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수 경력
다카하시 켄은 아마추어 야구 시절 야수와 투수를 겸하며 재능을 보였고, NPB에 입단하여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주요 선수로 성장했다. 이후 MLB에 도전하는 등 그의 선수 경력은 다양한 전환점을 포함하고 있다.
1.1. 프로 입단 전
다카하시 켄은 프로 입단 전 유소년 야구와 대학 야구, 사회인 야구를 거치며 기량을 다졌다. 특히 야수로서의 경험은 그의 뛰어난 타격 능력의 기반이 되었다.
1.1.1. 유소년 및 학창 시절
다카하시 켄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요코하마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주로 1루수와 외야수로 활약하며 야수로서의 기량을 키웠다.
1.1.2. 대학 및 사회인 야구
도토 대학 야구 연맹 소속 다쿠쇼쿠 대학에 진학한 다카하시 켄은 대학 시절 2부 리그에서 야수로 통산 17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다 4학년 때부터 투수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도요타 자동차 경식 야구부에 입단하여 사회인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입단 첫 해인 1992년 제63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서 두 경기에 선발 등판했으며, 이후 2년 동안은 보강 선수로 출전하여 1994년 제65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 결승전에서도 등판하는 등 주요 선수로 활약했다.
1993년 드래프트 회의에서는 8개 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을 정도로 1, 2순위 지명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회사 측의 만류로 잔류를 선택했다. 이듬해인 1994년에는 소속팀의 부진으로 평가가 하락하며 "상위 지명은 어렵다"는 연락을 받기도 하여 한때 프로 입단을 포기할 각오까지 했다. 그러나 1994년 11월 13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부터 영입 의사를 전달받았고, 지명 순위나 계약 금액에 관계없이 "솔직히 기뻤다"며 프로 입단을 결정했다. 그는 1994년 NPB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4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1.2.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 (1995-2008)
다카하시 켄은 1995년부터 2008년까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 소속으로 활약하며 팀의 핵심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선발 투수와 불펜 투수의 역할을 모두 소화했으며,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부상으로 인한 어려움도 겪었다.
1.2.1. 프로 초기 및 선발 전환
1995년 프로 데뷔 시즌에는 주로 중계 투수로 활약하면서도 선발 등판 기회를 얻어 39경기에 출전, 4승 4패 평균자책점 3.90을 기록했다.
1996년 7월 28일에는 웨스턴 리그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하며 마이너 리그에서의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같은 해 1군에서는 24경기에 등판했지만 2승에 그쳤다.
1997년에는 34경기에 등판했으나 4점대 후반의 평균자책점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이 해는 히로시마가 A클래스를 기록한 마지막 해였으며, 팀이 다음 A클래스를 기록한 것은 2013년이 되어서였다.
1998년에는 41경기에 등판하여 3승 8패를 기록했지만, 평균자책점은 3.83으로 4년 만에 3점대 진입에 성공했다.
1999년부터는 팀 내 좌완 투수 선발 자원의 부족으로 선발 등판 기회가 늘어났다. 총 36경기에 등판하여 그중 13경기에 선발로 나섰지만 3승에 머물렀다. 그러나 8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완투와 완봉승을 동시에 기록했으며, 7월 14일에는 최고 구속 150 km/h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5승 9패를 기록하며 패전이 많았지만, 개인 최다인 50경기에 등판했다. 이 해 처음으로 올스타 게임에 선정되었고, 시즌 막판에는 마무리 투수로서도 활약했다. 이 시기부터 그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리는 독특한 투구 폼에서 벗어나 보다 일반적인 투구 폼으로 변화를 주었다.
200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선발 투수로 전향하여 개막부터 좌완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그 결과 개인 첫 두 자릿수 승수인 10승 8패를 달성했으며, 2년 연속으로 올스타 게임에 선정되었다. 또한, 4월 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사이토 마사키를 상대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1999년 히로이케 히로시 이후 히로시마 투수로는 처음이었다.
2002년에는 8월 28일 당시 일본 시리즈 우승팀이 될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173개의 공을 던져 1-0으로 완봉승을 거두는 등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9승에 그쳐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놓쳤고 센트럴 리그 최다 패(14패)를 기록했다.
2003년 시즌은 8연승으로 시작하며, 최고 구속 149 km/h의 직구와 날카로운 슈트를 주무기로 평균자책점 1점대 초반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 부진했던 구로다 히로키, 사사오카 신지, 편도선염으로 이탈했던 하세가와 마사유키의 공백을 메우며 '좌완 에이스'로 불렸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1승에 그쳐 2년 연속으로 9승에 머물렀고, 다승 등 투수 타이틀은 획득하지 못했다.
1.2.2. 주요 시즌과 부상
2004년에는 전년도의 활약과는 달리 18경기에 등판하여 3승 10패 평균자책점 5.53으로 투구 내용이 악화되었다. 시즌 종료 후 FA 권리를 취득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 여러 팀의 관심을 받았으나, FA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히로시마에 잔류했다.
2005년 시즌은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인해 기대만큼의 투구를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14경기에 등판하는 데 그쳤고,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승리 없이 시즌을 마쳤다. 8월 10일 정밀 검사 결과 '왼쪽 무릎 대퇴골 활차면 연골 손상' 진단을 받았고, 같은 달 26일 왼쪽 무릎 수술을 받았다. 한때 은퇴까지 고려했으나 현역 생활을 이어가길 희망했고, 시즌 종료 후에는 전년도 연봉의 절반 수준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2006년에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 등판 없이 시즌을 보냈다. 무릎 부상이 회복되면서 평균자책점은 4점대였지만, 시즌 내내 좌완 중계 투수로 활약하며 개인 최다인 54경기에 등판하여 15 홀드를 기록했다.
1.2.3. 불펜 투수 및 마지막 활약
2007년에는 개막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지만, 재러드 페르난데스의 부상으로 인해 선발로 복귀했다. 5월 17일 구라시키 마스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2004년 6월 이후 1072일 만에 선발승을 기록했다. 전성기처럼 구위로 상대를 압도하는 스타일보다는 제구력과 변화구, 특히 슈트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투구 스타일로 변화하며 안정적인 투구를 보였다. 오랫동안 약점이었던 여름철 부진도 특별한 문제 없이 극복하며, 22경기에 등판하여 규정 투구 이닝에는 미달했지만 5승을 올렸다.
2008년 4월 1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단 102개의 투구로 완봉승을 거두었다. 이는 오노 유타카에 이어 구단 사상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투수 완봉 기록이었으며, 요미우리전 최연장 완봉 기록이기도 했다. 5월 3일 요코하마와의 경기에서도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으며, 요코하마의 에이스 미우라 다이스케로부터 무려 7년 만에 결승 홈런을 터뜨려 히로시마의 승리를 이끌었다. 전반기 동안 6승 4패, 평균자책점 3.03의 활약을 보이며, 처음으로 팬 투표를 통해 2008년 올스타 게임에 선정되었다. 감독 추천으로 선정된 2003년 이후 4번째 올스타 선정이었으며, 39세 2개월의 나이로 팬 투표에 의해 선정된 것은 투수 최고령 기록이었다. (종전 기록은 사사키 가즈히로의 36세 4개월) 또한 39세 이상으로 첫 선정된 것은 역대 세 번째 기록이었다. 그러나 9월에는 피로로 인해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최종적으로 규정 투구 이닝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8승 5패 평균자책점 3.50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11월 10일, 메이저 리그 진출을 위해 FA 권리를 행사했다.
1.3. 메이저 리그 도전 (2009)
다카하시 켄은 2009년 메이저 리그 진출을 시도하며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나이를 고려할 때 매우 인상적인 활약이었다.
1.3.1. 토론토 블루제이스 산하 마이너 리그
2009년 2월 2일, 다카하시 켄은 피터 그린버그가 대표 이사로 있는 PEG사와 업무 제휴 중인 GSE 그룹의 나카니시 고를 대리인으로 하여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는 스프링 캠프에 초청 선수 자격으로 참가했지만, 비자 취득 문제로 충분한 훈련 기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3월 1일 시범 경기 첫 등판에서 2이닝째에 번트 타구 처리 과정에서 이전에 다쳤던 오른쪽 종아리 부상을 입었다. 이후 마이너 리그에서 재활했지만, 3월 30일 결국 토론토로부터 방출되었다.
1.3.2. 뉴욕 메츠 메이저 리그 데뷔
2009년 3월 30일, 다카하시 켄은 뉴욕 메츠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트리플 A 구단인 버팔로 바이슨스에서 6경기에 등판하여 11.2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0.77을 기록했다. 4월 26일, 그는 마침내 메이저 리그로 콜업되었다. 5월 2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올리버 페레스를 교체하며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40세의 나이에 메이저 리그에 데뷔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사첼 페이지 (42세), 디오메데스 올리보 (41세)에 이어 역대 세 번째 최고령 기록이었다. 6월 22일, 그는 다시 마이너 리그 AAA급 버팔로로 강등되었다. 8월 24일 메이저 리그에 재승격하여 시즌 종료까지 구원 투수로 28경기에 등판하며 선발 등판 없이 평균자책점 2.96의 쾌투를 보여주었지만, 10월 20일 메츠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1.4. 히로시마 복귀 및 은퇴 (2010)
메이저 리그 도전을 마친 다카하시 켄은 친정팀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복귀하여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다.
1.4.1. 히로시마 도요 카프 복귀 및 은퇴 시즌
2009년 12월 21일, 다카하시 켄은 2년 만에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다시 등번호 22번을 달게 되었다. 이듬해 2010년 스프링 캠프에서는 딸의 생일이기도 했던 캠프 2일째부터 불펜에서 첫 투구를 할 정도로 선발 로테이션 진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2010년 시즌에는 주로 중계 투수로 기용되었다. 4월 16일과 17일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이틀 연속 승리 투수가 되었다. 40대 투수가 이틀 연속 승리 투수가 된 것은 NPB 사상 최초의 기록이었다. 그러나 5월 이후 성적이 악화되었고, 6월 21일 1군 등록에서 말소되었다. 2군에서도 목 통증 등으로 인해 컨디션 조절이 어려웠고, 결국 9월 8일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은퇴 경기는 9월 29일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열린 요코하마와의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다카하시 켄은 두 딸이 각각 포수와 투수로 나서고 자신이 타자를 맡는 시구를 진행하며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다. 경기는 히로시마가 8점을 앞선 8회 초, 다카하시 켄이 마지막으로 마운드에 올라 호세 카스티요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후 단 한 타자만 상대하고 강판되었다. 경기 종료 후에는 그의 은퇴식이 거행되었다.
2. 플레이 스타일
다카하시 켄은 강속구와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는 좌완 투수로, 투구 폼의 변화를 통해 제구력을 개선하고 노련한 피칭을 선보였다. 또한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타격 능력을 겸비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2.1. 투구 스타일
다카하시 켄은 1999년 7월 14일에 기록한 최고 구속 150 km/h의 직구와 다양한 변화구를 주무기로 삼았다. 입단 초기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리는 독특한 투구 폼이 그의 특징이었으며, 삼진을 많이 잡는 강속구 투수였지만 제구력에 약점을 보였다. 이에 2000년부터는 다리를 크게 들어 올리지 않는 일반적인 투구 폼으로 변화를 주었다.
그는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상대 전적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으며, 특히 나고야 돔에서는 좋은 투구를 펼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한신 타이거스에게는 약했으며, 2004년 시즌까지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승리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2.2. 타격 능력
다카하시 켄은 투수였지만 대학 야구 시절 외야수로 활약했던 경험 덕분에 타격에도 재능을 보였다. 2003년 3월 29일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시즌 개막 2차전에서는 직접 균형을 깨는 적시 3루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2군에서의 통산 타율은 3할을 넘었으며, 1군 경기에서는 통산 3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그의 프로 첫 홈런은 7년차인 2001년 4월 8일 사이토 마사키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터뜨린 것이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투수로 전향하기 전까지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연식 야구에서도 투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3. 은퇴 후 활동
프로 야구 선수 은퇴 후, 다카하시 켄은 야구 해설가와 코치로서 야구계에 계속해서 기여하고 있다.
3.1. 야구 해설가 활동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다카하시 켄은 주고쿠 방송 (RCC)과 데일리 스포츠 히로시마 지사에서 야구 해설가로 활동했다. 그는 S☆1 BASEBALL (TBS 텔레비전 계열의 프로 야구 중계, RCC에서는 'RCC 카프 나이터/RCC 카프 데이 게임 중계' 명의)과 MLB 스타디움 (TBS 텔레비전/BS-TBS)에 출연했다. 또한 RCC 라디오의 'RCC 카프 나이터/RCC 카프 데이 게임 중계'에서도 해설을 맡았다.
2011년 가을부터는 서일본 여객철도 히로시마 지사의 이미지 캐릭터로 활동하며 산요 신칸센의 "노조미는 계속 온다" 캠페인 광고와 J-WEST 카드 포스터에 등장하기도 했다. 2015년 5월 16일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 구단이 주최한 팬 초청 행사 '전차혼 ~RED RIDING~' (도카이도 산요 신칸센 편도 이용 연계)에 깜짝 손님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3.2. 코치 경력
2015년 11월 7일, 다카하시 켄은 한신 타이거스의 2군 투수 코치로 취임한다고 구단이 발표했다. 이는 히로시마 시절 팀 동료이자 같은 해 10월 한신 1군 감독으로 취임한 가네모토 도모아키와 야구 철학을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취임으로 한신의 2016년 코칭 스태프 구성이 최종 확정되었다.
2021년에는 2군 육성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으나, 시즌 종료 후인 11월 2일 한신 타이거스에서의 퇴단이 발표되었다. 같은 달 15일, 그는 친정팀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투수 코치로 복귀한다고 발표되었다. 그는 현재 히로시마 도요 카프 2군 투수 코치로 재직 중이다.
4. 개인 생활 및 여담
다카하시 켄의 애칭은 建さん켄상일본어이다.
그는 사회인 야구 시절인 도요타 자동차 입사 후 일본 대표팀 투수로 선발되기도 했다. 1993년 드래프트에서 8개 구단의 오퍼를 받으며 1, 2순위 지명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회사의 만류로 잔류했다. 그러나 이듬해 팀의 부진으로 평가가 하락하며 프로 입단이 어려울 수 있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으나, 1994년 11월 13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부터 지명 의사를 전달받고 순위나 금액과 상관없이 기쁘게 입단을 결정했다.
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다카하시 요시노부와 관련된 독특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0년 9월 도쿄 돔에서 요시노부에게 개인 통산 100호 끝내기 홈런을 허용했고, 2002년 6월 삿포로 돔에서는 구단 통산 7500호 홈런을 허용했는데, 이 두 홈런의 상대 타자가 공교롭게도 모두 다카하시 요시노부였다.
2010년에는 '베스트 파더 옐로 리본상 프로 야구 부문'을 수상하며 가장으로서의 면모를 인정받았다.
뉴욕 메츠 소속 당시 그의 통역이자 개인 트레이너는 칸 신고였다.
5. 수상 및 영예
- 베스트 파더 옐로 리본상 '프로 야구 부문' (2010년)
6. 통산 기록
6.1. 투수 성적
연도 | 구단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사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방어율 | WHIP |
---|---|---|---|---|---|---|---|---|---|---|---|---|---|---|---|---|---|---|---|---|---|---|---|---|---|
1995 | 히로시마 | 39 | 6 | 0 | 0 | 0 | 4 | 4 | 0 | -- | .500 | 393 | 90.0 | 85 | 12 | 45 | 3 | 0 | 54 | 1 | 1 | 44 | 39 | 3.90 | 1.44 |
1996 | 24 | 4 | 0 | 0 | 0 | 2 | 1 | 1 | -- | .667 | 233 | 52.2 | 57 | 4 | 20 | 1 | 1 | 40 | 4 | 0 | 33 | 29 | 4.96 | 1.46 | |
1997 | 34 | 4 | 0 | 0 | 0 | 3 | 4 | 0 | -- | .429 | 282 | 62.0 | 69 | 8 | 34 | 1 | 0 | 35 | 3 | 0 | 37 | 33 | 4.79 | 1.66 | |
1998 | 41 | 9 | 0 | 0 | 0 | 3 | 8 | 0 | -- | .273 | 431 | 101.0 | 92 | 10 | 46 | 2 | 2 | 76 | 5 | 1 | 45 | 43 | 3.83 | 1.37 | |
1999 | 36 | 13 | 2 | 1 | 0 | 3 | 7 | 0 | -- | .300 | 448 | 102.0 | 102 | 21 | 40 | 3 | 2 | 90 | 9 | 0 | 64 | 53 | 4.68 | 1.39 | |
2000 | 50 | 10 | 2 | 1 | 0 | 5 | 9 | 4 | -- | .357 | 482 | 112.1 | 89 | 13 | 57 | 7 | 3 | 88 | 6 | 0 | 56 | 49 | 3.93 | 1.30 | |
2001 | 30 | 25 | 5 | 1 | 0 | 10 | 8 | 0 | -- | .556 | 736 | 173.0 | 165 | 23 | 60 | 6 | 8 | 132 | 6 | 0 | 89 | 82 | 4.27 | 1.30 | |
2002 | 26 | 25 | 6 | 3 | 0 | 9 | 14 | 0 | -- | .391 | 758 | 173.1 | 197 | 22 | 38 | 4 | 3 | 142 | 2 | 0 | 92 | 74 | 3.84 | 1.36 | |
2003 | 24 | 24 | 6 | 1 | 3 | 9 | 8 | 0 | -- | .529 | 706 | 167.0 | 174 | 26 | 36 | 2 | 8 | 127 | 2 | 0 | 76 | 68 | 3.66 | 1.26 | |
2004 | 18 | 17 | 0 | 0 | 0 | 3 | 10 | 0 | -- | .231 | 428 | 96.0 | 122 | 24 | 24 | 0 | 2 | 66 | 0 | 1 | 66 | 59 | 5.53 | 1.52 | |
2005 | 14 | 4 | 0 | 0 | 0 | 0 | 2 | 0 | 0 | .000 | 133 | 26.2 | 43 | 7 | 9 | 1 | 1 | 14 | 1 | 0 | 28 | 28 | 9.45 | 1.95 | |
2006 | 54 | 0 | 0 | 0 | 0 | 2 | 3 | 0 | 15 | .400 | 201 | 46.0 | 46 | 9 | 16 | 2 | 1 | 40 | 0 | 0 | 27 | 24 | 4.70 | 1.35 | |
2007 | 22 | 20 | 0 | 0 | 0 | 5 | 4 | 0 | 0 | .556 | 481 | 112.0 | 116 | 18 | 36 | 1 | 5 | 74 | 3 | 0 | 54 | 46 | 3.70 | 1.36 | |
2008 | 21 | 20 | 1 | 1 | 0 | 8 | 5 | 0 | 0 | .615 | 503 | 115.2 | 124 | 11 | 42 | 2 | 5 | 71 | 1 | 0 | 50 | 45 | 3.50 | 1.44 | |
2009 | NYM | 28 | 0 | 0 | 0 | 0 | 0 | 1 | 0 | 0 | .000 | 116 | 27.1 | 23 | 2 | 14 | 1 | 2 | 23 | 2 | 1 | 9 | 9 | 2.96 | 1.35 |
2010 | 히로시마 | 26 | 1 | 0 | 0 | 0 | 4 | 5 | 0 | 8 | .444 | 144 | 30.0 | 37 | 8 | 19 | 2 | 0 | 17 | 0 | 0 | 32 | 31 | 9.30 | 1.87 |
NPB 통산 (15년) | 459 | 182 | 22 | 8 | 3 | 70 | 92 | 5 | 23 | .432 | 6359 | 1459.2 | 1518 | 216 | 522 | 37 | 41 | 1066 | 43 | 3 | 793 | 703 | 4.33 | 1.40 | |
MLB 통산 (1년) | 28 | 0 | 0 | 0 | 0 | 0 | 1 | 0 | 0 | .000 | 116 | 27.1 | 23 | 2 | 14 | 1 | 2 | 23 | 2 | 1 | 9 | 9 | 2.96 | 1.35 |
6.2. 수비 성적
연도 | 구단 | 투수 (P) | |||||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1995 | 히로시마 | 39 | 4 | 22 | 1 | 1 | .963 |
1996 | 24 | 5 | 9 | 1 | 1 | .933 | |
1997 | 34 | 7 | 10 | 1 | 2 | .944 | |
1998 | 41 | 6 | 23 | 1 | 0 | .967 | |
1999 | 36 | 8 | 15 | 0 | 0 | 1.000 | |
2000 | 50 | 6 | 24 | 2 | 1 | .938 | |
2001 | 30 | 13 | 26 | 3 | 3 | .929 | |
2002 | 26 | 11 | 31 | 4 | 2 | .913 | |
2003 | 24 | 8 | 31 | 2 | 3 | .951 | |
2004 | 18 | 5 | 22 | 1 | 4 | .964 | |
2005 | 14 | 0 | 5 | 1 | 1 | .833 | |
2006 | 54 | 1 | 8 | 0 | 1 | 1.000 | |
2007 | 22 | 4 | 19 | 1 | 2 | .958 | |
2008 | 21 | 7 | 22 | 0 | 1 | 1.000 | |
2009 | NYM | 28 | 1 | 6 | 0 | 2 | 1.000 |
2010 | 히로시마 | 26 | 0 | 7 | 0 | 1 | 1.000 |
NPB 통산 | 459 | 85 | 274 | 18 | 23 | .952 | |
MLB 통산 | 28 | 1 | 6 | 0 | 2 | 1.000 |
7. 주요 기록 및 이정표
다카하시 켄은 프로 경력 동안 여러 중요한 기록과 이정표를 세웠다.
7.1. 첫 기록
- 첫 등판: 1995년 4월 8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초대)에서 열린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6회 초 2번째 구원 투수로 등판, 1.2이닝 2안타 무실점 기록.
- 첫 탈삼진: 위와 동일 경기, 7회 초 사미키 다카히로를 상대로 달성.
- 첫 선발: 1995년 4월 16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초대)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 4이닝 4안타 4실점으로 패전 투수.
- 첫 승리: 1995년 4월 20일, 나가라가와 구장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2회 초 2번째 구원 투수로 등판, 6이닝 무실점.
- 첫 세이브: 1996년 9월 29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초대)에서 열린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7회 초 3번째 구원 투수로 등판하여 3이닝 무실점으로 마무리.
- 첫 선발승: 1996년 10월 6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초대)에서 열린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 5.2이닝 3실점.
- 첫 완투승 및 완봉승: 1999년 8월 1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초대)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달성.
- 첫 홀드: 2006년 4월 19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초대)에서 열린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6회 초 2번째 구원 투수로 등판, 2이닝 무실점.
- 첫 안타: 1996년 6월 14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초대)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2회 말 야마모토 마사로부터 우전 안타 기록.
- 첫 타점: 1999년 9월 29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초대)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1회 말 커트 밀러로부터 1루 적시 내야 안타 기록.
- 첫 홈런: 2001년 4월 8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초대)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3회 말 사이토 마사키로부터 우월 솔로 홈런 기록.
7.2. 기념비적인 기록
- 통산 1000 투구 이닝: 2003년 8월 20일, 히로시마 시민 구장 (초대)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경기에서 1회 초 알렉스 라미레즈를 3루 땅볼로 처리하며 2아웃을 잡아 달성. 이는 NPB 사상 293번째 기록이었다.
- 통산 1000 탈삼진: 2008년 5월 9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경기에서 2회 말 무라나카 교헤이를 상대로 달성. 이는 NPB 사상 121번째 기록이었다.
7.3. 기타 기록
- 올스타 게임 출전: 4회 (2000년, 2001년, 2003년, 2008년).
- 웨스턴 리그 (마이너 리그) 노히트노런 달성: 1996년 7월 28일.
- 40대 투수로서 이틀 연속 승리 투수 기록 (2010년 4월 16일~17일).
8. 등번호
다카하시 켄은 선수 및 코치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등번호를 사용했다.
- 22 (1995년 ~ 2008년, 2010년)
- 36 (2009년)
- 72 (2016년 ~ 2021년)
- 87 (2022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