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 및 아마추어 경력
브라이언 로버츠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야구 재능을 보였으며, 대학 야구에서 주목할 만한 기록을 세우며 프로 경력의 발판을 마련했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브라이언 마이클 로버츠는 1977년 10월 9일,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서 마이크와 낸시 로버츠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채플힐에서 성장했다. 5세 때 심방중격결손증을 치료하기 위해 개심술을 받았다. 그는 채플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2. 대학 야구 경력
고등학교 졸업 후 로버츠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 입학하여 NCAA 디비전 I 소속인 애틀랜틱 코스트 콘퍼런스 (ACC)의 노스캐롤라이나 타 힐스 야구팀에서 대학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인 마이크 로버츠가 타 힐스의 총감독이었다. 다른 디비전 I 야구 프로그램에서는 그에게 장학금을 제안하지 않았다.
1997년 신입생 시절, 로버츠는 타율 .427을 기록했으며, 102 안타, 24 2루타, 47 도루를 기록했다. 그의 타율은 ACC에서 두 번째로 높았다. 그는 전국 대학 야구 기자 협회 (NCBWA) 세컨드 팀과 '콜리지 베이스볼' 서드 팀에 선정되었다. 2학년 때는 타율 .353, 13 홈런, 49 타점, 21 2루타, 63 도루를 기록하며 그 해 대학 야구 선수 중 가장 많은 도루를 기록했다. 그는 NCBWA 퍼스트 팀, '더 스포팅 뉴스' 세컨드 팀, '콜리지 베이스볼'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고, 다섯 번째 타 힐스 선수로서 ACC 올해의 선수에 이름을 올렸으며, 퍼스트 팀 올아메리칸에도 선정되었다. 1998년에는 케이프 코드 야구 리그의 채텀 A's에서 대학 여름 야구 경기를 치렀다.
1998 시즌이 끝난 후 아버지 마이크 로버츠가 해고되자, 브라이언은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로 전학하여 사우스캐롤라이나 게임콕스 야구팀에서 대학 야구 경력을 이어갔다. 유격수로 출전한 로버츠는 '베이스볼 아메리카'로부터 최고의 수비 대학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는 사우스이스턴 콘퍼런스 (SEC)에서 타율 .353, 12 홈런, 36 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인 67개를 기록하며 학교 및 SEC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다시 한번 올아메리칸과 올-SEC 팀에 선정되었다.
2. 프로 경력
브라이언 로버츠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주요 선수로 성장했으며, 부상과 스테로이드 의혹을 겪은 후 뉴욕 양키스에서 짧은 기간을 보냈다.
2.1. 마이너 리그
로버츠는 1999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1라운드 전체 50순위로 지명되었다. 1999년 그는 클래스 A 사우스 애틀랜틱 리그의 델마바 쇼어버즈에서 4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40, 21 타점을 기록했다.
2000년에는 걸프 코스트 리그 오리올스에서 9경기를 뛰며 타율 .310, 1 홈런, 3 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클래스 A-어드밴스드 캐롤라이나 리그의 프레더릭 키스에서 4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01, 16 타점을 기록했다.
2001년에는 트리플-A 로체스터 레드 윙스와 더블-A 보위 베이삭스에서 시즌 일부를 보냈으며, 66경기에서 합산 타율 .277, 2 홈런, 19 타점을 기록했다.
2.2. 볼티모어 오리올스
브라이언 로버츠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2.2.1. 메이저 리그 데뷔 및 초기 (2001-2005)
로버츠는 2001년 6월 14일,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유격수로 선발 출전하며 볼티모어 오리올스 소속으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이 경기에서 그는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2001년 시즌 동안 그는 볼티모어에서 7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53, 2 홈런, 17 타점을 기록했다.
2002년에는 오리올스에서 38경기를 뛰며 타율 .227, 1 홈런, 11 타점, 그리고 11번의 시도 중 9번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또한 그는 트리플-A 로체스터에서 78경기를 뛰며 타율 .275, 3 홈런, 30 타점을 기록했다.
2003년에는 오타와에서 44경기를 뛰며 타율 .315, 15 타점을 기록한 후, 5월 말 부상당한 2루수 제리 헤어스턴 주니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콜업되었다. 그는 아나하임 에인절스를 상대로 한 두 번째 경기(그리고 프로 경기 전체에서 첫 번째) 9회에 첫 메이저 리그 만루 홈런을 터뜨리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2003년 시즌을 112경기에서 타율 .270, 5 홈런, 41 타점으로 마쳤으며, 29번의 시도 중 23번의 도루를 성공시켜 아메리칸 리그 공동 8위를 기록했다.
2004년 오리올스 시즌은 스프링 트레이닝에 헤어스턴과 로버츠 모두 포함된 채 시작되었다. 그러나 헤어스턴이 스프링 트레이닝 중 손가락 골절 부상을 당하면서 로버츠가 개막전 선발 2루수로 나서게 되었다. 헤어스턴이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한 후, 그는 우익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로버츠는 계속 2루를 지켰다. 8월에 로버츠는 107타수에서 타율 .346, 10 2루타를 기록했다. 8월 둘째 주에는 6경기 동안 타율 .531을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이주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2004년을 159경기에서 타율 .273, 4 홈런, 53 타점, 175 안타로 마쳤다. 또한 50개의 2루타를 기록하여 아메리칸 리그 전체 1위, 메이저 리그 전체 3위를 차지했다. 그의 50개 2루타는 칼 립켄 주니어가 세운 오리올스 단일 시즌 최다 2루타 기록과 스위치 히터의 단일 시즌 아메리칸 리그 최다 2루타 기록을 깼다.
2005년 시즌 전, 헤어스턴은 오리올스 유망주들과 함께 새미 소사를 영입하기 위해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되면서 로버츠는 오리올스의 주전 2루수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2005년 로버츠는 시즌 첫 몇 달 동안 아메리칸 리그 타율 선두를 달렸다. 또한 파워에서도 증가를 보였다. 2005년 시즌 이전에는 통산 12개의 홈런만을 기록했지만, 6월 말에는 이미 그 기록을 넘어섰다. 팬들은 로버츠의 폭발적인 공격적인 전반기 활약에 보답하여 그를 200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의 선발 2루수로 선정했다. 이는 로버츠의 첫 올스타전 출전이었다. 그러나 시즌이 진행될수록 로버츠의 성적은 하락했고 오리올스도 순위에서 미끄러졌다.
2005년 9월 20일, 로버츠는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부바 크로스비와의 1루 충돌로 팔꿈치 탈구 부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남은 시즌을 결장하게 되었다.
2.2.2. 최전성기 및 기록 (2006-2009)

로버츠는 2005년 부상에서 회복하여 2006년 시즌에 강력한 활약을 펼쳤다. 그는 13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86, 10 홈런, 55 타점을 기록했으며, 85득점을 올렸다. 또한 43번의 시도 중 36번의 도루를 성공시켰고, 시즌 마지막 두 달 동안 7개의 홈런을 쳤다. 그는 5월 초에 왼쪽 사타구니 염좌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가 5월 24일에 복귀했다.
2007년 로버츠는 오리올스에서 150경기 이상을 뛰었다. 팀 동료 닉 마카키스와 함께 아메리칸 리그 최다 타수 10위 안에 들었으며, 타율 .290, 12 홈런, 57 타점, 출루율 .377을 기록하며 두 번째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그의 50개 도루는 개인 최고 기록이자 칼 크로퍼드와 함께 아메리칸 리그 최다 도루 타이 기록이었다. 로버츠는 또한 안타와 볼넷 부문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2008년 6월 24일, 로버츠는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7-5로 승리한 경기에서 5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이 중 세 번째 안타는 그의 통산 1,000번째 안타였다. 7월 28일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통산 250번째 2루타를 기록했다. 2008년 9월 21일, 로버츠는 구 양키 스타디움 역사상 마지막 아웃을 땅볼로 기록했다.
2009년 2월 20일, 오리올스와 로버츠는 4년 4000.00 만 USD 규모의 연장 계약에 합의했다. 이 계약으로 로버츠는 2013년 시즌까지 오리올스에 남게 되었다. 보스턴 레드삭스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의 부상으로 로버츠는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미국 대표팀 명단에 추가되었다. 로버츠는 4경기에서 타율 .438, 1 홈런, 2 타점, 1 도루를 기록했지만, 미국은 준결승에서 일본에 패했다.
8월 4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로버츠는 1회에 재로드 워시번으로부터 통산 300번째 2루타를 쳤다. 9월 15일에는 시즌 52번째 2루타를 치며 자신의 오리올스 프랜차이즈 기록을 깼다. 스펜서 포딘에 따르면, "이 두 차례 올스타는 트리스 스피커, 폴 와너, 스탠 뮤지얼이라는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과 함께 통산 세 번의 50개 2루타 시즌을 달성한 역대 네 명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9월 29일, 로버츠는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시즌 56번째 2루타를 치며 스위치 히터의 단일 시즌 최다 2루타 기록을 세웠다. 그의 56개 2루타는 2009년 메이저 리그 전체에서 가장 많았다. 10월 3일, 로버츠는 2009년 '가장 가치 있는 오리올스 선수'로 선정되었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트로피를 받았다.
2.2.3. 부상과 마지막 시즌 (2010-2013)

로버츠는 2010년 스프링 트레이닝 대부분을 허리 추간판 탈출증으로 결장했다. 그는 개막일에 맞춰 회복했지만, 시즌 시작 14타수 2안타(타율 .143)를 기록한 후 2루 도루 중 복부 염좌를 입어 4월 10일부터 15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7월 12일, 로버츠는 재활 경기를 시작하며 4월 10일 이후 처음으로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7월 23일, 로버츠는 4월 9일 이후 처음으로 오리올스 라인업에 복귀했다.
2010년 9월 27일, 로버츠는 좌절감에 야구 방망이로 자신의 머리를 때린 후 뇌진탕을 겪었다. 그는 2011년 5월 16일, 1루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가 뒷머리를 부딪히면서 두 번째 뇌진탕을 당했다. 그는 남은 시즌 동안 경기에 복귀하지 못했다.
시즌 초반 동안 로버츠는 계속해서 부상자 명단에 있었지만, 팀과 동행하며 덕아웃의 적극적인 일원으로 남았다. 5월 22일, 벅 쇼월터 감독은 로버츠가 더블-A 보위 베이삭스에서 재활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의 마지막 5번의 재활 경기는 트리플-A 노퍽 타이즈에서 치러졌다. 로버츠는 2012년 6월 12일 오리올스로 복귀하여 2루수로 선발 출전했고,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8-6 승리 중 4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7월 3일 사타구니 염좌로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재활 시도 후 7월 29일에 시즌을 마치는 엉덩이 수술을 선택하여 2013년 스프링 트레이닝에 건강하게 복귀하기를 희망했다.
2013년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로버츠는 2011년 뇌진탕으로 인한 뇌진탕후 증후군에서 벗어났다고 보고했다. 4월 4일, 오리올스의 시즌 세 번째 경기에서 로버츠는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6-3 승리 경기 9회에 2루 도루 중 오른쪽 무릎 뒤 힘줄이 파열되었다. 그는 15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으며, 회복에 3~4주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로버츠는 6월 30일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했다. 오리올스에서 77경기를 뛰며 타율 .249, 8 홈런, 39 타점을 기록했다.
2.2.4. 스테로이드 의혹 및 인정
2006년 9월 30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2006년 6월 6일 연방 수사 중 제이슨 그림슬리 전 구원 투수가 로버츠를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사용자라고 지목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로버츠가 연방 법원에 제출된 선서 진술서에서 이름이 가려진 다섯 명 중 한 명이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2006년 10월 3일, '워싱턴 포스트'는 샌프란시스코 연방 검사 케빈 라이언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보도에 "상당한 부정확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2007년 12월 20일, 그림슬리 수색 영장 진술서의 실제 이름이 공개되었다. 로버츠, 제이 기븐스, 앤디 페팃, 로저 클레멘스는 보고서에 실제로 지목되지 않았으며, 미겔 테하다는 암페타민에 대한 대화 때문에만 지목되었다. 로버츠는 지목된 다른 네 명의 선수와 함께 이 보도를 비난했다.
로버츠는 이후 조지 미첼의 '경기력 향상 약물 보고서'에 이름이 올랐다. 미첼 보고서 158페이지에 따르면, 로버츠는 2001년 시즌 말 동료 래리 빅비와 함께 데이비드 세귀의 집에 살았다. 빅비와 세귀는 정기적인 스테로이드 사용자였으며, 그들이 경기력 향상 약물을 사용하는 동안 로버츠가 함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은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빅비의 증언에 따르면, 로버츠는 2004년에 자신에게 2003년 "한두 번" 스테로이드를 주사했다고 말했다.
2007년 12월 17일, 로버츠는 단 한 번 스테로이드를 사용했음을 인정한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을 통해 그는 "2003년에 스테로이드를 한 번 주사했을 때, 저는 즉시 이것이 제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며 계속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 한 번의 사건 이전이나 이후에 스테로이드, 인간 성장 호르몬 또는 다른 어떤 경기력 향상 약물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 제 자신, 제 가족, 그리고 모든 팬들 앞에서 솔직히 말할 수 있습니다. 스테로이드나 어떤 경기력 향상 약물도 제가 야구 경기에서 그토록 열심히 이뤄낸 것에 아무런 영향을 미 미치지 않았습니다."라고 밝혔다.
로버츠는 미첼 위원회에 증언하여 자신을 보고서에 포함시킨 래리 빅비에 대해 악감정이 없다고 덧붙였다.
2.3. 뉴욕 양키스
로버츠는 2013년 시즌 후 처음으로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그는 뉴욕 양키스와 200.00 만 USD 규모의 1년 계약에 합의했으며, 인센티브를 포함하면 계약 가치가 460.00 만 USD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 2014년 8월 1일, 로버츠는 양키스에 의해 지명 할당되었고, 8월 9일에 방출되었다. 양키스에서 91경기에 출전한 로버츠는 타율 .237, 5 홈런, 21 타점, 7 도루를 기록했다.
3. 은퇴 및 은퇴 후 경력
프로 야구 선수로서의 오랜 경력을 마친 브라이언 로버츠는 새로운 분야에서 활약하며 야구계와의 연결고리를 이어갔다.
3.1. 은퇴
2014년 10월 17일, 로버츠는 프로 야구 선수로서의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더 이상 잘 플레이할 수 없다고 느낀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그의 은퇴 후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로버츠를 볼티모어 오리올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며 그의 오랜 헌신을 기렸다.
3.2. 방송 경력
2018년 시즌을 앞두고 로버츠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라디오 네트워크에 컬러 해설가로 합류하여 파트타임으로 활동하고 있다.
4. 개인 생활
2009년 1월, 브라이언 로버츠는 다이애나 치아페어와 결혼했다. 2013년 8월, 그들은 첫 아이인 잭스 아이삭을 얻었다.
5. 같이 보기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연간 2루타 리더 목록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통산 도루 리더 목록
- 미첼 보고서에 명시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 목록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연간 도루 리더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