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초반
로런스 허버트 프렌치는 1907년 캘리포니아주 바이살리아에서 태어났다.
2. 프로 야구 경력
로런스 허버트 프렌치는 1926년부터 1942년까지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하며 마이너 리그와 메이저 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했다. 그는 특히 메이저 리그에서 선발 투수로서 꾸준한 성적을 기록했다.
2.1. 마이너 리그
프렌치는 1926년부터 1928년까지 퍼시픽 코스트 리그 소속의 포틀랜드 비버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2. 메이저 리그
마이너 리그에서의 활약 후, 프렌치는 내셔널 리그의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합류하여 메이저 리그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여러 팀을 거치며 인상적인 투구 기록을 남겼다.
2.2.1. 피츠버그 파이리츠 (1929-1934)
프렌치는 1929년부터 1934년까지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으로 활약했다. 그는 팀의 핵심 투수로서 1930년부터 1934년까지 매년 260 이닝 이상을 투구하며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2.2.2. 시카고 컵스 (1935-1941)
프렌치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되어 1935년부터 1941년까지 뛰었다. 그는 1935년과 1936년에 각각 4번의 완봉승을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완봉승 부문 선두를 차지했다. 또한 1930년부터 1940년까지 매 시즌 최소 10승 이상을 거두는 꾸준함을 보였다.
2.2.3. 브루클린 다저스 (1941-1942)
1941년 시즌 초 부진한 출발을 보인 후, 프렌치는 브루클린 다저스에 합류하여 1942년 시즌까지 활약했다. 1942년 시즌을 끝으로 그는 프로 야구에서 은퇴했다.
2.3. 통산 기록 및 주요 업적
로런스 허버트 프렌치는 총 14시즌의 메이저 리그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통산 기록을 남겼다. 그는 모든 14시즌 동안 최소 10번의 선발 등판과 6번의 구원 등판을 기록했다.
부문 | 기록 |
---|---|
승-패 | 197-171 |
평균자책점 | 3.44 |
탈삼진 | 1,187 |
이닝 | 3,152 |
완봉승 | 40 |
완투 | 198 |
타자로서 프렌치는 570경기에서 타율 0.188 (1,057타수 199안타)를 기록했으며, 1개의 홈런, 83개의 득점, 84개의 타점, 48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0.951의 수비율을 기록했다.
프렌치는 1935년 월드 시리즈, 1938년 월드 시리즈, 1941년 월드 시리즈에 참가했으나, 모두 우승에는 실패했다.
한 작가는 프렌치를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한 투수 중 가장 뛰어난 선수로 평가하기도 했다.
2.4. 주요 일화
프렌치의 야구 경력 중 흥미로운 일화로 샤워 게임이 있다. 1933년 7월 12일, 보스턴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그의 팀이 9회 초 8대0으로 앞서고 있었다. 당시 구원 투수였던 프렌치는 경기가 거의 끝났다고 판단하고 불펜을 떠나 일찍 샤워를 하러 갔다. 그러나 그가 몸을 씻는 동안 브레이브스는 극적으로 점수를 만회하여 8대7까지 따라붙었다. 프렌치에게 마운드에 오르라는 호출이 왔을 때, 그는 비누 거품을 씻어낼 시간조차 없었다. 그는 서둘러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로 달려 나갔고, 그의 목에서는 비누 거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3. 군 경력
로런스 허버트 프렌치는 프로 야구 경력을 마친 후 미국 해군에 입대하여 오랜 기간 군인으로서 국가에 헌신했다.
3.1. 입대 및 복무
프렌치는 1942년 메이저 리그 시즌을 마친 후 미국 해군에 입대하여 직업 군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에 모두 참전하여 복무했다.
3.2. 전역 및 수훈
프렌치는 1969년에 대령 계급으로 해군에서 전역했다. 그는 복무 기간 동안 공로훈장을 수훈받았다.
4. 말년과 사망
로런스 허버트 프렌치는 1987년 2월 9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7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5. 평가 및 유산
로런스 허버트 프렌치는 14년간의 메이저 리그 선수 경력 동안 꾸준한 성적을 보여주며 당대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그는 너클볼 스페셜리스트로서 완봉승과 완투를 많이 기록하며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를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한 투수들 중 가장 뛰어난 선수로 평가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프로 야구 은퇴 후 미국 해군에 입대하여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에 참전하며 해군 대령으로 전역하는 등 군인으로서도 국가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었다. 그의 생애는 스포츠에서의 성공과 군인으로서의 봉사를 결합한 독특하고 귀감적인 유산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