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amateur career
마크 아이크혼은 어린 시절부터 학업과 야구 활동을 병행하며 프로 선수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1.1. Early life and education
마크 아이크혼은 1960년 11월 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많지 않지만, 학업과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성장했다.
1.2. Amateur baseball
아이크혼은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카브리요 칼리지에 재학 중이던 1979년 1월,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2라운드 전체 30번째로 지명되며 프로 야구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같은 해 5월 18일 블루제이스와 계약을 맺고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 Professional career
마크 아이크혼의 프로 경력은 부상으로 인한 투구 스타일의 혁신, 그리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의 전성기를 통해 두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는 과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2.1. Draft and minor leagues
1979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2라운드 30번째로 지명된 아이크혼은 입단 후 마이너리그 시스템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갔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루키 리그, 어드밴스드 A, 더블 A, 트리플 A를 거치며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2.2. Major League debut and injury
마크 아이크혼은 1982년 8월 20일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처음으로 승격하여 데뷔했다. 데뷔 시즌 그는 7경기에 선발 등판했지만, 빠른 공 위주의 투구는 메이저리그에서 통하지 않았다. 특히 9월 24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는 6⅓이닝 동안 퍼펙트 피칭을 이어갔음에도 불구하고 홈런을 허용하며 패전 투수가 되는 아쉬움을 겪었고, 결국 데뷔 시즌 승리를 기록하지 못했다.
시즌 종료 후 베네수엘라 윈터 리그에 참가한 아이크혼은 그곳에서 어깨 부상을 당했다. 이후 프랭크 조브 박사의 진단 결과,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 파열로 밝혀졌다. 이 부상은 그의 투구 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3. Development of unconventional pitching style
심각한 어깨 부상으로 인해 마크 아이크혼은 기존의 빠른 공 위주 투구 방식으로는 더 이상 효과적인 투구를 할 수 없었다. 이 부상은 그에게 프로 경력을 이어가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당시 투수 코치였던 앨 위드마와 캔자스시티 로열스 마이너리그 시절 댄 퀴젠베리를 지도했던 존 설리번 코치의 조언에 따라, 아이크혼은 쓰리쿼터 방식의 투구폼을 포기하고 독특한 사이드암/언더핸드 투구폼으로의 전환을 결심했다.
새로운 투구폼은 그가 공을 던질 때 팔 각도가 허리 아래로 내려가는 매우 낮은 위치에서 이루어졌다. 이 변화는 어깨 통증을 완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싱커, 슬라이더, 체인지업과 같은 변화구의 구위를 향상시켰다. 특히 슬라이더는 훨씬 큰 각도로 휘어지게 되었다. 메이저리그 투수로는 매우 낮은 구속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뛰어난 제구력과 예측하기 어려운 독특한 투구 동작은 아이크혼을 효과적인 투수로 재탄생시켰다. 그는 이로써 전형적인 강속구 투수가 아닌, 공의 움직임과 타이밍을 활용하는 연투파 투수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2.4. Success with the Toronto Blue Jays (1986-1988)
투구폼을 변경한 마크 아이크혼은 1986년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그는 그해 69경기에 구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1.72, 팀 최다 타이인 14승, 10 세이브를 기록하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구원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총 157이닝을 소화하는 등 매우 높은 이닝 소화력을 보였다.
그의 활약은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두드러졌다. 그는 1986년 아메리칸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지만, 규정 이닝에 5이닝이 부족하여 공식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지미 윌리엄스는 그에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5이닝을 추가로 던져 규정 이닝을 채울 기회를 주었지만, 아이크혼은 이를 거절했다. 이러한 뛰어난 성과로 그는 1986년 아메리칸 리그 신인 투수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블루제이스의 구원 투수 신인 기록인 평균자책점, 등판 경기 수, 승리, 탈삼진 부문에서 팀 신기록을 세웠다.
이듬해 1987년에는 아메리칸 리그 구원 투수 최다 등판 기록과 타이인 89경기에 출전하며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의 활약을 이어갔으나, 그의 투구폼이 도루를 허용하기 쉽다는 약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1989년에는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투구폼을 약간 변경했지만, 오히려 오른쪽 타자들에게 변화구가 쉽게 간파당하면서 성적이 저하되었다.
2.5. Transitions and later career (1989-1996)
1989년의 부진 이후 마크 아이크혼은 여러 팀을 오가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990년 3월 29일,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아이크혼의 보유권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매각했다. 그러나 브레이브스에서도 전년과 비슷한 저조한 성적을 보였고, 11월 20일 FA로 방출되었다.
같은 해 12월 19일, 아이크혼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으며 다시 아메리칸 리그로 돌아왔다. 에인절스에서 그는 이전에 던지기를 중단했던 포크볼을 다시 사용하며 구위를 회복했고, 1990년과 1991년에는 1986년 전성기에 준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1992년 7월 30일, 아이크혼은 롭 듀시와 그렉 마이어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다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하며 4년 만에 옛 팀으로 돌아왔다.
블루제이스에서 1992년과 1993년 두 차례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뒤, 1993년 11월 1일 그는 다시 FA가 되었다. 12월 14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계약을 체결했으며, 1994년에도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그러나 1995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시즌 전체를 결장했고, 같은 해 11월 8일 FA로 풀렸다.
1996년 2월 6일, 아이크혼은 다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계약을 맺고 24경기에 등판했지만, 6월부터 8월까지 대부분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 등 부상에 시달렸다. 결국 5.0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이전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후 1998년과 2000년에 마이너리그에서 잠시 활동하기도 했으나, 2000년 8월 17일에 공식적으로 프로 선수 경력을 마감했다.
2.6. World Series championships (1992, 1993)
마크 아이크혼은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달성한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1992년, 1993년)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1992년, 블루제이스는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에 올랐으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4승 2패로 누르고 창단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아이크혼은 이 월드 시리즈에서 한 경기에 등판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당시 주요 선수로는 팻 보더스(월드 시리즈 MVP), 로베르토 알로마(ALCS MVP), 데이비드 콘, 지미 키, 조 카터, 데이브 윈필드, 잭 모리스, 후안 구스만 등이 있었다.
이듬해 1993년에도 블루제이스는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물리친 뒤, 월드 시리즈에서는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4승 2패를 기록하며 2년 연속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특히 6차전에서는 조 카터가 역사적인 끝내기 3점 홈런을 터뜨리며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아이크혼은 이 시즌에도 팀의 주요 불펜 투수로서 월드 시리즈 한 경기에 등판하며 우승에 공헌했다. 당시 팀에는 폴 몰리터(월드 시리즈 MVP), 릭키 헨더슨, 데이브 스튜어트(ALCS MVP) 등 새로운 스타들이 합류해 팀의 전력을 강화했다.
2.7. Retirement
마크 아이크혼은 1996년 9월 14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소속으로 마지막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했다. 비록 그 후에도 1998년과 2000년에 마이너리그에서 잠시 활동하기도 했지만, 2000년 8월 17일에 공식적으로 프로 선수 경력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3. Playing style
마크 아이크혼의 투구 스타일은 메이저리그에서 흔치 않은 독특함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어깨 부상 이후 기존의 정통적인 오버핸드나 쓰리쿼터 방식 대신, 사이드암과 언더핸드 중간 지점에서 공을 던지는 투구폼을 개발했다. 이 투구폼은 그의 팔이 공을 놓는 순간 허리 아래로 내려가는 매우 낮은 각도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는 타자들에게 공의 궤적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의 투구는 메이저리그 투수 치고는 매우 느린 구속이 특징이었으나, 뛰어난 제구력과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불규칙적인 투구 동작으로 이를 보완했다。주요 구종으로는 싱커,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이 있었으며, 특히 슬라이더는 큰 각도로 휘어져 타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시절에는 이전에 사용하지 않던 포크볼을 다시 던지기 시작하며 구위를 회복하기도 했다. 이러한 독특한 투구 스타일 덕분에 그는 강속구 투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적인 구원 투수로 활약할 수 있었다.
4. Post-playing career
프로 야구 선수 경력을 마친 후, 마크 아이크혼은 야구계와 꾸준히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현재 캘리포니아주 앱토스에 위치한 앱토스 고등학교 야구팀의 투수 코치를 맡고 있다.
또한, 아이크혼은 그의 아들 케빈이 소속되어 있던 앱토스 리틀리그 팀의 코치로도 활동했다. 이 팀은 2002년 리틀리그 월드 시리즈 서부 지역 예선에서 우승하여 펜실베이니아주 윌리엄스포트에서 열린 리틀리그 월드 시리즈에 참가했는데, 이 이야기는 PBS의 다큐멘터리 영화 '스몰 볼(Small Ball영어)'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는 과거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함께 뛰었던 듀웨인 워드, 로이드 모스비, 캔디 말도나도, 제시 바필드, 켈리 그루버, 랜스 멀리닉스, 나이젤 윌슨, 폴 스폴잘리치 등 여러 동료들과 함께 야구 클리닉을 진행하며 야구 꿈나무들을 지도하고 있다.
5. Personal life and family
마크 아이크혼은 1960년 11월 21일에 태어났다. 그는 5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4명의 아들(케빈(1990년생), 브라이언(1991년생), 스티븐(1995년생), 데이비드(2001년생))과 1명의 딸(사라(1999년생))이 있다.
특히 그의 아들 케빈 아이크혼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2002년 리틀리그 월드 시리즈에 출전했던 케빈은 이후 산타클라라 대학교에 진학할 예정이었으나, 2008년 MLB 드래프트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3라운드 전체 104번째로 지명된 후 계약을 선택하며 프로에 입문했다. 2011년 1월 24일, 케빈은 아르만도 갈라라가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산하 조직으로 이적했다. 그는 2014년 시즌까지 뛰었으며, 마이너리그에서 총 89경기에 등판하여 26승 23패, 평균자책점 3.73의 기록을 남기고 선수 생활을 마쳤다.
6. Career statistics
마크 아이크혼은 11년간의 메이저리그 경력 동안 뛰어난 투구 능력과 안정적인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다음은 그의 주요 통계 자료이다.
연도 | 구단 | 경기 | 선발 | 완투 | 완봉 | 세이브 | 승 | 패 | 세이브 | 승률 | 타자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 사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
1982 | TOR | 7 | 7 | 0 | 0 | 0 | 0 | 3 | 0 | -- | ---- | 171 | 38.0 | 40 | 4 | 14 | 1 | 0 | 16 | 3 | 0 | 28 | 23 | 5.45 | 1.42 |
1986 | 69 | 0 | 0 | 0 | 0 | 14 | 6 | 10 | -- | .700 | 612 | 157.0 | 105 | 8 | 45 | 14 | 7 | 166 | 2 | 1 | 32 | 30 | 1.72 | 0.96 | |
1987 | 89 | 0 | 0 | 0 | 0 | 10 | 6 | 4 | -- | .625 | 540 | 127.2 | 110 | 14 | 52 | 13 | 6 | 96 | 3 | 1 | 47 | 45 | 3.17 | 1.27 | |
1988 | 37 | 0 | 0 | 0 | 0 | 0 | 3 | 1 | -- | ---- | 302 | 66.2 | 79 | 3 | 27 | 4 | 6 | 28 | 3 | 6 | 32 | 31 | 4.19 | 1.59 | |
1989 | ATL | 45 | 0 | 0 | 0 | 0 | 5 | 5 | 0 | -- | .500 | 286 | 68.1 | 70 | 6 | 19 | 8 | 1 | 49 | 0 | 1 | 36 | 33 | 4.35 | 1.30 |
1990 | CAL | 60 | 0 | 0 | 0 | 0 | 2 | 5 | 13 | -- | .286 | 374 | 84.2 | 98 | 2 | 23 | 0 | 6 | 69 | 2 | 0 | 36 | 29 | 3.08 | 1.43 |
1991 | 70 | 0 | 0 | 0 | 0 | 3 | 3 | 1 | -- | .500 | 311 | 81.2 | 63 | 2 | 13 | 1 | 2 | 49 | 0 | 0 | 21 | 18 | 1.98 | 0.93 | |
1992 | 42 | 0 | 0 | 0 | 0 | 2 | 4 | 2 | -- | .333 | 237 | 56.2 | 51 | 2 | 18 | 8 | 0 | 42 | 3 | 1 | 19 | 15 | 2.38 | 1.22 | |
TOR | 23 | 0 | 0 | 0 | 0 | 2 | 0 | 0 | -- | 1.000 | 135 | 31.0 | 35 | 1 | 7 | 0 | 2 | 19 | 6 | 0 | 15 | 15 | 4.36 | 1.35 | |
'92 합계 | 65 | 0 | 0 | 0 | 0 | 4 | 4 | 2 | -- | .500 | 372 | 87.2 | 86 | 3 | 25 | 8 | 2 | 61 | 9 | 1 | 34 | 30 | 3.08 | 1.27 | |
1993 | 54 | 0 | 0 | 0 | 0 | 3 | 1 | 0 | -- | .750 | 309 | 72.2 | 76 | 3 | 22 | 7 | 3 | 47 | 2 | 0 | 26 | 22 | 2.73 | 1.35 | |
1994 | BAL | 43 | 0 | 0 | 0 | 0 | 6 | 5 | 1 | -- | .545 | 290 | 71.0 | 62 | 1 | 19 | 4 | 5 | 35 | 1 | 0 | 19 | 17 | 2.16 | 1.14 |
1996 | CAL | 24 | 0 | 0 | 0 | 0 | 1 | 2 | 0 | -- | .333 | 135 | 30.1 | 36 | 3 | 11 | 3 | 2 | 24 | 0 | 1 | 17 | 17 | 5.04 | 1.55 |
MLB: 11년 | 563 | 7 | 0 | 0 | 0 | 48 | 43 | 32 | -- | .527 | 3702 | 885.2 | 825 | 49 | 270 | 63 | 40 | 640 | 25 | 11 | 328 | 295 | 3.00 | 1.24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해당 리그 최고 기록
- "--"는 기록 없음
연도 | 구단 | 투수 | |||||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1982 | TOR | 7 | 1 | 3 | 0 | 0 | 1.000 |
1986 | 69 | 16 | 21 | 0 | 1 | 1.000 | |
1987 | 89 | 2 | 30 | 1 | 2 | .970 | |
1988 | 37 | 5 | 13 | 0 | 1 | 1.000 | |
1990 | CAL | 60 | 7 | 16 | 0 | 0 | 1.000 |
1991 | 70 | 4 | 18 | 0 | 2 | 1.000 | |
1992 | 42 | 5 | 11 | 1 | 0 | .941 | |
TOR | 23 | 0 | 8 | 0 | 0 | 1.000 | |
'92 합계 | 65 | 5 | 19 | 1 | 0 | .960 | |
1993 | 54 | 7 | 18 | 0 | 1 | 1.000 | |
1994 | BAL | 43 | 3 | 19 | 0 | 1 | 1.000 |
1996 | CAL | 24 | 2 | 6 | 0 | 0 | 1.000 |
MLB | 563 | 61 | 180 | 2 | 9 | .992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해당 리그 최고 기록
6.1. Back numbers
- 28 (1982)
- 38 (1986년 ~ 1988년, 1994년)
- 49 (1989년)
- 45 (1990년 ~ 1992년 시즌 중)
- 34 (1992년 시즌 중)
- 48 (1992년 시즌 중 ~ 1993년)
- 58 (1996년)
- 56 (1997년)
7. Legacy
마크 아이크혼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독특한 투구 스타일로 인해 기억되는 선수이다. 어깨 부상이라는 역경을 딛고 사이드암/언더핸드 투구폼으로 전환하여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간 그의 사례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매우 낮은 구속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제구력과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예측 불가능한 투구 동작으로 효과적인 구원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의 활약은 그의 경력에 있어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그는 1986년 아메리칸 리그 신인 투수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며 블루제이스의 구원 투수 신인 기록들을 갈아치웠다. 또한 1992년과 1993년 월드 시리즈에서 블루제이스가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데 중요한 구원 투수로서 기여하며 팀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필드에서도 11년간의 메이저리그 경력 동안 수비율 0.992를 기록하며 243번의 총 처리 기회 중 단 2개의 실책만을 범하는 견고한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독창적인 투구 방식과 팀의 성공에 대한 기여는 그를 블루제이스 역사상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