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초년 및 배경
라파엘 아르카데비치 치미시키안은 1929년 3월 23일 조지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트빌리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6년에 역도를 시작하면서 선수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2. 역도 경력
치미시키안은 역도 선수로서 오랜 기간 활발히 활동하며 국내외 주요 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선수 경력은 초기 국내 성공과 이후의 올림픽 및 국제 대회에서의 괄목할 만한 업적으로 나눌 수 있다. 그는 총 10개의 세계 기록을 세웠으며, 이는 그의 탁월한 기량을 증명한다.
2.1. 초기 경력 및 국내 성공
치미시키안은 자신의 첫 대회인 1949년 소련 역도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밴텀급 (56 kg)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1950년에는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후, 곧바로 페더급 (60 kg)으로 체급을 상향 조정했다. 같은 해 새로운 체급으로 출전한 소련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새로운 체급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했다.
그는 소련 역도 선수권 대회에서 여러 차례 메달을 획득하며 국내 최정상급 선수임을 확고히 했다. 1949년(밴텀급)과 1951년, 1954년, 1955년, 1960년(이상 페더급)에 금메달을 차지하며 총 5회 우승을 기록했다. 또한 1950년, 1952년, 1953년, 1957년, 1958년에 은메달을, 1956년과 1962년에 동메달을 획득하며 꾸준히 메달을 추가했다.
2.2. 올림픽 및 국제 대회 업적
치미시키안은 국제 무대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그는 1952년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다. 이로써 그는 소련 역도 선수 중 두 번째로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선수가 되었다. 그는 또한 1952년 올림픽 역도 종목에서 살아있는 마지막 올림픽 챔피언이자 마지막 메달리스트였다.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에서는 1950년 파리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후, 1954년 빈과 1955년 뮌헨에서 두 차례 연속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1953년 스톡홀름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추가했다.
유럽 역도 선수권 대회에서는 더욱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1950년 파리, 1952년 헬싱키, 1954년 빈, 1955년 뮌헨, 1956년 헬싱키, 1957년 카토비체에서 총 6차례 금메달을 목에 걸며 유럽 챔피언 타이틀을 석권했다. 1953년 스톡홀름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선수 경력 동안 그는 총 10개의 세계 기록을 수립했는데, 이는 스내치에서 3개, 클린 & 저크에서 2개, 그리고 합계에서 5개였다.
다음은 그의 주요 국제 대회 및 소련 국내 대회 메달 기록이다.
남자 역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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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대표 | ||
올림픽 | ||
금메달 | 1952년 헬싱키 | -60 kg |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 | ||
은메달 | 1950년 파리 | -56 kg |
은메달 | 1953년 스톡홀름 | -60 kg |
금메달 | 1954년 빈 | -60 kg |
금메달 | 1955년 뮌헨 | -60 kg |
유럽 역도 선수권 대회 | ||
금메달 | 1950년 파리 | -56 kg |
금메달 | 1952년 헬싱키 | -60 kg |
은메달 | 1953년 스톡홀름 | -60 kg |
금메달 | 1954년 빈 | -60 kg |
금메달 | 1955년 뮌헨 | -60 kg |
금메달 | 1956년 헬싱키 | -60 kg |
금메달 | 1957년 카토비체 | -60 kg |
소련 역도 선수권 대회 | ||
금메달 | 1949년 보로네시 | -56 kg |
은메달 | 1950년 하르키우 | -60 kg |
금메달 | 1951년 카우나스 | -60 kg |
은메달 | 1952년 이바노보 | -60 kg |
은메달 | 1953년 탈린 | -60 kg |
금메달 | 1954년 페트로자보츠크 | -60 kg |
금메달 | 1955년 민스크 | -60 kg |
동메달 | 1956년 모스크바 | -60 kg |
은메달 | 1957년 르비우 | -60 kg |
은메달 | 1958년 스타리노 | -60 kg |
금메달 | 1960년 레닌그라드 | -60 kg |
동메달 | 1962년 트빌리시 | -60 kg |
3. 은퇴 후 활동
선수 생활을 마감한 후에도 치미시키안은 역도계에 기여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국제 역도 심판으로 활동하며 경기 운영에 참여했으며, 조지아 역도 연맹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나중에는 조지아 역도 연맹의 명예 부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4. 유산과 평가
라파엘 치미시키안은 역도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뛰어난 업적과 기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정받았다. 1952년에는 소련 공훈 스포츠 마스터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수여받았다. 또한 그의 고향인 트빌리시의 명예 시민으로 선정되었으며, 21세기 조지아 최고의 역도 선수로 손꼽히기도 했다.
5. 사망
라파엘 아르카데비치 치미시키안은 2022년 9월 25일에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