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배리 클린턴 윈덤(Barry Clinton Windham영어, 1960년 7월 4일 출생)은 은퇴한 미국의 프로레슬러이다. 전설적인 레슬러 블랙잭 멀리건의 아들이며, NWA와 WCW에서의 활동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NWA/WCW에서 NWA 월드 헤비급 챔피언,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헤비급 챔피언, 텔레비전 챔피언, 웨스턴 스테이츠 헤리티지 챔피언, NWA/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 등 다양한 타이틀을 획득했다. 특히 론 가빈과 함께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을 지냈으며, WWF에서는 그의 처남 마이크 로툰다와 함께 WWF 월드 태그팀 챔피언을 두 차례 지냈다. 윈덤은 WWE 명예의 전당에 두 번 헌액되었는데, 2012년에는 포 호스멘의 일원으로, 2024년에는 US 익스프레스의 일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부친의 거친 스타일과는 대조적으로, 기술적인 움직임과 인사이더 워크를 구사하는 기교파 레슬러로 1980년대와 1990년대를 풍미했다.
2. 초기 삶과 가족
배리 윈덤은 1960년 7월 4일 텍사스주 스위트워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프로레슬러 블랙잭 멀리건이며, 윈덤은 아버지와 할리 레이스로부터 레슬링 훈련을 받았다. 그는 레슬링 가문의 일원으로서 성장했으며, 그의 가족 관계는 프로레슬링계와 깊은 연관이 있다.
윈덤의 가족은 다음과 같다.
- 블랙잭 멀리건: 그의 아버지
- 켄달 윈덤: 그의 친동생
- 마이크 로툰다: 그의 처남이자 태그팀 파트너
- 브레이 와이엇(본명: 윈덤 로툰다)와 보 달라스(본명: 테일러 로툰다): 그의 조카들 (마이크 로툰다의 아들)
- 딕 머독: 그의 의삼촌 (아버지를 통해 맺어진 가족 관계)
3. 프로레슬링 경력
배리 윈덤은 1979년 프로레슬링에 데뷔한 이후,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하며 여러 챔피언십을 획득하고 중요한 대립 관계를 형성했다.
3.1. 초창기 (1979-1984)
윈덤은 1979년 11월 11일 뉴멕시코주 데밍에서 집시 조를 상대로 데뷔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 블랙잭 멀리건과 의삼촌 딕 머독이 프로모션하던 텍사스주 아마릴로 지역(NWA 웨스턴 스테이츠 스포츠)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 2월부터는 에디 그레이엄이 주최하는 NWA 플로리다 지역의 CWF에 합류했다. 금발의 장신과 부드러운 이미지로 베이비페이스로서 인기를 얻으며, 부처 브래니건, 고든 넬슨, 벅시 맥그로, 슈퍼 디스트로이어(스코트 어윈), 딕 슬레이터 등과 대립했다. 1980년 7월 26일에는 마사 사이토를 꺾고 CWF 텔레비전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이후에도 CWF에서 더스티 로즈나 아버지 멀리건과의 태그팀으로 활동했으며, 1981년 1월 12일에는 도리 펑크 주니어로부터 NWA 플로리다 헤비급 챔피언십을, 1982년 12월 18일에는 그렉 발렌타인으로부터 NWA 서던 헤비급 챔피언십을 획득하며 승승장구했다. 1980년대 초반에는 리키 스팀보트, 폴 언도프, 케리 본 에릭, 부치 리드 등과 함께 차세대 NWA 월드 헤비급 챔피언 후보로 큰 기대를 모았다. 1984년에는 처남 마이크 로툰다와 태그팀을 결성하여 3월과 5월 사이에 NWA 플로리다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십을 네 차례 획득했다.
1983년 11월, 윈덤은 론 풀러와 함께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세계 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에 처음 출전했다. 당시 경기 경험 부족으로 많은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개막전에서 스탠 한센과 브루저 브로디를 상대로 펼친 인상 깊은 경기는 팬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3.2. 월드 레슬링 페더레이션 (1984-1985)
1984년 10월, 윈덤과 마이크 로툰다는 WWF와 계약하며 WWF에 입성했다. 그들은 1984년 11월 17일 방영된 《메이플 리프 레슬링》에서 무함마드 사드와 바비 배스를 꺾으며 베이비페이스 태그팀인 'US 익스프레스'로 데뷔했다.
US 익스프레스는 빠르게 WWF 태그팀 디비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 첫 번째 WWF 태그팀 챔피언십**: 1985년 1월 21일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열린 하우스 쇼에서 노스 사우스 커넥션(딕 머독과 애드리언 아도니스)을 꺾고 WWF 태그팀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 타이틀 상실**: 같은 해 3월 31일 열린 최초의 레슬매니아 I에서 아이언 시크와 니콜라이 볼코프에게 타이틀을 내주었다.
- 두 번째 WWF 태그팀 챔피언십**: 1985년 7월 13일 방영된 《챔피언십 레슬링》에서 시크와 볼코프를 다시 꺾고 두 번째이자 마지막 WWF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 타이틀 상실**: 1985년 8월 24일 필라델피아 스펙트럼에서 드림 팀(그렉 발렌타인과 브루터스 비프케이크)에게 타이틀을 내주며 WWF에서의 첫 활동을 마무리했다.
윈덤은 1985년 10월 WWF를 떠났다.
3.3. NWA 지역으로의 복귀 (1986-1988)
WWF를 떠난 후, 윈덤은 1986년 1월 마이크 로툰다와 함께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재입성했다. 이후 플로리다의 CWF를 거쳐, 같은 해 연말부터 짐 크로켓 프로모션스가 주관하는 NWA 미드-애틀랜틱 지역에 정착했다.
- 릭 플레어와의 대립**: NWA 미드-애틀랜틱 지역에서 그는 릭 플레어의 NWA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에 수차례 도전하며 많은 명경기를 만들어냈다. 플레어는 윈덤을 기술적으로 자신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레슬러이자 60분 풀 타임 경기를 해도 부담이 없는 상대로 높이 평가했다.
- 론 가빈과의 태그팀**: 1986년 12월 9일, 론 가빈과 성공적인 태그팀을 결성하여 이반 콜로프와 크러셔 크루시예프를 꺾고 NWA US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이들은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바비 이튼과 스탠 레인)와 큰 대립을 펼쳤다. 윈덤과 가빈은 1987년 봄에 이반 콜로프와 딕 머독에게 타이틀을 내주었다.
- 렉스 루거와의 관계**: 이 시기에 렉스 루거와 동맹을 맺었으나, 루거가 포 호스멘에 가입하려는 야망으로 윈덤을 배신하며 관계가 틀어졌다.
- NWA 웨스턴 스테이츠 헤리티지 챔피언십**: 1987년 6월 20일 토너먼트 결승에서 블랙 바트를 꺾고 신설된 NWA 웨스턴 스테이츠 헤리티지 챔피언십의 초대 챔피언이 되었다. 그는 이 타이틀을 릭 스타이너, 빅 버바 로저스 등을 상대로 방어했다. 이 타이틀은 빌 와츠의 UWF에서도 인정받았다.
- 《스타케이드 1987》**: 짐 크로켓 프로모션스의 첫 페이퍼뷰인 《스타케이드 1987: 시카고 타운 히트》에서 UWF 헤비급 챔피언 스티브 윌리엄스에게 패배했다. 1988년 초, 그는 《벙커하우스 스탬피드》에서 래리 즈비스코에게 웨스턴 스테이츠 헤리티지 타이틀을 내주었다.
3.4. 포 호스멘 (1988-1989)
1988년 초, 윈덤은 렉스 루거와 재회하여 '트윈 타워스'라는 태그팀을 결성했다. 1988년 3월 27일 《클래시 오브 더 챔피언스 I》에서 브레인 버스터스(안 안데르손과 털리 블랜처드)로부터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그러나 몇 주 뒤인 4월 20일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루거를 배신하며 타이틀을 다시 블랜처드와 안데르손에게 넘겨주었다.
이 사건으로 윈덤은 힐로 전환하여 릭 플레어, 안 안데르손, 털리 블랜처드로 구성된 포 호스멘에 가입했다. 그의 힐 전환은 당시 큰 충격을 주었다. 또한 그는 아버지 블랙잭 멀리건의 시그니처 기술인 클로 홀드(브레인 클로)를 피니셔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검은색 장갑을 착용했다. 그는 다시 싱글 경쟁에 뛰어들어, 당시 챔피언 더스티 로즈가 정지된 후 공석이 된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헤비급 챔피언십 토너먼트 결승에서 니키타 콜로프를 꺾고 타이틀을 획득했다. 윈덤은 9개월 동안 이 타이틀을 지배하며 브래드 암스트롱, 더스티 로즈, 스팅, 뱀 뱀 비글로우 등을 상대로 방어했다. 그는 1989년 2월 《시카고 타운 럼블》에서 렉스 루거에게 타이틀을 내주었다. 그의 계약은 1989년 3월 만료되었다.
3.5. 두 번째 WWF 활동 (1989)
1989년 6월, 윈덤은 '위도우메이커'라는 새로운 링네임으로 WWF에 잠시 복귀했다. 링네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미지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힐 카우보이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는 4개월 동안 무패 행진을 기록했으며, 랜디 새비지의 《서바이버 시리즈》 팀에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가족의 위조 지폐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10월에 회사를 떠나 어스퀘이크로 대체되었다.
3.6.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 (1990-1994)
3.6.1. 포 호스멘 재가입
1990년 5월 5일, 윈덤은 WCW에 깜짝 복귀하여 렉스 루거와 릭 플레어의 미국 챔피언 대 세계 챔피언 경기에 난입했다. 복귀 후 그는 릭 플레어, 안 안데르손, 시드 비셔스, 올레 안데르손으로 구성된 포 호스멘에 다시 합류했다. 당시 올레 안데르손은 준활동 상태였으며, 윈덤이 합류한 후 영구적으로 매니저 역할을 맡게 되었다.
복귀 후 첫 경기는 15일 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하우스 쇼에서 릭 플레어와 안 안데르손과 팀을 이루어 릭 스타이너와 로드 워리어즈를 꺾었다. 그는 1990년 6월 13일 《클래시 오브 더 챔피언스 XI》에서 더그 퍼나스를 꺾었다. 그해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호스멘 멤버들과 태그팀 경기를 하며 보냈다.
《할로윈 해벅 1990》에서 윈덤은 시드 비셔스와 당시 NWA 월드 헤비급 챔피언 스팅 사이의 논란이 많은 경기에 연루되었다. 시드 비셔스가 스팅을 핀하여 챔피언십을 획득한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스팅으로 변장한 윈덤이었다. 이 속임수가 발각되자 경기는 다시 시작되었고, 진짜 스팅이 시드 비셔스를 꺾었다. 윈덤은 남은 해 동안 안 안데르손과 팀을 이루어 당시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이었던 둠과 포 호스멘 간의 대립을 이어갔다. 《스타케이드 1990》에서 윈덤과 안데르손은 둠과 스트리트 파이트 경기를 펼쳤으나 무승부로 끝났다.
1991년에도 윈덤은 안 안데르손 및 시드 비셔스와 계속해서 태그팀으로 활동했다. 1991년 봄에는 브라이언 필먼과 대립하여 《슈퍼브롤 I》에서 열린 테이프드 피스트 매치에서 승리했다.
이 해 중반에 WCW 월드 헤비급 챔피언 릭 플레어가 회사에서 해고되면서 타이틀이 공석이 되는 논란이 발생했다. 윈덤은 챔피언십 도전자 2위에 오르며 렉스 루거와 철장 경기를 치러 새로운 챔피언을 가리게 되었다. 1991년 《더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쉬》에서 윈덤은 루거에게 패배했으며, 이 경기는 루거가 WCW의 최고 악당이 되고 윈덤이 대중적인 선수로 다시 떠오르는 더블 턴으로 기록되었다. 루거의 기만적인 전술과 할리 레이스와의 연루, 그리고 윈덤이 수년간 상위 미드카더로서 챔피언 벨트를 향한 끈질긴 투지를 보여주면서 윈덤은 비록 월드 챔피언십은 획득하지 못했지만 팬들 사이에서 다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3.6.2. 챔피언십 획득과 대립
1991년 10월, 윈덤은 더스틴 로즈와 태그팀을 결성하고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이었던 디 인포서스(안 안데르손과 래리 즈비스코)와 대립했다. 《할로윈 해벅 1991》에서 안데르손과 즈비스코는 윈덤의 손을 자동차 문에 끼워 부러뜨리면서 그를 잠시 활동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이 사건으로 리키 스팀보트가 그해 11월 《클래시 오브 더 챔피언스 XVII》에서 로즈의 미스터리 파트너로 나서게 되었다. 스팀보트와 로즈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윈덤은 몇 달 후 복귀하여 안 안데르손, 즈비스코, 그리고 현재는 데인저러스 얼라이언스로 알려진 그룹의 나머지 멤버들과 대립했다.
1992년 봄, 윈덤은 WCW TV 챔피언인 스티브 오스틴과 대립했다. 1992년 5월 9일 방영된 《WCW 새터데이 나이트》에서 그는 오스틴을 2대1로 꺾고 WCW 월드 텔레비전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그러나 6월 13일 방영된 《WCW 월드와이드》에서 오스틴에게 타이틀을 내주었다.
1992년 9월 2일 녹화된 《새터데이 나이트》에서 윈덤은 더스틴 로즈와 팀을 이루어 스티브 윌리엄스와 테리 고디를 꺾고 통합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과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그들의 NWA 타이틀 획득은 NWA에 의해 인정되지 않았다). 이 경기는 10월 3일에 방영되었다。 그들은 약 두 달 동안 타이틀을 보유하다가 11월 18일 《클래시 오브 더 챔피언스 XXI》에서 스팀보트와 셰인 더글러스에게 타이틀을 내주었다. 경기 후, 로즈가 의도치 않은 로블로 이후 스팀보트를 핀하는 것을 거부하자 윈덤은 로즈에게 힐 턴을 감행했다.
그해 연말, 윈덤은 역시 힐 턴을 한 브라이언 필먼과 팀을 이루어 그가 로즈와 함께 잃었던 타이틀을 되찾으려 했으나, 《스타케이드 1992》에서 스팀보트와 더글러스에게 패배했다.
3.6.3. NWA 월드 헤비급 챔피언
1993년 1월, 윈덤은 풀 타임 싱글 레슬러로 전환하여 당시 그레이트 무타가 보유하고 있던 NWA 월드 챔피언십을 노렸다. 그는 《슈퍼브롤 III》에서 무타를 꺾고 NWA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그날 밤 WCW로 복귀한 릭 플레어는 윈덤에게 벨트를 수여하려 했으나, 윈덤은 플레어가 벨트를 자신의 허리에 둘러주려는 것을 보고 벨트를 빼앗아 가버렸다. 플레어와 안 안데르손은 윈덤을 다시 호스멘으로 영입하려 했지만, 윈덤은 이를 거절하고 '외로운 늑대'가 되어 플레어와 안데르손과 대립했다. 그는 《슬램보리 1993》에서 안데르손을 상대로 성공적으로 타이틀을 방어했다.
2 콜드 스콜피오를 상대로 성공적인 타이틀 방어를 한 후, 윈덤은 《비치 블라스트 1993》에서 플레어에게 NWA 벨트를 내주었다. 이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입은 그는 거의 1년 동안 레슬링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는 1994년 《슬램보리 1994》에서 WCW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을 놓고 릭 플레어와 다시 맞붙었다. 경기 몇 주 전부터 WCW는 6피트 7인치(201 cm), 136 kg (300 lb)의 금발 전 세계 챔피언이 로버트 풀러의 스튜드 스테이블이 플레어에게 도전하기 위해 데려오는 '스테이블 스튜드'라는 가면 쓴 남자라고 홍보하며 헐크 호건이 도전할 것이라고 믿게 했다. 하지만 그 정체는 배리 윈덤으로 밝혀졌다. 플레어는 다시 승리했고, 윈덤은 수술받았던 무릎 중 하나를 다시 다쳐 2년 이상 활동을 중단했다.
원래 WWF는 윈덤이 복귀하여 처남 마이크 로툰다(어윈 R. 샤이스터)와 다시 팀을 이루어 '뉴 머니 인크.'를 결성하고 테드 디비아시의 밀리언 달러 코퍼레이션에 합류하여 렉스 루거와 타탕카와 대립하기를 원했지만, 그의 무릎 부상으로 인해 WWF와의 계약이 무산되었고 타탕카가 루거와의 대립에서 윈덤을 대체했다.
3.7. 세 번째 WWF 활동 (1996-1998)

윈덤은 다시 WWF로 돌아와 1996년 8월 10일 방영된 《WWF 슈퍼스타즈》에서 첫 비녜트(Vignette)를 선보였다. 9일 뒤 그의 첫 경기는 웨스트버지니아주 휠링에서 열린 《WWE 러》 녹화에서 저스틴 브래드쇼를 꺾은 다크 매치였다. 윈덤은 '스토커'라는 미친 '숲의 스토커' 기믹을 연기했으며, 위장 페인트를 얼굴에 칠하고 마크 메로와 대립할 예정이었으나 메로의 요청으로 각본이 취소되었다.
스토커는 별다른 홍보 없이 베이비페이스로 소개되었다. 잠시 동안 그는 골더스트(더스틴 로즈)와의 대립을 재개했다. 이 기믹으로 윈덤이 유일하게 출연한 페이퍼뷰는 1996년 《서바이버 시리즈》였으며, 그는 골더스트에게 제거당했다. '스토커' 기믹으로서 마지막 출연은 《인 유어 하우스 14: 리벤지 오브 더 테이커》의 프리쇼인 《WWE 프리 포 올》에서 2 콜드 스콜피오를 상대로 예정되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술탄으로 대체되었다.
3.7.1. 뉴 블랙잭스 (1997-1998)
1997년 2월, 윈덤은 힐로 전환하여 저스틴 "호크" 브래드쇼와 함께 '뉴 블랙잭스'를 결성했다. 윈덤은 머리와 콧수염을 검게 염색했다. 이 태그팀은 원조 블랙잭스(윈덤의 아버지 블랙잭 멀리건과 블랙잭 랜자)에 대한 헌정이었다. 이 팀은 월드 태그팀 타이틀 획득 기회가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팀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윈덤은 1998년 1월 짐 코넷의 'NWA 팩션'에 합류하기 위해 브래드쇼를 배신했다. 그는 갈색 카우보이 조끼와 부츠를 착용했다. 이 각본은 몇 달 뒤 폐기되었다. 그의 마지막 WWF TV 출연은 5월 11일 《WWE 러》에서 베이더에게 패배한 경기였으며, 마지막 WWF 경기는 1998년 5월 16일 하우스 쇼에서 브래드쇼에게 패배한 경기였다. 이후 윈덤은 다시 WCW로 떠났다.
3.8. 마지막 WCW 활동 (1998-1999)

그의 마지막 WCW 활동은 1998년 말 에릭 비숍에 의해 WCW로 복귀하면서 시작되었다. 배리는 잠시 비숍의 nWo 할리우드와 느슨하게 연관되었고, 이후 커트 헤니그와 태그팀을 결성했다. 《슈퍼브롤 IX》에서 헤니그와 윈덤은 크리스 벤와와 딘 말렌코를 꺾고 공석인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의 새 챔피언이 되었다.
이 시기 윈덤은 무릎 부상을 다시 입었지만, 1999년 중반에 '웨스트 텍사스 레드넥스'의 일원으로 복귀했다. 이들은 래퍼 마스터 P의 '더 노 리밋 솔저스'와 대립하기 위한 힐 그룹이었지만, WCW의 남부 팬들은 레드넥스에게 환호하며 WCW 경영진과 각본이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되는 반응을 보였고, 결국 이 각본은 폐기되었다. 그룹은 그의 동생 켄달 윈덤, 커트 헤니그, 바비 던컴 주니어로 구성되었고, 던컴 주니어가 부상을 당한 후 그룹이 해체되기 직전에 컬리 빌(마이크 존스)이 던컴 주니어를 대체했다.
1999년 8월 23일 방영된 《WCW 먼데이 나이트 나이트로》에서 윈덤 형제는 할렘 히트(부커 T와 스티비 레이)를 꺾고 마지막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그러나 《폴 브롤 1999》에서 다시 할렘 히트에게 타이틀을 내주었다. 배리와 켄달은 곧이어 WCW에서 방출되었다.
3.9. 말년 경력 및 은퇴 (1999-2010)
1999년 말, 윈덤은 테드 디비아시의 프로모션 WXO와 푸에르토리코의 WWC에서 활동하며 동생 켄달 윈덤과 함께 WWC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2000년부터 윈덤은 플로리다 기반의 턴버클 챔피언십 레슬링 등 미국의 독립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TCW 헤비급 챔피언십을 획득하여 거의 1년 동안 보유했다. 그는 또한 스티브 코리노와 C.W. 안데르손과 함께 익스트림 호스멘 스테이블의 일원이 되어 더스티 로즈와 더스틴 로즈와 대립했다。
윈덤의 마지막 레슬링 출연 중 하나는 2003년 메이저 리그 레슬링의 워 게임(War Games)이었다. 2005년 1월 29일 《레슬리유니온 I》에서는 마이크 로툰다와 함께 US 익스프레스를 재결성하여 래리 즈비스코와 론 배스에게 패배했다. 2008년 3월 10일 방영된 《WWE 러》의 '레슬매니아 리와인드' 에피소드에서는 로툰다와 함께 US 익스프레스를 마지막으로 재결성하여 레슬매니아 I 리매치로 아이언 시크와 니콜라이 볼코프를 상대하려 했으나 경기는 시작되지 않았다.
윈덤은 2006년부터 WWE 프로듀서로 일했다. 2007년에는 《릭 플레어와 포 호스멘》 DVD에 출연했으며, 같은 해 WWE 명예의 전당 방송에서는 전 파트너 존 레이필드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2007년 6월에는 WWE 24/7에서 《슈퍼브롤 III》의 소개를 맡았다. 그는 2008년 12월 31일 WWE에서 방출되었다.
윈덤은 2010년 2월 아메리칸 컴뱃 레슬링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2012년 윈덤은 릭 플레어, J.J. 딜런, 안 안데르손, 털리 블랜처드와 함께 포 호스멘의 일원으로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24년 4월 5일, 윈덤은 필라델피아의 웰스 파고 센터에서 열린 2024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전 태그팀 파트너 마이크 로툰다와 함께 US 익스프레스의 일원으로 두 번째로 헌액되었다. 이날 헌액식에서는 그의 조카 보 달라스가 헌액자로 나섰다.
4. 레슬링 스타일 및 주요 기술
배리 윈덤은 아버지 블랙잭 멀리건의 거친 라프 파이터 스타일과는 대조적으로, 기술적인 움직임과 인사이더 워크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기교파 레슬러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장신과 부드러운 이미지, 그리고 뛰어난 경기 운영 능력은 그를 1980년대와 1990년대 주요 단체에서 성공적인 선수로 만들었다.
그가 주로 사용했던 주요 기술들은 다음과 같다.
- 플라잉 넥브레이커 드롭
- 플라잉 라리아트
- 슈퍼플렉스
- 불도깅 헤드락
- 드롭킥
- 다이빙 니 드롭
- 다이빙 엘보 드롭
- 슬리퍼 홀드
- 브레인 클로 (아버지 블랙잭 멀리건의 시그니처 무브이기도 함)
5. 개인 삶과 건강
배리 윈덤의 개인적인 삶은 프로레슬링 가족과의 깊은 유대관계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의 아버지는 블랙잭 멀리건이며, 동생은 켄달 윈덤, 처남은 마이크 로툰다이다. 또한 그는 브레이 와이엇과 보 달라스의 외삼촌이다.
2011년 10월 26일, 윈덤은 심각한 뇌졸중 또는 심장마비로 병원에 입원하여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처남 마이크 로툰다가 자신의 목장에서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의 가족은 윈덤이 심장마비를 겪었다고 공식 확인했다. 그의 아버지 블랙잭 멀리건은 페이스북에 "아들이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팬들에게 큰 우려를 안겼다. WWE는 그의 회복을 위한 의료비를 지원했다.
6. 챔피언십 및 업적
배리 윈덤은 그의 프로레슬링 경력 동안 수많은 챔피언십을 획득하고 여러 단체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 전일본 프로레슬링
- 세계 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최우수 팀상 (1983) - 론 풀러와 함께
- 챔피언십 레슬링 프롬 플로리다
- NWA 플로리다 글로벌 태그팀 챔피언십 (1회) - 론 배스와 함께
- NWA 플로리다 헤비급 챔피언십 (6회)
- NWA 플로리다 태그팀 챔피언십 (2회) - 마이크 그레이엄 (1), 스코트 맥기 (1)
- NWA 플로리다 텔레비전 챔피언십 (3회)
- NWA 노스 아메리칸 태그팀 챔피언십 (플로리다 버전) (1회) - 마이크 그레이엄과 함께
- NWA 서던 헤비급 챔피언십 (플로리다 버전) (2회)
-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십 (플로리다 버전) (4회) - 마이크 로툰다와 함께
- 짐 크로켓 프로모션스 /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
- NWA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 (1회)
- WCW 월드 텔레비전 챔피언십 (1회)
- NWA 웨스턴 스테이츠 헤리티지 챔피언십 (1회)
-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헤비급 챔피언십 (1회)
-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십 (1회) - 론 가빈과 함께
- NWA 월드 (미드-애틀랜틱)/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4회) - 렉스 루거 (1), 더스틴 로즈 (1), 커트 헤니그 (1), 켄달 윈덤 (1)
- NWA 올-스타 레슬링 (노스캐롤라이나)
-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1회) - 털리 블랜처드와 함께
- NWA 뉴 잉글랜드
- NWA 뉴 잉글랜드 헤비급 챔피언십 (1회)
- NWA 서던 챔피언십 레슬링
- NWA 서던 헤비급 챔피언십 (테네시 버전) (2회)
- 턴버클 챔피언십 레슬링
- TCW 헤비급 챔피언십 (2회)
- 월드 레슬링 카운실
- WWC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1회) - 켄달 윈덤과 함께
- 월드 레슬링 페더레이션/WWE
- NWA 노스 아메리칸 헤비급 챔피언십 (1회)
- WWF 태그팀 챔피언십 (2회) - 마이크 로툰다와 함께
- WWE 명예의 전당 (2회)
- 2012년 - 포 호스멘의 일원으로서
- 2024년 - US 익스프레스의 일원으로서
- 프로레슬링 일러스트레이티드
- PWI 가장 발전한 레슬러 (1982)
- 1993년 PWI 500 싱글 레슬러 중 #11위
- 2003년 "PWI 역사상" 싱글 레슬러 중 #35위
- 2003년 "PWI 역사상" 태그팀 중 #48위 - 마이크 로툰다와 함께
- 2003년 "PWI 역사상" 태그팀 중 #87위 - 더스틴 로즈와 함께
- 2003년 "PWI 역사상" 태그팀 중 #90위 - 렉스 루거와 함께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 올해의 신인 (1980)
- 올해의 경기 (1986) - 2월 14일 릭 플레어와의 경기
7. 유산 및 평가
배리 윈덤은 그의 길고 다채로운 프로레슬링 경력을 통해 스포츠에 지대한 유산을 남겼다. 그의 기술적인 레슬링 스타일은 힘과 거칠음을 중시했던 아버지 블랙잭 멀리건과는 다른 차별점을 보이며, 다양한 기믹과 태그팀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능력을 입증했다. 그는 베이비페이스와 힐 양쪽에서 모두 큰 성공을 거두며 다재다능함을 보여주었다.
특히 릭 플레어는 윈덤을 "기술적으로 자신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레슬러"이자 "60분 풀 타임 경기를 해도 부담이 없는 상대"로 높이 평가하며, 그의 뛰어난 경기력과 프로페셔널리즘을 인정했다. 이는 윈덤이 동료들 사이에서 얼마나 존경받는 선수였는지를 보여준다.
윈덤의 레슬링 경력은 그의 WWE 명예의 전당 두 차례 헌액으로 더욱 확고히 평가받았다.
- 2012년, 그는 전설적인 스테이블 '포 호스멘'의 일원으로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는 그가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그룹 중 하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의미한다.
- 2024년, 그는 마이크 로툰다와 함께 'US 익스프레스'의 일원으로서 다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는 그가 싱글 선수로서의 업적뿐만 아니라 뛰어난 태그팀 선수로서도 인정받았음을 보여준다.
그의 수많은 챔피언십 획득과 PWI,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등에서 받은 수상 경력들은 윈덤이 당대 최고의 레슬러 중 한 명이었음을 명확히 한다. 그는 프로레슬링 역사에 기술적인 재능과 꾸준함으로 기억될 선수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