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경력
멜리톤 만사나스 곤살레스는 어린 시절부터 경찰 경력을 시작했으며, 프랑코 정권 하에서 정치 경찰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며 바스크 민족주의 세력 탄압에 주력했다.
1.1. 배경 및 경찰 입대
멜리톤 만사나스 곤살레스는 1909년 6월 9일에 태어나 산세바스티안에서 성장했다. 그는 1938년에 이룬에서 경찰에 입대하며 경찰 경력을 시작했고, 이곳에 자신을 악명 높게 만든 심문 센터 중 하나를 세웠다.
1.2. 프랑코 정권 하에서의 역할
그는 1941년 산세바스티안으로 배치되었으며, 이 도시에 주둔하던 프랑코 정권의 정치 경찰 부서인 정치사회여단(BPS)의 사령관이 되었다.
1.2.1. 나치 독일과의 협력
제2차 세계 대전 중, 멜리톤 만사나스는 나치 독일과 협력했다. 그는 게슈타포가 점령된 프랑스에서 탈출하려던 유대인들을 체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2.2. 바스크 민족주의 탄압
본인도 바스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멜리톤 만사나스는 1960년대에 부활한 바스크 민족주의 운동에 맹렬히 반대했다. 특히 그는 당시 막 태동하던 조직인 ETA에 대한 강력한 진압 활동을 펼쳤다.
2. 암살
멜리톤 만사나스 곤살레스는 1968년 8월 2일 ETA에 의해 암살당했으며, 이는 ETA의 첫 번째 계획된 살해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2.1. ETA의 첫 계획 살해 사건
1968년 8월 2일, 멜리톤 만사나스는 자신의 집에서 암살당했다. 이 암살은 차비 에체바리에타의 살해에 대한 대응으로 ETA가 저지른 첫 번째 계획적인 살해 사건이었다. 그의 암살자들은 그의 거주지에서 그를 기다렸다가 그에게 일곱 발의 총격을 가했다.
3. 유산 및 논란
멜리톤 만사나스 곤살레스의 사후 서훈은 그가 프랑코 정권 하에서 저지른 고문 행위로 인해 광범위한 비판과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3.1. 사후 서훈
그의 사망 30년 후인 1998년,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당시 스페인 총리에 의해 테러 희생자들을 위한 시민 공로 훈장이 멜리톤 만사나스에게 수여되었다.
3.2. 비판 및 역사적 평가
멜리톤 만사나스에게 수여된 시민 공로 훈장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그가 프랑코 정권 하에서 근무했으며 경찰 고문을 사용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스페인 정부에 의해 서훈된 최초의 고문 가담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논쟁을 더욱 부추겼다. 국제앰네스티와 같은 인권 단체들은 고문 가담자에 대한 보상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며, 그의 서훈은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 경시로 비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은 그의 역사적 평가와 사후 인정에 대한 윤리적 논쟁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