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musical beginnings
마이크 매크리디의 어린 시절과 초기 음악 경력은 그의 음악적 여정의 중요한 기반을 형성했다.
1.1. Childhood and early education
매크리디는 플로리다주 펜서콜라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직후 가족과 함께 시애틀로 이주했다. 어린 시절 그의 부모님은 지미 헨드릭스와 카를로스 산타나의 음악을 즐겨 들었으며, 친구들이 키스와 에어로스미스를 듣는 동안에도 매크리디는 자주 봉고 드럼을 연주하곤 했다. 11세에 그는 첫 기타를 구매하고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1.2. Formation and dissolution of early bands
중학교 시절 매크리디는 워리어(Warrior)라는 이름의 첫 밴드를 결성했으며, 이 밴드는 곧 섀도우(Shadow)로 이름을 변경했다. 처음에는 루스벨트 고등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커버 곡을 연주하는 밴드였으나, 점차 오리지널 곡을 작곡하고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매크리디는 피자 가게에서 일하며 음악가 피트 드로지와 친분을 쌓았다. 1986년, 섀도우는 로스앤젤레스로 거점을 옮겨 음반 계약을 시도했으나, 매크리디에 따르면 "그곳에서는 몇몇 바텐더 앞에서 연주했을 뿐이었고, 비록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그렇게 좋은 밴드가 아니었고, 그곳에 가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초점을 잃고 크게 실망하여 시애틀로 돌아왔다." 1988년, 섀도우는 시애틀로 돌아온 직후 해체되었다.
1.3. Re-engagement with music
섀도우 해체 후 매크리디는 한동안 기타 연주에 대한 흥미를 잃고 "삶에 대해 너무 우울했다"고 밝혔다. 그는 머리를 자르고 지역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했으며, 밤에는 비디오 가게에서 일했다. 그는 친구 러스 리드너가 자신을 "대학 모드에서 벗어나 기타 연주로 다시 돌아오게 했다"고 언급했다. 매크리디는 워싱턴주 조지의 더 고지 원형극장에서 열린 스티비 레이 본 콘서트에 참석한 후 다시 기타를 잡는 영감을 얻었다. 매크리디는 "그가 'Couldn't Stand the Weather'를 시작하자마자 거대한 구름이 머리 위로 몰려왔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자 비가 그쳤다! 그것은 종교적인 경험과 같았고 나를 변화시켰다. 그것은 내가 빠져 있던 부정적인 사고방식에서 나를 끌어냈고, 다시 연주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에게 영원히 감사한다"고 말했다.
매크리디는 점차 기타 연주를 다시 시작했고, 마침내 러브 차일드(Love Chile)라는 다른 밴드에 합류했다. 어린 시절 친구인 스톤 고사드는 밴드의 공연 중 하나에 참석하여 매크리디가 스티비 레이 본의 'Couldn't Stand the Weather'를 연주하는 것을 듣고 그의 연주에 감탄했다. 고사드는 매크리디를 고등학교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둘은 서로 록 밴드 사진을 교환하곤 했다. 고사드의 밴드 마더 러브 본이 해체된 후, 그는 매크리디에게 함께 음악을 할 것을 제안했다. 몇 달간 고사드와 연습한 후, 매크리디는 고사드에게 제프 아벤트와 다시 연락할 것을 권유했고, 이들은 훗날 펄 잼이 되는 밴드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2. Main musical career
마이크 매크리디의 주요 음악 활동은 템플 오브 더 독과 펄 잼에서의 그의 중심적인 역할에 집중되어 있다.
2.1. Temple of the Dog
아벤트, 고사드, 매크리디 세 명은 자신들의 밴드를 결성하려던 중, 사운드가든의 크리스 코넬이 마더 러브 본의 앤드루 우드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결성한 프로젝트 템플 오브 더 독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우드는 24세의 나이로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했으며, 코넬은 그의 룸메이트였다. 밴드 라인업은 사운드가든의 드러머 맷 캐머런의 합류로 완성되었다.
밴드는 코넬이 우드의 사망 전 투어에서 작곡했던 곡들을 리허설하기 시작했고, 고사드와 아벤트가 작업했던 기존 데모 자료 중 일부를 재작업했다. 이는 매크리디의 첫 녹음 스튜디오 경험이었고, 그는 이 프로젝트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매크리디는 'Reach Down'에 장대한 4분 이상의 솔로 연주를 선보였다. 코넬에 따르면, 솔로 녹음 도중 매크리디의 헤드폰 모니터가 절반쯤 날아가 버렸고, 그는 백킹 트랙을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나머지 솔로를 연주했다. 매크리디는 이 트랙을 자신의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 중 하나로 꼽는다. 템플 오브 더 독 프로젝트에는 이후 펄 잼의 보컬이 되는 에디 베더도 참여했다. 베더는 아벤트와 고사드의 다음 밴드(이후 펄 잼이 됨)의 보컬 오디션을 위해 시애틀로 왔었다. 베더는 'Hunger Strike'에서 코넬과 듀엣을 불렀고, 다른 여러 곡에서 백그라운드 보컬을 제공했다. 밴드는 전체 앨범을 만들기에 충분한 재료가 있다고 판단했고, 1991년 4월 Temple of the Dog 앨범이 A&M 레코드를 통해 발매되었다.
2.2. Pearl Jam

펄 잼은 1990년 아벤트, 고사드, 매크리디에 의해 결성되었으며, 이후 에디 베더와 드러머 데이브 크루젠을 영입했다. 밴드는 원래 무키 블레이록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나, 1991년 에픽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이름을 변경해야 했다.
2.2.1. Formation and breakthrough
Ten 앨범 녹음이 완료된 후, 크루젠은 1991년 5월 펄 잼을 떠났다. 크루젠은 이전에 이디 브리켈 & 뉴 보헤미안스에서 활동했던 맷 챔벌린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챔벌린은 몇 차례 공연 후, 'Alive' 비디오 촬영에 참여한 것을 포함하여,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밴드에 합류하기 위해 떠났다. 챔벌린은 그의 후임으로 데이브 애브루제제를 추천했고, 애브루제제는 밴드에 합류하여 Ten 앨범을 지원하는 펄 잼의 나머지 라이브 공연을 소화했다.
Ten은 밴드를 주류로 이끌었고, 1990년대 가장 많이 팔린 얼터너티브 록 앨범 중 하나가 되었다. 밴드는 시애틀 음악계와 그런지 장르에 쏟아진 갑작스러운 인기와 관심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었다. 매크리디는 자주 솔로 연주를 선보였으며, (스티비 레이 본의 영향을 받아) 음악에 블루스적인 요소를 더했다. 싱글 'Jeremy'는 1993년 최우수 록 노래와 최우수 하드 록 퍼포먼스 부문에서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올랐다. 펄 잼은 'Jeremy'의 뮤직 비디오로 1993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비디오와 최우수 그룹 비디오를 포함한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Ten은 롤링 스톤 잡지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장 목록에서 207위에 올랐고, 'Jeremy'는 VH1의 1990년대 가장 위대한 노래 100곡 목록에서 11위에 올랐다.
2.2.2. Continued success and challenges
강도 높은 투어 일정을 마친 밴드는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Vs.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갔고, 1993년 발매되었다. Vs.는 발매 당시 일주일 만에 가장 많은 앨범 판매 기록을 세웠으며, 빌보드 200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Vs.는 1995년 최우수 록 앨범 부문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올랐다. Vs. 앨범의 노래 'Daughter'는 최우수 록 퍼포먼스 (듀오 또는 그룹 보컬 부문) 그래미 후보에 올랐고, 'Go'는 최우수 하드 록 퍼포먼스 그래미 후보에 올랐다.
성공의 압박감을 느낀 밴드는 뮤직 비디오 발매를 거부하는 등 앨범 홍보 수준을 낮추기로 결정했다. 1994년, 밴드는 티켓마스터에 대한 대대적인 보이콧을 시작했으며, 이는 3년간 지속되어 미국 내 밴드의 투어 능력을 제한했다. 같은 해 말 밴드는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Vitalogy를 발매했으며, 이는 밴드의 세 번째 연속 멀티 플래티넘 앨범이 되었다. 이 앨범은 1996년 올해의 앨범과 최우수 록 앨범 그래미 후보에 올랐다. Vitalogy는 롤링 스톤 잡지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장 목록에서 492위에 올랐다. 리드 싱글 'Spin the Black Circle'은 1996년 최우수 하드 록 퍼포먼스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다. 애브루제제는 Vitalogy 앨범에 참여했지만, 앨범이 발매되기 4개월 전인 1994년 8월에 해고되었다. 밴드는 애브루제제와 다른 멤버들 간의 정치적 견해 차이를 이유로 들었는데, 예를 들어 그는 티켓마스터 보이콧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베더의 절친한 친구이자 전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원년 드러머였던 잭 아이언스로 교체되었다.
2.2.3. Later albums and ongoing activities

밴드는 이후 1996년 No Code와 1998년 Yield를 발매했다. 1998년, 펄 잼의 미국 Yield Tour 이전에 아이언스는 투어에 대한 불만족으로 밴드를 떠났다. 펄 잼은 아이언스의 후임으로 전 사운드가든 드러머 맷 캐머런을 임시로 영입했지만, 그는 곧 영구적인 멤버가 되었다. Yield의 'Do the Evolution'은 최우수 하드 록 퍼포먼스 그래미 후보에 올랐다. 1998년, 펄 잼은 1960년대 발라드인 J. 프랭크 윌슨 앤 더 캐벌리어스의 유명한 'Last Kiss'를 커버하여 녹음했다. 이 곡은 밴드의 1998년 팬클럽 크리스마스 싱글로 발매되었지만, 대중의 요청으로 1999년 싱글로 공개되었다. 'Last Kiss'는 빌보드 차트에서 2위를 기록하며 밴드의 최고 차트 기록 싱글이 되었다.
2000년, 밴드는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Binaural을 발매했으며, 성공적인 공식 부틀렉 시리즈를 시작했다. 밴드는 2000년과 2001년에 72개의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여, 동시에 빌보드 200에 가장 많은 앨범을 데뷔시킨 기록을 세웠다. Binaural의 'Grievance'는 최우수 하드 록 퍼포먼스 그래미 후보에 올랐다. 밴드는 일곱 번째 스튜디오 앨범 Riot Act를 2002년에 발매했다. 펄 잼이 2003년 영화 빅 피쉬에 기여한 'Man of the Hour'는 2004년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다. 밴드의 여덟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동명의 Pearl Jam은 2006년에 발매되었다. 밴드는 이어서 Backspacer(2009), Lightning Bolt(2013), 그리고 Gigaton(2020)을 발매하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3. Other musical projects
펄 잼 활동 외에도 마이크 매크리디는 여러 중요한 밴드와 협업에 참여하여 그의 음악적 재능을 확장했다.
3.1. Mad Season
Vitalogy 앨범 제작 중 매크리디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재활 치료를 받던 중 더 라몬트 크랜스턴 밴드의 베이시스트 존 베이커 선더스를 만났다. 1994년, 둘은 시애틀로 돌아와 앨리스 인 체인스의 보컬리스트 레인 스탤리와 스크리밍 트리스의 드러머 배럿 마틴과 함께 사이드 밴드 '더 게이시 번치(The Gacy Bunch)'를 결성했다. 몇 차례 라이브 공연 후, 그들은 이름을 매드 시즌으로 변경했다. 밴드는 1995년 컬럼비아 레코드를 통해 앨범 Above를 발매했으며, 싱글 'River of Deceit'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밴드는 1999년 선더스가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후 해체되었다. 스탤리는 3년 후인 2002년에 헤로인과 코카인의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2010년 2월 28일, 매크리디는 시애틀의 쇼박스 앳 더 마켓에서 열린 "Hootenanny For Haiti" 공연에 참여하여 벨벳 리볼버, 제인스 어딕션, 전 건즈 앤 로지스 베이시스트 더프 맥케이건 등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에서는 벨린다 칼라일의 'Heaven Is a Place on Earth', 행크 윌리엄스의 'I'm So Lonesome I Could Cry', 롤링 스톤스의 'Dead Flowers' 등 여러 곡이 커버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커버는 매크리디가 매드 시즌 해체 이후 처음으로 'River of Deceit'를 연주한 것으로, 제프 라우스가 보컬을 맡았다.
Above는 2013년에 3디스크 디럭스 에디션으로 재발매되었으며, 마크 라네간이 보컬을 맡은 세 곡의 신곡이 포함된 바이닐 형식으로도 발매되었다. 2015년에는 밴드의 마지막 공연 20주년을 기념하여 Live at the Moore 1995가 12인치 바이닐로 발매되었다. 같은 해 초, 생존 멤버인 매크리디와 마틴은 시애틀 심포니와 함께 베나로야 홀에서 Sonic Evolution이라는 제목의 콘서트를 열었으며, 특별 게스트와 친구들이 참여했다. 이 공연은 이후 CD/12인치 바이닐로 발매되었다.
3.2. Neil Young Collaboration (Mirror Ball)
매크리디는 1995년 닐 영의 앨범 Mirror Ball에 펄 잼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 참여했으며, 이후 닐 영의 백킹 밴드의 일원으로 유럽에서 11회 공연 투어에 참여했다. 이 투어는 닐 영의 매니저 엘리엇 로버츠가 "우리가 살면서 경험한 가장 위대한 투어 중 하나"라고 칭할 정도로 매우 성공적이었다.
3.3. The Rockfords
매크리디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TV 쇼인 더 록포드 파일스의 이름을 딴 또 다른 사이드 밴드 더 록포즈에서도 활동했다. 이 밴드에는 섀도우 시절 매크리디의 고등학교 친구들과 굿니스의 보컬리스트 캐리 아크레가 참여했다. 밴드의 동명 데뷔 앨범은 2000년 에픽 레코드를 통해 발매되었다. 2021년 밴드는 자신들의 데뷔 앨범에 대한 권리를 확보했으며, 2022년에 디지털 플랫폼으로 재발매했다.
3.4. Solo work
매크리디는 2009년 KBZT 라디오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솔로 앨범 작업을 진행 중임을 밝힌 바 있다.
3.5. Walking Papers
매크리디는 당시 전 건즈 앤 로지스 베이시스트 더프 맥케이건, 스크리밍 트리스/매드 시즌 드러머 배럿 마틴, 그리고 가수 제프 에이젤이 포함된 밴드 워킹 페이퍼스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이 밴드는 2013년 8월에 앨범을 발매했다.
3.6. Levee Walkers
2016년, 더프 맥케이건, 배럿 마틴, 재즈 콜먼이 참여하는 매크리디의 새로운 프로젝트 '더 리비 워커스'가 매크리디의 레이블 하키톡터 레코즈를 통해 두 곡을 발매했다. 2017년에는 이 그룹이 가수 아이론 존스가 피처링한 'All Things Fade Away'라는 곡을 발매했다.
4. Musical style and equipment
마이크 매크리디의 독특한 기타 연주 스타일과 그가 사용하는 장비는 그의 음악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이다.
4.1. Musical style and influences
매크리디는 기술적인 관점보다는 "귀로" 연주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는 "저는 이런 기술적인 것에 대해 너무 무지합니다"라고 말했다. 펄 잼의 히트곡 작곡 과정의 복잡한 부분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 매크리디는 "저는 항상 귀로 해왔습니다. 솔직히, 저는 일반적인 인터뷰를 더 선호합니다. 기타 외의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흥미롭습니다. 저는 테크-헤드가 되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언급했다.
매크리디의 기타 스타일은 일반적으로 공격적인 블루스적인 성향을 띠며, 올뮤직의 그레그 프라토는 그의 연주를 "감성 지향적"이고 "뿌리 깊은" 것으로 묘사했다. 매크리디는 지미 헨드릭스, 스티비 레이 본, 데이비드 길모어, 키스 리처즈, 피트 타운젠드, 에디 반 헤일런을 자신의 가장 큰 음악적 영향으로 꼽았다. 그는 특히 헨드릭스를 "나의 첫 기타 영웅"이라고 했으며, 스티비 레이 본의 연주를 보고 "초월적인 경험"을 했다고 설명하며 그가 헨드릭스의 기술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왔다고 언급했다.
매크리디는 또한 열렬한 롤링 스톤스 팬이며, 이 밴드를 자신의 역대 최애 밴드라고 묘사했다. 그는 찰리 와츠의 죽음에 대해 "롤링 스톤스는 항상 나의 최애 밴드였고, 찰리는 미묘하고 묵직한 그루브의 엔진이었다"고 애도를 표했다. 이 외에도 그는 하트를 영향으로 꼽기도 했다.
매크리디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깁슨 레스폴, 깁슨 레스폴 주니어를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밴드가 처음 시작했을 때 고사드와 매크리디는 각각 리듬 기타리스트와 리드 기타리스트로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이러한 역동성은 에디 베더가 Vitalogy 시대에 리듬 기타를 더 많이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매크리디는 2006년에 "세 대의 기타가 있지만, 지금은 더 많은 공간이 있는 것 같다. 스톤은 뒤로 물러나 두 음 라인을 연주하고 에디는 파워 코드를 연주하며, 나는 그 모든 것에 맞춰 들어간다"고 말했다. 라이브 공연에 대해 매크리디는 "연주할 때 일종의 명상 상태에 빠질 수 있는데,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눈을 감고 하늘을 응시하는 나를 볼 수도 있다. 꾸며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크리디는 펄 잼의 작곡 과정에 더 많이 기여하게 되었다. 펄 잼을 위한 그의 첫 작곡 기여는 'Jeremy' 싱글의 B면에 수록된 'Yellow Ledbetter'를 공동 작곡한 것으로, 이 곡은 이후 펄 잼 라이브 콘서트에서 정기적인 마무리 곡이 되었다. Vs. 앨범의 공동 작곡과 No Code 앨범의 'Present Tense' 음악을 작곡한 후, 그는 1998년 밴드의 앨범 Yield의 세 트랙의 음악을 작곡했는데, 여기에는 밴드의 가장 큰 히트곡 중 하나인 'Given to Fly'가 포함된다. 펄 잼을 위한 매크리디의 단독 작곡 곡들 중 'Force of Nature'(Backspacer 앨범)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체 튜닝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Yield 앨범의 'Faithfull'에는 오픈 G 튜닝, 'Given to Fly'에는 오픈 D 튜닝의 변형, Pearl Jam 앨범의 'Marker in the Sand'에는 오픈 G 튜닝의 변형이 사용되었다. 매크리디는 2006년 밴드의 동명 앨범을 마무리하는 트랙인 'Inside Job'을 통해 밴드에 첫 가사 기여를 했다.
4.2. Equipment
매크리디는 다양한 기타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펄 잼 초기에는 주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사용했다. 그의 현재 기타 컬렉션에는 깁슨 레스폴과 깁슨 레스폴 주니어 등이 포함되어 있다.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는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매크리디는 빈티지 및 현대 모델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스트라토캐스터를 사용했으며, 심지어는 왼손잡이용 스트라토캐스터에 줄을 거꾸로 끼워 기울어진 브릿지 픽업이 의도된 높은 줄이 아닌 낮은 줄에서 더 많은 고음을 내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는 왼손잡이임에도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연주했던 지미 헨드릭스의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그의 가장 소중한 모델은 슬랩 로즈우드 프렛보드가 달린 1960년 스트라토캐스터로, 스티비 레이 본의 "Number One" 기타에서 영감을 받은 1959년 모델 빈티지 기타 시리즈 중 첫 번째이다.
2021년, 펜더 커스텀 샵의 마스터 빌더 빈센트 반 트리트는 매크리디의 귀중한 1959년 스트라토캐스터가 실제로는 1960년 모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같은 해, 펜더는 매크리디의 오리지널 선버스트를 정확하게 복제한 마이크 매크리디 1960 스트라토캐스터의 커스텀 샵 한정판을 생산했다. 2023년에는 펜더가 멕시코에서 제작된, 보다 저렴한 매크리디의 소중한 1960년 스트라토캐스터 시그니처 모델을 출시하기도 했다.
매크리디가 두 번째로 많이 사용하는 기타는 깁슨 레스폴이다. 그는 현재 'Alive', Yield 앨범의 'Brain of J.', 'Given to Fly' 등 라이브 공연에 이 기타를 사용한다. 그의 컬렉션 중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것은 1959년 스탠더드 모델로, 이전에는 밴 모리슨의 밴드 뎀의 기타리스트 짐 암스트롱이 소유했던 것이다. 그는 최근에야 싱글 픽업 깁슨 레스폴 주니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TV 옐로우 색상의 1959년 모델이다. 그는 또한 깁슨 레스폴 스페셜 모델들도 소유하고 있다. 그는 Vitalogy의 'Corduroy', Pearl Jam의 'World Wide Suicide', 'Marker in the Sand' 등 라이브 공연에서 펜더 텔레캐스터를 연주한다. 깁슨은 매크리디의 1959년 오리지널 레스폴 스탠더드에 대한 시그니처 한정판 버전을 실제 역사적 사양에 맞춰 생산했다.
;앰프
- 65Amps 엠파이어 22와트 헤드 (셀레스천 G12H30 & 알니코 블루 스피커가 장착된 65Amps 2x12 오픈백 스피커 캐비닛을 통해)
- 새틀라이트 아톰 36와트 헤드 (마샬 260와트 클로즈드백 4x12 캐비닛을 통해, 셀레스천 빈티지 30s 스피커 장착)
- 1963년 금발 펜더 베이스맨 AB165 (새비지 오디오 오픈백 2x12 캐비닛을 통해)
;페달보드
- MXR 커스텀 오디오 일렉트로닉스 MC-404 CAE 와우
- 일렉트로 하모닉스 스테레오 일렉트릭 미스트리스 플랜저
- 이그조틱 EP 부스트
- 아이바네즈 TS-9 튜브 스크리머 오버드라이브
- 다이아몬드 컴프레서
- 라인 6 DL-4 딜레이
- MXR 유니-바이브
- 얼스퀘이커 디바이시즈 애프터니스 V2 리버브
- MXR 카본 카피 아날로그 딜레이
- 일렉트로 하모닉스 POG2 폴리포닉 옥타브 제너레이터
- MXR 페이즈 90 페이저
- 레디얼 엔지니어링 JX44 에어 컨트롤
- MXR/CAE MC-403 파워 디스트리뷰터
5. Recognition and awards
마이크 매크리디의 경력은 비평가들의 찬사와 공식적인 영예를 통해 그의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5.1. Critical reception
펄 잼의 2006년 동명 앨범에 대한 리뷰에서 롤링 스톤 편집자 데이비드 프리케는 2003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인" 기사에서 매크리디와 펄 잼의 리듬 기타리스트 스톤 고사드를 모두 제외한 것이 "실수"였음을 인정했다. 2007년, 매크리디의 'Alive'와 'Yellow Ledbetter' 기타 솔로는 기타 월드의 "가장 위대한 기타 솔로 100선" 목록에 포함되었다. 2007년 2월, 매크리디와 고사드는 롤링 스톤의 "새로운 기타 신 20인" 목록에 "네 팔 달린 괴물"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포함되었다. 그는 롤링 스톤의 "가장 과소평가된 기타리스트 25인" 목록에서 6위에 올랐다. 또한, 얼티밋 기타의 "역대 가장 과소평가된 기타리스트" 목록에서는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2023년, 매크리디와 고사드는 롤링 스톤의 "역대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250인" 목록에서 124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5.2. Awards and honors
2018년 5월 10일, 매크리디는 뮤직케어스로부터 스티비 레이 본 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뮤직케어스에 대한 그의 헌신과 지지, 그리고 약물 중독 회복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대한 그의 헌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6. Personal life and advocacy
마이크 매크리디의 사생활은 그의 음악적 여정만큼이나 다양하며, 개인적인 건강 문제와 사회 운동 참여를 통해 그의 깊이를 보여준다.
6.1. Family and health issues
매크리디는 아내 애슐리 오코너와 세 자녀를 두고 있다. 2005년 기준으로 부부는 워싱턴주 시애틀에 거주하고 있었다. 매크리디는 21세에 크론병 진단을 받았으며, 이 질병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는 기존 질병 보유자에게 의료 보험을 의무화하는 환자보호 및 부담적정 보험법을 지지하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기도 했다。 2012년, 매크리디는 국민건강보험의 중요성에 대한 영상인 "Life is a Pre-existing Condition"을 제작했다. 매크리디는 크론병 및 대장염 재단의 북서부 지부를 위한 연례 콘서트를 개최하며, 이 행사에서 UFO 트리뷰트 밴드인 플라이트 투 마스(Flight to Mars)와 재결합한 섀도우 라인업으로 공연하기도 했다.
6.2. Substance abuse and recovery
시애틀 그런지 신의 많은 이들처럼, 매크리디 또한 두 차례의 약물 남용 문제를 겪었다. 첫 번째는 펄 잼의 1994년 앨범 Vitalogy 제작 기간 중이었다. 당시 매크리디는 약물과 알코올 중독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밴드 미팅에서 '마이크, 너무 취하는 것 아니야?'라고 말하곤 했지만, 우리는 모두 정말 좋은 친구들이고 서로를 사랑합니다. 저는 그들이 제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밴드에서 저를 내쫓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저는 너무 많이 망쳤고, 술에 취해 바보 같은 짓을 했습니다. 그들은 걱정했고... 저는 잠시 동안 금주하다가 다시 재발하곤 했습니다. 중독자들이 그렇듯이요... 모든 것이 터져버렸을 때,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 달 정도 금주했습니다... 아니, 반쯤 금주였죠. 거짓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커트 코베인 사건 이후 다시 재발했습니다. 그 사건은 모두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즉, 어떻게 자살이 유일한 탈출구인 우울증 지경에 이르는지..."
매크리디의 두 번째 약물 남용 문제는 펄 잼의 2000년 앨범 Binaural 녹음 기간 중에 발생했다.
"개인적인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루고 있던 저만의 문제였습니다. 힘든 시기였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죠. 당시 저는 처방약을 복용하고 있었고, 통증 때문에 중독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뮤직케어스에서 약물 중독 회복 과정을 돕는 헌신을 인정받아 스티비 레이 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6.3. Other interests and philanthropy
매크리디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작가는 존 스타인벡이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은 분노의 포도이다. 매크리디는 또한 열렬한 스포츠 팬이며, 시애틀 시호크스, 시애틀 매리너스, 시애틀 사운더스 FC의 평생 지지자이다.
그는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7년 4월 29일 시애틀의 키 아레나에서 만원 관중 앞에서 열린 비경쟁 테니스 행사 'Match for Africa'의 일환으로 로저 페더러의 자선 단체인 로저 페더러 재단을 위한 기금 모금 활동에 참여했다. 이 행사에서 매크리디는 존 이스너와 팀을 이루어 로저 페더러와 빌 게이츠 팀과 경쟁했다. 페더러와 게이츠 팀이 6-4로 승리했다. 매크리디는 또한 크론병 및 대장염 재단에 정기적으로 기부하며, 그들의 플래그 풋볼 토너먼트에 참여하기도 한다.
6.4. Photography
2017년, 매크리디는 1990년대 초 펄 잼 활동 시절부터 자신이 직접 촬영한 폴라로이드 사진집 Of Potato Heads and Polaroids: My Life Inside and Out of Pearl Jam을 파워하우스 북스를 통해 출판했다. 매크리디는 이 책을 "감성적인 여정"이라고 묘사했다. 책 속의 사진들은 밴드의 투어 모습, 닐 영, 데이브 그롤, 조이 라몬, 지미 페이지 등 동료 음악가들의 모습, 그리고 매크리디의 개인적인 삶을 기록하고 있다.
7. Discography
마이크 매크리디는 펄 잼에서의 활동 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와 협업을 통해 폭넓은 디스코그래피를 구축했다.
;템플 오브 더 독 디스코그래피
연도 | 제목 | 레이블 |
---|---|---|
1991 | Temple of the Dog | A&M |
;펄 잼 디스코그래피
- 자세한 내용은 펄 잼 문서 참고.
;매드 시즌 디스코그래피
연도 | 제목 | 레이블 | 트랙 |
---|---|---|---|
1995 | Above | 컬럼비아 | All |
Working Class Hero: A Tribute to John Lennon | 할리우드 | "I Don't Wanna Be a Soldier" | |
1996 | Bite Back: Live at Crocodile Cafe | 팝라마 | "River of Deceit" (라이브) |
2013 | Above (Deluxe Edition) | 컬럼비아/레거시 | |
2015 | Live at the Moore 1995 | 컬럼비아/레거시 | |
2015 | Seattle Symphony- Sonic Evolution (Live at Benaroya Hall) | 몽키렌치 |
;더 록포즈 디스코그래피
연도 | 제목 | 레이블 | 트랙 |
---|---|---|---|
2000 | Down to You: Music from the Miramax Motion Picture | 에픽 | "Silver Lining" |
The Rockfords | 에픽 | All | |
2003 | Live Seattle, WA 12/13/03 | 쿠팔라 | All |
2004 | Waiting... | 텐 클럽 | All |
;참여 및 협업
연도 | 아티스트 | 제목 | 레이블 | 트랙 |
---|---|---|---|---|
1992 | Lazy Susan | Twang | 실버 아이 | "Bored" |
1993 | 에디 베더 & 마이크 매크리디 with G. E. 스미스 | The 30th Anniversary Concert Celebration | 소니 | "Masters of War" (라이브) |
M.A.C.C. (마이크 매크리디, 제프 아벤트, 맷 캐머런, 크리스 코넬) | Stone Free: A Tribute to Jimi Hendrix | 리프라이즈/WEA | "Hey Baby (Land of the New Rising Sun)" | |
1995 | 닐 영 | Mirror Ball | 리프라이즈 | All |
1996 | 굿니스 with 마이크 매크리디 (as Petster) | Schoolhouse Rock! Rocks | 라이노/WEA | "Electricity, Electricity" |
$10,000 Gold Chain (매리앤 브레이든 of Green Apple Quick Step with 마이크 매크리디) | The Cable Guy: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 소니 | "Oh! Sweet Nuthin'" | |
스크리밍 트리스 | Dust | 에픽 | "Dying Days" | |
1997 | 투아타라 | Breaking the Ethers | 에픽 | "The Getaway" |
마크 에이첼 | West | 워너 브로스. | "Fresh Screwdriver" | |
더 마이너스 5 | The Lonesome Death of Buck McCoy | 할리우드 | Some | |
브래드 | Interiors | 소니 | "The Day Brings" | |
에디 베더 & 마이크 매크리디 | Tibetan Freedom Concert | 캐피틀 | "Yellow Ledbetter" (라이브) | |
1999 | 굿니스 | These Days | 굿-잉크 | "Catching Fireflies" |
2000 | 스틸워터 | Almost Famous: Music from the Motion Picture | 드림웍스 | "Fever Dog" |
2001 | 에디 베더 & 마이크 매크리디 with 닐 영 | America: A Tribute to Heroes | 인터스코프 | "Long Road" (라이브) |
2002 | 더 월플라워스 | Red Letter Days | 인터스코프 | "When You're on Top", "Everybody Out of the Water", "Too Late to Quit", "See You When I Get There", and "Everything I Need" |
2003 | 마이크 매크리디, 스톤 고사드, 콜 피터슨, 크리스 프리엘 | Live from Nowhere Near You | 펑크헤드 뮤직 | "Powerless" |
2004 | 하트 | Jupiters Darling | 소버린 | "I'm Fine" |
2005 | 스크리밍 트리스 | Ocean of Confusion: Songs of Screaming Trees 1989-1996 | 에픽 | "Dying Days" |
2006 | 피터 프램프턴 | Fingerprints | A&M | "Black Hole Sun" and "Blowin' Smoke" |
2008 | Kristen Ward | Drive Away | 머트 모언 뮤직 | "With You Again" |
2009 | 디어크스 벤틀리 | Feel That Fire | 캐피틀 내슈빌 | "Life on the Run" |
더 월플라워스 | Collected: 1996-2005 | 인터스코프 | "When You're on Top" | |
2010 | 마이크 매크리디 | 프린지 | - | "Northwest Passage" |
2011 | Tres Mts. | Three Mountains | 몽키렌치 | various |
2012 | 사운드가든 | King Animal | 유니버설 리퍼블릭 | "Eyelid's Mouth" |
2016 | 난두 헤이스 | Jardim-Pomar | 렐리카리오 | "Pra onde foi" |
2022 | 오지 오스본 | Patient Number 9 | 에픽 | "Immortal" |
8. See also
- 크론병을 진단받은 사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