 등판하여 9이닝 동안 5실점을 기록했다. 3월 28일, 벌링턴은 마이너리그 캠프로 재배정되었고, 시즌을 트리플-A 산하 오마하 로열스에서 시작했다. 그는 오마하의 선발 로테이션에서 시즌을 시작했으나, 앤서니 레루를 위해 한 번의 선발 등판 후 불펜으로 이동했다. 그는 두 번의 구원 등판 후, 브루스 첸이 메이저리그로 승격되자 4월 말 다시 선발 로테이션으로 복귀했다. 그는 오마하에서 총 7경기(선발 5경기)에 등판하여 2승 0패, 1.71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후 캔자스시티로 콜업되었다.
5월 16일, 로열스는 벌링턴의 계약을 매입하여 불펜 투수로 콜업했다. 그의 캔자스시티에서의 첫 번째 stint는 짧았는데, 3번의 등판 후 5월 25일 다시 오마하로 내려갔다. 벌링턴은 오마하에서 두 번의 무실점 구원 등판을 한 후 6월 초 다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그는 강등 후 오마하에서 13경기(선발 10경기)에 등판하여 6승 2패, 3.60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총체적으로, 벌링턴은 트리플-A 시즌을 20경기(선발 15경기)에서 8승 2패, 2.82 평균자책점으로 마쳤다. 그는 11번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으며, 마지막 4번의 선발 등판도 모두 퀄리티 스타트였다. 그의 2.82 평균자책점과 1.12 WHIP는 태평양 연안 리그에서 선두를 차지했을 것이지만, 자격을 갖추기에는 13.1이닝이 부족했다. 그는 '오마하 올해의 투수'로 선정되었다.
7월 28일, 로열스는 벌링턴을 다시 불펜 투수로 콜업했다. 그는 그날 오후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에 등판하여 7회에 나와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는 8월 2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에 구원 등판하여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8월 6일, 로열스는 벌링턴이 부진한 브라이언 배니스터를 대신하여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할 것이며, 8월 10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를 상대로 시즌 첫 선발 등판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벌링턴은 6이닝 동안 3실점을 허용하고 볼넷 1개와 탈삼진 4개를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네드 요스트 감독은 벌링턴의 투구에 대해 "그는 정말 열심히 던졌고, 우리에게 승리할 기회를 주었다. 나는 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것이다. 우리는 브라이언 배니스터의 다음 선발 등판을 미루고 그에게 계속 훈련할 기회를 주면서 벌링턴에게 기회를 주었다"고 말했다. 벌링턴은 8월 15일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다음 선발 등판에서 8이닝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그는 단 2안타만 허용하며 그의 처음이자 유일한 메이저리그 승리를 기록했다.

벌링턴은 경기 후 "정말 좋은 날이다. 정말 재미있었고,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정말 즐거웠다. 가끔 트리플-A에서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저는 29살이고, 트리플-A에서 4~5년 더 머물고 싶지 않은 시점이다. 이 일을 계속하려면 지금 당장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몇 번 짧은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었지만, 제가 스스로 여기 있을 자격이 있고 이 수준에서 던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덧붙였다.
벌링턴은 그 시점 이후 3번 더 선발 등판했으나, 0승 2패, 10.67 평균자책점으로 고전했다. 두 명의 정규 선발 투수가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하자 벌링턴은 9월에 롱 릴리버로 불펜으로 이동했다. 그는 9월에 불펜에서 3번 등판하여 7.1이닝 동안 5실점을 허용했다. 그는 캔자스시티에서 13경기(선발 5경기)에서 1승 4패, 6.12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11월 24일, 로열스는 벌링턴을 무조건적인 방출 웨이버 공시하여 일본 센트럴 리그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계약할 수 있도록 했다. 몇 년 후, 벌링턴은 그의 유일한 메이저리그 승리에 대해 "8회 후에 마운드에서 내려와 9회를 보기 위해 터널로 잠시 들어갔던 것이 기억난다. 다시는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분명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회고했다.
3. 일본 프로 야구 경력
메이저리그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본 프로 야구 무대로 진출한 브라이언 벌링턴은 이곳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전성기를 맞았다.
3.1. 히로시마 도요 카프
벌링턴은 1년 계약으로 65.00 만 USD를 받았으며, 2년차 팀 옵션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스프링 캠프에 합류했다. 일본으로 오기로 결정한 이유를 묻자, 그는 "지난 몇 년간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하고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부진하거나 부상당하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이너리그 선수로서 많은 이동을 해야 했고, 때로는 자주 이사해야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한 곳에 머무르며 야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작년 시즌 동안 여러 NPB 구단에서 저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것이 가족이 올해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히로시마에서 제안을 받았을 때 바로 수락했습니다. 제 아내가 이 결정을 지지합니다"라고 말했다.

- 2011년**: 4월 첫 3번의 선발 등판에서 3승 0패, 1.96 평균자책점, 1 완투를 기록하며 일본 경력을 시작했고, 4월 '닛폰 생명 월간 MVP' 센트럴 리그 투수 부문을 수상했다. 전반기에는 9승 4패, 2.06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2011 NPB 올스타 시리즈에 선정되었다. 올스타전 3차전에서 2이닝 동안 2안타(오카다 다카히로에게 솔로 홈런 1개 포함)를 허용하고 탈삼진 1개를 기록했다. 카프에서의 첫 시즌에 30번 선발 등판하여 13승 11패, 2.42 평균자책점, 204.1이닝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그의 2.42 평균자책점은 센트럴 리그의 자격 투수 중 6번째로 낮은 평균자책점이었다. 그는 여러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고, 경력 처음으로 200이닝을 넘기며 그의 경력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일본에서의 첫 시즌에 대해 벌링턴은 "카프에 남고 싶습니다. 팀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저도 카프가 필요합니다. 일본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제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했다. 히로시마는 비시즌에 그와 1년 계약으로 174.43 만 USD에 재계약했다.
- 2012년**: 벌링턴은 팀의 2선발로 캠프를 시작했다. 그의 전반기는 기복이 있었는데, 4번의 두 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했지만, 5월 중순부터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5.55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5승 9패, 4.04 평균자책점이었다. 그러나 벌링턴은 후반기에 더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며, 브레이크 이후 8번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고 총 11번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후반기에는 2승 5패, 2.15 평균자책점으로 마쳤고, 총 2012년 시즌 7승 14패, 3.23 평균자책점, 137 탈삼진, 175.2이닝을 기록했다. 137 탈삼진은 이전 시즌보다 1개 많은 개인 최고 기록이었다. 그의 승패 기록은 득점 지원 부족으로 인해 좋지 않았는데, 19번의 퀄리티 스타트 중 13번에서 노 디시전 또는 패배를 기록했다. 12월 11일, 카프는 벌링턴과 연간 약 125.00 만 USD에 인센티브를 포함한 2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 계약에는 50.00 만 USD의 계약금이 포함되어 있었다.
- 2013년**: 벌링턴은 마에다 겐타에 이어 다시 한번 2선발로 캠프에 들어갔다. 3월 22일, 카프는 마에다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출전으로 인해 추가 휴식이 필요했으므로, 벌링턴이 개막전 선발을 맡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4월 29일, 벌링턴은 한신 타이거스 타자 아라이 료타의 뒤로 투구하며 미국에서 뉴스를 장식했다. 벌링턴이 와인드업을 시작하는 동안, 타석에 서 있던 아라이는 벌링턴에게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심판은 투구가 시작되는 순간 타임을 선언했다. 벌링턴은 전반기를 17번 선발 등판하여 4승 7패, 2.70 평균자책점, 0.97 WHIP로 마쳤다.
벌링턴은 후반기에 좋지 않은 시작을 보였다. 첫 두 경기에서 11실점을 허용했다. 8월에는 4.30 평균자책점에도 불구하고 3승 0패를 기록하며 버텼다. 8월 31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왼쪽 무릎에 타구를 맞은 후 2회에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는 일주일 뒤 다음 선발 등판을 가질 수 있었고,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그는 9월에도 뜨거운 투구를 이어갔고, 카프가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는 동안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스를 상대로 다음 두 번의 선발 등판에서 모두 승리했다. 9월 14일 자이언츠전 승리는 카프에서 그의 30번째 승리였고, 네이트 민치를 넘어 외국인 투수 통산 최다승 기록을 경신했다.
9월 25일, 벌링턴은 주니치 드래곤즈를 상대로 카프가 23년 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하려 할 때 선발 등판했다. 벌링턴은 7이닝 무실점, 4안타만 허용하며 호투했고, 전 마이너리그 팀 동료인 브래드 엘드레드가 8회 초 2점 홈런으로 벌링턴에게 승리를 안겨주며 팀의 승리를 도왔다.
벌링턴은 후반기에 11번 선발 등판하여 7승 2패, 4.25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는 9월에 4승 0패, 1.00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9월 '닛폰 생명 월간 MVP' 센트럴 리그 투수 부문을 수상했다. 그는 카프 역사상 첫 번째 외국인 선수이자 센트럴 리그 역사상 네 번째로 월간 MVP를 두 번 수상한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 그는 시즌을 11승 9패, 3.23 평균자책점, 1.13 WHIP, 117 탈삼진, 172.2이닝으로 마쳤다.
10월 13일, 벌링턴은 한신 타이거스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2차전 선발 투수로 나섰다. 그는 5이닝 동안 1안타만 허용했고, 1회 말 니시오카 츠요시에게 선두 타자 홈런 한 개를 허용했다. 벌링턴은 승리 투수가 되었고, 카프는 파이널 스테이지로 진출했다.
- 2014년**: 노무라 겐지로 감독의 비시즌 부진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벌링턴은 카프에서의 4번째 시즌을 훌륭하게 시작했다. 처음 11번의 선발 등판에서 9번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7승 4패, 2.93 평균자책점, 54 탈삼진 12 볼넷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상당히 나빠졌는데, 6월과 8월 모두 6점대 이상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8월 20일, 히로시마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를 상대로 3이닝 동안 7자책점을 허용한 후 벌링턴을 10일 휴식 명단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11일 뒤인 8월 31일 주니치 드래곤즈를 상대로 다음 선발 등판을 가졌지만, 팔 뻣뻣함을 호소하며 5회에 교체되었다. 벌링턴은 다음날 척골 신경염, 즉 팔꿈치 신경염 진단을 받았고, 시즌 나머지 기간 동안 출장하지 못했다. 그는 시즌을 9승 8패, 4.58 평균자책점, 131.2이닝으로 마쳤다.
히로시마는 비시즌에 그와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벌링턴은 오릭스 버펄로스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로부터 관심을 받았다. 12월 6일, 벌링턴은 오릭스와 다음 시즌을 위한 1.50 억 JPY(약 120.00 만 USD)에 1년 계약을 체결했다.
3.2. 오릭스 버펄로스
벌링턴은 2014년 12월 6일 오릭스 버펄로스에 입단한다고 발표되었다. 그는 캠프 시작 전인 1월 29일, 토니 블랑코와 함께 입단 기자회견을 가졌다.
- 2015년**: 2015년 4월 19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경기에서 2회 초 모리 토모야에게 머리 사구를 던져 위험구로 퇴장당했다. 하지만 22일 지바 롯데 마린즈와의 경기에서 중2일 만에 선발 등판하여 이적 후 첫 승을 거두었다. 4월 2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는 4년 만에 완봉승을 거두는 등 시즌 초반에는 선발 로테이션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두 차례의 부상으로 인해 5승에 그쳤고, 12월 2일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며 팀을 떠났다.
4. 선수 생활 말년 및 은퇴
브라이언 벌링턴은 일본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마지막 시즌을 보낸 후 은퇴를 선언했다.
4.1. 마지막 시즌 및 은퇴
2016년, 벌링턴은 미국으로 돌아와 캔자스시티 로열스 산하 트리플-A 팀인 오마하 스톰체이서스에서 뛰었다. 그러나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5. 투구 스타일 및 특징
벌링턴은 평균 구속 약 141 km/h, 최고 구속 151 km/h의 직구 (포심, 투심, 커터)를 던졌다. 또한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능숙하게 구사했다. 마이너리그 통산 볼넷 허용률이 2.68로 안정적인 제구력을 자랑했으며, 센트럴 리그의 스카우트들은 그를 땅볼 유도형 투수로 평가했다. 팀 사정에 따라 중4일 등판을 강요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6. 개인적인 삶
브라이언 벌링턴은 2005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딸 한 명과 쌍둥이 아들 두 명을 두고 있다. 일본 프로 야구로 진출을 결심한 배경에 대해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는 점 외에도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면서 그때마다 이사를 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도 계약 제안이 있어 잔류할 수도 있었지만,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7. 유산 및 은퇴 후 활동
은퇴 후 브라이언 벌링턴은 야구계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7.1. 밀워키 브루어스 국제 스카우트
2017년, 벌링턴은 밀워키 브루어스의 국제 스카우트로 취임했다. 그는 현재 NPB 경기와 국제 경기를 시찰하기 위해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를 방문하며, 때때로 일반 관중들 사이에서 목격되기도 한다.
7.2. 명예의 전당 헌액
2020년, 브라이언 벌링턴은 그의 모교인 볼 스테이트 대학교 시절의 공로를 인정받아 미드-아메리칸 컨퍼런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명예의 전당의 일원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8. 통산 기록
연도 | 소속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4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회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4구 | 몸맞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2005 | PIT | 1 | 0 | 0 | 0 | 0 | 0 | 0 | 0 | 0 | ---- | 7 | 1.1 | 1 | 0 | 1 | 0 | 1 | 1 | 0 | 0 | 2 | 2 | 13.50 | 1.50 |
2007 | PIT | 5 | 3 | 0 | 0 | 0 | 0 | 3 | 0 | 0 | .000 | 76 | 17.0 | 24 | 3 | 5 | 0 | 0 | 7 | 1 | 0 | 11 | 10 | 5.29 | 1.71 |
2008 | CLE | 3 | 2 | 0 | 0 | 0 | 0 | 2 | 0 | 0 | .000 | 60 | 14.2 | 15 | 4 | 2 | 0 | 1 | 12 | 1 | 0 | 9 | 8 | 4.91 | 1.16 |
2009 | TOR | 4 | 0 | 0 | 0 | 0 | 0 | 0 | 0 | 0 | ---- | 31 | 6.0 | 7 | 0 | 6 | 1 | 0 | 5 | 0 | 0 | 2 | 2 | 3.00 | 2.17 |
2010 | KC | 13 | 5 | 0 | 0 | 0 | 1 | 4 | 0 | 0 | .200 | 196 | 42.2 | 51 | 6 | 17 | 2 | 4 | 29 | 1 | 0 | 29 | 29 | 6.12 | 1.59 |
MLB 통산 | 5년 | 26 | 10 | 0 | 0 | 0 | 1 | 9 | 0 | 0 | .100 | 370 | 81.2 | 98 | 13 | 31 | 3 | 6 | 54 | 3 | 0 | 53 | 51 | 5.62 | 1.58 |
2011 | 히로시마 | 30 | 30 | 3 | 2 | 1 | 13 | 11 | 0 | 0 | .542 | 832 | 204.1 | 183 | 8 | 43 | 3 | 18 | 136 | 4 | 0 | 61 | 55 | 2.42 | 1.11 |
2012 | 히로시마 | 29 | 29 | 0 | 0 | 0 | 7 | 14 | 0 | 0 | .333 | 733 | 175.2 | 166 | 8 | 44 | 4 | 5 | 137 | 2 | 0 | 79 | 63 | 3.23 | 1.20 |
2013 | 히로시마 | 28 | 28 | 0 | 0 | 0 | 11 | 9 | 0 | 0 | .550 | 710 | 172.2 | 154 | 17 | 41 | 2 | 14 | 117 | 0 | 1 | 67 | 62 | 3.23 | 1.13 |
2014 | 히로시마 | 23 | 23 | 1 | 0 | 1 | 9 | 8 | 0 | 0 | .529 | 566 | 131.2 | 145 | 14 | 32 | 1 | 10 | 85 | 1 | 1 | 77 | 67 | 4.58 | 1.34 |
2015 | 오릭스 | 14 | 14 | 1 | 1 | 0 | 5 | 3 | 0 | 0 | .625 | 305 | 73.2 | 60 | 3 | 24 | 0 | 8 | 46 | 0 | 0 | 30 | 27 | 3.30 | 1.14 |
NPB 통산 | 5년 | 124 | 124 | 5 | 3 | 2 | 45 | 45 | 0 | 0 | .500 | 3146 | 758.0 | 708 | 50 | 184 | 10 | 55 | 521 | 7 | 2 | 314 | 274 | 3.25 | 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