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마리온 슈타인(Marion Stein영어)으로 널리 알려진 마리아 도나타 나네타 파울리나 구스타파 에르비나 빌헬미네 슈타인(Maria Donata Nanetta Paulina Gustava Erwina Wilhelmine Stein독일어, 1926년 10월 18일 ~ 2014년 3월 6일)은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콘서트 피아니스트이다. 그녀는 하우드 백작 조지 라셀즈와의 첫 번째 결혼 기간 동안 '하우드 백작 부인 마리온 라셀즈'로 불렸으며, 영국 왕실의 일원이었다. 이혼 후에는 자유당 당수였던 제레미 소프와 재혼하여 '마리온 소프'로 알려졌다. 슈타인은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공동 설립하고 하우드 하우스에서 문화 행사를 주최하는 등 음악계와 문화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개인적인 삶에서는 두 번의 결혼을 통해 복잡한 관계와 대중의 시선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남편 제레미 소프의 정치적 스캔들 당시 흔들림 없는 지지를 보내며 강한 회복력과 충성심을 보여주었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마리온 슈타인은 1926년 10월 1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 가정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소피 바흐만이었고, 아버지는 저명한 음악가 에르빈 슈타인이었다. 슈타인 가족은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38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이주했다.
2.1. 유년기 및 교육
영국으로 이주한 후, 마리온 슈타인은 왕립음악원에 입학하여 음악 교육을 받았다. 이곳에서 그녀는 훗날 세계적인 작곡가가 되는 벤저민 브리튼과 깊은 우정을 쌓으며 음악적 기초를 다졌다.
3. 음악 경력 및 문화 활동
마리온 슈타인은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 외에도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영국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공동 설립자로서 음악 교육 발전에 기여했으며, 하우드 하우스의 안주인으로서 문화 행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3.1.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
왕립음악원에서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은 마리온 슈타인은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 주목받으며 음악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3.2. 벤저민 브리튼과의 교류
마리온 슈타인과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은 왕립음악원 시절부터 돈독한 우정을 유지했다. 1950년 3월, 슈타인은 브리튼의 잉글리시 오페라 그룹을 돕기 위해 오페라에서 영감을 받은 가장 무도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서는 프레데릭 애슈턴과 모이라 시어러가 발레 '파사드'의 탱고를 공연하기도 했다. 같은 해 9월, 그녀는 리즈 3년 음악제에 브리튼의 공연이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임신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참석할 계획이라고 보도될 정도로 브리튼의 음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3.3. 하우드 하우스에서의 역할
1949년, 마리온 슈타인은 하우드 백작 조지 라셀즈와 결혼하며 리즈 북부에 위치한 팔라디오 건축 양식의 대저택 하우드 하우스의 안주인이 되었다. 그녀는 시어머니인 메리 왕녀의 후원을 받으며 하우드 하우스에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주최하는 데 전념했다. 이는 그녀가 단순히 귀족 부인이 아닌, 문화계의 적극적인 후원자로서 활동했음을 보여준다.
3.4.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공동 설립
마리온 슈타인의 가장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1961년 패니 워터맨과 함께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공동 설립한 것이다. 이 콩쿠르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 국제적인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음악 교육과 인재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슈타인은 또한 워터맨과 함께 성공적인 피아노 교본인 '피아노 레슨'을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3.5. 기타 문화 활동 및 미디어 출연
마리온 슈타인은 음악 활동 외에도 다양한 미디어에 출연하며 대중과 소통했다. 1973년에는 BBC 라디오 4의 인기 프로그램 '데저트 아일랜드 디스크스'에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BBC 음악 퀴즈 프로그램 '페이스 더 뮤직'의 패널로도 종종 참여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그녀가 단순히 클래식 음악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준다.
4. 개인적인 삶
마리온 슈타인은 두 번의 결혼을 통해 영국 사회의 저명한 인물들과 인연을 맺었으며, 특히 두 번째 남편인 제레미 소프의 정치적 스캔들 속에서 그녀의 개인적인 삶은 큰 주목을 받았다.
4.1. 첫 번째 결혼: 조지 라셀즈
마리온 슈타인은 1949년 9월 29일 올드버러 페스티벌에서 만난 조지 라셀즈와 첫 번째 결혼을 했다. 조지 라셀즈는 메리 왕녀의 아들이자 조지 5세의 손자, 에드워드 8세와 조지 6세의 조카, 그리고 엘리자베스 2세의 사촌으로, 영국 왕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 결혼으로 마리온은 하우드 백작 부인이 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세 아들이 태어났다.
- 데이비드 라셀즈 (1950년 10월 21일 출생)
- 제임스 라셀즈 (1953년 10월 5일 출생)
- 제레미 라셀즈 (1955년 2월 14일 출생)
그러나 1959년경, 조지 라셀즈가 바이올리니스트 패트리샤 터크웰과 불륜 관계를 맺으면서 부부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마리온은 처음에는 이혼을 거부했지만, 조지 라셀즈가 터크웰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자 결국 1967년에 이혼에 동의했다. 조지 라셀즈의 불륜과 재혼은 그를 수년 동안 사교계에서 배척받게 만들었으며, 10년 동안 왕실 행사에 초대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4.2. 두 번째 결혼: 제레미 소프
마리온 슈타인은 1973년 3월 14일 하원의원이자 자유당 당수였던 제레미 소프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소프는 1970년 교통사고로 첫 번째 부인 캐롤라인을 잃은 상태였다. 두 사람은 공동의 지인인 모이라 림파니의 소개로 만났다. 마리온은 1970년대 후반에 불거진 이른바 '소프 사건'이라고 불리는 정치적 스캔들 내내 남편 소프의 곁을 굳건히 지지하며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여주었다. 1980년대 중반, 제레미 소프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고, 마리온 역시 말년에는 거동에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쇠약해질 때까지 남편을 간호했다.
5. 수상 및 인정
마리온 슈타인은 음악, 특히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 Command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수훈했다.
6. 사망
마리온 슈타인은 2014년 3월 6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의 남편 제레미 소프는 그녀가 사망한 지 9개월 후인 같은 해 12월 4일에 사망했다.
7. 평가 및 영향
마리온 슈타인은 오스트리아 태생의 피아니스트로서 영국 음악계와 문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공동 설립하여 젊은 음악가들에게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고 음악 교육 발전에 기여했으며, 하우드 하우스의 안주인으로서 활발한 문화 후원 활동을 펼쳤다. 또한 그녀는 개인적인 삶에서 겪은 어려움, 특히 남편 제레미 소프의 정치적 스캔들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지지와 강한 내면의 힘을 보여주며 사회적 귀감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그녀의 삶은 음악적 재능과 문화적 기여뿐만 아니라, 역경 속에서도 빛나는 개인의 회복력과 충성심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그녀의 이야기는 텔레비전 미니시리즈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에서 모니카 돌런이 그녀의 역할을 연기하며 대중에게 다시금 조명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