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다무라 히토시(多村 仁志일본어, 1977년 3월 28일 ~ )는 일본 가나가와현 아이코군 기요카와촌에서 태어나 아쓰기시에서 자란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해설가, e스포츠 해설가이다. 현역 시절에는 우투우타 외야수로 활동했으며, 특히 강한 타격과 수비 능력을 겸비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서 프로 데뷔한 이후 소프트뱅크 호크스,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주니치 드래건스를 거치며 총 17년간의 프로 생활을 보냈다. 특히 2004년에는 요코하마 소속으로 타율 3할, 홈런 40개, 100타점을 달성하여 구단 일본인 타자 최초의 기록을 세웠고, 2006년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팀의 초대 우승에 기여했다. 잦은 부상으로 '스펠렁커'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뛰어난 재능과 끈기로 현역 생활을 이어가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 유년기 및 아마추어 경력
다무라 히토시는 1977년 3월 28일 가나가와현 아이코군 기요카와촌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가는 미야가세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될 예정이어서 1984년 가나가와현 아쓰기시로 전입했다. 아쓰기시 이이야마 초등학교와 고아유 중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초등학교 2학년 때 형이 속한 야구팀에 들어가 야구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발이 빨라 중학교에서는 육상부에 소속되기도 했지만, 시니어 리그 감독의 제안으로 아쓰기 시니어팀에서 다시 야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까지는 주로 유격수와 투수로 활동했다.
중학교 졸업 후 요코하마 고등학교에 진학한 다무라는 1학년 봄부터 벤치에 들었다. 강한 어깨를 활용하여 1학년 도중에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포지션을 전향했다. 훈련에서 잠시 이탈한 시기도 있었지만, 3학년 때는 사이토 요시키와 기다 쇼이치와 함께 클린업 타선을 형성하며 1994년 춘계·하계 고시엔 대회에 연속으로 출전했다. 특히 여름 현 대회에서는 준준결승과 준결승에서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통산 14홈런을 기록했다. 고등학교 동기생으로는 사이토, 기다 외에 당시 에이스 투수였던 야노 에이지가 있었으며, 2학년 선배로는 부사카 도시유키, 나카노 에이이치, 스즈키 아키히토가, 1학년 선배로는 다카하시 미쓰노부, 시라사카 가쓰시가, 1학년 후배로는 요코야마 미치야가, 2학년 후배로는 아베 마사히로, 마쓰이 고스케, 마쿠다 겐지가 있었다.
1994년 일본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4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그의 담당 스카우트는 이나가와 마코토였다. 입단 당시 등번호는 52번이었다.
3. 프로 경력
다무라 히토시는 1995년부터 2016년까지 총 17년간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하며 여러 팀을 거쳤다. 그의 프로 경력은 잦은 부상 속에서도 끈기 있는 재활과 노력으로 다시금 전성기를 맞이하는 모습이 반복되었다.
3.1.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995-2006)
입단 초기인 1995년과 1996년에는 2군 훈련에도 제대로 동행하지 못하고 동기 입단인 아이카와 료지, 가토 가네미와 함께 기초 훈련에만 매진했다. 1996년 오프시즌 교육 리그에서 홈런과 타점 기록을 세우며 활약했고, 이 활약을 계기로 1군에 호출되기 시작했다.
1997년 4월 4일 나고야 돔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개막전에서 7회초 모리타 고키의 대타로 출전하며 프로 첫 공식 경기에 데뷔했다. 이 경기는 나고야 돔에서 열린 최초의 공식 경기였다. 프로 첫 타석은 야마모토 마사를 상대로 외야 플라이로 끝났다. 4월 8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다무라 쓰토무로부터 프로 첫 안타를 기록했고, 4월 25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마에다 유키나가를 상대로 프로 첫 홈런을 좌측 담장 너머로 기록했다. 1군 정착을 위해 노력하던 중 5월 경기 중 사고로 우측 어깨 힘줄이 단절되어 볼트 4개를 삽입하는 대수술을 받고 장기 이탈했다.
1998년에는 2군 경기조차 출전하지 못하고 재활에만 전념했으며, 요코하마가 38년 만에 리그 우승을 확정한 날 두 번째 어깨 수술을 받았다. 이로 인해 1999년에도 1군 출전은 없었다.
2000년 등번호를 55번으로 변경하고 1군에 복귀하여 주로 대타와 대수비로 출전하며 1군에 정착했다. 8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57, 7홈런을 기록했다. 2001년에는 33경기 출전, 타율 .163, 1홈런에 그쳤고, 2002년에는 81경기 출전하여 타율 .235, 5홈런을 기록했다.
2003년에는 91경기에 출전하여 규정 타석에는 미달했지만 타율 .293, 18홈런을 기록했으며, 14도루를 성공시키며 회복의 기미를 보였다.
2004년에는 등번호를 6번으로 변경하고 개막전에서 프로 데뷔 첫 선발 출장을 기록했다. 이후 레귤러로 정착하며 큰 폭으로 기량이 향상되었다. 8월 15일에는 구단 일본인 타자로는 다시로 도미오 이후 23년 만에 30홈런을 기록했다. 10월 6일에는 다이요 시대를 포함한 요코하마 재적 일본인 타자 중 구단 역사상 최초로 40홈런을 달성했다. 123경기에 출전하여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했으며, 팀에 재적했던 외국인 선수들을 포함하여 구단 역사상 최초로 타율 3할, 40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또한 10도루를 기록하며 2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달성했다. 전년까지 주로 우익수 수비를 맡았으나 가네시로 다쓰히코와 수비 위치를 바꾸어 2006년 이적 전까지 주전 중견수를 맡았다.
2005년에는 시즌 개막 직전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어 개막전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4월 5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홈 개막전에서 연장 12회 댄 미셀리로부터 프로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터뜨렸다. 이 해부터 센트럴·퍼시픽 교류전이 시작되었는데, 교류전에서 통산 12홈런을 기록하며 다른 3명의 선수와 함께 초대 홈런왕을 차지했다. 6월 18일 경기 종료 시점에서 타율 .344, 21홈런으로 임시 타격 2관왕에 올랐으나, 6월에 차량 사고로 인해 일시 입원할 정도의 큰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월 29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부터 복귀했으며, 9월 1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8회 통산 100호 홈런을 달성했고, 구단 일본인 선수 최초로 2년 연속 3할 타율 30홈런을 달성했다. 이 사고로 인해 2005 시즌은 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계약이 갱신되는 징계를 받았다.
2006년에는 개막 전 3월에 개최된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일본 대표팀에 선출되었다. 이 대회에서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호수비와 대형 홈런 등으로 활약했다. 3홈런, 9타점으로 팀내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하며 일본 대표팀의 초대 세계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고향인 아쓰기시는 이러한 활약을 기려 대회 종료 후 다무라에게 시민 공로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4월 4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9회말 이와세 히토키로부터 동점 2점 홈런을 때려내는 등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6월 7일 풀캐스트 스타디움 미야기에서 열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홈 플레이트 크로스 플레이 도중 포수와 충돌하여 갈비뼈 4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장기 이탈하여 시즌 대부분을 결장했다. 결국 39경기 출전에 그쳤다. 시즌 종료 후인 12월 5일, 데라하라 하야토와의 1대1 트레이드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등번호는 요코하마 시절과 동일한 6번을 유지했다.
3.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7-2012)
2007년 소프트뱅크 이적 후 개막전에서 3번 타자로 출전하여 2개의 홈런을 포함한 3안타를 기록하며 맹타를 휘둘렀다. 시즌 중 4번의 근육 부상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최다인 13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1, 13홈런, 68타점을 기록하며 2년 만에 규정 타석에 도달했다.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 후보에 등번호 1번으로 선출되었으나, 치료를 위해 직전에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2008년에도 개막부터 꾸준히 출전했으나, 4월 25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3회초 수비 중 오쓰카 아키라의 좌중간 타구를 쫓다가 좌익수 하세가와 유야와 충돌하여 오른쪽 다리 비골 골절상을 입으며 전반기를 통째로 날렸다. 9월 상순에 복귀하여 2경기 연속 맹타상을 기록하는 등 활약을 보였으나, 장기 이탈의 영향으로 39경기 출전에 그쳤다.
2009년에는 등록명을 多村 仁志(읽는 법은 동일)로 변경했다. 93경기에서 타율 .282, 17홈런, 57타점을 기록했으며, 해외 이적도 가능한 FA 권리를 취득했지만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잔류했다.
2010년 5월 8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 6회에 프로 통산 150호 홈런을 기록했다. 5월 26일부터는 고쿠보 히로키를 대신하여 소프트뱅크의 4번 타자로 출전하기 시작했다. 센트럴·퍼시픽 교류전에서는 역대 최고 타율인 .415를 기록하며 수위 타자를 차지했다. 7월 23일에는 팬 투표를 통해 프로 데뷔 16년 만에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후쿠오카 돔에서 열린 1차전에서 4번 타자로 출전했다. 8월 24일 오릭스 버펄로스전에서 1회말 곤도 가즈키로부터 6년 만에 만루 홈런을 터뜨렸다. 개인 최다인 14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24, 27홈런, 166안타, 출루율 .374를 기록하며 2003년 이후 7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외야수 부문에서는 최고 득표를 얻어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11월 15일 메이저 리그 이적도 고려하여 FA 권리를 행사했으나, 오 사다하루 회장의 한 마디에 11월 24일 잔류를 표명했고, 2011년 1월 28일 단년 계약을 체결했다.

2011년에는 4월 23일 지바 롯데전에서 일본 프로 야구 통산 1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10월 2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에서는 3회초 이시이 가즈히사로부터 우전 적시타를 터뜨리며 일본 프로 야구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이 해는 100경기 출전에 타율 .241, 4홈런에 그쳤다. 그러나 처음으로 출전한 2011년 일본 시리즈에서 골절 부상에도 불구하고 강행 출전하여 3차전에서 팀의 첫 홈런인 2점 홈런을 터뜨리며 팀의 기세를 살렸고, 5차전에서 2타점을 올리며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시상식에서는 상대 팀인 주니치 선수들로부터 "MVP는 다무라다"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맹활약했다.
2012년에는 출전 기회가 더욱 줄어들어 79경기 출전에 전년과 거의 비슷한 성적을 기록했다. 2012년 11월 5일, 요시무라 유키, 에지리 신타로, 야마모토 쇼고와의 트레이드로 가미우치 야스시, 요시카와 데루아키와 함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로 이적하며 7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등번호는 요코하마 시절 프로 입단 초와 동일한 52번이 되었다.
3.3.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2013-2015)
2013년 4월 11일 히로시마전 홈 경기에서 6회 대타로 출전하여 시즌 1호 홈런을 터뜨렸다. 5월 10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에서는 3대10으로 7점 뒤지던 7회말 대타로 나와 2점 홈런을 기록했고, 이후 1점 차까지 추격한 9대10 상황에서 9회 1사 1, 2루에서 니시무라 겐타로로부터 프로 데뷔 첫 끝내기 3점 홈런을 터뜨렸다. 동일 경기에서 대타 홈런과 끝내기 홈런을 기록한 것은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5번째였다. 이 해 96경기에 출전하여 3년 만에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는 등 중요한 순간마다 활약하며 팀이 6년 만에 최하위에서 탈출하는 데 기여했다.
2014년에는 가지타니 다카유키와 쓰쓰고 요시토모가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면서 이 두 선수가 주전으로 거의 고정되었다. 남은 외야 한 자리를 아라나미 쇼나 가네시로 다쓰히코 등이 번갈아 맡거나 우타 대타 요원으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73경기에 그쳤다.
2015년에는 팀의 젊은 선수 육성 방침에 따라 1군 공식 경기 4경기 출전에 그쳤고, 홈런을 기록하지 못하면서 연속 홈런 기록은 16년에서 멈췄다. 5월 3일에는 출전 선수 등록에서 말소되었다. 말소 후에는 젊은 선수 육성을 중시하는 팀 사정상 이스턴 리그 공식 경기 출전 기회가 "한 경기당 2타석"으로 제한되었다. 실제로는 이러한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타율 .319, 7홈런을 기록했지만, 1군 복귀는 이루지 못하고 10월 3일 구단으로부터 전력외 통보를 받았다. 12월 2일부로 NPB로부터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3.4. 주니치 드래건스 (2016)
2015년 11월 10일 구사나기 구장에서 열린 12개 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에는 불참했다. 그러나 2015년 12월 말, 요코하마 시절 팀 동료였던 다니시게 모토노부가 1군 감독을 맡고 있던 주니치 드래건스 관계자들이 다무라에게 접촉했다. 요코하마 시절인 2001년 가을 캠프에서 임시 코치로 지도를 받았던 오치아이 히로미쓰 제너럴 매니저와의 면담에서 즉석으로 입단이 결정되었다.
2016년 1월 15일, 육성 선수로 주니치에 입단하는 것이 정식 발표되었다. 등번호는 215번이었다. 당초 구단은 2016년 초기에 다무라의 지배하 선수 등록을 검토하고 있었으며, 개막 전에는 2007년 육성 선수로 주니치에 입단하여 후에 지배하 선수로 등록된 후 2007년 일본 시리즈에서 MVP를 획득한 나카무라 노리히로와 같은 활약이 기대되었다.
4월 12일 나고야 구장에서 열린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웨스턴 리그 공식 경기에서 대타로 출전하여 실전 복귀전을 치렀다. 4월 19일 타마홈 스타디움 지쿠고에서 열린 소프트뱅크와의 공식 경기에서는 4번 지명 타자로 첫 선발 출장했다. 이후 주로 4번 지명 타자로 선발 라인업에 고정되었고, 4월 22일 공식전 첫 안타를 기록했다. 4월 24일에는 2점 적시 2루타를 터뜨리며 첫 타점을 기록하는 등 활약을 보였다. 5월 18일에는 나고야 구장 장외로 넘어가는 공식전 첫 홈런과 첫 맹타상을 기록했으나, 결국 지배하 선수로 등록되지는 못했다. 웨스턴 리그 공식전 2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9, 1홈런, 8타점을 기록했다.
10월 1일 현역 은퇴를 표명했지만, 규정에 따라 육성 선수는 은퇴로 처리되지 않고 10월 31일 자유 계약 공시되었다. 자유 계약 후 인터뷰에서 그는 지배하 선수 복귀가 불가능해진 시점에서 은퇴를 모색했으며, 스스로 구단에 은퇴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4. 국제 경력
다무라 히토시는 국가대표 선수로서 국제 대회에서 일본을 대표하여 활약했다.
- 2004년 미국-일본 야구 친선 경기에 일본 대표로 참가했다.
- 2006년 3월에 개최된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이 대회에서 다무라는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호수비와 대형 홈런을 터뜨리는 등 맹활약했다. 특히 3개의 홈런과 9타점을 기록하여 팀내 홈런과 타점 부문 1위를 차지하며 일본 대표팀의 초대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활약은 대내외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으며, 그의 고향인 아쓰기시에서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하여 그에게 시민 공로상을 수여했다.
5. 선수로서의 특징
5.1. 타격

다무라 히토시는 강하고 유연한 손목을 활용한 스윙으로 넓은 코스로 장타를 만들어내는 타격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공을 몸 가까이까지 끌어들여 우측 방향으로 장타를 날리는 기술이 뛰어났으며, 2010년까지 통산 득점권 타율 .322를 기록하는 등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타격을 할 수 있는 유연함도 겸비했다.
요코하마 시절 타격 코치인 다케노우치 마사시로부터 타구를 멀리 날리는 방법을 배우면서 프로 입단 3년차부터 비거리가 늘기 시작했다. 2001년 캠프에서 임시 코치였던 오치아이 히로미쓰로부터 이전의 로버트 로즈를 참고한 타격폼을 개선하라는 권유를 받으며 신주 타법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2002년 가을 캠프 이후 다시 로즈 타법으로 돌아왔다. 최종적으로는 양자의 절충이라고 할 수 있는 폼으로 정착하며 파워와 정확성을 겸비한 주력 타자로 성장했다. 전성기에는 "메이저 리그에 가장 가까운 일본인 야수"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5.2. 수비
다무라 히토시는 구계에서 손꼽히는 신체 능력을 자랑했으며, 뛰어난 타구 판단을 바탕으로 넓은 수비 범위 또한 정평이 나 있었다. 프로 입단 당시부터 노스텝으로 120미터를 던지는 강한 어깨를 지니고 있었으며, 젊은 시절 어깨에 볼트 4개를 삽입하는 대수술을 받은 후에도 강한 어깨는 건재했다. 2010년에는 리그 우익수 중 2위의 UZR 2.3을 기록했다. 요코하마 시절에는 수비에 정평이 나 있던 우익수 가네시로 다쓰히코와 함께 구계 최고의 우중간 콤비로 철벽 수비를 자랑했다.
5.3. 주루
다무라 히토시는 1루 도달까지 4.13초를 기록하는 빠른 발을 겸비했다. 주전으로 정착한 2003년과 2004년에는 2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하며 주루 능력을 과시했다.
6. 개인 생활 및 성격

다무라 히토시는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활약으로 쿠바에서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얻었다. 쿠바의 야구 선수 프레데리크 세페다는 다무라가 소프트뱅크 시절 사용했던 배트를 사용했으며, 그립에는 "H6"가 새겨져 있었다. 또한 율리에스키 구리엘은 DeNA에서 다무라와 팀 동료가 되었을 때, "다무라 씨는 쿠바에서 전설적인 사람이다. 함께 플레이할 수 있어서 기쁘다"며 눈을 빛냈고, 홈런을 터뜨리면 다무라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것이 일상이었다.
요코하마와 소프트뱅크 시절에는 당시 등번호인 6번에 맞춰 5툴 플레이어(5가지 툴: 타격 기술, 파워, 발, 수비, 어깨)에 패션을 더한 "6툴 플레이어"를 자칭했다. 자신이 사용하는 용구에도 "6TOOLS"라고 각인했으며, 공식 웹사이트명(현재는 폐쇄)에도 사용했다(당초에는 "S"가 없어 "6TOOL"이었다). 또한 2009년부터는 "패션"을 "정신력(멘탈리티)"으로 변경했다.
프로 입단 이래 매년 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에 일부 팬들로부터는 주인공이 매우 연약한 비디오 게임의 이름에 빗대어 '스펠렁커'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용하던 야구 용품은 미즈노, SSK, 푸마(스파이크)를 거쳐 최종적으로 언더아머 제품을 사용했다. 일본인 프로 야구 선수 중 언더아머 야구 용구를 사용한 첫 번째 선수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로버트 로즈로부터 배트를 선물 받았는데, 로즈의 배트가 가진 무게와 길이가 자신의 손목을 활용하는 타격 스타일과 잘 맞았기 때문에 현역 시절 내내 로즈와 같은 형태의 배트를 사용했다.
어릴 때부터 가족과 친척 모두 지역의 다이요 웨일스 팬이었으며, 요코하마에 드래프트 지명되었을 때 친척들이 "잘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부터 형의 영향으로 메이저 리그 경기를 보며 메이저리거를 동경했다. 프로 입단 당시에는 목표로 하는 선수로 메이저 리그 도루 기록 보유자인 리키 헨더슨을 꼽았다.
지역 사회에 보답하고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을 돕고자 현역 시절 자선 사업팀 '라이무 로드 다무라'를 설립하여 가나가와현 후생 보호 법인이나 일본 맹도견 협회 등 여러 단체에 기부하며 지원을 계속했다.
7. 은퇴 후 활동
다무라 히토시는 2016년 현역 은퇴 후 2017년부터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메이저 리그 중계를 중심으로 J SPORTS, SPOTV, TV 가나가와, TBS 채널, DAZN, 도쿄MX, RKB 라디오, TBS 라디오 등 다양한 방송 매체 및 e스포츠 중계에 출연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DAZN이 특별 협찬하여 신설된 프로 야구 최우수 배터리상의 월간상 선정 위원으로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 부문을 담당했다.
2021년부터는 NPB와 코나미가 공동 주최하는 프로 야구 e스포츠 리그인 'eBASEBALL 프로스피A 리그'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팀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8. 수상 및 기록
8.1. 주요 수상 및 영예
- 베스트 나인: 1회 (2010년)
- 우수 JCB·MEP상: 1회 (2004년)
- 아쓰기 시민 공로상 (2006년)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 기여를 기려 수여
- 자수포장 (2006년)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 기여를 기려 수여
8.2. 통산 이정표 및 기록
- 첫 기록**
- 첫 출장: 1997년 4월 4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1차전(나고야 돔), 7회초 모리타 고키의 대타로 출장
- 첫 안타: 1997년 4월 8일, 대 한신 타이거스 1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8회말 다무라 쓰토무로부터
- 첫 타점: 1997년 4월 10일, 대 한신 타이거스 3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8회말 후루미조 가쓰유키로부터
- 첫 선발 출장: 1997년 4월 22일, 대 한신 타이거스 4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8번·우익수로 선발 출장
- 첫 홈런: 1997년 4월 25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4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5회말 마에다 유키나가로부터
- 첫 도루: 2000년 9월 15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5차전(도쿄 돔), 9회초 2루 도루 성공(투수: 미사와 고이치, 포수: 무라타 신이치)
- 첫 만루 홈런: 2004년 4월 21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차전(도쿄 돔), 3회초 구도 기미야스로부터
- 첫 끝내기 안타: 2005년 4월 5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12회말 댄 미셀리로부터
- 첫 끝내기 홈런: 2013년 5월 10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6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9회말 니시무라 겐타로로부터
- 이정표적 기록**
- 100홈런: 2005년 9월 17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9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8회말 사카이 준야로부터 우중간 솔로 홈런 (역대 243번째)
- 150홈런: 2010년 5월 8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8차전(후쿠오카 야후! JAPAN 돔), 6회말 쉬밍지에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 (역대 153번째)
- 1000경기 출장: 2011년 4월 23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1차전(가고시마 현립 가모이케 야구장), 6번·우익수로 선발 출장 (역대 440번째)
- 1000안타: 2011년 10월 2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3차전(세이부 돔), 3회초 이시이 가즈히사로부터 우전 적시타 (역대 267번째)
- 홈런 관련 기록**
- 3타석 연속 홈런: 2004년 7월 17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다카하시 겐, 사타케 겐타, 하야시 마사키로부터 각각 기록)
- 4경기 연속 홈런
- 2004년 (4월 2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부터 같은 해 4월 2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까지 기록)
- 2006년 (5월 19일 세이부 라이온스전부터 같은 해 5월 23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까지 기록)
- 전 구단 상대 홈런: 2009년 6월 2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차전(후쿠오카 야후! JAPAN 돔), 4회말 톰 매스트니로부터 좌중간 결승 2점 홈런 (역대 16번째)
- 기타 기록**
- 리그 외야수 레인지 팩터(RF/G) 1위: 1회 (2004년: 2.09)
- 올스타전 출장: 1회 (2010년)
9. 통산 기록
9.1. 연도별 타격 성적
연 도 | 소 속 | 경 기 | 타 석 | 타 수 | 득 점 | 안 타 | 2 루 타 | 3 루 타 | 홈 런 | 루 타 | 타 점 | 도 루 | 도 루 자 | 희 생 번 | 희 생 플 | 볼 넷 | 고 4 | 사 구 | 삼 진 | 병 살 타 | 타 율 | 출 루 율 | 장 타 율 | O P S |
---|---|---|---|---|---|---|---|---|---|---|---|---|---|---|---|---|---|---|---|---|---|---|---|---|
1997 | 요코하마 | 18 | 27 | 26 | 2 | 7 | 1 | 0 | 1 | 11 | 4 | 0 | 0 | 0 | 1 | 0 | 0 | 0 | 9 | 0 | .269 | .259 | .423 | .682 |
2000 | 84 | 245 | 226 | 21 | 58 | 6 | 1 | 7 | 87 | 29 | 2 | 0 | 0 | 0 | 13 | 3 | 4 | 64 | 3 | .257 | .306 | .385 | .691 | |
2001 | 33 | 54 | 43 | 8 | 7 | 2 | 0 | 1 | 12 | 2 | 0 | 0 | 0 | 0 | 8 | 2 | 2 | 15 | 1 | .163 | .321 | .279 | .600 | |
2002 | 81 | 196 | 183 | 23 | 43 | 8 | 0 | 5 | 66 | 16 | 3 | 1 | 2 | 0 | 9 | 1 | 2 | 54 | 1 | .235 | .278 | .361 | .639 | |
2003 | 91 | 260 | 242 | 29 | 71 | 12 | 0 | 18 | 137 | 46 | 14 | 7 | 1 | 0 | 12 | 1 | 5 | 65 | 7 | .293 | .340 | .566 | .906 | |
2004 | 123 | 492 | 449 | 80 | 137 | 19 | 2 | 40 | 280 | 100 | 10 | 7 | 1 | 1 | 39 | 0 | 2 | 126 | 8 | .305 | .363 | .624 | .987 | |
2005 | 117 | 499 | 450 | 71 | 137 | 26 | 2 | 31 | 260 | 79 | 2 | 4 | 0 | 1 | 43 | 1 | 4 | 108 | 6 | .304 | .369 | .578 | .947 | |
2006 | 39 | 145 | 127 | 24 | 35 | 3 | 0 | 8 | 62 | 20 | 5 | 1 | 0 | 1 | 14 | 2 | 3 | 29 | 5 | .276 | .359 | .488 | .847 | |
2007 | 소프트뱅크 | 132 | 553 | 509 | 61 | 138 | 28 | 3 | 13 | 211 | 68 | 3 | 2 | 2 | 1 | 38 | 0 | 3 | 117 | 8 | .271 | .325 | .415 | .739 |
2008 | 39 | 158 | 149 | 17 | 45 | 6 | 1 | 3 | 62 | 15 | 0 | 1 | 0 | 1 | 6 | 0 | 2 | 29 | 6 | .302 | .335 | .416 | .752 | |
2009 | 93 | 338 | 308 | 39 | 87 | 17 | 1 | 17 | 157 | 57 | 0 | 1 | 0 | 4 | 22 | 1 | 4 | 66 | 11 | .282 | .334 | .510 | .844 | |
2010 | 140 | 559 | 513 | 74 | 166 | 33 | 1 | 27 | 282 | 89 | 2 | 2 | 0 | 3 | 33 | 2 | 10 | 93 | 11 | .324 | .374 | .550 | .924 | |
2011 | 100 | 356 | 323 | 28 | 78 | 16 | 0 | 4 | 106 | 36 | 1 | 1 | 0 | 1 | 29 | 0 | 3 | 66 | 11 | .241 | .309 | .328 | .637 | |
2012 | 79 | 218 | 200 | 16 | 50 | 9 | 1 | 4 | 73 | 20 | 0 | 1 | 0 | 0 | 18 | 0 | 0 | 43 | 7 | .250 | .312 | .365 | .677 | |
2013 | DeNA | 96 | 277 | 238 | 26 | 62 | 11 | 1 | 12 | 111 | 39 | 1 | 1 | 0 | 3 | 33 | 0 | 3 | 54 | 5 | .261 | .354 | .466 | .820 |
2014 | 73 | 166 | 147 | 11 | 40 | 5 | 1 | 4 | 59 | 23 | 0 | 2 | 1 | 1 | 15 | 1 | 2 | 23 | 4 | .272 | .345 | .401 | .747 | |
2015 | 4 | 8 | 7 | 1 | 1 | 0 | 0 | 0 | 1 | 0 | 0 | 0 | 0 | 0 | 1 | 0 | 0 | 1 | 0 | .143 | .250 | .143 | .393 | |
통산: 17년 | 1342 | 4551 | 4140 | 531 | 1162 | 202 | 14 | 195 | 1977 | 643 | 43 | 31 | 7 | 20 | 333 | 14 | 49 | 962 | 94 | .281 | .340 | .478 | .819 |
- 요코하마(요코하마 베이스타스)는 2012년에 DeNA(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로 구단명을 변경함
- 1995년, 1996년, 1998년, 1999년은 1군 출장 없음.
9.2.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타격 성적
연 도 | 대 표 | 시 합 | 타 석 | 타 수 | 득 점 | 안 타 | 2 루 타 | 3 루 타 | 본 루 타 | 루 타 | 타 점 | 도 루 | 도 루 사 | 희 타 | 희 비 | 사 구 | 경 원 | 사 구 | 삼 진 | 병 살 타 | 타 율 | 출 루 율 | 장 타 율 |
---|---|---|---|---|---|---|---|---|---|---|---|---|---|---|---|---|---|---|---|---|---|---|---|
2006 | 일본 | 8 | 35 | 27 | 6 | 7 | 0 | 0 | 3 | 16 | 9 | 0 | 0 | 1 | 0 | 6 | 0 | 1 | 9 | 2 | .259 | .412 | .593 |
9.3. 연도별 수비 성적
연 도 | 구 단 | 외야 | |||||
---|---|---|---|---|---|---|---|
시 합 | 척 살 | 보 살 | 실 책 | 병 살 | 수 비 율 | ||
1997 | 요코하마 | 7 | 5 | 1 | 0 | 0 | 1.000 |
2000 | 72 | 130 | 5 | 1 | 1 | .993 | |
2001 | 27 | 27 | 2 | 0 | 0 | 1.000 | |
2002 | 69 | 84 | 3 | 1 | 1 | .989 | |
2003 | 85 | 122 | 2 | 2 | 1 | .984 | |
2004 | 119 | 243 | 6 | 3 | 2 | .988 | |
2005 | 115 | 240 | 5 | 3 | 1 | .988 | |
2006 | 34 | 58 | 0 | 1 | 0 | .983 | |
2007 | 소프트뱅크 | 126 | 223 | 2 | 2 | 1 | .991 |
2008 | 36 | 71 | 0 | 1 | 0 | .986 | |
2009 | 79 | 120 | 3 | 1 | 1 | .992 | |
2010 | 136 | 226 | 3 | 2 | 0 | .991 | |
2011 | 83 | 136 | 2 | 2 | 0 | .986 | |
2012 | 48 | 85 | 0 | 1 | 0 | .988 | |
2013 | DeNA | 69 | 96 | 5 | 0 | 0 | 1.000 |
2014 | 44 | 63 | 1 | 0 | 1 | 1.000 | |
2015 | 3 | 2 | 0 | 0 | 0 | 1.000 | |
통산 | 1152 | 1931 | 40 | 20 | 9 | .990 |
10. 등번호
다무라 히토시는 프로 경력 동안 여러 등번호를 사용했다.
- 52 (1995년 ~ 1999년, 2013년)
- 55 (2000년 ~ 2003년)
- 6 (2004년 ~ 2012년)
- 8 (2014년 ~ 2015년)
- 215 (2016년)
11. 등록명
다무라 히토시는 프로 선수 등록명을 두 번 변경했다.
- 多村 仁 (多村 仁다무라 히토시일본어, 1995년 ~ 2009년 5월 21일) - 본명과 동일
- 多村 仁志 (多村 仁志다무라 히토시일본어, 2009년 5월 22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