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마마타 바네르지는 인도 서벵골주 콜카타에서 벵골 힌두 브라만 가문에서 프롬레슈와르 바네르지와 가예트리 데비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마마타가 17세 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그녀는 정치 생활 내내 검소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화려한 옷이나 장신구 대신 단순한 전통 벵골 면 사리인 '탄트'를 즐겨 입으며 독신으로 살았다.
1.1. 유년기 및 교육
바네르지는 1970년 데시반두 시슈 시크샬라이에서 고등 중등 교육위원회를 수료했다. 이후 조가마야 데비 칼리지에서 역사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캘커타 대학교에서 이슬람 역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스리 시크샤야탄 칼리지에서 교육학 학위를, 콜카타의 조게시 찬드라 초두리 법과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한때 바네르지는 '박사'라는 칭호를 이름 앞에 붙였는데, 이는 그녀가 이스트 조지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대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녀는 더 이상 '박사' 칭호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꾸준히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8년 1월 12일 캘커타 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D.Litt) 학위를 받았으며, 2023년 2월 6일에는 콜카타 세인트 자비에르 대학교에서 문학 및 예술 분야 기여를 인정받아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부바네스와르에 위치한 칼링가 산업기술대학교에서도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1.2. 초기 정치 활동
바네르지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정치에 입문했다. 조가마야 데비 칼리지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녀는 인도 국민회의 (I) 당의 학생 조직인 차트라 파리샤드 노조를 설립하여 전인도 민주 학생 조직을 물리치고 승리했다.
그녀는 서벵골주 인도 국민회의 (I) 당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으며 지역 정치 조직에서도 활동을 이어갔다. 1975년에는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자야프라카시 나라얀의 자동차 위에서 춤을 추는 시위를 벌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서벵골주 마힐라 회의 (인디라)의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당내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1984년에는 인도 청년 회의의 사무총장이 되었다.
2. 총리 취임 전 정치 경력
마마타 바네르지는 1970년대 인도 국민회의의 청년 정치인으로 시작하여 점차 전국적인 인물로 성장했으며, 1997년 자신만의 정당인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를 창당하며 서벵골주의 정치 지형을 뒤바꾸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의 정치 경력은 특히 토지 수용 반대 운동과 같은 대규모 사회 운동에서 두드러진다.
2.1. 인도 국민회의 시대 (1970년대-1997년)
바네르지는 1970년대에 젊은 여성으로서 인도 국민회의에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그녀는 1975년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자야프라카시 나라얀의 차량 위에서 시위를 벌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지역 국민회의 조직 내에서 빠르게 성장했으며,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서벵골주 마힐라 회의 (인디라)의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2.1.1. 부상과 초기 역할
1984년 총선에서 바네르지는 자다브푸르 의회 선거구에서 베테랑 공산주의 정치인 솜나트 차터지를 꺾고 승리하여 인도 역사상 가장 젊은 국회의원 중 한 명이 되었다. 같은 해 그녀는 인도 청년 회의의 사무총장이 되었다. 하지만 1989년 반(反)국민회의 바람 속에서 말리니 바타차랴 (인도 공산당 (마르크스주의))에게 의석을 잃었다. 그녀는 1991년 총선에서 콜카타 다크신 선거구에 정착하여 재선에 성공했으며, 이후 1996년, 1998년, 1999년, 2004년, 2009년 총선에서도 이 의석을 유지했다.
1991년 P. V. 나라심하 라오 총리 내각에서 그녀는 인적자원 개발부, 청소년 체육부, 여성 아동 개발부의 연방 국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스포츠 장관 재임 시, 그녀는 국가 스포츠 발전을 위한 제안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에 항의하며 콜카타 브리가드 퍼레이드 그라운드에서 집회를 열고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녀는 1993년 이 직책들에서 해임되었다. 1996년 4월, 그녀는 국민회의가 서벵골주에서 인도 공산당 (마르크스주의)의 꼭두각시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깨끗한 국민회의"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2.1.2. 주요 사건과 시위
1992년 12월, 바네르지는 인도 공산당 (마르크스주의) 간부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하는 장애인 여성 디팔리 바사크를 당시 총리 조티 바수가 있는 작가 건물로 데려갔다. 그러나 그녀는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총리가 되어서야만 그 건물에 다시 들어갈 것이라고 맹세했다.
1993년 7월 21일, 마마타 바네르지가 이끄는 주 청년 의회는 공산주의 정부의 "과학적인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유권자 신분증을 유일한 투표 서류로 만들 것을 요구하며 콜카타의 작가 건물로 항의 행진을 조직했다. 이 시위 도중 경찰의 발포로 13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서벵골주 총리 조티 바수는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이 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4년 수사에서 수샨타 차터지 전 오리사 고등법원장은 경찰의 대응을 "도발적이지 않고 위헌적"이라고 묘사하며, "위원회는 이 사건이 잘리안왈라 바그 학살보다 더 심각하다고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2.2. 트리나물 회의 창당 및 이끌기 (1997년-2011년)
마마타 바네르지는 1997년 인도 국민회의를 탈당하고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를 창당하면서 서벵골주에서 오랫동안 집권해온 공산주의 정부에 대항하는 주요 야당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 시기는 그녀가 중앙 정부 각료로서 활동하고, 싱구르와 난디그램 토지 수용 반대 운동 같은 대규모 사회 운동을 이끌며 대중적 지지를 확고히 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997년, 당시 서벵골주 국민회의 위원회 의장이었던 소멘 미트라와의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해 바네르지는 서벵골주 국민회의를 탈당하고 무쿨 로이와 함께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이 정당은 서벵골주에서 오랫동안 집권해온 공산주의 정부에 대항하는 주요 야당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했다. 1998년 12월 11일, 그녀는 여성 할당 법안에 반대하는 사마즈와디 당 소속 국회의원 다로가 프라사드 사로지의 깃을 잡고 국회 의사당에서 끌어내 논란을 일으켰다.
2.2.1. 연방 장관 역할
1999년, 바네르지는 인도 인민당이 이끄는 국민 민주 연합 (인도)(NDA) 정부에 합류하여 철도부 장관에 취임했다. 2000년, 그녀는 첫 철도 예산을 발표하며 자신의 고향인 서벵골주를 위한 많은 공약을 이행했다. 그녀는 뉴델리-시알다 간 격주 라지다니 익스프레스 열차와 서벵골 각 지역을 연결하는 네 개의 고속 열차(하우라-푸룰리아 루파시 방글 익스프레스, 시알다-뉴 잘파이구리 파다티크 익스프레스, 샬리마르-아드라 아라냐크 익스프레스, 시알다-아지메르 아난야 초고속 익스프레스, 시알다-암리차르 아칼 타크트 초고속 익스프레스)를 도입했다. 또한 푸네-하우라 아자드 힌드 익스프레스의 운행 빈도를 늘리고 최소 세 개의 고속 열차 서비스를 연장했다. 짧은 재임 기간 동안 디가-하우라 익스프레스 서비스 작업도 가속화되었다.
그녀는 관광 개발에도 힘썼는데, 다르질링 히말라야 철도 구간에 두 대의 추가 기관차를 도입하고 인도 철도 케이터링 및 관광 공사 설립을 제안했다. 그녀는 또한 인도가 트랜스-아시아 철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방글라데시와 네팔 간의 철도 연결이 재도입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총 2000-2001 회계연도에 19개의 새로운 열차를 도입했다. 2000년, 그녀는 아지트 쿠마르 판자와 함께 휘발유 가격 인상에 항의하며 사임했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사임을 철회했다.
2001년 초, 테헬카의 오퍼레이션 웨스트 엔드 폭로 이후, 바네르지는 정부 고위 관료들의 부패 혐의에 항의하며 NDA 내각에서 탈퇴하고 서벵골주 2001년 선거를 위해 국민회의와 동맹을 맺었다.
2003년 9월, 그녀는 아무런 직책 없이 다시 NDA 정부의 각료로 복귀했다. 2004년 1월 9일, 그녀는 석탄 및 광업부 장관직을 맡았다. 석탄 및 광업부 장관으로서 짧은 재임 기간 동안 정부는 국립 알루미늄 회사의 매각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2004년 5월 22일까지 석탄 및 광업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2004년 인도 총선에서 그녀의 당은 인도 인민당과 동맹을 맺었지만 선거에서 패배했고, 그녀는 서벵골주에서 당선된 유일한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 의원이었다. 2005년, 그녀의 당이 콜카타 지방 자치 단체의 통제권을 잃고 현직 시장 수브라타 무케르지가 당에서 이탈하면서 바네르지는 더 큰 타격을 입었다. 2006년에는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가 서벵골주 의회 선거에서 패배하여 현직 의원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 2006년 8월 4일, 바네르지는 로크 사바에서 방글라데시인들의 불법 침투에 대한 자신의 연기 동의가 적절한 형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솜나트 차터지 의장에 의해 거부되자, 로크 사바 부의장 차란지트 싱 아트왈에게 사임 서류를 던졌다.
2.2.2. 주요 운동과 선거 변화
2005년 10월 20일, 바네르지는 서벵골주 부다데브 바타차르지 정부의 산업 개발 정책에 따라 강제적인 토지 수용과 지역 농민들에게 자행된 잔혹 행위에 항의했다. 인도네시아에 기반을 둔 살림 그룹의 베니 산토소가 서벵골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고, 서벵골 주 정부는 하우라의 농지를 그에게 제공하여 시위를 촉발시켰다. 빗속에서 바네르지와 다른 트리나물 회의 회원들은 산토소가 도착한 타지 호텔 앞에서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 나중에 그녀와 지지자들은 산토소의 행렬을 따라갔다. 정부가 산토소를 예정보다 세 시간 일찍 도착하게 하면서 계획된 "검은 깃발" 시위는 모면되었다.
2006년 11월, 바네르지는 타타 모터스 자동차 공장 건설에 반대하는 집회를 위해 싱구르로 향하던 중 강제로 저지당했다. 바네르지는 서벵골 의회에 도착하여 현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녀는 의회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금요일에 당의 12시간 폐쇄를 발표했다. 이 사건 이후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 소속 의원들은 가구와 마이크를 부수고 서벵골 입법부 건물을 훼손하며 항의했다. 2006년 12월 14일 대규모 파업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얻은 것은 없었다. 12월 4일, 바네르지는 콜카타에서 정부의 강제 농지 수용에 항의하며 역사적인 26일간의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당시 A. P. J. 압둘 칼람 대통령은 그녀의 건강에 대해 우려하며, 당시 만모한 싱 총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칼람 대통령은 또한 "생명은 소중하다"며 바네르지에게 단식을 중단할 것을 호소했다. 만모한 싱 총리의 편지는 당시 서벵골 주지사 고팔크리슈나 간디에게 팩스로 전송되었고, 즉시 마마타에게 전달되었다. 편지를 받은 마마타는 12월 29일 자정 마침내 단식을 풀었다. 2016년 인도 대법원은 서벵골 좌익 전선 정부가 타타 모터스 공장을 위해 싱구르에서 997 acre의 토지를 수용한 것이 불법이라고 선언했다.
2007년에는 푸르바 메디니푸르 지구의 난디그램 시골 지역에 무장 경찰 대대가 진입하여 인도네시아 기반의 살림 그룹이 개발할 특수 경제 구역을 위해 1.00 만 acre의 토지를 수용하려는 서벵골 주 정부의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최소 14명의 마을 주민이 총에 맞아 사망하고 7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이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도 공산당 (마르크스주의) 간부들은 난디그램 침략 과정에서 300명의 여성과 소녀들을 성폭행하고 강간한 혐의를 받았다. 바네르지는 인도 총리 만모한 싱과 연방 내무부 장관 시브라지 파틸에게 난디그램에서 인도 공산당 (마르크스주의)이 조장하는 "국가 후원 폭력"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운동 기간 동안 그녀의 정치적 활동은 2011년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중앙 수사국 보고서는 부다데브 바타차르지가 경찰에게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며, 다른 모든 표준 작전 절차가 실패한 후에야 불법 집회를 해산하기 위해 발포했다고 진술한 인도 공산당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을 지지했다. 하지만 부다데브 바타차르지는 이전에 자신의 당원들에 의한 난디그램 폭력을 지지하며 "그들(야당)은 똑같이 갚음을 받았다"고 말했다. 난디그램 폭력 사태에 일부 지역 트리나물 회의 지도자들이 연루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2009년 총선 직전, 그녀는 인도 국민회의가 이끄는 통합 진보 연합과 동맹을 맺었다. 이 연합은 26개 의석을 확보했다. 바네르지는 중앙 내각에 철도부 장관(두 번째 임기)으로 합류했다. 2010년 서벵골주 지방선거에서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는 콜카타 지방 자치 단체에서 62석 차이로 승리했다.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는 또한 비단 나가르 공사에서 7석 차이로 승리했다. 2011년, 바네르지는 압도적인 다수표를 얻어 서벵골주의 총리직을 맡았다. 그녀의 당은 34년간 지속된 좌익 전선 정부의 통치를 종식시켰다.

2009년 총선에서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는 19석을 얻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국민회의와 SUCI의 동맹도 각각 6석과 1석을 얻어 좌익 정권 시작 이후 서벵골주에서 야당 중 최고의 성과를 기록했다. 그 전까지는 1984년 국민회의의 16석 승리가 야당으로서는 최고의 성과로 여겨졌다.
2009년, 마마타 바네르지는 두 번째로 철도부 장관이 되었다. 그녀의 초점은 다시 서벵골주에 맞춰졌다.

그녀는 인도 철도가 대도시를 연결하는 여러 무정차 두론토 익스프레스 열차와 여성 전용 열차를 포함한 여러 여객 열차를 도입하도록 이끌었다. 1994년부터 건설 중이던 잠무-바라물라선의 아난트나그-카지군드 구간은 그녀의 재임 기간 동안 개통되었다. 그녀는 또한 25 km 길이의 콜카타 메트로 1호선을 인도 철도의 독립적인 구역으로 선언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서벵골주 총리가 되기 위해 철도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녀는 "내가 철도를 떠나는 방식대로 잘 운영될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나의 후임자는 나의 모든 지지를 받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녀의 당에서 지명한 디네시 트리베디가 그녀의 뒤를 이어 철도부 장관이 되었다.
바네르지의 철도부 장관 재임 기간은 이후 많은 대형 발표들이 거의 진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되었다. 로이터 통신은 "그녀의 2년간의 철도부 장관 기록은 더 많은 여객 열차와 같은 인기 영합 정책에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더 많은 부채에 빠뜨렸다는 점에서 심하게 비판받았다"고 보도했다. 인도 철도는 그녀의 2년간의 재임 기간 동안 적자를 기록했다.
2023년에는 사크시 말리크, 비네시 포가트, 바즈랑 푸니아, 상기타 포가트 등 여러 올림픽 및 세계 선수권 대회 메달리스트 레슬링 선수들이 인도 레슬링 연맹 (WFI) 회장이자 인도 인민당 국회의원 브리지 부샨 싱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체포를 요구하며 델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서벵골주 총리 마마타 바네르지는 시위하는 레슬링 선수들을 지지하기 위해 콜카타 거리로 나섰다. 그녀는 "시위하는 레슬링 선수들이 정의를 얻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레슬링 선수들에게 계속 움직임을 이어갈 것을 요청할 것이다. 이 싸움은 삶을 위한, 독립을 위한, 인도주의적 정의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3. 서벵골주 총리
마마타 바네르지는 2011년 서벵골주 총리직에 취임한 이래 세 차례에 걸쳐 연임하며 주 정부의 수장으로서 주요 정책과 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녀의 재임 기간 동안 교육, 보건, 여성 인권, 빈곤층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이니셔티브들이 실행되었으나, 동시에 재정 스캔들, 통치 부실 의혹, 인권 문제 등 여러 논란과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3.1. 첫 번째 임기 (2011년-2016년)
2011년 서벵골주 총선에서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는 인도 사회주의 통일 센터 및 인도 국민회의와 연합하여 227석(전인도 트리나물 회의 184석, 인도 국민회의 42석, SUCI 1석)을 확보하며 현직 좌익 전선 정부를 상대로 승리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민주적으로 선출된 공산당 정부의 종식을 의미했다.

바네르지는 2011년 5월 20일 서벵골주 총리로 취임했다. 서벵골주의 첫 여성 총리로서, 그녀의 첫 결정 중 하나는 싱구르 농민들에게 400 acre의 토지를 돌려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내각은 싱구르의 비자발적인 농민들에게 400 acre를 돌려주기로 결정했다"며, "이 문제를 위한 서류를 준비하도록 부처에 지시했다. 라탄 타타가 원한다면 남은 600 acre에 공장을 세울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진행할지 고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고르카랜드 영토 관리국 설립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교육 및 보건 분야에서 다양한 개혁을 시작했다. 교육 분야 개혁 중 일부는 매월 첫날 교사들의 월급 지급을 보장하고 은퇴하는 교사들에게 더 빠른 연금 지급을 포함했다. 보건 분야에서는 바네르지가 "보건 인프라와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삼단계 개발 시스템이 착수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2015년 4월 30일, 유니세프 인도 대표는 나디아 지구를 전국 최초의 '노상 배변 없는(Open Defecation Free)' 지역으로 만든 주 정부를 축하했다.
2012년 10월 17일 성명에서 바네르지는 국내 강간 사건의 증가를 "남성과 여성 간의 자유로운 상호작용 증가" 탓으로 돌렸다. 그녀는 "예전에는 남녀가 손을 잡으면 부모에게 들켜 질책을 받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 개방적이다. 마치 개방된 시장에 개방된 선택지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러한 발언으로 전국 언론에서 비판을 받았다.
그녀는 또한 휘발유 가격 인상을 철회하고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소매 부문에서의 외국인 직접 투자(FDI)를 유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벵골주에서 법 집행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하우라 경찰청, 배럭포어 경찰청, 아산솔-두르가푸르 경찰청, 비단나가르 경찰청에 경찰청이 신설되었다. 콜카타 지방 자치 단체의 전체 지역은 콜카타 경찰의 통제 하에 놓였다.

바네르지는 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데 큰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콜카타 메트로의 여러 역 이름을 독립 운동가들의 이름으로 명명했으며, 앞으로 지어질 역에도 종교 지도자, 시인, 가수 등의 이름을 붙일 계획이다. 마마타 바네르지는 캘커타 고등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은 이맘에게 논란이 많은 수당(이만 바타)을 지급하기 시작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2년 2월 16일,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빌 게이츠는 서벵골 주 정부에 편지를 보내 바네르지와 그녀의 행정부가 소아마비 발생 보고 사례 없이 1년을 보낸 것에 대해 칭찬했다. 이 편지에서 이는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이정표라고 언급했다.
2012년 6월, 그녀는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의 당이 지지하는 A. P. J. 압둘 칼람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다. 칼람이 두 번째 출마를 거부한 후,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한 오랜 다툼 끝에 프라나브 무케르지를 지지하며, 자신이 무케르지의 "큰 팬"이며 그가 "점점 더 강해지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그녀는 야당 시절에는 '반드'(파업)를 적극적으로 지지했지만, 총리가 된 후에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녀의 재임 기간은 사라다 그룹 금융 스캔들로 인해 큰 오점을 남겼다. 이 금융 횡령 사건으로 인해 내각의 전 장관이었던 마단 미트라와 당 소속 국회의원 쿠날 고쉬가 투옥되었고, 여러 당 간부들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3.2. 두 번째 임기 (2016년-2021년)
2016년 의회 선거에서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는 마마타 바네르지 휘하에서 총 293석 중 211석을 얻어 압도적인 3분의 2 다수를 확보했다. 이는 서벵골주에서 1962년 이후 처음으로 동맹 없이 단독으로 승리한 집권당이 되었다.

2017년, 그녀의 정부가 시작한 칸야슈리 프라칼파라는 계획은 62개국 552개 사회 부문 계획 중 유엔으로부터 최고로 평가받았다.
3.3. 세 번째 임기 (2021년-현재)
2021년 의회 선거에서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는 압도적인 3분의 2 다수를 확보했다. 그러나 난디그램 의석에서 인도 인민당의 수벤두 아디카리에게 1,956표 차이로 패배했다. 그녀는 이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으며, 해당 문제는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녀의 당이 총 292석 중 213석을 얻었기 때문에 그녀는 서벵골주 총리로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이후 라지 바반에서 자그딥 단카르에게 사임서를 제출했다. 그녀는 2021년 5월 5일 총리로 취임했다. 그녀의 당은 이후 남은 2석을 얻었고, 그녀 자신은 바바니푸르 보궐선거에서 58,835표라는 큰 차이로 승리했다. 그녀는 10월 7일 의원으로 취임했다.

당선 후, 그녀는 공약에 따라 락슈미르 반다르라는 제도를 시작했다. 이 제도에서는 60세 미만의 여성들에게 일반 계층은 500 INR, 소수 민족은 1000 INR의 기본 재정 지원이 제공되었다. 이 제도는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그녀의 리더십 아래 학생 신용카드 제도도 추진되었다. 이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고등 교육을 이수하지 못하는 지적인 학생들에게 대출 형태로 재정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대출 한도는 서벵골주 정부의 명의로 10 INR까지였다.
2021년 11월 30일, 그녀는 전임 총리인 부다데브 바타차르지를 제치고 서벵골주에서 세 번째로 오래 재임한 총리가 되었다. 만약 마마타가 2025년 10월 26일까지 재임한다면, 조티 바수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 재임한 총리가 되어 비단 찬드라 로이를 넘어설 것이며, 2025년 5월 16일까지 재임한다면 실라 딕싯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 재임한 여성 총리가 되어 J. 자야랄리타를 넘어설 것이다.
2021년, 마마타 바네르지는 로마에서 열리는 '세계 평화 회의'에 초청받았다. 그녀는 이 행사에 초청받은 유일한 인도인이었다. 그러나 9월, 인도 외교부는 그녀의 참석을 불허했는데, 그 이유는 해당 행사가 "주 총리의 참여에 적합한 지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바네르지는 이에 대해 "질투"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인도 인민당 국회의원 수브라마니안 스와미는 바네르지의 로마 방문 취소에 대해 모디 정부를 맹렬히 비난했다. 인도 외교관 K. P. 파비안에 따르면, 외교부가 제시한 이유는 설득력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12월에는 바네르지가 네팔을 방문하는 것이 외교부에 의해 불허되었다.
타임지는 2021년 9월 15일 '2021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연례 목록을 발표했으며, 이 목록에는 마마타 바네르지도 포함되었다.
3.4. 정책 및 이니셔티브
마마타 바네르지는 서벵골주 총리로서 교육, 보건, 여성 인권, 빈곤층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인 정책과 이니셔티브를 추진했다. 그녀의 행정부는 특히 사회 복지와 인프라 개선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는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다.
- 교육 개혁**: 교사들의 월급을 매월 첫날 지급하도록 보장하고, 은퇴하는 교사들에게 더 빠른 연금 지급을 가능하게 하여 교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했다.
- 보건 시스템 개선**: "삼단계 개발 시스템"을 통해 보건 인프라와 서비스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실제로 나디아 지구는 그녀의 재임 기간 동안 유니세프로부터 인도 최초의 '노상 배변 없는(Open Defecation Free)' 지역으로 인정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 고르카랜드 영토 관리국 설립**: 고르카족의 자치 요구를 수용하여 고르카랜드 영토 관리국을 설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여성 및 빈곤층 지원**:
- 칸야슈리 프라칼파 (Kanyashree Prakalpa): 소녀들의 교육과 조혼 방지를 위한 이 사회 복지 제도는 2017년 유엔으로부터 62개국 552개 사회 부문 계획 중 최고로 평가받았다.
- 락슈미르 반다르 (Lakshmir Bhandar): 2021년 당선 후 시작된 이 제도는 60세 미만 여성들에게 재정 지원을 제공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일반 계층은 500 INR, 소수 민족은 1000 INR을 지원받았다.
- 학생 지원**: 학생 신용카드 제도를 도입하여 재정적 어려움으로 고등 교육을 이수하지 못하는 지적인 학생들에게 최대 10 INR의 대출을 지원함으로써 교육 기회를 확대했다.
- 법 집행 및 치안 개선**: 하우라 경찰청, 배럭포어 경찰청, 아산솔-두르가푸르 경찰청, 비단나가르 경찰청에 새로운 경찰청을 신설하고, 콜카타 지방 자치 단체 전체 지역을 콜카타 경찰의 통제 하에 두어 치안 상황을 개선하려 노력했다.
- 경제 정책**: 휘발유 가격 인상을 철회하고,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소매 부문에서의 외국인 직접 투자(FDI)를 유보하는 등 서민 경제에 민감한 정책을 펼쳤다.
- 문화 진흥**: 콜카타 메트로의 여러 역 이름을 독립 운동가들의 이름으로 명명하는 등 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데 관심을 보였다.
4. 논란과 비판
총리 재임 기간 동안 마마타 바네르지 정부는 여러 주요 논란과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재정 스캔들, 특정 집단에 대한 우대 의혹, 팬데믹 대응의 미흡함, 그리고 최근의 인권 유린 사건들은 그녀의 통치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4.1. 재정 스캔들
사라다 그룹 금융 스캔들과 로즈 밸리 금융 스캔들은 그녀의 재임 기간 동안 드러났으며, 그녀의 그림이 해당 회사에 판매된 사실이 법 집행 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그녀의 그림 중 하나는 사라다 스캔들의 핵심 인물인 수디프토 센에게 1.8 INR에 판매되었고, 그녀의 그림 20점이 다른 사라다 그룹 주주들로부터 압수되었다.
그녀의 재임 기간 동안 중앙 수사국 (CBI) 관계자들이 콜카타에 도착하여 사라다 그룹 금융 스캔들을 조사하려 하자 그녀가 CBI 관계자들의 체포를 명령하면서 인도의 연방 시스템에 도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CBI의 콜카타 경찰청장 체포 시도 또한 연방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4.2. 특혜 및 통치 부실 의혹
마마타 바네르지와 그녀의 정부는 야당을 포함한 여러 단체로부터 수차례 "무슬림 우대" 정책을 펼쳤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지지자들은 "디디는 모든 사람을 위해 일하며 힌두교도와 무슬림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이러한 주장을 반박한다. 마마타 바네르지는 이맘에게 논란이 많은 수당(이만 바타)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으로 비판을 받았다. 이 수당은 캘커타 고등법원에 의해 위헌으로 판결되었고, 서벵골 주 정부는 주 내 수천 명의 이맘과 무아딘에 대한 월별 수당 지급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2016년 10월, 서벵골 주 정부는 두르가 푸자 축제 침수 행사를 오후 4시 이후 금지했다. 두르가 푸자는 10월 12일, 무하람은 10월 13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이는 서벵골 주민들 중 일부에게 바네르지 정부의 "무슬림 우대" 정책의 또 다른 예시로 여겨졌다. 캘커타 고등법원은 이 결정을 뒤집고 이를 "소수 민족을 달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4.3. 코로나19 대응
바네르지와 그녀의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널리 받았으며, 야당, 비평가, 많은 의사들로부터 사실을 은폐하고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며 데이터를 잘못 보고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야당은 마마타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회유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서벵골 주 정부는 또한 국립 콜레라 및 장질환 연구소(NICED)에 충분한 샘플을 보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나중에 병원에서 휴대폰 사용을 금지했다. 그러나 마마타 바네르지는 인도 인민당의 IT 부서가 "가짜 뉴스를 사용하여 서벵골 보건부를 비방했다"고 비난했다. 봉쇄 기간 동안 가짜 뉴스를 유포한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서벵골 인도 인민당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서벵골의 코로나19 사망자에 대해 "잘못된 경보"를 울렸다는 이유로 수사 보고서(FIR)가 제출되었다.
4.4. 2024년 RG 카르 병원 강간 살인 사건
바네르지는 RG 카르 병원 강간 살인 사건에서 젊은 수련의 강간 및 살인과 그에 대한 은폐 의혹으로 널리 비판받았다. 그녀는 현재 중앙 수사국 (CBI)의 조사를 받고 있는 전 교장 산디프 고쉬를 보호하려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피해자 의사의 부모는 바네르지가 사건에 대해 적절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그녀의 무대응을 비판했다.
4.5. 산데시칼리 사건
2024년 2월, 산데시칼리 마을의 여러 여성들이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 지역 블록 지도자이자 유력자로 알려진 셰이크 샤자한, 우탐 사르다르, 시부 하자라가 자신들을 성폭행하고 강간했다고 폭로했다. 인도 인민당 지도자들은 마마타 바네르지가 이 범죄에 대해 침묵하고 범죄 정치인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더욱이 산데시칼리를 방문했던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 지도자 파르타 보우믹은 폭행 주장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셰이크 샤자한은 집행국 관리들이 부패 혐의로 그를 체포하려 했을 때 그의 지지자들에게 공격을 받고 도피 중이었다. 2024년 2월 29일 오전 5시 30분(IST)경, 샤자한은 북 24 파르가나스의 미나칸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5. 개인 생활과 대중적 이미지
마마타 바네르지는 정치 생활 내내 대중적으로 검소한 생활 방식을 유지해왔다. 그녀는 단순한 전통 벵골 복장을 하고 사치를 피한다. 2019년 4월 인터뷰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정치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바네르지가 매년 자신이 고른 쿠르타와 과자를 자신에게 보낸다고 말했다. 호주 대사 배리 오파렐은 비자야다샤미를 맞아 그녀가 보낸 과자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2019년 9월, 모디 총리의 부인 자쇼다벤 모디가 콜카타를 떠날 때, 마마타는 콜카타 공항에서 그녀를 만나 사리를 선물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힌두교도라고 밝힌다. 바네르지는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예술가이다. 그녀의 그림 300점은 9 INR에 팔렸다. 2012년 타임지는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2012년 9월 블룸버그 마켓츠지는 그녀를 '금융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2018년에는 스코치 올해의 총리상을 수상했다. 바네르지는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인한 봉쇄 기간 동안 콜카타 거리로 나와 일반 대중에게 인식 제고 활동을 펼쳤다. 종교적 화합을 호소하면서 바네르지는 "종교는 개인적인 것이지만, 축제는 보편적인 것이다"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강조했다.
야슈완트 신하는 마마타가 칸다하르 납치 위기 당시 협상 전략의 일환으로 인질이 되겠다고 제안했다고 밝히며 "그녀는 나라를 위해 궁극적인 희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2021년, 마마타 바네르지는 로마에서 열리는 '세계 평화 회의'에 초청받았다. 그녀는 이 행사에 초청받은 유일한 인도인이었다.
6. 문학 및 예술 활동
마마타 바네르지는 정치 활동 외에도 문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녀는 독학으로 그림과 시를 창작하는 등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이며, 자신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녀가 저술한 수많은 책들이 출판되었다. 2022년에는 946편의 시로 구성된 '카비타 비탄(Kabita Bitan)'으로 파스침방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또한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그림은 여러 차례 경매에 부쳐지기도 했다.
그녀는 또한 작사가이며, 그녀의 작품들은 주로 '두르가 푸자'와 '조국'을 주제로 한다. 슈레야 고샬이 부른 '마 고 투미 사르보자닌(Maa Go Tumi Sarbojanin)'은 그녀의 가장 인기 있는 노래 중 하나이다.
7. 수상 및 인정
마마타 바네르지는 자신의 정치적 업적과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아 국내외에서 다양한 상과 표창을 받았다.
- 2012년: 타임지는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 2012년 9월: 블룸버그 마켓츠지는 그녀를 '금융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 2017년: 그녀의 정부가 시작한 칸야슈리 프라칼파 계획은 유엔으로부터 62개국 552개 사회 부문 계획 중 최고로 평가받았다.
- 2018년: 스코치 올해의 총리상(Skoch Chief Minister of the Year Award)을 수상했다.
- 2021년: 타임지는 그녀를 '2021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목록에 다시 포함시켰다.
- 명예 학위: 칼링가 산업기술대학교, 캘커타 대학교 (2018년), 콜카타 세인트 자비에르 대학교 (2023년)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8. 선거 이력
마마타 바네르지의 정치 경력은 로크 사바와 서벵골주 의회 선거에서 여러 차례 승리와 패배를 경험하며 점철되어 있다. 그녀의 선거 이력은 그녀가 각 선거구에서 얻은 득표율과 결과를 통해 잘 드러난다.
8.1. 로크 사바 선거
연도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 | 결과 | |
---|---|---|---|---|---|---|
1984 | 자다브푸르 | 인도 국민회의 | 331,618 | 50.87 | 승리 | |
1989 | 410,288 | 46.67 | 패배 | |||
1991 | 콜카타 다크신 | 인도 국민회의 | 367,896 | 52.46 | 승리 | |
1996 | 438,252 | 52.50 | 승리 | |||
1998 |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 | 503,551 | 59.37 | 승리 | ||
1999 | 469,103 | 58.26 | 승리 | |||
2004 | 393,561 | 51.10 | 승리 | |||
2009 | 576,045 | 57.19 | 승리 |
8.2. 서벵골주 의회 선거
연도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 | 결과 | |
---|---|---|---|---|---|---|
2011^ | 바바니푸르 |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 | 73,635 | 77.46 | 승리 | |
2016 | 65,520 | 47.67 | 승리 | |||
2021 | 난디그램 | 인도 인민당 | 108,808 | 47.64 | 패배 | |
2021^ | 바바니푸르 |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 | 85,263 | 71.90 | 승리 |
^ 보궐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