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경력
루이스 갈베스 로드리게스 데 아리아스는 어린 시절부터 아크레 공화국을 수립하기 전까지 다양한 배경과 직업 활동을 경험하며 독특한 이력을 쌓았다.
1.1. 출생과 교육
갈베스는 1864년에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비야 대학교에서 법률 및 사회 과학을 전공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1.2. 외교관 및 언론인 활동
학업을 마친 후 갈베스는 스페인 외교관으로서 로마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근무하며 외교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1897년에는 엘도라도를 찾아 아마존 우림으로 향하며 남아메리카로 이주했다. 그는 벨렘에서 '코레이우 두 파라'라는 신문사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했고, 마나우스에서는 '코메르시우 두 아마조나스' 신문에서 글을 기고하며 기자로서의 경력을 이어갔다.
2. 아크레 공화국 건국 및 통치
루이스 갈베스는 볼리비아의 고무 무역 계약을 계기로 아크레 지역의 독립 운동에 뛰어들었으며, 독립 선언을 통해 아크레 공화국을 설립하고 초대 대통령으로서 국가 통치 기구를 수립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고자 노력했다.
2.1. 아크레 전쟁 배경과 독립 선언
볼리비아 정부가 당시 미국 대통령의 아들이 의장을 맡고 있던 외국 자본가 연합체인 '볼리비아 신디케이트'와 고무 무역 및 수출에 대한 임대 계약을 체결한 직후, 갈베스는 벨렘 주재 볼리비아 영사관 직원으로서 해당 문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아크레의 독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당시 주지사였던 라마료 주니오르(Ramalho Júnior)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다. 주지사는 갈베스의 독립 구상에 은밀히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재정 자원, 무기, 탄약, 식량뿐만 아니라 대포와 20명의 수비대가 탑승한 특별 전세선까지 제공했다.
갈베스는 이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1899년 7월 14일, 바스티유 함락 110주년이 되는 날을 의도적으로 택하여 아크레에서 반란을 주도했다. 그는 고무 채취인들과 쿠바 독립 전쟁의 참전 용사들과 함께 봉기하여 독립된 아크레 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는 "브라질인이 아닌 아크레 고무 채취인들은 볼리비아인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독립을 정당화했다.
2.2. 아크레 공화국 대통령 활동
루이스 갈베스는 아크레 공화국의 임시 대통령직을 맡아 스스로를 '아크레의 황제'라 칭하며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그는 공화국의 국장과 국기를 제정했으며, 정부 부처를 조직하고 학교, 병원, 군대, 소방서 등 국가의 기본적인 통치 기구들을 설립했다. 또한 판사로서도 활동하며 우표를 발행했고,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사회적, 환경적, 도시 계획적 이상을 가진 근대적인 국가를 구상했다. 그는 유럽의 모든 국가에 칙령을 내리고 공문을 보내는 한편, 외교 대표를 임명하는 등 국제적으로 국가의 존재를 알리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2.3. 축출 및 망명
아크레 공화국이 건국된 지 6개월 만에 갈베스의 정부는 쿠데타로 인해 전복되었다. 브라질 고무 채취인인 안토니우 지 소우사 브라가(Antônio de Sousa Braga)가 그를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했지만, 한 달 뒤 브라가는 다시 갈베스에게 권력을 돌려주었다.
한편, 1867년에 브라질과 볼리비아 사이에 체결된 아야쿠초 조약은 아크레를 볼리비아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브라질은 루이스 갈베스를 체포하고 아크레 공화국을 해체하며 해당 지역을 볼리비아의 통치하에 되돌리기 위해 4척의 전함과 보병 부대로 구성된 군사 원정대를 파견했다. 1900년 3월 11일, 루이스 갈베스는 아크레 강변의 카케타(Caquetá) 고무 농장 본부에서 브라질 해군 기동대에 항복했고, 이후 페르남부쿠의 헤시페로 망명했다가 최종적으로 유럽으로 추방되었다.
3. 말년과 사망
아크레 공화국 사건 이후 루이스 갈베스는 브라질로 재귀환하여 파란만장한 말년을 보냈으며, 결국 고향 스페인에서 생을 마감했다.
3.1. 브라질 재귀환과 이후 삶
유럽으로 추방된 지 몇 년 후, 갈베스는 브라질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아마조나스 주 정부에 의해 체포되었고, 현재 호라이마주에 위치한 상조아킹 두 히우 브랑쿠 요새(Fort of São Joaquim do Rio Branco)로 추방당했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한번 탈출에 성공했다.
3.2. 사망
루이스 갈베스 로드리게스 데 아리아스는 1935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사망하며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
4. 유산과 평가
루이스 갈베스는 비록 짧은 기간 아크레를 통치했지만, 그가 남긴 역사적 흔적과 지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그의 삶과 아크레 공화국 건국 스토리는 대중문화 속에서도 재현되며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4.1. 역사적 유산
아크레 주에는 그의 이름을 딴 갈베스강(Gálvez River)이 존재하며, 이는 그의 역사적 중요성을 상징한다. 또한 아크레 주 의회 입구에는 갈베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그 뒤에는 아크레 독립국의 국기가 있다. 동상에는 1899년 7월 14일 아크레 공화국 선포 당시 갈베스가 대중에게 외쳤던 명언인 "조국이 우리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가 또 다른 조국을 만들자! 독립 아크레 주 만세!"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문구는 일종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었으나, 1세기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아크레 주민들은 이 문구를 완벽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4.2. 대중문화 속의 재현
루이스 갈베스의 이야기는 여러 문화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마르시우 지 소자(Márcio de Souza)의 소설 『아크레의 황제 갈베스』(Gálvez, the Emperor of Acre)는 1976년에 처음 출판된 첫 번째 연재 소설로, 2007년까지 14판을 발행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2007년에는 브라질의 유명 방송국인 헤지 글로부(Rede Globo)에서 아크레 주 지역을 다룬 미니시리즈 『아마조니아: 갈베스에서 시쿠 멘데스까지』(Amazônia, from Galvez to Chico Mendes)를 방영했다. 이 미니시리즈에서는 배우 조제 윌커(José Wilker)가 루이스 갈베스 로드리게스 데 아리아스 역을 맡아 열연했다. 또한, 2003년에는 스페인 작가 알폰소 도밍고(Alfonso Domingo)가 루이스 갈베스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 소설 『고독한 별』(La estrella solitaria)을 출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