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배경
타카야 시게오는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오카야마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1.1. 출생 및 유년 시절
타카야 시게오는 1937년 1월 1일 일본 오카야마현 소자시에서 태어났다.
1.2. 교육
타카야는 오카야마 대학 법경단기대학부 법경학과를 졸업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2. 사업 경력
정치 입문 전, 타카야 시게오는 다양한 기업에서 활동하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2.1. 주요 기업 활동
1959년 4월, 타카야는 오카산증권 오카야마 지점에 입사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64년 10월 퇴임할 때까지 이 회사에 근무했다. 1964년 9월에는 산요플레이저의 전신인 산요완구 주식회사의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며 경영자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95년 9월에는 오모차오코쿠 주식회사(장난감 왕국)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으며, 2001년 4월에는 구라시키 티볼리 공원 운영 기업인 티볼리 재팬 주식회사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부임했다. 2005년 9월, 오카야마 시장 선거 출마를 위해 티볼리 재팬을 포함한 모든 기업 직책에서 물러났다.
2.2. 사회 활동 및 단체 경력
기업 경영과 더불어 타카야는 다양한 사회 활동 및 단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77년 1월에는 일본 청년회의소 오카야마 블록 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85년 6월부터는 오카야마시 상점회 연합회 부회장을 맡았으며, 1995년 4월에는 오카야마 상공회의소 부회두에 취임했다. 또한, 2003년 5월에는 사단법인 오카야마 서법인회 회장을, 2004년 5월에는 오카야마현 종합유통센터 도매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 5월에는 사단법인 오카야마 경제동우회 상임간사로 활동했다.
3. 정치 경력
타카야 시게오의 정치 경력은 오카야마 시장으로서의 활발한 활동과 주요 업적을 중심으로 한다. 그는 민간 출신 시장으로서 과감한 행정 개혁과 도시 발전을 추진하며 오카야마시의 변화를 이끌었다.
3.1. 오카야마 시장 선거
2005년 10월, 타카야는 자유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의 추천을 받아 오카야마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이 선거는 전임 시장인 하기와라 세이지가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시장직을 사임하면서 치러졌다. 당시 하기와라가 출마한 중의원 오카야마현 제2선거구는 자민당의 쿠마시로 아키히코 의원의 지역구였으나, 쿠마시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우정 민영화 법안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져 자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에 쿠마시로는 타카야의 대항마로 오카야마 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자민당과 사회민주당의 지원을 받은 타카야가 당선되었다.
2009년 9월, 타카야는 재선을 목표로 오카야마 시장 선거에 다시 출마했다. 이 선거에서는 정령지정도시에 걸맞은 중심 시가지 활성화와 노후화된 오카야마시민병원 재건축 문제, 구 일본국유철도 오카야마 조차장 부지 활용 방안 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으며, 과거 최다인 6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졌다. 타카야는 행정재정 개혁 노선의 지속을 강조하며 전 오카야마 시장인 아타케 케이스케 등을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3.2. 시장 재임 기간 (2005-2013)
타카야 시게오는 8년간의 시장 재임 기간 동안 오카야마시의 행정, 재정, 도시 개발, 사회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3.2.1. 행정 개혁 및 재정 정책
타카야 시장은 재임 중 "관에서 민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과감한 행정재정 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시민 참여형 행정 사업 검토(사업 분류)를 통해 정책을 재검토하고, 민간 위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또한, 2007년도 이후 3년간 시 공무원 신규 채용을 동결하고, 가정 쓰레기 수거 유료화를 시행하는 등의 시책을 도입했다. 정령지정도시 이행으로 지방교부세 교부금이 100.00 억 JPY 증가한 점 등과 더불어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오카야마시의 공채 총액을 1000.00 억 JPY 감축하고 실질 공채비율과 경상수지비율을 개선하는 등 재정 건전성 확보에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3.2.2. 주요 도시 개발 및 진흥 사업
재정 재건에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했다고 판단한 재임 후반기에는 대규모 도시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오카야마시 히가시구 마스다의 오카토 정화센터 부지 내에 J2리그 파지아노 오카야마 FC의 연습장인 "마사다 축구장"을 정비했다. 또한, 오카야마시 키타구 키타나가세오모테마치의 구 일본국유철도 오카야마 조차장 부지에 오카야마 종합 의료센터(신 오카야마 시민 병원)를 건설하고, 시영 주택인 "사쿠라 주좌"를 재건축했다. 오카야마 시 중심부에 컨벤션 시설 건설 구상을 추진하고, 오카야마 시민회관의 신축 이전을 발표했다.
2008년 6월, 타카야는 전국시장회 부회장으로 취임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오카야마시와 주변 4개 정이 통합되어 오카야마시의 정령지정도시 이행이 결정되었다. 이에 도쿄 가스미가세키의 총무성을 방문하여 하토야마 쿠니오 총무대신에게 감사의 뜻을 표명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메일 매거진 "시장 뉴스 오카야마"(애칭: 시게짱 메일) 발행을 시작하여 2013년 시장 퇴임까지 계속했다.
2009년 4월, 오카야마시는 일본에서 18번째로 정령지정도시로 이행했다. 같은 해 5월, 호텔 오쿠라 오카야마에서 개최된 지정도시 시장 회의에서 의장을 맡았다.
2013년 1월부터 2월에는 오카야마시가 시작한 도시 마케팅 사업 "전설의 오카야마시" 캠페인의 예고편 영상에 직접 출연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영상에서 그는 도깨비에게 조종당하여 기자회견에서 오카야마시를 "모모타로시"로 개명하고, 새로운 도시 캐치프레이즈를 히로시마현의 "아쉽다! 히로시마현"을 모방한 "아쉽다! 모모타로시"로 선언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또한, 2014년의 "UN ESD 10년 최종 회의" 유치에 성공했다.
3.2.3. 사회 정책 및 시민 서비스
타카야 시장 재임 중 긴축 재정 운영으로 인해 뒤처진 분야도 있었다. 오카야마 시립 초·중학교 시설의 내진화율은 2013년 4월 기준으로 71.2%로, 정령지정도시 20개 시 중 18위로 저조했다. 아동 의료비 지원 제도의 경우, 현 내 다른 시정촌에서는 시행되고 있는 초등학교 취학 아동에 대한 지원이 오카야마시에서는 미실시 상태였다. 또한, 시내 보육원의 정원을 초과하여 입원하지 못하는 "보류아동"이 800명을 넘는 등 보육 시설 문제도 두드러졌다.
3.2.4. 위기 관리 및 공직 기강
타카야 시장 재임 중 시 공무원 인원 감축은 직원들의 사기 저하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재임 중 국고 보조금 사업 등의 부당 경리 문제로 362명의 직원을 징계하는 등 공무원 비리가 종종 발생했다.
2011년 9월 3일, 헤이세이 23년 태풍 12호 접근에 따라 오카야마시에 타카야 시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재해대책본부가 설치되고 시 일부 지역에 피난 권고가 발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건강 증진을 위해" 스포츠 짐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져 위기 관리 능력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2012년 3월 19일 기자회견에서는 행정재정 개혁의 일환으로 2명이었던 부시장을 1명으로 감축하겠다고 발표하고 같은 해 4월부터 시행했으나, 불과 4개월 만에 부시장 2명 체제로 복원하기도 했다.
4. 개인사
타카야 시게오는 평소 오코노미야키를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았다. 취미는 골프였으며, 그의 좌우명은 "지속은 힘이 된다(継続は力なり)"였다.
5. 사망 및 유산
타카야 시게오의 사망은 그가 이룬 업적과 남긴 영향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5.1. 사망
타카야 시게오는 2024년 8월 8일 신부전으로 사망했다. 향년 87세였다. 사후 정오위에 추서되었다.
5.2. 역사적 평가 및 영향
타카야 시게오는 민간 출신 시장으로서 오카야마시의 행정재정 개혁과 정령지정도시 이행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관에서 민으로'를 기치로 내걸고 사업 재검토, 민간 위탁 확대, 공무원 채용 동결 등을 통해 재정 건전화를 이루어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재임 기간 중 오카야마시의 공채 총액이 1000.00 억 JPY 감소하고, 실질 공채비율과 경상수지비율이 개선되는 등 재정 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정령지정도시 이행과 대규모 도시 개발 사업 추진은 오카야마시의 발전과 위상 제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의 긴축 재정 운영은 일부 사회 정책 분야에서 미흡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학교 시설 내진화율이 낮고, 아동 의료비 지원 제도가 불충분하며, 보육 시설 부족으로 인한 '보류아동' 문제가 심각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또한, 재난 시 부적절한 위기 관리 대처와 공무원 비리 문제, 부시장 감축 정책의 번복 등 공직 기강 및 행정 운영의 투명성 측면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그는 오카야마시의 재정 건전화와 도시 위상 강화에 기여했지만, 시민 복지 및 공직 윤리 문제에서는 개선의 여지를 남겼다는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