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화적 정체성
레르의 이름과 그가 바다의 신으로서 지니는 위상, 그리고 그의 가계는 아일랜드 신화 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1.1. 이름의 의미와 어원
레르의 이름은 고대 아일랜드어로 '바다'를 뜻하는 'ler'에서 유래했다. 'Ler'는 주격 형태이고, 'Lir'는 소유격 형태이다. 이는 레르가 바다 자체를 의인화한 존재임을 시사한다. 그의 아들인 마난난 막 리르의 이름에 붙는 '막 리르'는 '레르의 아들' 또는 '바다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레르가 부계 명칭(patronymic)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1.2. 바다의 신 및 의인화
레르는 아일랜드 신화에서 바다의 신으로 등장하지만, 그보다는 바다 자체의 의인화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의 위상은 아들 마난난 막 리르에게 계승되어, 마난난이 중세 아일랜드 문학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초기 족보에는 레르가 Allód알로드아일랜드어("모든 것에 명성 있는 자")라는 이름으로도 언급된다. 이는 레르를 지칭하는 또 다른 고대 명칭으로, 그의 신화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1.3. 족보 및 가계
레르는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바다의 신 마난난 막 리르의 아버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콘의 아들 아르트의 모험'에서는 레르의 아들 중 한 명으로 로단(Lodan)이 언급된다. 또한, '바이레 수하인 시스 에바인'이라는 시에서는 미디르가 레르의 아버지이자 마난난의 할아버지로 언급되어, 레르의 가계가 신화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2. 주요 신화 및 이야기
레르는 특히 '레르의 아이들' 이야기의 핵심 인물로 등장하며, 다른 고대 문헌에서도 바다와 동일시되거나 그의 역할이 언급된다.
2.1. 레르의 아이들

레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신화는 '레르의 아이들'이다. 이 이야기 속 레르가 마난난 막 리르의 아버지인 레르와 동일 인물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이야기에서 레르는 투어허 데 다넌이 밀레시안에게 패배하여 에린 땅을 내주고 지하의 '요정 언덕'(sídhe, 아오스 시)으로 은둔한 후, 차기 왕 자리를 놓고 보드브 데르그와 경쟁한다. 레르는 아르마(Armagh)의 지하에 거주하고 있었다. 보드브 데르그가 새로운 왕으로 선택되자, 레르를 달래기 위해 보드브는 자신의 딸 중 한 명인 아이브(Aeb)를 레르에게 아내로 주었다.
레르와 아이브 사이에는 네 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딸 핀누얼러와 세 아들 에드, 그리고 쌍둥이인 피아크라(Fiachra)와 콘(Conn)이다. 아이브가 죽자, 보드브는 자녀들이 어미 없이 자라는 것을 원치 않아 자신의 다른 딸인 아이페(Aoife)를 레르에게 아내로 보냈다. 그러나 아이페는 남편 레르가 전처 소생의 자녀들을 아끼는 것에 질투심을 느껴, 아이들에게 900년 동안 백조로 살아야 하는 끔찍한 저주를 내렸다.
2.2. 기타 문헌에서의 언급
기원후 9세기 주교이자 학자인 코르막 막 킬레난이 쓴 아일랜드어 주석서 《코르막의 서사집》에는 마난난 막 리르와 그의 아버지 레르가 언급된다. 코르막은 레르를 바다와 동일시하며, 마난난이 '바다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막 리르'로 불리는 이유를 설명한다. 코르막에 따르면, 마난난은 맨섬에 살았던 저명한 상인이자 서유럽 최고의 도선사로, 하늘을 보고 날씨 변화를 예측할 수 있었기에 스코트인과 브리튼인들이 그를 바다의 신이라 부르고 '바다의 아들'이라 칭했다.
또한, '운문 디엔헨하스'(Metrical Dindshenchas)에서는 '모든 것에 명성 있는 자'라는 뜻의 알로드(Allód)로서 레르가 순결한 크로힌드(Crofhind)의 아버지로 기록되어 있다. '아일랜드 침략의 서'(Lebor Gabála Érenn)에서도 레르의 이름이 언급되며, 이는 그의 신화적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3. 비교 신화 및 문화적 영향
레르는 다른 신화 속 바다의 신들과 비교되며, 현대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3.1. 다른 신화와의 비교
레르는 웨일스 신화의 바다의 신 리르와 연관되어 동일시된다. 웨일스 신화의 마나위단은 아일랜드 신화의 마난난 막 리르에 해당하지만, 마나위단은 바다의 신이 아닌 마법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레르는 북유럽 신화에서 바다를 의인화한 신인 에기르와도 유사한 특징을 공유한다. 이들 모두 바다의 강력한 힘과 예측 불가능성을 상징하는 신격으로 나타난다.
3.2. 대중문화에서의 등장
레르 또는 '레르의 아이들' 이야기는 현대 대중문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거나 인용된다. 예를 들어, 로버트 E. 하워드의 코난 이야기 중 '미끄러지는 그림자'(The Slithering Shadow)에서는 레르가 가상의 신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고대 신화가 현대에도 영감을 주며 지속적으로 재창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관련 항목
- 마난난 막 리르
- 레르의 아이들
- 리르
- 투어허 데 다넌
- 보드브 데르그
- 핀누얼러
- 에드
- 에기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