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리처드 킬 (Richard Dawson Kiel리처드 도슨 킬영어)은 1939년 9월 13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2014년 9월 10일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에서 사망한 미국의 배우이자 성우이다. 그는 키가 2.17 m에 달하는 거구로, "온화한 거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킬은 특히 제임스 본드 영화 시리즈의 상징적인 악당인 강철 이빨을 가진 '죠스' 역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이 역할은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그는 영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1977)와 《007 문레이커》(1979)에서 죠스 역을 연기했다.
그의 다른 주요 출연작으로는 《해피 길모어》(1996)의 터프하지만 유창한 말솜씨를 가진 라슨 씨 역, 《가장 긴 야드》(1974), 《실버 스트릭》(1976), 《나바론 요새 2》(1978), 《캐논볼 2》(1984), 《페일 라이더》(1985) 등이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1962년 방영된 인기 드라마 《환상특급》의 에피소드 "인간에게 봉사하라"에서 거대한 외계인 카나미트 역을 맡아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그의 경력은 영화와 텔레비전 출연뿐만 아니라 책 공동 집필 활동으로도 확장되었다.
2. 생애
리처드 킬은 거대한 체구로 인해 종종 악당 역할에 캐스팅되었으나, 그의 연기력은 단순한 외모를 넘어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1. 출생과 어린 시절
리처드 킬은 1939년 9월 13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비정상적인 키는 거인증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이는 과도한 성장 호르몬 분비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킬이 9살 때 그의 가족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군으로 이사했으며, 그는 그곳에서 볼드윈 파크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2. 교육
킬은 볼드윈 파크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63년부터 1965년까지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에 위치한 윌리엄 B. 오그던 라디오 운영 학교에서 야간 수학 강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다양한 직업 경력의 일부였다.
2.3. 초기 경력 개발
배우가 되기 전, 킬은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는 방문 판매 진공청소기 판매원, 나이트클럽 경비원, 그리고 묘지 부지 판매원으로 일했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은 그가 연기 경력을 시작하기 전의 삶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연기 경력 초기는 주로 그의 큰 키를 활용한 역할들이 많았다.
3. 주요 활동 및 업적
리처드 킬은 그의 독특한 신체적 특징을 활용하여 다양한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인상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3.1. 텔레비전 출연
킬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많은 텔레비전 쇼에 출연했다. 특히 유명한 역할 중 하나는 1962년 방영된 《환상특급》의 에피소드 "인간에게 봉사하라"에서 2.7 m 키의 카나미트 외계인을 연기한 것이다. 그 외에도 그는 《라라미》(1961), 《나는 꿈을 꾸는 지니》, 《라이플맨》(1961), 《허니 웨스트》, 《길리건의 섬》, 《몽키스》, 《다니엘 분》, 《응급실!》, 《스타스키와 허치》, 《잃어버린 땅》, 《사이먼 & 사이먼》, 《콜착: 밤의 추적자》, 《폴 가이》 등 다양한 TV 시리즈에 출연했다.
그의 큰 키 때문에 킬은 종종 악당 역할에 캐스팅되었다. 그는 《서부를 향해 달려라》의 세 에피소드에서 닥터 러브리스의 거대하고 말 없는 치명적인 조수 볼테르 역을 맡았다. 《맨 프롬 U.N.C.L.E.》의 에피소드 "불칸 사건"(1964)에서는 불칸의 공장 경비원으로, "홍콩 실링 사건"에서는 메리 역으로 출연했다. 1967년에는 《몽키스》의 에피소드 "나는 십대 괴물이었다"에서 괴물을 연기했다.
그는 나중에 1968년 2월 16일 처음 방영된 《서부를 향해 달려라》의 에피소드 "유인원 공포의 밤"에서 가족에게 버림받은 부유한 집안의 아들 디마스 역으로 출연했다. 이 에피소드는 킬이 단순히 위협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연기를 선보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77년, 킬과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모두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인크레더블 헐크》의 헐크 역으로 고려되었다. 슈워제네거가 키 때문에 거절당한 후, 킬이 파일럿 촬영을 시작했다. 그러나 제작자들은 우뚝 솟은 킬보다는 더 근육질의 헐크를 원했고, 결국 그는 해고되었다. 킬은 나중에 한쪽 눈으로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역할을 잃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역할 때문에 착용해야 했던 콘택트렌즈에 좋지 않은 반응을 보였으며, 녹색 분장 역시 불쾌하고 지우기 어려웠다고 언급했다. 그의 장면들은 이후 루 페리뇨가 다시 촬영했다.
3.2. 영화 출연
킬은 1960년대 초 《이가》(1962)로 영화계에 진출했으며, 이 영화는 나중에 《엘비라의 무비 마카브르》와 《미스터리 사이언스 시어터 3000》에 소개되기도 했다. 《팬텀 플래닛》(1961)과 《인간 복제기》(1965)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또한 1991년 영화 《썬더 마운틴의 거인》을 제작, 공동 집필, 주연을 맡았다. 1963년 제리 루이스 주연의 영화 《너티 프로페서》에서는 대사 없는 짧은 출연으로 헬스장을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임스 본드 영화 제작자들은 킬을 《바버리 코스트》에서 발견하고, 그가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1977)의 죠스 역에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죠스는 두 편의 본드 영화에 출연한 몇 안 되는 본드 악당 중 한 명으로, 이후 《007 문레이커》(1979)에도 다시 등장했다. 그는 종종 입을 다물고 있거나 위험한 미소를 짧게 보여주는 모습으로 촬영되었는데, 이는 금속 이빨을 모방한 마우스피스가 착용하기 매우 고통스러웠고 매 테이크마다 몇 분밖에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디오 게임 《제임스 본드 007: 에브리싱 오어 낫싱》에서 죠스 역을 다시 맡아 목소리와 모습을 제공했다. 이는 그가 금속 이빨 악당을 연기한 두 번째 경험이었다.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 캐스팅되기 1년 전, 그는 코미디 스릴러 영화 《실버 스트릭》(1976)에서 리스 역을 연기했다. 그는 라이언 오닐과 함께 출연한 영화 《쏘 파인》에서 "최고로 잘 차려입은 거인" 에디 씨 역으로 자신의 큰 키를 코미디 효과로 활용했다. 킬은 또한 영화 《페일 라이더》(1985)에도 출연했다. 그는 주 악당의 부하 역을 맡았지만, 영웅을 등 뒤에서 총격으로부터 구하며 자신의 캐릭터를 구원했다.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는 킬이 바버라 바흐와 함께 출연한 세 편의 영화 중 첫 번째였다. 나머지 두 편은 《나바론 요새 2》와 《휴머노이드》였다.
초기 역할에서는 대사가 거의 없었지만, 1996년 영화 《해피 길모어》에서의 역할은 정반대였다. 해피 길모어의 전 고용주인 라슨 씨 역으로, 킬은 애덤 샌들러의 해피와 크리스토퍼 맥도널드의 슈터 맥개빈과 여러 차례 재치 있는 대사를 주고받았다. 킬은 《해피 길모어》 개봉 이후 비교적 조용한 생활을 했으나, 2010년 영화 《라푼젤》의 녹음을 위해 반 은퇴 상태에서 복귀했다. 이 호평받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그는 의외로 마음이 여린 도자기 유니콘 수집가 블라드 역의 목소리를 연기했으며, 이는 그의 마지막 영화 출연작이 되었다.
3.3. 비디오 게임 출연
킬은 여러 비디오 게임에서도 죠스 역으로 출연하며 그의 상징적인 캐릭터를 이어갔다.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
1997 | 《골든아이 007》 | 죠스 | 크레딧에 오르지 않은 모습 사용 |
1998 | 《제임스 본드 007》 | 죠스 | |
2000 | 《007: 언리미티드》 | 죠스 | 크레딧에 오르지 않은 모습 사용 |
2000 | 《007 레이싱》 | 죠스 | 아카이브 푸티지 |
2004 | 《제임스 본드 007: 에브리싱 오어 낫싱》 | 죠스 | 크레딧에 오른 모습 사용 |
2010 | 《골든아이 007》 | 죠스 | 크레딧에 오르지 않은 모습 사용 |
2012 | 《007 레전드》 | 죠스 | 크레딧에 오르지 않은 모습 사용 |
4. 개인 생활
리처드 킬의 개인적인 삶은 그의 직업적 성공만큼이나 안정적이었다.
4.1. 가족 및 관계
킬의 첫 결혼은 1960년 페이 다니엘스와의 사이에서 이루어졌으나, 1973년에 이혼했다. 1년 후인 1974년, 그는 다이앤 로저스와 재혼했다. 다이앤은 킬보다 63 cm 작은 1.54 m의 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킬이 사망할 때까지 40년간 지속되었다. 그들은 네 명의 자녀와 아홉 명의 손주를 두었다. 킬이 두 번째 아내보다 63 cm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그들의 상호 매력을 "우리는 많은 면에서 눈높이가 맞았다"고 표현했다.
4.2. 건강 및 후기 생활
1992년, 킬은 자동차 사고로 심각한 두부 손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균형 감각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해피 길모어》 출연 당시에도 지팡이에 의지해야 했다. 말년에는 이동을 위해 스쿠터나 휠체어를 사용했다.
킬은 노예제 폐지 운동가인 카시우스 마르셀러스 클레이의 전기인 《켄터키 라이언》을 공동 집필했다. 2002년에는 자신의 자서전인 《영화에서 크게 성공하기》를 출판했다. 킬은 또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의 웹사이트에는 종교적 개종이 그가 알코올 의존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명시되어 있다.
5. 사망
리처드 킬은 2014년 9월 10일, 그의 75번째 생일을 사흘 앞두고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의 세인트 아그네스 의료 센터에서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사망 일주일 전 다리가 부러져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6. 평가
리처드 킬은 그의 독특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그의 상징적인 역할인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죠스'는 단순한 악당을 넘어선 캐릭터로 평가받는다. 죠스는 본드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두 편의 영화에 연속으로 등장한 유일한 악당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된다. 킬은 이 역할을 통해 강력한 존재감과 함께 미묘한 유머 감각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는 큰 키에도 불구하고 '온화한 거인'이라는 별명처럼 친근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으며, 이는 그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해피 길모어》와 《라푼젤》과 같은 작품에서 보여준 코믹하고 따뜻한 역할들은 그의 연기 다양성을 입증한다. 킬은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연기적으로 승화시켜 할리우드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립한 배우로 기억된다.
7. 영향
리처드 킬의 상징적인 역할, 특히 제임스 본드 영화 시리즈의 '죠스'는 대중문화와 영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죠스는 단순히 거대한 체구와 강철 이빨을 가진 악당을 넘어, 본드 시리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조연 캐릭터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캐릭터는 위협적이면서도 때로는 코믹한 면모를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는 이후 많은 영화와 미디어에서 거구의 악당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죠스는 본드 영화에서 드물게 두 편에 걸쳐 등장하고 살아남은 악당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킬은 자신의 독특한 외모를 활용하여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이는 그의 연기 경력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특수 체형 배우들이 설 자리를 넓히는 데도 기여했다. 그의 '온화한 거인' 이미지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갔으며, 이는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단순히 무서운 존재가 아닌, 복합적인 매력을 지닌 인물로 인식되는 데 일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