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론 키틀(Ron Kittle)은 1958년 1월 5일,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태어난 미국의 전직 메이저리그 좌익수이자 지명타자입니다. 강력한 홈런 타자로 유명했던 그는 1983년 아메리칸 리그 신인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 뉴욕 양키스,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 여러 팀에서 활약하며 총 10시즌 동안 176개의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마감한 후에는 독립 리그 쇼움버그 플라이어스의 감독을 맡는 등 야구와 관련된 활동을 이어갔으며, 회고록을 출판하고 시카고 화이트삭스 구단의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등 은퇴 후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2. Early Life and Background
론 키틀은 1958년 1월 5일,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철강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아버지와 함께 일하며 철강 노동자 견습생 노동조합 카드를 받을 계획을 세울 정도로 야구 외의 진로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8세이던 1976년, 그는 인디애나주 라포르테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트라이아웃 캠프에 참가하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그는 1976년 다저스와 계약하며 프로 야구에 입문하게 되었고, 아이오와주 클린턴에서 야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첫 번째 주루 플레이 중 포수가 그 위로 넘어져 목이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시에는 진단되지 않았으나, 이후 세 개의 척추뼈가 으스러지고 척수에 금이 간 부러진 목뼈로 1년 내내 경기를 뛰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는 결국 디스크 유합술을 받고 척추를 고정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다시는 야구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몇 년간 철강 노동자로 일하며 몸을 재건했습니다. 이 부상으로 인해 그는 더 이상 양타를 구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몇 년 뒤, 그는 아메리칸 헬레닉 교육 진보 협회(American Hellinic Educational Progressive Association)에서 여름 야구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곳에서 친 홈런 중 하나는 구장 밖으로 날아가 인터스테이트 294 고속도로에 떨어질 정도로 비거리가 길었는데, 이는 무려 152 m (500 ft) 이상을 날아간 것이었습니다. 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구단주였던 빌 빅은 이 홈런 소식을 듣고 그에게 트라이아웃 기회를 주었고, 론 키틀은 1978년 9월 화이트삭스와 계약하게 됩니다.
3. Baseball Career
론 키틀은 마이너리그에서 뛰어난 장타력을 선보이며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이후 여러 팀을 거치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갔습니다.
3.1. Early Career and Minor Leagues
론 키틀은 1976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계약하며 프로 야구에 입문했으나, 곧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으로 이적했습니다. 초기 경력은 부상으로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첫 주루 플레이 중 목이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의사로부터 다시는 야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철강 노동자로 일하며 몸을 재건하는 노력 끝에 이러한 예측을 뒤엎고 야구로 돌아왔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 론 키틀은 폭발적인 홈런 능력을 보여주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81년부터 1982년까지 마이너리그에서 총 90개의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1982년에는 에드먼턴 트래퍼스 소속으로 50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퍼시픽 코스트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등번호는 에드먼턴의 텔러스 필드에서 영구 결번되었습니다. 또한, 1981년에는 이스턴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1982년에는 Baseball America Minor League Player of the Year Award베이스볼 아메리카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상영어, The Sporting News Minor League Player of the Year Award더 스포팅 뉴스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상영어, Topps Minor League Player of the Year Award탑스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상영어을 수상하며 마이너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1982년 9월 2일, 25세 생일을 앞두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습니다.
3.2. Major League Debut and Rookie Year
론 키틀은 1983년 풀타임 메이저리그 첫 시즌을 맞이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찰리 라우의 타격 지도를 받으며 타격 능력이 더욱 향상되었고, 14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54, 35 홈런, 100 타점을 기록했습니다. 35개의 홈런은 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 신인 선수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었습니다. 그는 올스타전에 선정되었으며, 아메리칸 리그 신인상을 수상하며 그 해 최고의 신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그는 코미스키 파크의 지붕 위로 가장 많은 7개의 홈런을 날린 선수로도 유명합니다. 론 키틀이 활약한 1983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winning ugly"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99승을 거두었고, 1959년 월드 시리즈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3.3. Major League Tenure and Team Changes
1983년의 성공적인 신인 시즌 이후, 론 키틀은 홈런 파워를 계속 유지했지만, 타율은 점차 감소하고 삼진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1984년에는 32개의 홈런과 74개의 타점을 기록했으나, 타율은 .215, 삼진은 137개를 기록했습니다. 1985년에는 출전 경기 수가 116경기로 줄었지만, 26개의 홈런과 58개의 타점을 기록하며 여전히 장타력을 과시했습니다.
1986년 시즌 중반, 그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떠나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1986년 한 시즌 동안 두 팀을 합쳐 116경기에 출전하여 21개의 홈런과 60개의 타점, 110개의 삼진을 기록했습니다. 이듬해인 1987년에도 양키스에서 뛰었습니다. 1988년에는 클리블랜드 가디언스로 이적하여 18개의 홈런을 쳤습니다.
1989년에는 다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돌아왔으나, 1990년 시즌 도중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트레이드에 불만을 표출했는데, 이는 프랭크 토마스의 마이너리그 승격 가능성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오른손 강타자가 필요하여 론 키틀을 영입했고, 그의 연봉은 55.00 만 USD로, 당시 필 브래들리의 연봉인 115.00 만 USD에 비해 낮은 편이었습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단장 롤랜드 헤먼드는 론 키틀을 포함하여 그렉 워커, 케빈 히키, 팀 헐릿, 데이브 갤러거 등 너무 많은 전직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들을 영입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1990년 시즌에 론 키틀은 4년 만에 100경기 이상(105경기) 출전했지만, 볼티모어 오리올스 이적 후 타율 .164에 그쳤고, 결국 그 해 오프시즌인 12월 15일에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의 계약 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습니다.
3.4. Career Statistics
론 키틀의 메이저리그 통산 타격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연도 | 팀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실패 | 희생타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1982 | CWS | 20 | 32 | 29 | 3 | 7 | 2 | 0 | 1 | 12 | 7 | 0 | 0 | 0 | 0 | 3 | 0 | 0 | 12 | 0 | .241 | .313 | .414 | .727 |
1983 | CWS | 145 | 570 | 520 | 75 | 132 | 19 | 3 | 35 | 262 | 100 | 8 | 3 | 0 | 3 | 39 | 8 | 8 | 150 | 10 | .254 | .314 | .504 | .818 |
1984 | CWS | 139 | 525 | 466 | 67 | 100 | 15 | 0 | 32 | 211 | 74 | 3 | 6 | 0 | 4 | 49 | 5 | 6 | 137 | 7 | .215 | .295 | .453 | .748 |
1985 | CWS | 116 | 417 | 379 | 51 | 87 | 12 | 0 | 26 | 177 | 58 | 1 | 4 | 0 | 2 | 31 | 1 | 5 | 92 | 12 | .230 | .295 | .467 | .762 |
1986 | CWS | 86 | 333 | 296 | 34 | 63 | 11 | 0 | 17 | 125 | 48 | 2 | 1 | 0 | 6 | 28 | 0 | 3 | 87 | 10 | .213 | .282 | .422 | .704 |
1986 | NYY | 30 | 89 | 80 | 8 | 19 | 2 | 0 | 4 | 33 | 12 | 2 | 0 | 0 | 2 | 7 | 1 | 0 | 23 | 0 | .238 | .292 | .413 | .705 |
1986 합계 | 116 | 422 | 376 | 42 | 82 | 13 | 0 | 21 | 158 | 60 | 4 | 1 | 0 | 8 | 35 | 1 | 3 | 110 | 10 | .218 | .284 | .420 | .704 | |
1987 | NYY | 59 | 173 | 159 | 21 | 44 | 5 | 0 | 12 | 85 | 28 | 0 | 1 | 0 | 3 | 10 | 1 | 1 | 36 | 4 | .277 | .318 | .535 | .853 |
1988 | CLE | 75 | 254 | 225 | 31 | 58 | 8 | 0 | 18 | 120 | 43 | 0 | 0 | 0 | 5 | 16 | 1 | 8 | 65 | 0 | .258 | .323 | .533 | .856 |
1989 | CWS | 51 | 196 | 169 | 26 | 51 | 10 | 0 | 11 | 94 | 37 | 0 | 1 | 0 | 4 | 22 | 1 | 1 | 42 | 2 | .302 | .378 | .556 | .934 |
1990 | CWS | 83 | 305 | 277 | 29 | 68 | 14 | 0 | 16 | 130 | 43 | 0 | 0 | 0 | 1 | 24 | 2 | 3 | 77 | 3 | .245 | .311 | .469 | .780 |
1990 | BAL | 22 | 64 | 61 | 4 | 10 | 2 | 0 | 2 | 18 | 3 | 0 | 0 | 0 | 0 | 2 | 0 | 1 | 14 | 3 | .164 | .203 | .295 | .498 |
1990 합계 | 105 | 369 | 338 | 33 | 78 | 16 | 0 | 18 | 148 | 46 | 0 | 0 | 0 | 1 | 26 | 2 | 4 | 91 | 6 | .231 | .293 | .438 | .731 | |
1991 | CWS | 17 | 55 | 47 | 7 | 9 | 0 | 0 | 2 | 15 | 7 | 0 | 0 | 0 | 1 | 5 | 0 | 2 | 9 | 2 | .191 | .291 | .319 | .610 |
통산: 10년 | 843 | 3013 | 2708 | 356 | 648 | 100 | 3 | 176 | 1282 | 460 | 16 | 16 | 0 | 31 | 236 | 20 | 38 | 744 | 53 | .239 | .306 | .473 | .779 |
3.5. Retirement
1991년 시즌, 론 키틀은 다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복귀했습니다. 그러나 시즌 중 타석에서 스윙을 하다가 의식을 잃는 심각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의사의 진찰 결과, 계속 야구를 할 경우 전신마비의 위험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는 건강한 모습으로 자녀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1991년 8월에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론 키틀은 10년간의 메이저리그 경력 동안 총 843경기에 출전하여 176개의 홈런과 460개의 타점을 기록했습니다.
4. Managerial Career
선수 생활을 은퇴한 후, 론 키틀은 야구 감독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1998년, 그는 독립 리그인 노던 리그 소속의 쇼움버그 플라이어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론 키틀은 플라이어스 프랜차이즈 초기에 팀 홍보를 위한 TV 광고 시리즈에 출연했는데, "Ma Kittle"이라는 기믹을 사용하여 자신과 "Ma Kittle"을 동시에 연기했습니다. 이 광고는 래리 존슨이 자신과 "Grandmama"를 연기했던 컨버스 광고를 모방한 것이었습니다. 이 광고는 팀에 대한 초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으며, 플라이어스는 인근 플로리다 말린스 산하 클래스 A 팀이었던 케인 카운티 쿠거스의 팬들을 유치하기를 기대했습니다. 론 키틀은 2001년 감독직에서 사임했습니다.
5. Post-Playing Career and Personal Life
론 키틀은 선수 생활 은퇴 후에도 야구 관련 활동을 이어가며 사업과 개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5.1. Memoirs and Current Activities
론 키틀의 회고록 Ron Kittle's Tales from the White Sox Dugout론 키틀의 화이트삭스 덕아웃 이야기영어는 2005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마이클 조던의 책 Come Fly with Me컴 플라이 위드 미영어를 공동 집필했던 밥 로건과 함께 쓴 것으로, 키틀의 메이저리그 시절, 특히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의 일화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배리 본즈로부터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론 키틀은 야구공, 야구 방망이, 베이스 등으로 맞춤형 수집품 벤치를 제작하는 사업을 하고 있으며, 시카고 화이트삭스 구단의 홍보 업무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5.2. Personal Life
론 키틀은 1984년에 결혼하여 2010년에 이혼했습니다. 그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6. Awards and Honors
론 키틀은 그의 야구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중요한 수상 및 영예를 얻었습니다.
- 아메리칸 리그 신인상 (1983)
-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 선정 (1983)
- 퍼시픽 코스트 리그 최우수 선수상 (1982)
- 이스턴 리그 최우수 선수상 (1981)
- Baseball America Minor League Player of the Year Award베이스볼 아메리카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상영어 (1982)
- The Sporting News Minor League Player of the Year Award더 스포팅 뉴스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상영어 (1982)
- Topps Minor League Player of the Year Award탑스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상영어 (1982)
- 에드먼턴 트래퍼스 영구 결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