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마리아 프란시스카 데 살레스 팔라폭스 포르토카레로 이 키르크패트릭(스페인어: María Francisca de Sales Palafox Portocarrero y Kirkpatrick스페인어, 1825년 1월 29일 ~ 1860년 9월 16일)은 스페인의 귀족 여성이자 프랑스의 외제니 황후의 언니이다. 그녀는 파카 데 알바(스페인어: Paca de Alba스페인어)라는 별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본래 페냐란다 데 두에로 제16대 공작위를 비롯하여 아버지로부터 수많은 작위를 계승했으며, 스페인의 그란데 작위도 보유했다. 또한, 하코보 피츠하메스 스튜어트 제15대 알바 공작과의 결혼을 통해 알바 공작 부인이 되었다.
2. 생애
마리아 프란시스카는 스페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냈으며, 이후 스페인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녀의 생애는 동생인 외제니 황후와의 관계, 복잡한 연애사, 그리고 명문 알바 공작가와의 결혼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2.1. 출생 및 성장 배경
마리아 프란시스카는 1825년 1월 29일에 태어났다. 그녀는 몬티호 제8대 백작이자 페냐란다 데 두에로 제15대 공작인 시프리아노 팔라폭스 이 포르토카레로와 그의 아내 마리아 마누엘라 키르크패트릭의 장녀였다. 어머니 마리아 마누엘라는 스코틀랜드계 혈통으로, 말라가 주재 미국 영사의 딸이었다. 그녀는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 카르멘의 등장인물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마리아 프란시스카가 어렸을 때 그녀의 가족은 프랑스로 이주하여 지냈다. 1839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어머니는 두 딸을 데리고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2.2. 가족 관계 및 사교계 진출
어머니는 두 딸인 마리아 프란시스카와 그녀의 동생 에우헤니아(후에 프랑스 황후 나폴레옹 3세와 결혼하여 프랑스 황후가 됨)를 명문가에 시집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 때문에 자매는 마드리드 사교계에서 'las condesitas스페인어'(작은 백작 부인들)이라는 다소 경멸적인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제16대 알카니세스 후작은 자신의 장남인 호세 오소리오 이 실바(훗날 제9대 세스토 공작)에게 두 자매를 사교계에 소개하는 역할을 맡겼다. 그러나 호세는 마리아 프란시스카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마리아 프란시스카는 그의 사랑에 보답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은 그녀가 결혼한 후에도 친구로 남았다. 호세는 마리아 프란시스카에게 더 가까워지기 위해 그녀의 동생 에우헤니아와 친구가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에우헤니아가 호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사랑이 짝사랑임을 알게 되자 에우헤니아는 상심한 나머지 인과 우유를 섞어 마시며 자살을 시도하는 비극적인 사건도 있었다.
3. 작위 계승 및 결혼
마리아 프란시스카는 아버지로부터 여러 스페인 귀족 작위를 물려받아 그 중요성을 더욱 공고히 했으며, 스페인에서 가장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중 하나인 알바 공작가와의 결혼을 통해 자신의 모든 작위를 알바 공작 가문에 통합시켰다.
3.1. 계승한 작위
마리아 프란시스카는 아버지의 장녀로서 다음과 같은 수많은 작위를 계승했다.
- 페냐란다 데 두에로 제16대 공작
- 발데라바노 제10대 후작
- 비야누에바 델 프레스노 및 바르카로타 제17대 후작
- 라 알가바 제13대 후작
- 라 바녜사 제15대 후작
- 미라요 제15대 후작
- 발둔키요 제14대 후작
- 몬티호 제9대 백작
- 바뇨스 제11대 백작
- 미란다 델 카스타냐르 제17대 백작
- 푸엔티두에냐 제18대 백작
- 카사루비오스 델 몬테 제13대 백작
- 산 에스테반 데 고르마스 제20대 백작
- 팔라시오스 데 라 발두에르나 제18대 자작
3.2. 결혼 및 자녀
마리아 프란시스카는 알바 공작가의 상속인인 하코보 피츠하메스 스튜어트 이 벤티미글리아와 1848년 2월 14일 마드리드에서 결혼했다. 이 결혼을 통해 그녀가 보유했던 모든 작위는 알바 공작 가문에 통합되었다.
부부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었다.
- 카를로스 마리아 피츠하메스 스튜어트 이 팔라폭스(1849년 ~ 1901년): 제16대 알바 공작. 마리아 델 로사리오 팔코 이 오소리오 제12대 시루엘라 백작 부인과 결혼했다.
- 마리아 데 라 아순시온 피츠하메스 스튜어트 이 팔라폭스(1851년 ~ 1927년): 제3대 갈리스테오 여공작. 당시 마드리드 시장을 역임했던 호세 메시아 판도 제4대 타마메스 공작과 결혼했다.
- 마리아 루이사 피츠하메스 스튜어트 이 팔라폭스(1853년 ~ 1876년): 제14대 몬토로 여공작. 루이스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 이 페레스 데 바라다스 제14대 메디나셀리 공작과 결혼했다.
4. 말년과 죽음
마리아 프란시스카는 짧은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심각한 질병을 앓았고, 결국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죽음은 가족과 스페인 사교계에 큰 슬픔을 안겼다.
4.1. 투병과 임종
1859년, 마리아 프란시스카는 결핵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증상은 현재 백혈병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동생인 외제니 황후는 언니를 마드리드에서 파리로 데려가 최신 의료를 받게 하려 했다. 외제니 황후는 자신의 요트를 알리칸테로 보냈고, 마리아 프란시스카는 병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던 어머니와 한 명의 의사를 동반하고 파리로 향했다. 그러나 치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1860년 9월 16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4.2. 장례 및 안장
마리아 프란시스카의 장례식은 파리의 마들렌 성당에서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장례식 후 그녀의 유해는 마드리드로 운구되었다. 마드리드에서는 당시 시장을 맡고 있던 그녀의 친구 호세 오소리오 이 실바가 장례식을 주관했다. 그녀의 생전 소원에 따라 유해는 산타 마리아 라 안티구아 암자에 일차적으로 안장되었다. 이후 마리아 프란시스카의 유해는 알바 공작가의 가족 묘지인 로에체스의 인마쿨라다 콘셉시온 수도원으로 옮겨져 현재까지 그곳에 안장되어 있다.
5. 영예
마리아 프란시스카 데 살레스는 스페인 왕실로부터 높은 영예를 수여받았다.
5.1. 마리아 루이사 왕비 훈장
마리아 프란시스카 데 살레스는 스페인의 명예로운 여성 훈장인 마리아 루이사 왕비 훈장의 수훈자였다. 이 훈장은 스페인 왕실에 대한 봉사나 뛰어난 공적을 기리는 여성들에게 수여되는 최고 등급의 훈장 중 하나이다.
6. 평가 및 영향
마리아 프란시스카 데 살레스는 비록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스페인의 주요 귀족 가문인 팔라폭스 가문의 상속녀로서 수많은 작위를 계승하고, 유서 깊은 알바 공작가와의 결혼을 통해 그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당대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특히 그녀의 동생이 프랑스의 황후가 되면서, 마리아 프란시스카의 지위와 영향력은 더욱 부각되었다. 그녀의 작위가 알바 공작가에 통합된 것은 스페인 귀족 가문 간의 복합적인 연결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그녀의 생애는 19세기 스페인과 프랑스 상류층 사회의 문화적, 사회적 교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7. 외부 링크
- [https://web.archive.org/web/20090227182320/http://www.grandesp.org.uk/historia/gzas/alba.htm 알바 공작가 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