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라이언 홀(Ryan Hall영어, 1982년 10월 14일 미국 워싱턴주 커클랜드 출생)은 미국의 은퇴한 장거리 달리기 육상 선수로, 2007년부터 2025년까지 미국의 하프마라톤 기록을 보유했다. 그는 59분 43초의 기록으로 하프마라톤에서 1시간의 장벽을 깬 최초의 미국인 선수이다. 또한 2011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 4분 58초를 기록하며 2시간 5분 미만을 달린 유일한 미국인 마라톤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비록 이 기록은 코스 특성상 공식 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지만, 그의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홀은 2008 베이징 올림픽 마라톤 선발전에서 우승하여 올림픽에 출전했고, 본선에서는 10위를 기록했다. 그는 젊은 육상 선수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으며, 장거리 달리기 스포츠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2. 초기 생애 및 아마추어 경력
라이언 홀의 초기 생애는 워싱턴주 커클랜드에서 시작되었고 캘리포니아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육상 선수로서 잠재력을 보였으며, 이후 프로 경력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2.1. 고등학교 경력
홀은 빅베어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때 캘리포니아주 크로스 컨트리 챔피언에 올랐다. 3학년 때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풋 로커 전국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으며, 2000년 마운트 새크 어시스트 코스 기록도 세웠다. 트랙 경기에서는 2학년 때 내셔널 스콜라스틱 1마일 챔피언십에서 4분 6.15초를 기록했고, 3학년 때는 CIF 캘리포니아주 대회 1600미터 달리기에서 4분 2.62초의 주(州)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또한 2학년 때 3200미터 달리기에서 8분 55.12초로 주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홀은 2000년 풋 로커 크로스 컨트리 챔피언십에서 데이선 리첸하인과 앨런 웹에 이어 결승선을 통과하며 그들과 같은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2001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열린 페레그린 시스템스 U.S. 오픈 1500미터 경기에서 3분 42.70초를 기록했으며, 같은 해 2001년 USA 야외 트랙 & 필드 챔피언십에도 참가했다.
2.2. 대학 경력
스탠퍼드 대학교에서의 라이언 홀의 대학 경력은 고등학교 시절 보여줬던 잠재력에 비해 부상으로 인해 초반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1년, 홀은 대학 데뷔전인 머레이 키팅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지만, NCAA 남자 크로스 컨트리 챔피언십에서는 76위에 그쳤다. 2002년 트랙 시즌에는 선수 자격 정지 기간을 가졌다. 2학년이던 크로스 컨트리 시즌에는 스탠퍼드 인비테이셔널과 노터데임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다. 그는 Pac-10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NCAA 챔피언십에서 37위를 기록하며 올아메리칸 영예를 안았다. 이어서 2003년 1학년 트랙 시즌에는 1500미터 개인 최고 기록인 3분 43.37초를 달성했다. 그의 대학 크로스 컨트리 경력의 하이라이트는 2003년 3학년 때 찾아왔다. 그는 콜로라도의 데이선 리첸하인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스탠퍼드 대학교의 NCAA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었고, 그 해 Pac-10 크로스 컨트리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2004년 트랙 시즌은 부상으로 인해 단축되었지만, 5000미터에서 13분 45초의 최고 기록을 세워 홀의 주 종목이 1500미터에서 장거리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부상에서 복귀한 그는 2004년 NCAA 챔피언십에서 26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올아메리칸 자격을 얻었다. 홀이 고등학교 때부터 기대받았던 잠재력은 2005년 트랙 시즌에 폭발했다. 그는 5000미터에서 13분 22.32초를 기록하며 생애 첫 NCAA 남자 야외 트랙 & 필드 챔피언십 개인 타이틀을 획득했는데, 팀 동료 이언 돕슨을 1초 미만의 간격으로 따돌리며 두 선수가 경기를 지배했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사회학 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3. 프로 육상 경력
라이언 홀은 2005년부터 프로 육상 선수로 활동하며 여러 국내외 대회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고, 특히 하프마라톤과 마라톤에서 주목할 만한 기록들을 세웠다.
3.1. 프로 초기 활동 (2005-2010)

홀은 2005년부터 아식스의 후원을 받았다. 당시 그의 코치는 빌라노바 대학교의 전직 선수였던 테렌스 마혼이었다. 2006년, 그는 12 km 크로스 컨트리 챔피언십에서 27초 차이로 우승하며 첫 전국 타이틀을 획득했다. 같은 해 9월 16일, 홀은 뉴욕주 노스포트에서 열린 그레이트 카우 하버 10K에서 28분 22초의 새로운 코스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홀의 도로 달리기 성공은 2006년 10월 8일, 57분 54초를 기록하며 이전 압디 압디라만이 2005년에 세운 기록보다 48초 빠른 기록으로 미국 20km 기록을 깨면서 계속되었다.
2007년 1월 14일, 홀은 휴스턴에서 열린 아람코 휴스턴 하프마라톤에서 59분 43초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이 기록은 1985년 9월 15일 필라델피아에서 마크 커프가 세운 1시간 0분 55초의 이전 북미 기록을 경신하는 성과였다. 2007년 4월 22일, 홀은 런던 마라톤에서 2시간 8분 24초로 7위를 차지하며, 미국인 선수 중 마라톤 데뷔전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다.
2007년 11월 3일, 홀은 뉴욕시에서 열린 2008년 미국 올림픽 대표팀 선발전 마라톤에서 대회 기록인 2시간 9분 2초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이 우승으로 그는 데이선 리첸하인과 브라이언 셀과 함께 2008 베이징 올림픽 마라톤 출전 자격을 얻었다. 2008년 4월 13일, 홀은 런던 마라톤에서 2시간 6분 17초로 5위를 차지했다. 당시 25세였던 홀은 자신의 세 번째 마라톤 경기에서 이러한 성과를 달성했다.
홀은 2008년 9월 러너스 월드 잡지 표지에 실렸고, 2008 베이징 올림픽 마라톤에서의 "영광을 위한 질주"에 대해 이야기했다. 2008년 8월 24일, 홀은 2008년 남자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12분 33초로 10위를 차지하며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한 미국인 선수가 되었다. 그는 선두 그룹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페이스로 경기를 운영했으며, 15 km 지점의 21위에서 40 km 지점에는 10위까지 점차 순위를 끌어올렸다. 그의 팀 동료인 데이선 리첸하인과 브라이언 셀은 각각 9위와 22위를 기록했다. 홀은 미국 도로 주자 클럽으로부터 2008년 오픈 남자 부문 올해의 도로 주자로 선정되었다.
2009년 4월 20일, 홀은 2009년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여 에티오피아의 데리바 메르가와 케냐의 다니엘 로노에 이어 2시간 9분 40초로 종합 3위를 차지했다. 메르가와 로노는 각각 2시간 8분 42초와 2시간 9분 32초를 기록했다. 그는 2010년 이 대회에 다시 참가했지만, 2시간 8분 41초를 기록하며 4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기록은 보스턴 마라톤에서 미국인 선수가 기록한 가장 빠른 시간이었다.
2010년, 홀은 보스턴 마라톤에서 4위를 차지했고, 필라델피아 디스턴스 런 하프마라톤에서는 14위를 기록했다. 피로로 인해 그는 시카고 마라톤에서 기권했다. 10월에는 코치인 테렌스 마혼과 맘모스 트랙 클럽을 떠났다. 그는 2010년 USA 7마일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3.2. 보스턴 마라톤 최고 기록 (2011)
2010년 12월 16일, 홀은 2011년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할 것이라고 발표하며, 이 대회에 3년 연속 출전하게 되었다. 2011년 4월 18일, 홀은 2시간 4분 58초를 기록하며 4위를 차지했고, 이는 미국인 선수가 달성한 마라톤 최고 기록이었다. 케냐의 제프리 무타이는 당시 공인된 세계 기록보다 57초 빠른 2시간 3분 2초로 우승했으며, 홀이 초반 빠른 페이스를 설정하고 유지한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기록은 보스턴 코스가 단일 지점에서 출발하여 특정 지점으로 이어지는 코스이며 킬로미터당 1미터 이상의 고도 하락이 있어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2011년 당시 강력한 순풍(시속 24 km/h에서 32 km/h)이 선수들의 놀라운 기록에 기여했다.
3.3. 올림픽 참가 및 부상 시기 (2012-2015)

2012년 1월, 홀은 휴스턴에서 열린 올림픽 마라톤 선발전에서 2시간 9분 30초를 기록했다. 중간 지점에서는 선두를 달렸지만, 결국 메브 케플레지기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두 번째 올림픽 팀에 합류할 자격을 얻었다. 2012 런던 올림픽 마라톤에서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약 17.7 km 지점에서 기권했다. 올림픽에서의 실망 이후, 홀은 그 해 말에 열릴 뉴욕시 마라톤에 등록했지만, 9월에 부상으로 인해 출전할 수 없었고 결국 대회에서 철회했다(대회는 허리케인 샌디로 인해 취소되었다).
2014년 4월, 홀은 2014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 17분 50초를 기록하며 20위를 차지했고, 이는 2012년 올림픽 선발전 이후 처음으로 마라톤을 완주한 것이었다. 2014년 9월, 홀은 잭 다니엘스에게 코칭을 받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또한 그는 2014년 유타 밸리 마라톤과 2014년 뉴욕시 마라톤에도 등록했으나, 피로로 인해 모두 기권했다. 2013년, 홀은 보스턴 마라톤과 뉴욕시 마라톤에 등록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모두 기권했다. 홀은 2015년 6월 유타 밸리 마라톤에 출전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완주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2015년 3월 15일, 로스앤젤레스 마라톤에서 홀은 초반 1마일을 4분 42초의 세계 기록에 가까운 페이스로 달렸으나, 5마일 지점에서 선두 그룹과 멀어지며 하프 지점에서 기권했다. 그의 아내 사라는 같은 경기에서 자신의 첫 마라톤에 참가하고 있었다.
4. 은퇴 및 이후 활동
라이언 홀은 2016년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으나,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달리기와 관련된 활동을 이어갔다.
4.1. 선수 경력 은퇴
2016년 1월, 홀은 자신의 몸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이유로 육상 선수로서의 경쟁적인 선수 생활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4.2. 은퇴 후 활동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후, 홀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하며 체중을 58 kg에서 75 kg으로 늘렸다. 2017년 1월, 홀은 친구 매튜 바넷의 격려와 영감을 받아 제3회 월드 마라톤 챌린지에 참가하며 잠시 은퇴를 번복했다. 홀은 시드니에서 열린 마지막 결승선에 말 그대로 자신의 신발을 남겨두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의 달리기 경력이 완전히 끝났음을 알렸다.
5. 개인 최고 기록
경기 종목 | 시간 | 장소 | 날짜 |
---|---|---|---|
1500미터 | 3:42.75 | 스탠퍼드, 미국 | 2001년 6월 9일 |
5,000미터 | 13:16.03 | 카슨, 미국 | 2005년 6월 24일 |
10,000미터 | 28:07.93 | 스탠퍼드, 미국 | 2007년 3월 31일 |
10마일+ | 45:33 | 휴스턴, 미국 | 2007년 1월 14일 |
하프마라톤 | 59:43 NR | 휴스턴, 미국 | 2007년 1월 14일 |
마라톤* | 2:04:58 | 보스턴, 미국 | 2011년 4월 18일 |
마라톤 | 2:06:17 | 런던, 잉글랜드, 영국 | 2008년 4월 13일 |
- (+)는 더 긴 거리의 경주 도중 기록된 시간을 의미한다.
- (*)는 순풍을 받았거나 단일 지점에서 출발하여 고도 하락이 있는 코스에서 기록된 시간을 의미한다.
6. 개인적인 삶

라이언 홀은 2005년 9월, 대학 시절 여자친구였던 프로 육상 선수 사라 베이와 결혼했다. 라이언과 사라 부부는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라이언의 남동생 채드 홀은 2006년 풋 로커 전국 크로스 컨트리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는데, 이는 고등학생 크로스 컨트리 개인 선수들을 위한 사실상의 전국 챔피언십이다. 채드는 매형인 사라 홀(옛 성은 베이)이 2000년 여자부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발자취를 따랐다. 채드는 오리건 대학교에 다녔고, 2008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로 편입하여 2012년에 졸업했다.
2009년, 라이언과 그의 아내 사라는 달리기 커뮤니티가 선수들의 운동 성과를 뒷받침하는 에너지와 자원을 사회 정의 노력에 활용하도록 돕기 위해 더 홀 스텝스 재단(The Hall Steps Foundation영어)을 설립했다. 라이언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주 빅베어 호수는 2008년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향한 라이언의 여정을 지지하기 위해 100만 운동 마일을 함께 달리는 "라이언 홀을 위한 백만 마일 달리기" 캠페인을 시작하기도 했다.
7. 유산과 영향
라이언 홀은 미국 장거리 달리기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아내 사라 홀과 함께 사회적 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7.1. 육상계에 미친 영향
라이언 홀은 장거리 달리기 분야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하프마라톤에서 1시간의 장벽을 깬 최초의 미국인 선수이자, 2시간 5분 미만의 마라톤 기록을 달성한 유일한 미국인으로서 미국 장거리 달리기 역사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그의 이러한 선구적인 기록들은 젊은 육상 선수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그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다. 그는 단순한 기록 달성을 넘어, 강한 정신력과 투지를 통해 장거리 달리기 스포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오늘날의 모습으로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7.2. 사회적 기여
라이언 홀과 그의 아내 사라는 2009년 더 홀 스텝스 재단(The Hall Steps Foundation영어)을 설립하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재단은 달리기 커뮤니티가 자신들의 에너지를 사회 정의를 위한 노력에 활용하도록 독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재단을 통해 홀 부부는 단순히 개인적인 성과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스포츠의 영향력을 활용하여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들의 노력은 달리기 커뮤니티가 단순히 운동의 즐거움을 넘어 사회 문제 해결에 동참하는 적극적인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스포츠를 통한 사회 기여의 모범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