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바바 도시후미의 프로 야구 선수 경력 이전의 삶과 학업, 그리고 사회인 야구 시절을 다룬다.
1.1. 출생 및 유년 시절
바바 도시후미는 1965년 2월 10일 후쿠오카현 미즈마군 오키정에서 태어났다.
1.2. 학력 및 사회인 야구
야나가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84년 신일본제철 사카이에 입사하여 사회인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전일본 팀의 3번 타자를 맡기도 했다. 1989년 제60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서는 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베스트 4 진출에 기여했다. 사회인 야구 시절 노모 히데오와 한 팀에서 뛰었다.
2. 선수 경력
바바 도시후미의 프로 야구 선수로서의 활동 전반을 시기별로 상세하게 설명한다.
2.1. 프로 입단 및 다이에 호크스 시절
바바 도시후미는 1989년 드래프트에서 5순위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프로 1년차인 1990년 4월 10일, 그린 스타디움 고베에서 열린 오릭스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10회말 3루수로 출장하며 프로 첫 경기를 치렀다. 같은 해 4월 14일 헤이와다이 야구장에서 열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경기에서는 6회말 와타나베 히사노부를 상대로 첫 안타를 기록했다. 이튿날인 4월 15일에는 7번 타자 겸 3루수로 선발 출장하며 첫 선발 출장 경기를 가졌다. 5월 11일 헤이와다이 야구장에서 열린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는 9회말 와타나베 도미오를 상대로 첫 타점을 올렸으며, 6월 15일 세이부 라이온스 구장에서 열린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는 5회초 이시이 다케히로를 상대로 첫 홈런을 기록했다. 1990년 시즌에는 54경기에 출장했다. 그러나 1991년에는 1군 경기에 단 한 번도 출장하지 못했다. 1993년 시즌 오프에 다카기 고지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이적했다.
2.2.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이적한 후 바바 도시후미는 주전 3루수로 활약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1995년에는 115경기에 출장하며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했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1995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뛰어난 수비를 연발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해 3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1996년에는 111경기에 출장하여 팀의 퍼시픽 리그 2연패와 19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으며, 2년 연속으로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1997년 시즌 도중, 젊은 선수 기용을 도모하는 구단의 방침과 2년 전 일본 시리즈에서 그의 수비력을 직접 보고 "저기에 (타구가) 날아가면 지옥"이라고 평가했던 노무라 가쓰야 감독의 눈에 띄어, 이와사키 히사노리와 함께 오구라 히사시, 히로나가 야스타카와의 2대2 트레이드를 통해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로 이적했다.
2.3.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절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는 2루수로도 뛰었으나, 이와무라 아키노리 등 젊은 내야수들의 성장으로 인해 출장 기회가 점차 줄어들었다. 결국 2000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4. 선수로서의 특징 및 수상
바바 도시후미는 '철벽의 수비'를 자랑하는 명수비수로 평가받았다. 프로 입단 후 주로 3루수로 활약했으며, 3루선으로 향하는 빠른 타구를 민첩하게 처리하는 능력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타격에서는 희생 번트에 능한 것이 특징이었다.
주요 수상 경력은 다음과 같다.
- 골든 글러브상: 2회 (3루수 부문: 1995년, 1996년)
2.5. 통산 기록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1990 | 다이에 | 54 | 85 | 67 | 7 | 11 | 3 | 0 | 1 | 17 | 3 | 0 | 0 | 5 | 1 | 10 | 0 | 2 | 15 | 1 | .164 | .288 | .254 | .541 |
1992 | 10 | 25 | 20 | 1 | 2 | 0 | 0 | 0 | 2 | 1 | 0 | 0 | 0 | 0 | 5 | 0 | 0 | 6 | 1 | .100 | .280 | .100 | .380 | |
1993 | 67 | 153 | 138 | 9 | 34 | 5 | 0 | 0 | 39 | 9 | 1 | 0 | 5 | 0 | 8 | 0 | 2 | 16 | 6 | .246 | .297 | .283 | .580 | |
1994 | 오릭스 | 59 | 110 | 91 | 11 | 21 | 3 | 0 | 1 | 27 | 7 | 0 | 0 | 12 | 0 | 7 | 0 | 0 | 14 | 2 | .231 | .286 | .297 | .582 |
1995 | 115 | 404 | 344 | 25 | 90 | 14 | 3 | 1 | 113 | 33 | 4 | 2 | 29 | 1 | 28 | 0 | 2 | 51 | 4 | .262 | .320 | .328 | .648 | |
1996 | 111 | 288 | 263 | 25 | 67 | 8 | 2 | 6 | 97 | 27 | 1 | 0 | 14 | 0 | 9 | 0 | 2 | 43 | 7 | .255 | .285 | .369 | .653 | |
1997 | 18 | 32 | 29 | 1 | 5 | 0 | 0 | 0 | 5 | 0 | 0 | 0 | 0 | 0 | 2 | 0 | 1 | 4 | 4 | .172 | .250 | .172 | .422 | |
야쿠르트 | 57 | 160 | 140 | 16 | 38 | 7 | 1 | 3 | 56 | 18 | 2 | 1 | 4 | 3 | 12 | 0 | 1 | 25 | 3 | .271 | .327 | .400 | .727 | |
'97 소계 | 75 | 192 | 169 | 17 | 43 | 7 | 1 | 3 | 61 | 18 | 2 | 1 | 4 | 3 | 14 | 0 | 2 | 29 | 7 | .254 | .314 | .361 | .675 | |
1998 | 71 | 56 | 45 | 4 | 8 | 0 | 0 | 0 | 8 | 4 | 0 | 1 | 6 | 0 | 4 | 0 | 1 | 7 | 0 | .178 | .260 | .178 | .438 | |
1999 | 85 | 230 | 191 | 13 | 48 | 10 | 0 | 0 | 58 | 14 | 0 | 1 | 17 | 0 | 17 | 4 | 4 | 38 | 4 | .251 | .325 | .304 | .629 | |
2000 | 28 | 36 | 29 | 2 | 4 | 1 | 0 | 0 | 5 | 3 | 0 | 0 | 5 | 1 | 0 | 0 | 1 | 10 | 2 | .138 | .161 | .172 | .334 | |
통산 : 10년 | 675 | 1579 | 1357 | 114 | 328 | 51 | 6 | 12 | 427 | 119 | 8 | 5 | 97 | 6 | 102 | 4 | 16 | 229 | 34 | .242 | .301 | .315 | .616 |
; 등번호 변천사
- 39 (1990년 ~ 1993년)
- 35 (1994년)
- 2 (1995년 ~ 1997년 도중)
- 54 (1997년 도중 ~ 1997년 종료)
- 4 (1998년 ~ 2000년)
- 76 (2001년 ~ 2003년)
- 83 (2004년 ~ 2015년, 2017년 ~ 2021년)
- 73 (2016년)
- 81 (2023년 ~ )
3.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 후 바바 도시후미의 코치로서의 활동을 소속팀 및 시기별로 상세하게 설명한다.
3.1. 일본 구단 지도자
선수 은퇴 후 바바 도시후미는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오릭스의 2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 2003년에는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를 역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오릭스를 떠난 후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야쿠르트의 1군 수비 주루 코치를 맡았다.
2009년에는 다시 오릭스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로 복귀했으나, 같은 해 퇴단했다. 2010년부터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로 부임하여 주로 3루 베이스 코치를 담당했다. 2012년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2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 2013년에는 다시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를 맡았다. 2014년에는 종합 코치 겸 내야 수비 주루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고, 2015년까지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를 역임한 후 팀을 떠났다.
2017년부터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로 합류했다. 2019년부터는 1군 작전 겸 수비 주루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어 사실상 헤드 코치급의 역할을 수행했다. 세이부에서는 야쿠르트 시절부터 친분이 있던 쓰지 하쓰히코 감독과 협력하여 팀의 수비 정확도를 향상시켰다. 그의 뛰어난 판단력은 팀의 득점으로 이어졌고, 세이부의 기동력 야구 부활에 크게 기여했다. 그가 부임하기 전인 2015년 91개, 2016년 101개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실책을 기록했던 세이부 팀은 2020년 69개로 실책을 크게 줄였다. 그는 겐다 소스케와 도노사키 슈타로 이루어진 키스톤 콤비를 골든 글러브 수상자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팀의 퍼시픽 리그 2회 우승에 공헌했다. 2021년 시즌을 끝으로 세이부 라이온스 코치직을 사임했다.
2022년에는 고베 가쿠인 대학 경식 야구부 코치와 소년 야구팀 '효고 고베 보이즈'의 종합 어드바이저로 활동했으며, 동시에 데일리 스포츠 웹판의 칼럼을 수시로 담당했다. 2023년부터는 오릭스 시절 동료였던 오카다 아키노부가 감독으로 복귀한 한신 타이거스의 1군 내야 수비 주루 코치를 맡았다. 2023년 시즌에는 오야마 유스케, 나카노 다쿠무, 기나미 세이야 등 3명의 내야수가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지만, 팀 전체의 실책 수는 리그 최다를 기록했다. 2025년부터는 2군 수비 주루 수석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3.2. 해외 구단 지도자
바바 도시후미는 2016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1군 작전 주루 코치를 역임하며 해외 리그에서의 지도자 경험을 쌓았다. 이 시기 윌린 로사리오를 지도하기도 했다.
3.3. 지도자로서의 영향력
바바 도시후미는 코치로서 팀의 수비력 향상과 선수 육성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특히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재임 시절에는 쓰지 하쓰히코 감독과 협력하여 팀의 수비 정확도를 높이고 '기동력 야구'를 부활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지도 아래 겐다 소스케와 도노사키 슈타는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는 수준으로 성장했으며, 이는 팀의 두 차례 퍼시픽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한신 타이거스 코치로 재직 중이던 2023년에는 3명의 내야수가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의 실책 수가 리그 최다를 기록하는 등 팀 수비 지표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했다.
4. 개인 생활
4.1. 별명 및 미디어 활동
바바 도시후미는 선수 시절부터 '바바짱'(馬場ちゃん바바짱일본어)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2018년 4월 29일에는 마이니치 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MBS 베이스볼 파크 번외편'에 전화로 출연하여 퍼시픽 리그 개막 후 한 달을 되돌아보는 특집에 참여했다. 이 방송에서 그는 과거 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 지도했던 윌린 로사리오 (당시 한신 타이거스 소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