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amateur career
베른하르트 콜은 1982년 1월 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그는 17세부터 19세까지 프로 선수가 되기 전 아마추어 팀에서 활동하면서 동시에 굴뚝 청소부로 일하기도 했다. 콜은 일찍이 사이클에서 두각을 나타내 2002년에는 23세 이하 오스트리아 전국 도로 사이클 선수권 대회 개인 도로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 에쉬본-프랑크푸르트 U23 대회에서도 1위를 기록하는 등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2003년에는 23세 이하 오스트리아 국내 선수권 대회 개인 도로 경기에서 2위를, 튀링겐 루프 U23 대회 종합 2위를 기록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는 라보뱅크의 아마추어 팀에서 활동했다. 2004년에는 피레네 투어에서 종합 우승을 달성하며 프로 선수로서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2. Professional career
베른하르트 콜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프로 사이클 선수로 활동하며 여러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1. Early professional years (2005-2007)
콜은 2005년 T-모바일 팀과 계약하며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같은 해 2005년 부엘타 아 에스파냐에 출전하여 종합 110위를 기록했다. 2006년에는 오스트리아 전국 도로 사이클 선수권 대회 엘리트 개인 도로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 챔피언에 올랐다. 이 시기에 그는 또한 크리테리움 뒤 도피네 리베레에서 종합 3위를 기록하며 뛰어난 산악 등반 능력을 선보였다. 2007년에는 게롤슈타이너 팀으로 이적하여 2007년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 종합 31위를 기록했다.
2.2. 2008 Tour de France performance

2008년은 베른하르트 콜의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동시에 가장 비극적인 해였다. 그는 2008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제10 스테이지에서 4위를 차지하며 종합 순위도 단숨에 4위로 뛰어올랐다. 알프스 산맥을 넘는 스테이지에서도 쾌조의 기량을 유지했으며, 제15 스테이지 종료 시점에는 선두 프랭크 슐렉에 불과 7초 뒤진 종합 2위로 올라섰고, 산악왕 부문에서는 선두를 차지했다.
하지만 알프 뒤에즈가 결승점이었던 제17 스테이지에서는 팀 CSC-삭소뱅크 팀의 교묘한 작전에 휘말려 당시 종합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카를로스 사스트레에게 뒤처지면서 종합 우승 경쟁에서는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종적으로 종합 3위를 차지했으며, 산악왕 부문에서는 사스트레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을 압도적으로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이 성과는 당시 오스트리아 스포츠계에서 큰 기대를 모았으며, 오스트리아 올해의 스포츠인상 후보에도 올랐다. 하지만 후술할 도핑 위반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모든 2008년 투르 드 프랑스 성과(종합 3위, 산악왕)는 무효 처리되었고, 산악왕 저지 또한 박탈되었다. 만약 순위가 재조정된다면 데니스 멘쇼프가 종합 3위가 되고, 투르 드 프랑스 종합 우승자 카를로스 사스트레가 산악왕 저지를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3. Doping and its aftermath
베른하르트 콜의 도핑 스캔들은 그의 경력을 송두리째 뒤흔들었으며, 사이클 스포츠 전반에 걸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3.1. Positive CERA test and admission
2008년 10월 13일, 프랑스의 스포츠 신문 르키프는 베른하르트 콜이 2008년 투르 드 프랑스 기간 중 사용된 CERA(Continuous Erythropoietin Receptor Activator영어, 3세대 에리트로포이에틴 변형체)에 대한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반도핑 기구의 발표를 바탕으로 한 이 보도는 큰 충격을 주었다. 이틀 뒤인 10월 15일, 콜은 기자회견을 열고 CERA 사용 사실을 인정하며 자신의 약물 사용을 시인했다.
3.2. Consequences and ban
콜의 도핑 인정 이후 즉각적인 파장이 뒤따랐다. 그가 소속되어 계약을 맺었던 사일런스-로토 팀은 다음 날인 10월 14일 그의 계약을 해지했다. 2008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의 그의 모든 결과는 무효 처리되었고, 그는 오스트리아 올해의 스포츠인상 후보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2008년 11월 24일, 오스트리아 반도핑 기구(NADA)는 콜에게 2년 간의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그의 2008년 투르 드 프랑스 성과는 공식적으로 무효 처리되었으나, 최종적인 순위 재조정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3.3. Further revelations and manager's arrest
도핑 스캔들은 콜의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더 광범위한 도핑 네트워크로 이어졌다. 2009년 3월 31일, 콜의 전 매니저인 슈테판 마친어가 오스트리아에서 도핑 물질 판매 혐의로 체포되었다. 마친어의 체포 소식에 대해 콜은 "놀랍지 않다"고 언급하며, 마친어와의 관계와 도핑 관행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켰다.
르키프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콜은 2008년 투르 드 프랑스를 어떻게 "준비"했으며, 대회 기간 동안 매니저로부터 혈액 수혈을 받았는지 상세히 밝혔다. 그는 국제 사이클 연맹(UCI)의 생체 여권 시스템이 자신의 선수 생활 동안 정기적인 혈액 도핑을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콜은 "최고 수준의 선수들은 도핑에 있어서도 너무나 프로페셔널해서, 혈액 수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폭로하며, 사이클 스포츠 내부에 만연한 도핑 실태와 이를 피하는 선수들의 교묘한 수법을 비판했다. 이러한 폭로는 사이클 스포츠의 공정성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더욱 심화시켰다.
4. Retirement
베른하르트 콜은 도핑으로 인한 2년의 출전 정지 기간이 끝나기도 전인 2009년 5월 25일, 프로 사이클 선수로서의 은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의 은퇴 발표는 "국제 사이클에서 도핑 없이는 이길 수 없다"는 논란의 발언과 함께 이루어져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발언은 사이클 스포츠 내부에 만연한 도핑 문제에 대한 그의 좌절감과 함께, 도핑이 승리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처럼 여겨지는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의 은퇴는 단순히 한 선수의 경력 단절을 넘어, 스포츠의 윤리적 위기와 시스템적 문제점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5. Major results
다음은 베른하르트 콜의 주요 성과 목록이며, 도핑으로 인해 무효 처리된 결과는 취소선으로 표기한다.
;2000
- 국제 니더작센 주니어 투어 종합 3위
- 국제 오버외스터라이히 주니어 투어 종합 8위
;2002
오스트리아 챔피언 저지 오스트리아 전국 도로 사이클 선수권 대회 23세 이하 도로 경기 1위
- 룬트 움 덴 헤닝어 투름 U23 1위
- 오스트리아 전국 도로 사이클 선수권 대회 도로 경기 4위
- 그랑프리 기욤 텔 종합 6위
- 유니카 클래식 종합 7위
;2003
- 오스트리아 전국 도로 사이클 선수권 대회 23세 이하 도로 경기 2위
- 튀링겐 루프 U23 종합 2위
- 오스트리아 전국 도로 사이클 선수권 대회 도로 경기 5위
- 트립티크 아르덴네 종합 5위
- 리에주-바스토뉴-리에주 에스푸아르 10위
;2004
옐로 저지 (종합 선두) 피레네 투어 종합 1위
- 발로니 서킷 4위
;2005
- 오스트리아 투어 종합 7위
;2006
오스트리아 챔피언 저지 오스트리아 전국 도로 사이클 선수권 대회 도로 경기 1위
- 2006년 크리테리움 뒤 도피네 리베레 종합 3위
- 오스트리아 투어 종합 5위
;2008
2008년 투르 드 프랑스 종합 3위빨간 점박이 저지 (산악왕) 투르 드 프랑스 산악왕 1위
- 바이에른 룬드파르트 종합 6위
5.1. 그랜드 투어 종합 분류 결과 연혁
그랜드 투어 | 2005 | 2006 | 2007 | 2008 |
---|---|---|---|---|
지로 디탈리아 | 경력 중 불참 | |||
투르 드 프랑스 | ||||
31 | ||||
부엘타 아 에스파냐 | 111 | DNF | ||
- | 불참 |
---|---|
DNF | 경주 미완료 |
무효 처리된 결과 |
6. Legacy and reception
베른하르트 콜의 경력은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도핑 스캔들로 인해 크게 훼손된 안타까운 사례로 기억된다. 2008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보여준 그의 인상적인 등반 능력과 산악왕 타이틀 획득은 잠재적으로 그를 사이클 스포츠의 영웅으로 만들 수도 있었으나, 도핑 사실이 밝혀지면서 모든 영광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의 도핑 인정과 "도핑 없이는 이길 수 없다"는 은퇴 발언은 개인적인 잘못을 넘어, 당시 사이클 스포츠에 만연했던 도핑 문화의 어두운 단면을 폭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사이클 팬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으며, 스포츠의 본질적인 가치인 공정성과 정직성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콜의 사례는 스포츠에서 성과 지상주의가 만연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의 발언은 사이클 선수들이 상위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았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을 넘어, 선수들이 압력 속에서 도핑에 의존하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요구한다. 따라서 베른하르트 콜은 사이클 역사에서 그의 뛰어난 경기력보다는 도핑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스포츠 윤리의 중요성과 도핑 방지 노력의 필요성을 상기시키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유산은 스포츠에서 공정 경쟁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