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교육
1.1. 출생 및 유년 시절
박정권은 1981년 7월 21일에 태어났다.
1.2. 학력
그는 전주효자초등학교, 전주동중학교,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쌍방울 레이더스로부터 지명을 받았으나, 동국대학교에 진학하여 선수로서의 기틀을 다졌다.
2. 프로 경력
박정권은 프로 선수로서 2004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여 데뷔했으며, 이후 꾸준한 활약을 통해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가을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2.1. 데뷔 및 군 복무
2004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데뷔 첫 해에는 주로 1루수와 좌익수로 출전했으나, 1군과 2군을 오가며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당시 팀의 주축 선수였던 김재현과 이호준의 활약으로 자신의 자리가 마땅치 않음을 깨닫고 2004년 시즌 후 상무 야구단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시작했다. 상무 복무 기간인 2005년과 2006년에는 2군 북부 리그에서 2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하며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2.2.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시절
군 복무를 마친 후 SK 와이번스에 복귀하여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며 팀의 주요 타자로 성장했다.
2.2.1. 초기 경력 및 부상 (2004-2008)
2007년 시즌, 제대 후 1군에 복귀하여 백업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펀치력을 선보였다. 당시 김성근 감독은 그의 장타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 해 두산 베어스와의 2007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여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008년 시즌 초부터 팀의 한 축을 담당하며 좋은 활약을 이어갔으나, 6월 27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 덕 클락과 1루에서 충돌하며 왼쪽 정강이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어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다.
2.2.2. 전성기 및 주요 수상 (2009-2011)
2009년 시즌, 부상에서 재활한 후 주전 1루수로 기용됐다. 당시 주전 1루수였던 이호준이 무릎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박정권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맹활약하며 주전 자리를 꿰찼다. 이 해 타율 0.276, 25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 타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상대 투수 임태훈에게 매우 강한 면모를 보이며 맹타를 휘둘러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플레이오프에서 타율 0.478, 3홈런, 8타점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했고, 팀의 해결사로 각인됐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서는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시즌 후 억대 연봉에 진입했다. 또한 이 해 포스트시즌에서 23루타를 기록하며 역대 포스트시즌 개인 최다 루타 기록을 경신했다.
2010년 시즌, 주전 4번 타자로서 3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정장석'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타격을 선보였고, 팀의 페넌트레이스 1위 달성에 크게 기여했다. 1루수는 물론 우익수로서도 안정적인 수비력을 보여주며 내야와 외야 모두에서 수비가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자질을 입증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306, 132안타, 18홈런, 17도루, 76타점이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쳐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됐다. 시리즈 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57, 1홈런, 6타점을 기록했다.
2011년 시즌, 지난 시즌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시즌 초반의 상승세와 달리 중반부터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리며 결국 2군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후반기에 타격감을 회복했지만, 시즌 초중반의 부진이 커서 최종 성적은 타율 0.252, 13홈런, 54타점, 그리고 103개의 삼진을 기록하며 아쉬운 선구안을 보여줬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에서는 다시 '가을 사나이'의 면모를 드러냈다. 포스트시즌 최다 출루 기록을 세웠으며, 롯데 자이언츠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는 연타석 2점 홈런을 터뜨리며 팀을 위기에서 구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부진했고, 팀은 삼성 라이온즈에게 우승을 내줬다.
2.2.3. 중후반기 및 꾸준한 활약 (2012-2019)
2014년 시즌, 5월까지 1할대 타율로 깊은 부진에 빠져 2군에서 재정비 시간을 가졌다. 6월에 1군에 복귀한 후 바로 8개의 홈런을 치는 등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다 8월에 접어들며 '가을 사나이'의 진면모를 보여줬다. 8월 이후 11개의 홈런과 약 0.380의 타율을 기록하며 고감도 타격감을 뽐냈다. 최종 성적은 27홈런, 109타점으로, 개인 최초의 세 자릿수 타점을 기록한 시즌이었다.
2015년 시즌은 첫 FA 권리 행사를 앞둔 마지막 시즌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많은 타점을 올리며 강한 4번 타자의 모습을 보였으나, 다시 극심한 타격 부진이 찾아와 시즌 중 2군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매년 반복되는 부진 현상에 대해 잘 알고 있던 당시 김용희 감독은 그를 2번 타자로 배치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2016년 시즌에는 전년도보다 타율이 하락하여 2할대 타율에 머물렀다.
2018년 시즌에는 정규 시즌 출전 기회가 크게 줄었으나, 포스트시즌에서 다시 한번 베테랑의 진가를 발휘했다. 10월 27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김상수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터뜨리며 팀의 기선 제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 총 6타점을 기록하며 SK 와이번스의 8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2019년 10월 26일,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2.3. 선수 스타일 및 강점
박정권은 클러치 히터로서 특히 포스트시즌에 강한 면모를 보여 '가을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규 시즌에서 기복이 있더라도 가을 야구에서는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인 타격을 선보이며 팀의 승리에 기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또한 1루수와 외야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안정적인 수비력을 갖춘 멀티플레이어였다.
2.4. 통산 기록
연도 | 팀명 | 타율 | 경기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실 | 볼넷 | 사구 | 삼진 | 병살 | 실책 | OPS |
---|---|---|---|---|---|---|---|---|---|---|---|---|---|---|---|---|---|---|---|
2004 | SK | 0.179 | 24 | 28 | 1 | 5 | 0 | 0 | 0 | 5 | 0 | 0 | 0 | 2 | 0 | 5 | 0 | 0 | 0.412 |
2007 | 0.221 | 100 | 208 | 26 | 46 | 12 | 2 | 4 | 74 | 25 | 2 | 1 | 15 | 2 | 50 | 5 | 5 | 0.781 | |
2008 | 0.260 | 56 | 127 | 15 | 33 | 4 | 1 | 3 | 48 | 20 | 0 | 0 | 11 | 0 | 23 | 3 | 3 | 0.898 | |
2009 | 0.276 | 131 | 446 | 70 | 123 | 27 | 0 | 25 | 225 | 76 | 5 | 4 | 51 | 4 | 91 | 8 | 7 | 0.859 | |
2010 | 0.306 | 124 | 431 | 76 | 132 | 19 | 4 | 18 | 213 | 76 | 17 | 5 | 63 | 5 | 89 | 7 | 2 | 0.900 | |
2011 | 0.252 | 122 | 453 | 54 | 114 | 21 | 2 | 13 | 178 | 53 | 9 | 3 | 42 | 3 | 103 | 9 | 4 | 0.712 | |
2012 | 0.255 | 122 | 416 | 61 | 106 | 18 | 1 | 12 | 162 | 59 | 4 | 6 | 43 | 4 | 80 | 7 | 4 | 0.719 | |
2013 | 0.292 | 110 | 363 | 56 | 106 | 20 | 1 | 18 | 182 | 70 | 4 | 4 | 64 | 1 | 79 | 5 | 2 | 0.901 | |
2014 | 0.310 | 120 | 452 | 81 | 140 | 33 | 2 | 27 | 258 | 109 | 7 | 9 | 41 | 2 | 106 | 6 | 5 | 0.938 | |
2015 | 0.281 | 124 | 438 | 66 | 123 | 23 | 0 | 21 | 209 | 70 | 3 | 3 | 46 | 4 | 119 | 9 | 8 | 0.830 | |
2016 | 0.277 | 125 | 422 | 59 | 117 | 17 | 3 | 18 | 194 | 59 | 4 | 0 | 35 | 5 | 99 | 7 | 6 | 0.797 | |
2017 | 0.256 | 118 | 305 | 37 | 78 | 14 | 1 | 16 | 142 | 51 | 1 | 1 | 30 | 5 | 78 | 4 | 7 | 0.794 | |
2018 | 0.172 | 14 | 29 | 4 | 5 | 0 | 0 | 2 | 11 | 6 | 0 | 0 | 2 | 0 | 9 | 0 | 0 | 0.605 | |
2019 | 0.188 | 18 | 32 | 5 | 6 | 1 | 0 | 1 | 10 | 5 | 0 | 0 | 5 | 0 | 11 | 0 | 0 | 0.610 | |
통산 | 14시즌 | 0.273 | 1308 | 4150 | 611 | 1134 | 209 | 17 | 178 | 1911 | 679 | 56 | 36 | 450 | 35 | 942 | 70 | 53 | 0.807 |
2.5. 수상 경력
- 플레이오프 MVP: 1회 (2009년)
- 한국시리즈 MVP: 1회 (2010년)
2.6. 등번호
선수 및 코치 시절 사용했던 등번호는 다음과 같다.
- 46 (2004년)
- 50 (2007년)
- 36 (2008년 ~ 2019년)
- 83 (2020년 ~ 2023년)
- 76 (2025년 ~ )
3. 은퇴 후 활동
선수 은퇴 후 박정권은 지도자와 해설위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야구계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3.1. 지도자 경력
2019년 10월 26일 현역 은퇴와 동시에 SK 와이번스의 2군 타격코치로 선임되었다. 2020년부터 SK 와이번스의 2군 타격코치로 활동했으며, 팀이 SSG 랜더스로 전환된 후에도 코치직을 유지했다. 2023년 시즌 중 1군 타격코치 보좌로 보직이 변경되었으나, 같은 해 시즌을 끝으로 SSG 랜더스와 결별했다. 2025년 1월 27일, SSG 랜더스의 2군 감독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3.2. 해설위원 활동
2023년 시즌 후 SSG 랜더스를 떠난 뒤, 2024년부터 MBC 스포츠플러스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영입되어 활동했다.
4. 개인사 및 별명
박정권은 2008년 시즌 후 배우 김은미와 결혼했다.
그는 선수 시절 여러 별명으로 불렸다.
- '정권브이': 그의 이름과 로보트 태권브이를 합쳐서 불린 별명이다.
- '거지':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 중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던진 김밥을 먹지 못해 아쉬워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붙여진 별명이다.
- '가을정권', '봄 여름 정권 겨울', '가을거지': 유독 가을 야구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그의 특징을 반영한 별명들이다.
5. 평가 및 영향
박정권은 꾸준함과 더불어 포스트시즌에서의 압도적인 활약으로 SK 와이번스 (현 SSG 랜더스)의 왕조 시대를 이끌었던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중요한 순간마다 터지는 클러치 히터로서의 능력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가을 사나이'라는 별명은 그의 상징이 되었다. 그의 활약은 팀의 우승과 준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한국 프로야구에서 포스트시즌 강자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다.
6. 외부 링크
- [http://www.koreabaseball.com/Record/Player/HitterDetail/Basic.aspx?playerId=74846 KBO 리그 통산 기록]
- [http://www.statiz.co.kr/player.php?mid=player&opt=1&name=%EB%B0%95%EC%A0%95%EA%B6%8C 스탯티즈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