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경력 및 배경
릭 거톰슨은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나 애너코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워싱턴주 린우드에 위치한 에드먼즈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야구 경력을 이어갔다.
1.1. 미국 프로 야구 (MLB) 드래프트 및 마이너 리그
1997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22라운드 전체 680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입단 후에는 주로 마이너 리그와 독립 리그 구단들을 거치며 선수 생활을 했다. 메이저 리그에서 뛸 기회는 없었으나, 2004년에는 선발 투수에서 마무리 투수로 전향하여 25세이브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같은 해 겨울에는 베네수엘라 윈터 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2005년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프링 캠프에 초청 선수로 참가했으나, 40인 로스터에 들지 못하고 트리플 A로 강등되었다. 당시 선발 투수진에 부상자가 속출하며 어려움을 겪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는 거톰슨의 활약에 주목하여 그와 계약을 체결했다.
1.2.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
2010년 3월 2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으며 2005년 이후 5년 만에 미국 야구계로 복귀했다. 그러나 같은 달 계약이 해지되었고, 이후에는 야구와 관련 없는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2. 일본 프로 야구 (NPB) 경력
릭 거톰슨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약하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거쳤다.
2.1.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2005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한 후, 처음에는 2군에서 4경기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8.25로 부진했다. 하지만 1군 선발진의 사정이 좋지 않아 1군으로 승격되었고, 승격 후 16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8승 5패, 평균자책점 4.18의 성적을 기록하며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는 2005년 5월 22일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경기에서 1군에 첫 등판하여 6이닝 1실점을 기록했으며, 이 경기 1회에 하야카와 다이스케를 상대로 첫 탈삼진을 잡았다. 5월 31일 같은 팀과의 경기에서 6과 1/3이닝 2실점으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완투 기록은 없었으나, 타자로서는 주니치 드래건스의 가와카미 겐신으로부터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타자로서도 2005년 6월 2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우쓰미 테쓰야를 상대로 첫 안타를 기록했고, 8월 2일 주니치 드래건스의 야마모토 마사를 상대로 첫 홈런이자 첫 타점을 기록했다.
2006년 5월 25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상대로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72번째(83번째 사례, 교류전에서는 최초)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이때 허용한 주자는 유격수의 실책과 사구에 의한 2명뿐이었다. 마이너 리그 시절을 포함하여 그의 첫 완봉승이 바로 노히트 노런이었다. 그러나 이 쾌거를 달성한 다음 날, 외국인 선수 등록 규정으로 인해 디키 곤잘레스와 교체되어 1군 등록이 말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2006년 시즌 최종 성적은 9승 10패, 평균자책점은 리그 6위인 2.85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야쿠르트 스왈로스는 2년 총액 7.00 억 JPY의 조건으로 재계약을 시도했으나, 거톰슨은 들쭉날쭉한 선발 등판 일정에 불만을 표하며 이를 거절하고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이 해에도 그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하야시 마사키로부터 홈런을 기록했다.
2.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6년 12월 14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릭 거톰슨의 영입을 발표했다. 계약은 2년이며, 성과급을 포함하여 약 2.50 억 JPY 규모로 알려졌다.
2007년 3월 9일, 시범 경기 첫 등판을 앞두고 아침 식사 중 나이프로 치즈를 자르다가 실수로 자신의 손가락을 베는 사고를 당해 등판을 취소했다. 이로 인해 당시 감독이었던 오 사다하루로부터 엄중한 주의를 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NPB의 네고로 야스치카 커미셔너 대행은 거톰슨이 7월 13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 후 실시된 도핑 검사에서 금지 약물인 피나스테리드에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거톰슨에게는 당일부터 20일간의 출장 정지 처분이, 소속 구단인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는 제재금 750.00 만 JPY가 부과되었다. 이는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본 프로 야구 도핑 검사에서 처음으로 적발된 사례였다. 구단은 거톰슨이 2007년 2월 스프링 캠프에서 진행된 도핑 설명회에서 구단 측에 피나스테리드를 포함한 탈모 치료제 복용을 신청했으나, 구단이 NPB 측에 문의를 소홀히 하여 복용을 계속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후 구단 자체 조사 결과, 거톰슨이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소속 당시에도 구단으로부터 피나스테리드가 금지 약물에 해당한다는 경고를 받았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피나스테리드는 2009년 1월 1일 WADA의 금지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거톰슨은 이 해 5승 7패를 기록했으며, 오른쪽 어깨 부상 등의 이유로 2년 계약 중 1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방출될 가능성이 높았으나, 잔류하게 되었다.
2008년 시즌 초에는 부상당한 마무리 투수 마하라 다카히로를 대신하여 기용되었으나, 곧 선발 투수로 고정되었다. 5월 28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신오이타 야구장)에서는 교류전 역사상 투수로는 최초로 미우라 다이스케를 상대로 좌월 장외 홈런을 기록했다. 이 경기는 우천 콜드 게임으로 선언되며 완투승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8월 6일, 불펜에서 투구 연습 중 오른쪽 다리 부상을 입어 전력에서 이탈했다(다카하시 히데아키가 대신 등판). 9월에 복귀했으나 5승 7패로 전년과 거의 동일한 성적을 기록했다. 결국 10월 12일, 제이슨 스탠드리지, 제레미 파월, 크리스토퍼 니코스키, 마이클 레스토비치 등과 함께 전력외 통고를 받았다.
3. 한국 프로 야구 (KBO) 경력
2009년 한국 프로 야구 KIA 타이거즈에서 활약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3.1. KIA 타이거즈
2009년 1월 21일, KIA 타이거즈와 계약했다. 그는 아킬리노 로페스와 함께 KIA 타이거즈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2009년 시즌 26경기에 등판하여 13승 4패, 평균자책점 3.24를 기록했다. 그는 팀의 12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한 멤버였으나, 시즌 후반 구위가 떨어지고 한국시리즈에서 활약이 미미했다는 구단의 평가로 인해 연봉 협상에서 조건이 맞지 않아 재계약이 불발되었고, KIA 타이거즈를 떠나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릭 거톰슨은 꾸준히 150 km/h에 육박하는 직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 그리고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정통파 투수였다. 제구력도 뛰어나 볼넷을 거의 내주지 않는 편이었다. 또한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타격 능력이 좋았으며, 일본 프로 야구 통산 3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5. 주요 업적 및 기록
릭 거톰슨은 선수 경력 동안 특히 일본 프로 야구에서의 노히트 노런 달성과 한국 프로 야구에서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두드러진 성과를 남겼다.
5.1. 노히트 노런
2006년 5월 25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소속으로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상대로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72번째(통산 83번째)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이는 일본 프로 야구 교류전 역사상 최초의 노히트 노런 기록이었다. 이 경기에서 그는 유격수의 실책과 사구로 단 두 명의 주자만을 허용했으며, 마이너 리그 시절을 포함하여 그의 첫 완봉승이 노히트 노런이라는 진기록으로 남았다. 이는 2022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의 코디 폰스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기 전까지 외국인 투수로는 마지막 기록이었다.
5.2. 한국시리즈 우승
2009년 한국 프로 야구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아킬리노 로페스와 함께 팀의 선발 마운드를 이끌며 정규 시즌에서 13승을 거두는 등 팀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6. 논란
릭 거톰슨의 선수 생활 중 가장 큰 논란은 2007년 일본 프로 야구에서 발생한 도핑 적발 사건이다.
6.1. 도핑 적발
2007년 8월 10일, 일본 프로 야구에서 7월 13일 경기 후 실시된 도핑 검사 결과 금지 약물인 피나스테리드에 양성 반응을 보여 적발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20일간의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고, 소속 구단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제재금 750.00 만 JPY를 부과받았다. 이는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일본 프로 야구의 도핑 검사에서 처음으로 적발된 사례였다. 거톰슨은 2007년 2월 스프링 캠프에서 진행된 도핑 설명회에서 구단 측에 피나스테리드를 포함한 탈모 치료제 복용을 신청했으나, 구단이 NPB 측에 문의를 소홀히 하여 복용을 계속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구단의 자체 조사 결과, 그가 이전 소속팀인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절에도 구단으로부터 피나스테리드가 금지 약물에 해당한다는 경고를 받았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참고로 피나스테리드는 2009년 1월 1일 WADA의 금지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7. 은퇴 후 활동
2010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마이너 계약이 해지된 이후, 릭 거톰슨은 야구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8. 통산 성적
8.1. 일본 프로 야구 (NPB)
연도 | 소속팀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사구 | 승 | 패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회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방어율 | WHI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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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 야쿠르트 | 16 | 16 | 0 | 0 | 0 | 8 | 5 | 0 | 0 | .615 | 418 | 97.0 | 102 | 9 | 30 | 3 | 3 | 62 | 0 | 1 | 46 | 45 | 4.18 | 1.36 |
2006년 | 25 | 25 | 2 | 1 | 0 | 9 | 10 | 0 | 0 | .474 | 698 | 173.2 | 145 | 9 | 38 | 3 | 7 | 127 | 3 | 1 | 62 | 55 | 2.85 | 1.05 | |
2007년 | 소프트뱅크 | 22 | 21 | 1 | 0 | 0 | 5 | 7 | 0 | 0 | .417 | 590 | 143.0 | 138 | 10 | 28 | 1 | 9 | 89 | 2 | 0 | 62 | 56 | 3.52 | 1.16 |
2008년 | 18 | 13 | 2 | 0 | 0 | 5 | 7 | 0 | 0 | .417 | 426 | 100.0 | 104 | 11 | 35 | 5 | 4 | 51 | 0 | 2 | 48 | 45 | 4.05 | 1.39 | |
NPB 통산 (4년) | 81 | 75 | 5 | 1 | 0 | 27 | 29 | 0 | 0 | .482 | 2132 | 513.2 | 489 | 39 | 131 | 12 | 23 | 329 | 5 | 4 | 218 | 201 | 3.52 | 1.21 |
8.2. 한국 프로 야구 (KBO)
연도 | 소속팀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사구 | 승 | 패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회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방어율 | WHIP |
---|---|---|---|---|---|---|---|---|---|---|---|---|---|---|---|---|---|---|---|---|---|---|---|---|---|
2009년 | KIA | 26 | 25 | 0 | 0 | 0 | 13 | 4 | 0 | 0 | .765 | 667 | 161.1 | 149 | 15 | 46 | 2 | 8 | 95 | 61 | 58 | 3.24 | 1.21 | ||
KBO 통산 (1년) | 26 | 25 | 0 | 0 | 0 | 13 | 4 | 0 | 0 | .765 | 667 | 161.1 | 149 | 15 | 46 | 2 | 8 | 95 | 61 | 58 | 3.24 | 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