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루이-장-프랑수아 라글르네의 생애는 파리에서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로마 유학과 왕립 아카데미에서의 활동, 그리고 러시아에서의 중요한 역할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1.1. 출생 및 어린 시절
라글르네는 1724년 12월 30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소묘와 회화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당시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의 원로 화가들은 대중에게 개방된(소액의 수수료를 받는) 정기 강좌를 통해 인체 소묘와 미술 원리 및 기법을 가르쳤다. 이러한 강좌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매년 가장 재능 있는 젊은 학생 여섯 명을 선발하고, 그들에게 3년간 무료 교육과 소정의 생활비를 제공하는 '왕립 보호 학생 학교'(École royale des élèves protégés에콜 로얄 데 엘레브 프로테제프랑스어)에 참여할 기회를 주어 로마 그랑프리를 준비시킬 수 있도록 했다.
1.2. 교육 및 수련
라글르네는 이러한 3년 과정의 '왕립 보호 학생 학교'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카를 반 로의 지도 아래 교육을 마쳤다. 그는 1749년, 첫 시도에서 '파라오의 꿈을 해석하는 요셉'이라는 작품으로 로마 그랑프리를 수상했다(현재는 소실됨). 로마 프랑스 아카데미의 학생으로서 그는 바로크 미술에 깊이 몰두하며 자신의 예술적 토대를 다졌다. 특히 그는 볼로냐 학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 중에서도 구이도 레니(1575년~1642년)와 프란체스코 알바니(1578년~1660년)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후 그의 경력에서 그는 '프랑스의 알바니'(l'Albane Francais랄반 프랑세프랑스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1.3. 초기 경력 및 아카데미 회원 자격
1753년 로마에서 돌아온 후, 라글르네는 대작 '데아네이라를 납치하는 켄타우로스 네소스'(The Abduction of Deianira by the Centaur Nessus레놀르브망 드 데아네이라 파 르 상토르 네소스프랑스어) (현재 루브르 박물관 소장)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1755년 완성되어 만장일치로 왕립 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얻는 입회작이 되었다. 이때 그는 이미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1758년에는 왕립 아카데미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2. 주요 예술 활동 및 업적
라글르네는 프랑스와 러시아를 오가며 활발한 예술 활동을 펼쳤고, 여러 주요 예술 기관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으며 그의 업적을 쌓았다.
2.1. 프랑스에서의 경력
파리에서 그의 경력은 크게 번성했다. 그는 많은 저명한 후원자와 새로운 금융계 인물들로부터 의뢰를 받아 작품을 완성했으며, 파리 살롱 전시회에 정기적으로 작품을 출품했다. 그의 명성은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제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2.2. 러시아에서의 활동
1760년, 옐리자베타 여제의 초청으로 라글르네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건너갔다. 그는 제국 예술 아카데미의 원장과 여제의 수석 궁정 화가 직책을 맡았다. 이는 전년도에 사망한 루이-조제프 르 로랭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었다. 러시아에서 2년 간 활동한 후, 그는 왕립 아카데미의 교수 겸 학장직을 맡기 위해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1763년에는 동생과 함께 로마로 이주했다.

2.3. 감독 및 큐레이터 직책
1781년부터 1787년까지 라글르네는 빌라 메디치에 있는 로마 프랑스 아카데미의 원장으로 재직했다. 파리로 최종 귀환한 후에는 루브르 박물관의 명예 큐레이터 겸 행정 감독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804년 7월 15일 나폴레옹 1세에 의해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2.4. 주요 작품
라글르네는 신화적 주제를 다룬 회화뿐만 아니라 태피스트리 디자인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의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 회화
-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데아네이라를 납치하는 켄타우로스 네소스'(1755), '메르쿠리, 아글로르, 에르세'(1767), '사랑에 잠든 큐피드를 놀라게 하는 프시케'(1768), '다리우스 왕비의 죽음'(1785), '예술에 대한 사랑이 적들의 터무니없고 악의적인 글로부터 회화를 위로하다'
-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소장: '불카누스에게 놀란 마르스와 비너스'(1768)
- 베르사유 및 트리아농 국립 박물관 소장: '수확 - 케레스와 농업'(1770년경)
- 로스앤젤레스, 게티 센터 소장: '평화의 알레고리, 비너스와 마르스'(1770)
- 캥페르 미술관 소장: '에스테르와 아수에루스'(1775년~1780년)
- 파리 장식미술관 소장: '황소로 변장하여 에우로페를 납치하는 주피터', '테티스가 아폴론을 맞이하다'
- 디트로이트 미술관 소장: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1781)
- 퐁텐블로 궁전 소장: '가족에 둘러싸인 도팽의 죽음'(1765)
- 리옹 대성당 소장: '파트모스 섬의 사도 요한'(1758)
라글르네의 다양한 신화 및 역사 주제 회화 중 일부는 아래와 같다.

도팽의 죽음, 1765년
그의 신화적 서사와 인물 묘사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다른 작품으로는 다음이 있다.
불카누스에게 놀란 마르스와 비너스, 1768년 
다리우스 왕비의 죽음, 1785년
또한, 라글르네는 아래와 같은 회화들을 통해 당대 주요 인물들의 일화나 상징적인 장면들을 포착했다.
애인 앞에 무릎 꿇은 알키비아데스, 1781년경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연인 캄파스페와 사랑에 빠진 아펠레스, 1772년
그의 작품 세계를 더욱 잘 보여주는 예시로, 다음 그림들이 있다.
오로라의 승천, 1763년 
예술에 대한 사랑이 적들의 터무니없고 악의적인 글로부터 회화를 위로하다
특히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는 그의 섬세한 인물 표현과 고전적 주제 해석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1781년 - 태피스트리
1759년 오뷔송 국립 태피스트리 제작소에서 왕실 행정부의 의뢰로 제작된 신화 주제 태피스트리 컬렉션이 있다. 여섯 점의 회화 작품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 '새벽이 케팔로스를 납치하다': 밑그림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음.
- '황소로 변장하여 에우로페를 납치하는 주피터': 밑그림은 파리 장식미술관에 보존됨.
- '렘노스의 대장간에 있는 비너스': 1759년 살롱전 이후 드니 디드로가 묘사한 밑그림이 있으며, 태피스트리는 오뷔송 태피스트리 박물관에 보존됨.
- '보레아가 오리튀이아를 납치하다': 행방은 알려지지 않음.
- '테티스가 아폴론을 맞이하다': 밑그림은 파리 장식미술관에 보존됨.
- '메르쿠리가 바쿠스를 뉘사의 님프들에게 데려오다'(일명 '바쿠스의 탄생'): 태피스트리는 프랑스 국립 가구 박물관에 보존됨.
3. 사생활
1758년 7월 10일 월요일, 33세의 라글르네는 16세의 안-아가트 이나르와 결혼했다. 55년 후인 1805년 6월 19일, 그의 사망 증명서에는 그들이 여전히 부부 관계임을 기록하고 있다.
4. 사망
루이-장-프랑수아 라글르네는 1805년 6월 19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사망 당시에도 그의 아내 안-아가트 이나르와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5. 유산 및 평가
라글르네는 바로크 미술의 영향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로코코 양식에 고전적 요소를 접목시키는 데 성공하며 프랑스 예술계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예술적 업적과 더불어 그는 당대 주요 예술 교육 및 행정 기관의 수장으로서 젊은 예술가들을 양성하고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5.1. 긍정적 평가
라글르네는 당대 프랑스 미술계에서 폭넓게 인정받는 화가였으며, 특히 볼로냐 학파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의 알바니'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왕립 아카데미의 교수 겸 학장, 로마 프랑스 아카데미의 원장, 루브르 박물관의 명예 큐레이터 겸 행정 감독관 등 요직을 거치며 프랑스 예술 교육 시스템과 문화 행정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역할은 그의 회화 작품 외적으로도 예술적 유산을 확고히 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그는 당대의 주류 아카데미즘 화풍을 이끌면서도 고전주의와 로코코 양식을 조화롭게 구현하여, 이후 프랑스 미술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6. 영향
라글르네의 교육자로서의 역할은 당대의 젊은 화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왕립 아카데미와 로마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예술적 성장에 기여했다.
6.1. 제자들에 대한 영향
그의 가르침을 받은 대표적인 제자들로는 앙투안-데니 쇼데(1763년~1810년), 그의 동생인 라글르네 르 죈('연하의 라글르네'), 그리고 피에르 페이롱(1744년~1814년) 등이 있다. 이들은 스승의 예술적 지식과 기법을 전수받아 자신들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후대 예술계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의 교육 방식은 아카데미즘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개인의 재능을 발현시키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평가된다.
7. 관련 항목
- 장-자크 라글르네
- 샤를-앙드레 반 로
- 프랑스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
- 로마 프랑스 아카데미
- 제국 예술 아카데미
- 루브르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