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1.1. 출생 및 성장 환경
에밀 존 "더치" 레너드는 1909년 3월 25일, 일리노이주 오번에서 태어났다. 그는 야구 선수로서 우투우타였으며, 신장은 1.8 m (6 ft)에 체중은 79 kg (175 lb)였다.
2. 선수 경력
에밀 "더치" 레너드는 20시즌 동안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무대에서 활동하며 꾸준하고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는 주로 너클볼을 구사하는 우완 투수로 명성을 얻었다.
2.1. 경력 통산 기록 및 성과
레너드는 통산 191승 181패의 승패 기록을 달성했으며, 1,170개의 탈삼진과 3.2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총 이닝은 3,218과 1/3이닝을 소화했다. 그는 선수 경력 동안 6차례나 올스타에 선정될 정도로 당대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레너드는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1933년부터 1936년까지, 워싱턴 세너터스에서 1938년부터 1946년까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1947년부터 1948년까지, 그리고 시카고 컵스에서 1949년부터 1953년까지 활약했다.
2.2. 주요 시즌 및 경기
레너드의 경력 중 특히 기억할 만한 순간들이 있다.
1939년 7월 4일, 레너드는 뉴욕 양키스와의 더블헤더 첫 경기에서 양키 스타디움에서 완투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와 다음 경기 사이에 열린 기념식에서, 당시 ALS 진단을 받은 루 게릭이 그의 유명한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 연설을 했다.
1945년 워싱턴 세너터스는 레너드, 미키 해프너, 조니 니겔링, 로저 울프로 구성된 아마도 야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4명의 너클볼 투수 로테이션을 운영했다. 이 시즌에 레너드는 17승 7패(승률 .708로 아메리칸 리그 3위)와 2.13의 평균자책점(아메리칸 리그 4위)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워싱턴 세너터스는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위해 분투했지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1.5경기 차이로 아쉽게 우승을 내주었다.
2.3. 투구 스타일
레너드는 그의 독특한 너클볼 투구로 유명했다. 그의 너클볼은 타자들이 예측하기 어려운 궤적으로 움직여 많은 타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전설적인 야구 선수 재키 로빈슨은 레너드와 상대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매일 더치 레너드와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쁩니다. 정말 대단한 너클볼을 가졌어요. 공이 다가와 얼굴을 찡그리게 하더니, 이내 사라져 버리죠." 이 발언은 레너드의 너클볼이 얼마나 위력적이고 까다로웠는지를 잘 보여준다.
2.4. 은퇴 후 활동
선수 생활을 마친 후, 레너드는 야구계에 계속 남아 활동했다. 그는 1954년부터 1956년까지 시카고 컵스의 투수 코치를 역임하며 후배 선수들을 지도했다.
3. 개인사
레너드는 1983년 4월 17일,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74세의 나이로 울혈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4. 영향 및 평가
에밀 "더치" 레너드는 그의 뛰어난 너클볼 투구로 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특히 재키 로빈슨과 같은 당대 최고의 타자들이 그의 너클볼에 대해 경외감을 표했던 일화는 그의 투구 스타일이 얼마나 독보적이었는지를 증명한다. 레너드는 2013년 개봉한 재키 로빈슨의 전기 영화인 42 (영화)에서도 묘사되었다. 이 영화에서 전직 MLB 투수인 C. J. 니트코프스키가 레너드 역을 맡아 로빈슨과 대결하는 장면을 연기했다. 이는 레너드가 야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5. 관련 항목
- 너클볼 투수 목록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연간 세이브 리더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