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데이비드 월터 델 트레디시(David Walter Del Tredici, David Walter Del Tredici영어, 1937년 3월 16일 ~ 2023년 11월 18일)는 미국의 저명한 작곡가이다. 그는 퓰리처상 음악 부문을 수상했으며, 구겐하임 펠로십과 우드로 윌슨 펠로십을 받았다. 델 트레디시는 신낭만주의 음악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로부터 "가장 화려한 아웃사이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묘사되었다. 그의 작품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받은 연작들로 잘 알려져 있으며, 명확한 조성감과 대중음악의 리듬을 통합한 전통적인 작곡 방식을 선보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동성애적 정체성을 예술적 표현의 중요한 주제로 삼아, 사회적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동성애적 삶의 기쁨과 슬픔, 개인적인 변화 등을 탐구하고 기념하는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데이비드 델 트레디시는 캘리포니아주 클로버데일에서 비음악적인 가정 환경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니스트로서의 열망을 키웠으며, 이후 학업을 통해 작곡가로 전환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2.1. 어린 시절과 피아노 교육
델 트레디시는 1937년 3월 16일 캘리포니아주 클로버데일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음악과 관련이 없었지만, 그는 12세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며 피아니스트로서의 음악적 삶을 시작했다. 독일의 콘서트 피아니스트인 베른하르트 아브라모비치(Bernhard Abramovitch)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는데, 아브라모비치는 그에게 연주에 있어 "매우 창의적"이 될 것을 격려했고, 델 트레디시는 훗날 이러한 경험이 작곡에 대한 준비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슈만 환상곡 다장조와 같이 연주자가 직접 형태를 만들고 다듬어야 하는 거대하고 복잡한 곡들을 연주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고 회상하며, 이를 통해 "음악적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법"을 배웠다고 밝혔다. 16세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협연하며 데뷔했으며, 이후 아서 피들러의 지휘 아래 리스트와 차이콥스키의 협주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2.2. 학업 및 작곡으로의 전환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 입학하여 피아노 공부를 계속했다. 주로 낭만주의 음악 작품들을 연주했으며, 쇤베르크와 베르크의 곡들도 많이 연주하며 그들의 음악을 사랑했다고 전했다. 버클리 재학 중 아스펜 음악제 및 학교에 참석했는데, 그가 공부하려던 피아니스트가 그에게 "심술궂게" 대하자, 델 트레디시는 대신 작곡에 도전했다. 그는 자신의 첫 작품으로 오푸스 1(Opus 1)을 작곡했고, 미요에게 이 곡을 연주해달라는 초청을 받아 칭찬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델 트레디시는 작곡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독일 표현주의의 그 자신만의 버전"이었다. 그는 1959년 시모어 쉬프린에게서 공부를 마치고 버클리를 졸업했다.
이후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우드로 윌슨 펠로십을 받으며 얼 킴과 로저 세션스에게 1년간 작곡을 사사했다. 당시 프린스턴은 음악 평론가 팀 페이지가 묘사했듯이 "미국 무조 아방가르드의 중심지"였다. 델 트레디시는 "나는 음렬주의 운동이 한창일 때 그곳에 있었다"고 말하며, 자신은 아웃사이더처럼 느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들이 "독일 표현주의에서 표현주의적 요소를 제거하려 하는 것 같았다"고 언급했다. 델 트레디시는 뉴욕에서 로버트 헬프스와 함께 작업하기 위해 프린스턴을 떠났다. 그는 헬프스에게서 자신의 음악적 본능을 지지해주는 멘토를 찾았고, 이후 프린스턴으로 돌아와 1963년에 MFA 학위를 취득했다.
3. 경력 및 주요 활동
데이비드 델 트레디시는 작곡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문학에서 깊은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적 언어를 구축했다. 또한 자신의 동성애적 정체성을 예술적 표현의 중요한 부분으로 승화시켰다.
3.1. 문학적 영감과 주제
1964년, 델 트레디시는 탱글우드에서 애런 코플런드를 만났고, 두 사람은 코플런드가 사망할 때까지 친구로 지냈으며, 코플런드의 음악 스타일은 델 트레디시에게 영향을 미쳤다. 델 트레디시의 많은 작품은 문학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작가이자 시인인 제임스 조이스에게서도 영감을 얻었는데,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신앙을 저버린 조이스가 자신의 가톨릭 과거와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으며, 이는 델 트레디시의 "불협화음적이고 거의 무조적인" 스타일에 반영되었다. 그는 또한 마틴 가드너의 주석 달린 앨리스와 그 책에 담긴 루이스 캐럴의 작품에 대한 주석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시기에 그는 마지막 앨리스(Final Alice)와 지하 모험(Adventures Underground)과 같은 작품에 더 적합하다고 느낀 조성으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생애 말년까지 델 트레디시는 문학, 특히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받아 송 사이클을 계속 작곡했으며, 현대 미국 시인들에게서도 영감을 받았다.
3.2. 동성애적 정체성과 예술적 표현
델 트레디시는 자신의 동성애자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이를 기념하는 작품들을 창작했다. 그는 많은 위대한 작곡가들이 동성애자였으며, "그것은 축하받을 일"이라고 언급하며 자신의 작품을 통해 "게이 정체성"을 기념했다. 한 평론가는 그의 작품에서 "고통스러운 관계, 개인적인 변화, 그리고 동성애적 삶의 기쁨과 슬픔"과 같은 주제들을 탐구한다고 언급했다. 델 트레디시는 자신의 예술을 통해 동성애자로서의 삶과 경험을 깊이 있게 다루며, 이는 사회적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그의 음악적 유산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3.3. 교육 및 레지던시 활동
델 트레디시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레온 키르히너와 함께 가르치며 모더니즘 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어떤 나쁜 것도 젊은 작곡가들에게 매력적"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뉴욕 필하모닉의 상주 작곡가(Composer-In-Residence)로 활동했다. 1999년과 2000년에는 예일 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보스턴 대학교, 줄리아드 스쿨, 버팔로 대학교에서도 강의했다. 2013년 기준으로 그는 뉴욕 시립대학교의 교수진으로 재직했다. 또한 그는 미국 예술 문학 아카데미의 회원이자, 야도, 버지니아 창작 예술 센터, 맥도웰 콜로니에서도 레지던시를 가졌다.
4. 주요 작품
델 트레디시는 다양한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폭넓은 음악적 스타일과 형식을 활용한 작품들을 작곡했다. 그의 작품은 주요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의 위촉 및 초연으로 빛을 발했다.
- 가곡집:**
- 제임스 조이스의 시에 의한 6개의 노래 (Six Songs on Poems by James Joyce, 1959): 피아노 반주를 위한 가곡집.
- '앨리스' 시리즈:**
- 앨리스 교향곡 (An Alice Symphony, 1969)
- 마지막 앨리스 (Final Alice, 1976): 콘서트 형식의 1막 오페라.
- 소녀 앨리스 (Child Alice, 1980-81): 소프라노와 관현악을 위한 작품으로, 다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 여름날의 추억 (In Memory of a Summer Day): 이 작품의 첫 번째 부분으로, 델 트레디시에게 퓰리처상 음악 부문을 안겨주었다. 이 곡은 이후 캐나다 국립 발레단과 그랑 테아트르 드 제네브에서 공연된 발레 작품으로 발전되었다.
- 즐거운 목소리 (Happy Voices)
- 황금빛 오후에 (In the Golden Afternoon)
- 기묘한 사건들 (Quaint Events)
- 지하 모험 (Adventures Underground): '생쥐의 이야기'(The Mouse's Tail)라는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
- 그 외 오케스트라 및 앙상블 작품:**
- 문신 (Tattoo, 1988):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위촉으로 작곡되었으며, 레너드 번스타인과 뉴욕 필하모닉에 의해 초연되었다.
- 계단 (Steps, 1990): 뉴욕 필하모닉을 위해 작곡되었다.
- 거미와 파리 (The Spider and The Fly, 1998): 소프라노, 바리톤, 관현악을 위한 작품으로 뉴욕 필하모닉을 위해 작곡되었다.
- 차나의 이야기 (Chana's Story, 1998): 샌프란시스코 현대 연주자들(San Francisco Contemporary Players)을 위해 작곡되었다.
- 드라큘라 (Dracula, 1999): 에오스 오케스트라(Eos Orchestra)를 위해 작곡되었다.
- 전시 중에 (In Wartime, 2003):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윈드 앙상블(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Wind Ensemble)을 위해 작곡되었다.
- 고담 글로리 (Gotham Glory, 2004): 2005년 3월 15일 앤서니 드 마레(Anthony de Mare)의 피아노 독주로 초연되었다.
- 시지기 (Syzygy, 2004): 아스코 앙상블(Asko Ensemble)을 위해 작곡되었다.
- 불리사이드 (Bullycide, 2013): 라 호야 음악 협회(La Jolla Music Society)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동성애자 괴롭힘에서 영감을 받았다.
델 트레디시는 마이클 틸슨 토머스와 버팔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을 위해 작품을 작곡했다. 또한 필리스 브린-줄슨과 같은 연주자들을 위한 작품도 썼다. 그의 음악은 록과 포크 음악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는 차나 블로흐, 콜레트 이네즈, 앨런 긴즈버그, 톰 건, 폴 모네트, 앨프레드 콘의 작품을 사용하거나 그들에게 헌정하는 음악을 작곡했다.
5. 음악 스타일 및 철학
데이비드 델 트레디시는 신낭만주의 음악의 중요한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음렬주의 기법을 숙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음악에 조성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조성에 기반한 작곡을 꾸준히 이어나갔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때로는 "불협화음적이고 거의 무조적"인 스타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 시리즈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음악에 더 적합하다고 느낀 조성으로 회귀했다. 그의 작품은 명확한 조성감과 함께 대중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리듬 요소를 통합하여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독특한 음악적 언어를 창조했다.
6. 개인적인 삶
데이비드 델 트레디시는 자신의 동성애자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힌 인물이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정체성은 그의 예술적 표현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동성애적 삶의 경험과 감정을 탐구하고 기념했다. 그는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았다면 플로리스트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7. 수상 경력
데이비드 델 트레디시는 음악에 대한 그의 지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다음과 같은 주요 상과 펠로십을 수상했다.
- 퓰리처상 음악 부문 (1980): 소녀 앨리스 중 여름날의 추억으로 수상.
- 구겐하임 펠로십
- 우드로 윌슨 펠로십
- 케네디 센터 프리드하임 상 (Kennedy Center Friedheim Award)
8. 평가 및 영향
데이비드 델 트레디시는 신낭만주의 음악 운동의 선구자로서 현대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음렬주의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조성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했다. 그의 '앨리스' 시리즈는 문학적 영감을 음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며, 명확한 조성감과 대중음악의 리듬 요소를 통합한 그의 스타일은 많은 청중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의해 "가장 화려한 아웃사이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으며, 이는 그가 주류 음악계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비전을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그는 자신의 동성애자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예술적 표현의 중요한 주제로 삼아 "게이 정체성"을 기념하는 작품들을 창작했다. 이는 당시 보수적이었던 클래식 음악계에서 매우 진보적인 시도로 평가되며, 사회적 주제를 음악에 담아내는 데 기여했다. 게오르크 솔티와 레너드 슬랫킨과 같은 저명한 지휘자들이 그의 작품을 지지하고 연주하며 그의 음악적 위상을 높였다. 델 트레디시의 유산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조성 음악의 가능성과 개인적인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영감을 제공하며, 현대 음악의 지평을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9. 사망
데이비드 델 트레디시는 2023년 11월 18일, 86세의 나이로 파킨슨병으로 인해 맨해튼 자택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