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olitical career and public service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티티아누스는 로마 원로원의 저명한 일원이자 로마 제국 시기 여러 중요한 공직을 맡으며 활발한 정치 경력을 쌓았다. 그의 경력은 초기 임명직부터 형 오토 황제 재위 기간 중의 핵심적인 역할까지 다양했다.
1.1. Early appointments and roles
티티아누스는 서기 52년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와 함께 첫 번째 집정관직을 수행했다. 그는 종교 단체인 아르발레스 형제단의 중요한 구성원이었다. 57년을 시작으로 69년까지 최소 다섯 차례에 걸쳐 promagistratu프로마기스트라투라틴어(선임정무관)로서 활동했다. 서기 63년부터 64년까지는 제비뽑기를 통해 아시아 속주의 프로콘술 총독으로 임명되어 통치했다.
1.2. Role during Emperor Otho's reign
서기 69년, 그의 형 오토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티티아누스는 다시 한번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다. 그는 갈바 황제의 살해 시점부터 2월 말까지 오토의 동료 집정관으로 두 번째 집정관직을 수행했다. 오토가 비텔리우스의 이탈리아 진격을 막기 위해 로마를 떠났을 때, 티티아누스는 로마에서 황제의 일상적인 책임을 위임받았다. 이후 오토 황제는 티티아누스를 전쟁의 총사령관(generalissimo)으로 임명했다. 티티아누스는 제1차 베드리아쿰 전투에 직접 참전하여 주요 역할을 수행했다.
2. Family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티티아누스의 가족 관계는 당대 로마 황실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으며, 그의 후손들은 비극적인 운명을 맞기도 했다.
2.1. Marriage and descendants
티티아누스는 미래의 로마 황제인 네르바(서기 96년 ~ 98년 재위)의 누이인 코케이아와 결혼했다. 그들 사이에는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코케이아누스라는 아들이 있었다. 코케이아누스는 성장하여 80년경 집정관직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훗날 도미티아누스 황제(서기 81년 ~ 96년 재위)의 명으로 처형되었다. 코케이아누스가 처형된 이유는 그의 숙부인 오토 황제의 생일을 기념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의심 많고 잔인한 통치 방식의 한 예시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