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메멧 무라트 오쿠르(Mehmet Murat Okur메흐멧 무라트 오쿠르튀르키예어, 1979년 5월 26일 ~ )는 터키의 전직 농구 선수이자 코치이다. 주로 파워 포워드와 센터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그는 2004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소속으로 NB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터키 선수로는 최초로 NBA 우승을 차지한 선구적인 인물로 기록되었다. 2007년에는 NBA 올스타전에 선정되어 터키 출신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스타에 이름을 올렸다. 오쿠르는 센터/파워 포워드 포지션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3점슛 능력과 정확한 자유투 성공률로 코트의 공간을 창출하는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유타 재즈 팬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슛을 성공시키는 재능으로 "더 머니 맨" 또는 "메모 이즈 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은퇴 후에는 피닉스 선즈의 선수 개발 코치로 활동하며 터키인 최초의 NBA 코치라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2. 생애 초기 및 아마추어 경력
메멧 무라트 오쿠르는 1979년 5월 26일 터키 얄로바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토니 쿠코치를 가장 좋아하는 농구 선수로 꼽으며 성장했다. 그는 1997년 22세 이하 터키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팀의 6위를 이끌며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3. 프로 선수 경력
메멧 오쿠르는 터키 농구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낸 후 NBA에 진출하여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그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서 NBA 우승을 경험했고, 유타 재즈에서는 팀의 핵심 선수이자 올스타로 성장했으며, 부상으로 인해 일찍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3.1. 터키 리그 시절 (1997-2002)
오쿠르는 1997년 오야크 르노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토파쉬에서 뛰었으며, 이 기간 동안 1999년과 2000년에 터키 농구 리그 챔피언십을 두 차례 우승했다. 또한 토파쉬 소속으로 1999년과 2000년에 터키 농구컵과 터키 농구 프레지덴셜 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팀의 성공에 기여했다. 2000년에는 에페스 필센으로 이적하여 2002년까지 활약했다. 에페스 필센에서 그는 2001-02 시즌 터키 농구 리그 우승을 추가했으며, 2001년과 2002년 터키 농구컵에서도 우승을 달성했다. 에페스 필센 소속으로 유로리그에도 출전했다. 터키 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에는 경기당 평균 13.5득점을 기록했다.
3.2.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2002-2004)
2001년 NBA 드래프트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의해 전체 38순위(2라운드)로 지명된 오쿠르는 2002-03 시즌부터 2003-04 시즌까지 두 시즌 동안 피스톤스에서 활약했다. 2003년 11월 7일 밀워키 벅스와의 경기에서는 12득점과 함께 개인 최고 기록인 18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피스톤스의 105대 99 승리를 이끌었다. 2004년 6월, 그는 2004 NBA 플레이오프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NBA 챔피언십 우승에 기여하며 터키인 최초의 NBA 챔피언이 되었다. 그러나 샐러리캡의 제약으로 인해 피스톤스는 오쿠르에게 최고 수준의 연봉을 제시할 수 없었고, 그는 유타 재즈와 6년 계약에 총 5000.00 만 USD에 달하는 계약을 맺고 이적하게 되었다.
3.3. 유타 재즈 (2004-2011)
2004년 7월 27일 유타 재즈와 계약한 오쿠르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7시즌 동안 유타에서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보냈다. 재즈에서 그는 센터와 파워 포워드 포지션을 소화했다. 재즈에서의 첫 시즌(2004-05)에는 82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이 중 25경기를 선발로 나섰다. 별명인 "메모"로 알려진 오쿠르는 유타에서의 두 번째 시즌(2005-06)에 경기당 평균 득점을 이전 시즌의 12.9점에서 18.0점으로 끌어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두 시즌 연속으로 82경기 전 경기에 선발 출전했는데, 이는 유타 재즈에서 유일한 기록이었다. 세 번째 시즌에도 유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2007년 NBA 올스타전에는 서부 콘퍼런스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그는 부상으로 빠진 앨런 아이버슨과 스티브 내시의 대체 선수로 레이 앨런과 함께 발탁되었으며, 이는 터키 선수로는 최초로 올스타전에 참가한 것이었다.
2009년 1월 12일, 오쿠르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경기에서 43득점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고, 팀은 120대 113으로 승리했다. 2009년 7월 10일에는 약 2100.00 만 USD 규모의 2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2010년 4월 17일, 덴버 너기츠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 도중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어 남은 플레이오프 경기는 물론, 그해 여름 터키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에도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2010년 12월 17일 코트로 복귀하여 뉴올리언스 호네츠와의 경기에서 2득점을 기록했다.
3.4. 말년 NBA 경력 및 은퇴 (2011-2012)
2011년 9월, 오쿠르는 튀르크 텔레콤과 계약을 맺었으며, 이 계약에는 2011년 NBA 락아웃이 해결되면 NBA로 복귀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2011년 12월 22일, 오쿠르는 2015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훗날 팻 코너턴 지명에 사용됨)과 맞교환되어 뉴저지 네츠로 트레이드되었다. 이로써 그는 전 재즈 팀 동료였던 데런 윌리엄스와 재회했다. 오쿠르는 네츠에서 17경기를 뛰며 평균 7.6득점, 4.8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12년 3월 15일, 오쿠르는 쇼니 윌리엄스와 2012년 1라운드 지명권(훗날 데미안 릴라드 지명에 사용됨)과 함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로 트레이드되었고, 이는 제럴드 월러스와의 맞트레이드의 일부였다. 그는 2012년 3월 21일 포틀랜드로부터 방출되었다. 이후 2012년 말, 오쿠르는 부상으로 인해 농구 선수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NBA 선수 경력의 마지막 2년 동안 총 30경기만을 소화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2012년 1월 25일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97대 90 승리 경기에서 11득점, 6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메멧 오쿠르는 주로 센터와 파워 포워드를 소화하는 빅맨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고 다재다능한 플레이 스타일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뛰어난 3점슛 능력을 바탕으로 코트의 공간을 창출하는 '스페이스 더 플로어' 유형의 선수로 평가받았다. 2005-06 시즌에는 80개의 3점슛을 성공시키며 그의 외곽슛 능력을 입증했다. 또한, 그는 빅맨임에도 불구하고 자유투 성공률이 매우 높아 커리어 내내 80%에 육박하는 높은 성공률을 기록했으며, 이는 센터 포지션 선수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해당한다. 이러한 다재다능함은 그가 공격에서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고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 데 큰 이점을 주었다.
5. NBA 경력 통계
메멧 오쿠르의 NBA 정규 시즌 및 플레이오프 경기의 주요 통계는 다음과 같다.
5.1. 정규 시즌
| 시즌 | 팀 | 경기 수 | 선발 수 | 경기당 출전 시간 | 야투 성공률 | 3점슛 성공률 | 자유투 성공률 | 경기당 리바운드 | 경기당 어시스트 | 경기당 스틸 | 경기당 블록 | 경기당 득점 |
|---|---|---|---|---|---|---|---|---|---|---|---|---|
| 2002-03 |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 72 | 9 | 19.0 | .426 | .339 | .733 | 4.7 | 1.0 | .3 | .5 | 6.9 |
| 2003-04 |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 71 | 33 | 22.3 | .463 | .375 | .775 | 5.9 | 1.0 | .5 | .9 | 9.6 |
| 2004-05 | 유타 재즈 | 82 | 25 | 28.1 | .468 | .270 | .850 | 7.5 | 2.0 | .4 | .8 | 12.9 |
| 2005-06 | 유타 재즈 | 82 | 82 | 35.9 | .460 | .342 | .780 | 9.1 | 2.4 | .5 | .9 | 18.0 |
| 2006-07 | 유타 재즈 | 80 | 80 | 33.3 | .462 | .384 | .765 | 7.2 | 2.0 | .5 | .5 | 17.6 |
| 2007-08 | 유타 재즈 | 72 | 72 | 33.2 | .445 | .388 | .804 | 7.7 | 2.0 | .8 | .4 | 14.5 |
| 2008-09 | 유타 재즈 | 72 | 72 | 33.5 | .485 | .446 | .817 | 7.7 | 1.7 | .8 | .7 | 17.0 |
| 2009-10 | 유타 재즈 | 73 | 73 | 29.4 | .458 | .385 | .820 | 7.1 | 1.6 | .5 | 1.1 | 13.5 |
| 2010-11 | 유타 재즈 | 13 | 0 | 12.9 | .355 | .313 | .750 | 2.3 | 1.5 | .3 | .3 | 4.9 |
| 2011-12 | 뉴저지 네츠 | 17 | 14 | 26.7 | .374 | .319 | .600 | 4.8 | 1.8 | .5 | .3 | 7.6 |
| 총합 | 634 | 460 | 29.1 | .458 | .375 | .797 | 7.0 | 1.7 | .5 | .7 | 13.5 | |
| 올스타 | 1 | 0 | 15.0 | 1.000 | .000 | .000 | 2.0 | 1.0 | .0 | .0 | 4.0 | |
5.2. 플레이오프
| 시즌 | 팀 | 경기 수 | 선발 수 | 경기당 출전 시간 | 야투 성공률 | 3점슛 성공률 | 자유투 성공률 | 경기당 리바운드 | 경기당 어시스트 | 경기당 스틸 | 경기당 블록 | 경기당 득점 |
|---|---|---|---|---|---|---|---|---|---|---|---|---|
| 2003 |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 17 | 0 | 19.0 | .438 | .538 | .531 | 4.1 | .8 | .7 | .7 | 5.5 |
| 2004 |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 22 | 0 | 11.5 | .470 | .400 | .692 | 2.8 | .4 | .2 | .4 | 3.7 |
| 2007 | 유타 재즈 | 17 | 17 | 34.4 | .388 | .316 | .786 | 7.8 | 1.8 | 1.4 | .9 | 11.8 |
| 2008 | 유타 재즈 | 12 | 12 | 38.5 | .423 | .373 | .773 | 11.8 | 1.9 | .7 | .7 | 15.4 |
| 2009 | 유타 재즈 | 2 | 2 | 21.5 | .167 | .333 | .750 | 5.0 | 2.0 | .0 | .5 | 4.0 |
| 2010 | 유타 재즈 | 1 | 1 | 11.0 | 1.000 | 1.000 | 1.000 | 2.0 | .0 | .0 | .0 | 7.0 |
| 총합 | 71 | 32 | 23.6 | .415 | .362 | .713 | 5.9 | 1.1 | .7 | .6 | 8.1 | |
6. 코칭 경력
선수 생활 은퇴 후, 메멧 오쿠르는 2014년부터 2016년 8월까지 유타 재즈의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2016년 9월 13일, 그는 피닉스 선즈의 선수 개발 코치로 부임하며 NBA 코칭 스태프에 합류한 최초의 터키인이 되었다. 피닉스 선즈는 오쿠르를 비롯해 캐나다 출신의 제이 트리아노를 영입하며 두 명의 외국인 코치가 동시에 팀에 합류하는 첫 사례를 만들었다. 코치 시절 오쿠르는 전 팀 동료였던 얼 왓슨 (당시 헤드 코치)과 전 코치였던 타이론 코빈 (당시 어시스턴트 코치)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7-18 시즌 초반 팀의 부진한 성적 (0승 3패)으로 인해 2017년 10월 22일, 그는 어시스턴트 코치인 네이트 비요크그렌과 선수 개발 코치인 제이슨 프레이저와 함께 해고되었다.
7. 개인 생활
메멧 오쿠르는 배우이자 전 미스 터키 결선 진출자인 옐리즈 찰르슈칸과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2007년 3월 21일에 태어난 딸 멜리사, 2010년 2월 19일에 태어난 아들 이이트 메멧 오쿠르, 그리고 2014년 11월 19일에 태어난 아들 메르트 메멧 오쿠르 등 세 자녀가 있다. 오쿠르와 그의 가족은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거주하고 있다.
8. 유산과 영향
메멧 오쿠르는 터키 농구계와 국제 농구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선구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터키인 최초로 NBA 챔피언십 우승을 경험하고 NBA 올스타전에 참가한 선수였다. 이는 터키 농구 선수들에게 NBA 진출과 성공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 역사적인 업적으로 기록된다. 또한, 선수 은퇴 후 피닉스 선즈의 코칭 스태프에 합류하며 터키인 최초의 NBA 코치가 되었다는 점도 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센터/파워 포워드 포지션에서 뛰어난 3점슛 능력을 겸비한 그의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은 현대 농구에서 스페이스 더 플로어의 중요성을 일찍이 보여주며, 빅맨의 역할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