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playing career
로이 에반스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스쿨보이 출신 수비수였으며,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리버풀 FC에서 보냈다.
1.1. Birth and background
로이 에반스는 1948년 10월 4일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부틀에서 태어났다.
1.2. Playing career
에반스는 1960년대와 1970년대 리버풀에서 수비수로 활약했지만, 당시 팀 내에서 주전 경쟁이 치열하여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다. 1969-70 시즌 리그 3경기에 출전했고, 이듬해에는 2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1973년 여름에는 북미 사커 리그의 필라델피아 애텀스에서 잠시 뛰기도 했다.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샹클리는 에반스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에게 코치 경력을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2. Coaching career at Liverpool
로이 에반스는 선수 경력을 마친 후 리버풀 FC의 코칭 스태프에 합류하여, 여러 명의 감독 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2.1. Transition to coaching
1974년, 에반스는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리버풀의 리저브 팀 코치로 전향했다. 이는 그의 오랜 코칭 경력의 시작점이 되었다.
2.2. Role under various managers
그는 리버풀에서 연달아 부임한 감독들 아래에서 코칭 팀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빌 샹클리 감독이 1974년 은퇴한 후 그의 보조 코치였던 밥 페이즐리가 감독직을 이어받았다. 페이즐리 감독이 1983년 은퇴하자 그의 보조 코치였던 조 페이건이 감독으로 승진했다. 페이건 감독은 2년 후 은퇴했고, 리버풀의 전설적인 공격수 케니 달글리시가 선수 겸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 시점까지 에반스는 4명의 리버풀 감독 밑에서 코치로 일했다. 달글리시 감독이 1991년 팀을 떠난 후에도 에반스는 리버풀에 남아 팀의 5번째 감독이자 전 리버풀 선수인 그레이엄 수네스 밑에서 코칭 스태프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그는 18년 동안 리버풀에서 다양한 감독들과 함께하며 팀의 철학과 문화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3. Managerial career
로이 에반스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리버풀 FC의 감독을 맡았으며, 이후에도 여러 팀에서 코치 및 감독 역할을 수행하며 축구계에 기여했다.
3.1. Liverpool
로이 에반스의 리버풀 감독 재임 기간은 1994년 1월 28일부터 1998년 11월까지였다. 그는 이 기간 동안 공격적인 축구 스타일을 추구하며 팀을 이끌었다.
3.1.1. Appointment and early period
1994년 1월 28일, 그레이엄 수네스 감독이 브리스톨 시티에게 충격적인 FA컵 패배를 당한 후 리버풀 감독직을 사임하자, 에반스가 감독직을 물려받았다. 당시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 중위권에 머물러 있었고 주요 대회에서 우승 경쟁에서 멀어진 상태였다. 에반스는 수네스 감독 시절 케니 달글리시 감독의 사임 이후 3년간 자신감을 잃고, 수네스 감독의 영입으로 인해 팀 구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팀을 물려받았다. 에반스의 부임 후 팀은 시즌 말 8위로 리그를 마쳤다.
3.1.2. 1994-95 season: League Cup triumph
1994-95 시즌을 앞두고 에반스는 수비수 존 스케일스와 필 밥, 그리고 젊은 윙어 마크 케네디를 영입하여 팀을 강화했다. 또한 그는 당시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스티브 맥마나만, 제이미 레드냅, 로비 파울러에게 더 많은 1군 기회를 주었다. 존 반스, 마크 라이트, 이안 러시와 같은 베테랑 선수들은 이 젊은 스타들과 잘 어우러졌다.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에서 74점을 얻어 4위를 차지했으며, 리그컵 결승에서 볼턴 원더러스를 맥마나만의 2골로 2대1로 꺾고 통산 5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3.1.3. 1995-96 season: Title challenge and FA Cup final
1995년 여름, 에반스는 노팅엄 포레스트의 공격수 스탠 콜리모어를 영입하며 영국 이적료 기록을 경신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리버풀이 이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디펜딩 챔피언 블랙번은 케니 달글리시를 축구 이사로 승진시키고 상대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했던 레이 하포드를 감독으로 임명했으며, 준우승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3명의 핵심 선수를 판매하고 놀랍게도 젊은 선수들에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리버풀은 시즌 초반에는 우승 후보처럼 보였지만,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우승 경쟁이 사실상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양강 구도로 좁혀졌다.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우승을 확정했다. 리버풀은 리그 3위에 만족해야 했으며, 4월 말 코번트리 시티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우승에 대한 모든 희망을 잃었다. 비록 FA컵 결승에 진출했지만, 에리크 캉토나의 늦은 골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1대0으로 패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더블을 달성했기 때문에, 에반스와 그의 흥미진진한 젊은 팀은 1996-97 시즌 UEFA 컵 위너스컵에 출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의 리그 순위는 4위에서 3위로 향상되었다. 이 시즌은 리그 경기 수가 4경기 줄어들어 총 71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이전 시즌의 78.5점에 해당하는 성과였다.
3.1.4. 1996-97 season: "Spice Boys" and near misses
1996-97 시즌은 에반스 감독이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시기였다. 에반스는 1996년 여름 체코 미드필더 파트릭 베르거를 영입하며 맥마나만과 파울러를 중심으로 구축된 팀을 강화했다. 하지만 1996-97 시즌 말 안필드에서는 17세의 유망한 공격수 마이클 오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그는 몇 경기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리버풀은 1월 말까지 여러 차례 프리미어리그 선두를 달렸고, 한때는 1월에 5점 차로 선두를 지키기도 했지만, 결국 시즌 막판 부진하여 4위로 마쳤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7점 차로 우승을 차지했다. UEFA 컵 위너스컵에서는 파리 생제르맹에 패해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또한 팀은 총 68점을 기록하며 이전 시즌보다 3점이 줄어들었다. 언론은 선수들의 경기장 밖에서의 규율 부족을 강하게 비판하며 에반스의 스쿼드를 '스파이스 보이즈'라고 비꼬아 불렀는데, 이는 그들의 사생활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였다. 그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경기에서 리버풀은 승리하지 못했고, 오언이 경기 막판 골대를 맞추는 아쉬운 장면이 있었다. 만약 그 골이 들어갔더라면 리버풀은 2위를 차지하여 다음 시즌 유러피언 컵에 진출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3.1.5. 1997-98 season: Injuries and third-place finish
시즌 종료 후 스탠 콜리모어가 아스톤 빌라로 이적하자, 에반스는 아직 어린 오언을 곧바로 주전으로 투입하는 대신 미드필더 폴 인스와 독일의 전설적인 공격수 카를하인츠 리들레를 영입하여 로비 파울러의 파트너로 기용했다. 리버풀은 1997-98 시즌 강력한 우승 도전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시즌 대부분 동안 지속된 파울러의 부상으로 인해 팀은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했다. 오언은 36번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18골을 터뜨리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은 3시즌 연속으로 이전 시즌보다 3점 적은 총 65점을 기록하며 리그 3위에 만족해야 했고, 또다시 UEFA컵에 진출하게 되었다.
3.1.6. Joint management and departure
1998년 리버풀의 오랜 '부트 룸' 코치였던 로니 모란이 은퇴했고, 1998-99 시즌부터는 제라르 울리에가 그 자리를 대체할 예정이었다. 구단은 울리에를 에반스와 함께 리버풀의 공동 감독으로 임명하기로 결정했으나, 이 공동 감독 체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결국 에반스는 1998년 11월에 사임하여 울리에가 단독으로 팀을 맡게 되었다. 울리에는 2004년까지 클럽에 남아 FA컵 1회, UEFA컵 1회, 리그컵 2회 우승을 차지했다.
3.2. Post-Liverpool career
리버풀을 떠난 후 로이 에반스는 다양한 클럽에서 코치 및 이사직을 맡으며 축구계 활동을 이어갔다.
3.2.1. Fulham
에반스는 리버풀을 떠난 후 1년 넘게 무직 상태였다. 1998-99 시즌 말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된 노팅엄 포레스트의 감독직과 연결되었지만, 그 자리는 데이비드 플랫에게 돌아갔다. 1999년에는 볼턴 원더러스 감독 경쟁에서도 전 선수인 샘 앨러다이스에게 밀렸다. 마침내 2000년 3월, 그는 풀럼의 공동 임시 감독으로 카를하인츠 리들레와 함께 복귀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장 티가나가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며 그의 역할은 짧게 끝났다.
3.2.2. Swindon Town
2001년 6월, 에반스는 디비전 투 소속의 스윈던 타운의 축구 이사로 임명되었고, 33세의 전 리버풀 수비수 닐 러덕이 선수 겸 코치로 합류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카운티 그라운드에서 승격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2001년 12월 20일 앤디 킹 신임 감독으로 교체되었다.
3.2.3. Wales national team assistant
2004년 11월, 전 리버풀 공격수 존 토샥이 웨일스의 신임 감독으로 임명되었을 때, 에반스는 그의 수석 코치 제안을 수락했다.
3.2.4. Wrexham
2007년 2월, 에반스는 리그 투에서 강등권에 허덕이던 렉섬의 브라이언 캐리 감독 밑에서 파트타임 수석 코치직을 수락했다. 그는 렉섬이 내셔널 리그로 강등되는 것을 막는 데 기여했으며, 2006-07 시즌 말 렉섬이 리그 투 강등을 면하자 이 계약은 연장되었다.
3.2.5. Media and other activities

코치 활동 외에도 에반스는 현재 리버풀 공식 웹사이트에서 라이브 오디오 중계의 공동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그는 2004년 말 출판된 그의 공인 전기인 고스트 온 더 월(Ghost on the Wall)의 집필에 협력했다.
4. Legacy and evaluation
로이 에반스는 리버풀 FC 감독 시절 공격적인 축구 스타일을 확립하며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팀은 '스파이스 보이즈'로 불리며 재능과 논란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4.1. Managerial style and team characteristics
로이 에반스가 1994년 그레이엄 수네스로부터 감독직을 인계받았을 때 팀은 급격한 하락세에 있었다. 그의 첫 정식 시즌(1994-95)에 리버풀은 74점을 기록하며 4위를 차지했다. 이 시점에서 그는 수네스 체제 하에서 시작된 하락세를 역전시킨 것처럼 보였고, '영광의 시대'가 곧 돌아올 것처럼 느껴졌다.
에반스는 특히 공격 축구에서 인상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단을 구축했으며, 1990년대 잉글랜드 축구에서 가장 흥미롭고 미학적으로 즐거운 팀 중 하나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팀의 공격적인 성향과 속도, 기술을 강조하는 축구를 선호했다.
4.2. Overall impact and reception
하지만 팀은 다음 세 시즌 동안 각각 이전 시즌보다 3점씩 적게 획득하는 결과를 보였는데 (1995-96, 1996-97, 1997-98), 이는 초기 '밀월 관계' 이후 팀이 빠르게 정체되었음을 시사한다. 제라르 울리에와의 공동 감독 체제는 이러한 정체를 역전시키기 위한 구단의 급진적인 노력이었다. 비록 프리미어리그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로이 에반스의 리버풀은 화려하고 공격적인 플레이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스파이스 보이즈' 논란처럼, 경기 외적인 문제들이 팀의 성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도 존재했다.
5. Honours
로이 에반스는 감독 경력 동안 리버풀 FC에서 주요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개인적으로도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5.1. Managerial honours
- 리그컵: 1994-95
5.2. Individual awards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 1995년 12월, 1996년 1월
6. Managerial statistics
다음은 로이 에반스의 감독 경력에 대한 통계 기록이다.
팀 | 시작일 | 종료일 | 기록 | ||||
---|---|---|---|---|---|---|---|
경기 수 | 승리 | 무승부 | 패배 | 승률 (%) | |||
리버풀 | 1994년 1월 28일 | 1998년 11월 12일 | 244 | 123 | 63 | 58 | 50.4 |
스윈던 타운 | 2001년 8월 3일 | 2001년 12월 20일 | 26 | 10 | 6 | 10 | 38.5 |
총합 | 270 | 133 | 69 | 68 | 4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