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레미 가르드 (Rémi Gardeʁemi ɡaʁd프랑스어, 1966년 4월 3일 출생)는 프랑스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이다. 그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와 리베로로 활약했으며, 그의 선수 경력 대부분을 첫 클럽인 올랭피크 리옹에서 보냈다. 리옹에서 그는 1988-89 시즌 프랑스 디비전 2 우승에 기여하며 리그 1 승격을 이끌었다. 1993년 RC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하여 쿠프 드 프랑스 결승에 진출하고 UEFA 인터토토컵에서 우승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1996년에는 잉글랜드의 아스널에 입단하여 1997-98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더블)에 기여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1년 후 은퇴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프랑스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UEFA 유로 1992에 참가하기도 했다.
선수 은퇴 후, 가르드는 올랭피크 리옹에서 코치와 수석 코치로 일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고, 2011년에는 감독으로 부임하여 쿠프 드 프랑스와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애스턴 빌라와 몬트리올 임팩트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그의 감독 경력은 특히 올랭피크 리옹에서의 유소년 선수 육성과 애스턴 빌라에서의 강한 규율 강조, 그리고 이후 클럽에서의 어려운 시기로 특징지어진다.
2. 선수 경력
레미 가르드는 올랭피크 리옹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여 RC 스트라스부르와 아스널을 거쳐 활약했으며,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도 국제 무대에 나섰다.
2.1. 클럽 경력
레미 가르드의 클럽 경력은 크게 세 클럽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올랭피크 리옹에서 프로 데뷔하여 팀의 리그 1 승격에 기여했고, RC 스트라스부르에서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경험했으며, 아스널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다채로운 성공을 거두었다.
2.1.1. 올랭피크 리옹
레미 가르드는 1982년 그의 고향인 론의 라르브렐 근처에 위치한 올랭피크 리옹의 유소년팀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1987년에 프로 선수로 데뷔했으며,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나 리베로로 뛰면서 1989년 리그 1 승격에 크게 기여했다. 승격 이후에도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주장을 맡았고, 꾸준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가르드는 1993년 리옹을 떠났다.
2.1.2. RC 스트라스부르
1993년 리옹을 떠난 가르드는 RC 스트라스부르에 입단하여 세 시즌을 보냈다. 그는 1995년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으나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다. 같은 해 여름, 스트라스부르는 1995 UEFA 인터토토컵에서 오스트리아의 아드미라 바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가르드의 첫 국제 클럽 대회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었다.
2.1.3. 아스널
1996년 8월, 레미 가르드는 아르센 벵거 감독의 추천을 받아 아스널로 이적하며 잉글랜드 무대에 진출했다. 당시 벵거는 아직 아스널의 감독이 아니었으며 나고야 그램퍼스와의 계약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르드는 같은 날 파트리크 비에이라와 함께 아스널에 입단했지만, 30세의 베테랑이었던 가르드는 비에이라와 달리 미래의 주전 선수라기보다는 경험 많은 백업 선수 역할로 영입되었다.
가르드는 파트리크 비에이라나 에마뉘엘 프티의 백업으로서 깔끔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는 아스널에서 세 시즌 동안 총 45경기에 출전했으며, 1997-98 시즌에는 더블 우승을 달성한 팀의 일원이 되었다. 이 시즌에 그는 리그에서 10경기에 출전하여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기 위한 최소 출전 기준을 간신히 충족했다. 그는 또한 FA컵에서도 한 경기에 출전했는데,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8강 재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스널은 승리했다. 하지만 1998년 FA컵 결승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고령과 지속적인 무릎 부상으로 출전 기회가 제한되면서, 가르드는 1999년 6월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당시 그는 아스널과 함께 두 시즌 연속 더블 달성에 아쉽게 실패한 직후였는데, 아스널은 리그에서 2위를 기록하고 FA컵 준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패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레미 가르드는 1990년 1월 21일 쿠웨이트시티의 알사다쿠아 왈살람 스타디움에서 열린 쿠웨이트와의 경기 (1-0 승)에서 프랑스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프랑스 대표팀에서 총 6번의 캡을 기록했으며, UEFA 유로 1992 프랑스 대표팀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대회에서는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은 스웨덴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조별리그 단계에서 탈락했다.
3. 감독 경력
레미 가르드는 선수 은퇴 후 축구 해설가로 활동하다가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여 올랭피크 리옹, 애스턴 빌라, 몬트리올 임팩트의 감독을 맡았다. 그의 지도자 경력은 각기 다른 리그와 문화권에서 다양한 도전과 성과를 보여주었다.
3.1. 올랭피크 리옹
프랑스 TV에서 축구 평론가로 활동한 후, 레미 가르드는 2003년 그의 옛 클럽인 올랭피크 리옹에 코치로 복귀했다. 그는 2003-04 시즌과 2004-05 시즌 리그 1 우승에 기여하며 팀의 성공을 도왔다. 2005년 여름 폴 르 구엔 감독이 떠난 후, 가르드는 후임인 제라르 울리에 감독의 수석 코치가 되어 2007년 5월까지 이 역할을 수행했다. 2007년에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아스널의 데이비드 딘 부회장의 역할을 대체할 새로운 자리인 디렉터 오브 풋볼(Director of Football) 직책에 복귀할 것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2010년, 그는 리옹의 훈련 시설인 센터 톨라 볼로주의 디렉터로 일했다. 2011년 6월 22일, 그는 클로드 퓌엘의 후임으로 리옹의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첫 감독직을 맡은 리옹에서 가르드는 UEFA의 재정적 페어플레이 제도 준수 문제로 인해 자금난에 시달렸으며, 이로 인해 위고 요리스, 알리 시소코, 미셸 바스토스, 리산드로 로페스, 데얀 로브렌 등 핵심 선수들을 매각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사무엘 움티티, 막심 고날롱, 클레망 그르니에, 알렉상드르 라카제트와 같은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여 주전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에는 쿠프 드 프랑스와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을 차지하며 팀의 성공을 이끌었다.
가르드는 2013-14 시즌이 끝난 후인 2014년 5월 13일, 개인적인 사유와 가족 문제로 인해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그는 정신적인 압박감으로 인해 휴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3.2. 애스턴 빌라
2015년 11월 2일, 가르드는 프리미어리그 최하위에 머물던 애스턴 빌라의 감독으로 3년 6개월 계약을 체결했다. 6일 후, 가르드 부임 후 첫 경기에서 그의 팀은 리그 선두인 맨체스터 시티와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인상적인 시작을 알렸다.
가르드는 애스턴 빌라에서 팀 규율을 매우 강조했다. 에버턴에게 4-0으로 패한 후 파티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 미드필더 잭 그릴리시를 1군에서 제외했으며, 팀 전체에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과도한 파티를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2016년 3월 29일, 애스턴 빌라가 여전히 리그 최하위에 머물자, 가르드는 상호 합의에 의해 클럽을 떠났다. 그의 재임 기간은 5개월에 불과했다.
3.3. 몬트리올 임팩트
애스턴 빌라를 떠난 후 18개월 이상 무직 상태였던 레미 가르드는 2017년 11월 8일 메이저 리그 사커의 몬트리올 임팩트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첫 공식 경기인 밴쿠버 화이트캡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몬트리올은 2-1로 패배했다.
가르드의 첫 시즌 동안 몬트리올은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경쟁했지만, 정규 시즌 마지막 날 뉴잉글랜드 레벌루션에 1-0으로 패하며 MLS컵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결국 가르드는 2019년 8월 21일 몬트리올에 의해 해임되었고, 그의 후임으로는 전 휴스턴 다이너모 감독이었던 윌메르 카브레라가 부임했다.
4. 감독 통계
레미 가르드의 감독으로서의 총 전적은 다음과 같다.
팀 | 부임 | 퇴임 | 기록 | ||||
---|---|---|---|---|---|---|---|
경기 | 승 | 무 | 패 | 승률 % | |||
올랭피크 리옹 | 2011년 6월 22일 | 2014년 5월 23일 | 168 | 85 | 38 | 45 | 50.6 |
애스턴 빌라 | 2015년 11월 2일 | 2016년 3월 29일 | 23 | 3 | 7 | 13 | 13.0 |
몬트리올 임팩트 | 2017년 11월 8일 | 2019년 8월 21일 | 67 | 28 | 9 | 30 | 41.8 |
합계 | 258 | 116 | 54 | 88 | 45.0 |
5. 수상 경력
레미 가르드는 선수와 감독으로서 다음과 같은 주요 트로피와 개인적인 영예를 획득했다.
5.1. 선수 수상 경력
레미 가르드는 선수 시절 올랭피크 리옹, RC 스트라스부르, 아스널에서 다양한 국내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 올랭피크 리옹
- 리그 2 우승: 1988-89
- RC 스트라스부르
- UEFA 인터토토컵 우승: 1995
- 쿠프 드 프랑스 준우승: 1994-95
- 아스널
- 프리미어리그 우승: 1997-98
- FA컵 우승: 1997-98
-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 1998
5.2. 감독 수상 경력
레미 가르드는 감독으로서 올랭피크 리옹을 이끌며 두 개의 주요 국내 트로피를 획득했다.
- 올랭피크 리옹
- 쿠프 드 프랑스 우승: 2011-12
-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 2012
6. 평가 및 비판
레미 가르드는 선수 시절에는 안정적이고 믿음직한 수비형 미드필더 및 수비수로 평가받았다. 특히 아스널에서는 파트리크 비에이라와 에마뉘엘 프티의 백업으로서 팀의 1997-98 시즌 더블 우승에 기여하며 경험 있는 베테랑 선수로서의 가치를 입증했다.
감독으로서 그는 올랭피크 리옹 재임 시절 UEFA의 재정적 페어플레이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사무엘 움티티, 막심 고날롱, 클레망 그르니에, 알렉상드르 라카제트와 같은 구단 유소년 출신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하여 주전으로 성장시켰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또한 쿠프 드 프랑스와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을 통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팀에 트로피를 안겨주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인 사유로 리옹 감독직에서 스스로 물러나, 감독이라는 직업이 가져오는 정신적 압박감을 피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애스턴 빌라와 몬트리올 임팩트에서의 감독직은 비교적 짧고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애스턴 빌라에서는 팀의 최하위권 탈출에 실패하고 5개월 만에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이 해지되었으며, 몬트리올에서는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후 해임되는 등 프리미어리그와 메이저 리그 사커에서 그의 전술 및 팀 운영 방식이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남겼다. 애스턴 빌라 시절 잭 그릴리시에 대한 징계 등 팀 규율 확립에 힘썼으나, 이것이 성적 부진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감독 경력은 리옹에서의 성공적인 유스 육성과 대조적으로, 이후의 클럽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보였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