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니시다 토시유키의 생애는 유년기의 어려움과 배우로서의 성공, 건강 문제와의 싸움, 그리고 사회적 신념을 지켜나가는 과정으로 점철되었다.
1.1. 유년기 및 교육
니시다 토시유키는 1947년 11월 4일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에서 이마이 이즈미와 이마이 키에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마이 토시유키(今井 敏行이마이 토시유키일본어)였으며, '민행(敏行)'이라는 이름은 '무슨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빠르게 행동하라'는 아버지의 바람을 담아 지어진 것이다. 그의 친아버지 이즈미는 고리야마시 우체국 저금국에 근무했으며, 그의 가문은 화천국 백태번의 가로(사무라이 고위 관료)를 지낸 이마이 가문 출신이었다. 친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 키에는 미용사로 일하며 홀로 그를 키웠다. 니시다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같은 미용사 남성과 재혼하면서 그는 어머니의 언니인 미요와 그녀의 남편인 니시다 타츠지 부부에게 입양되어 니시다 가문의 양자가 되었다. 양아버지 타츠지 니시다의 조상은 사쓰마번의 사무라이로 시마즈 나리아키라를 섬겼으며, 영사 전쟁 당시 사쓰마를 방어하기도 했다.
니시다는 양부모님과 함께 고리야마시의 유서 깊은 카구야마 신사의 사택에서 살았으며, 양아버지 타츠지가 고리야마시 시청에서 정년까지 근무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 형편은 어려웠다. 타츠지는 어린 니시다를 주말마다 영화관에 데려갔고, 이 경험은 니시다가 초등학교에서 연극부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학교 시절 그는 국어와 영어에 재능을 보였고, 막연히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는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도쿄로 상경했는데, 이는 영화를 통해 접한 '도쿄 사투리'를 접하며 "이대로 고향에 머무르면 후쿠시마 방언이 굳어져 표준어를 말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껴 표준어를 습득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배우를 많이 배출했다는 메이지 대학 부속 나카노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고등학교에서는 배구부에 입부했으나, 마침 남학생이 없어 어려움을 겪던 연극부 여학생들의 요청으로 남성 역할을 돕는 형태로 연극부에 참여하게 되었다. 1학년 때는 사투리가 고쳐지지 않아 우에노 동물원에 하루 종일 고릴라를 보러 다니기도 했는데, 사육 과장에게 "고릴라를 저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1966년 메이지 대학 농학부에 입학함과 동시에 일본 연기 아카데미 야간부에 다니기 시작했다. 연기 아카데미에 열중하면서 1년 만에 대학을 중퇴하고 아카데미 주간부로 옮겨 이듬해 졸업했다. 아카데미 졸업 후 1967년 아카데미 동료들과 극단 '시어터 67'을 결성했으나 1년 만에 해체되었다. 당시 아르바이트 시급은 95 JPY 정도였다.
1.2. 배우 데뷔 및 초기 활동
니시다 토시유키는 1967년 TBS 텔레비전 드라마 《아츠미 키요시의 울게 내버려둘까》로 텔레비전 배우로 데뷔했다. 1968년에는 청년좌 배우 양성소에 입소하여 1970년에 졸업과 동시에 청년좌 단원이 되었다. 같은 해 7월 청년좌의 《정치》 공연으로 첫 무대에 올랐는데, 이 공연에서 그는 '소년 A' 역을 맡아 한 연극 평론가로부터 "니시다 토시유키라는 배우가 흥미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 기사를 소중히 간직했으며, 스승인 나카다이 요시히로로부터 "앞으로도 재미있는 배우라는 것을 너의 명제로 삼아 연기하라"는 조언을 듣고 "지금도 뛰어난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하곤 했다. 1971년 10월 공연 《샤라쿠 고》에서는 일찍이 주연으로 발탁되며 대기만성형 배우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이후 잠시 어려움을 겪던 그는 1976년 TBS 《편안한 만점》과 《삼남삼녀 사위 한 마리》에 레귤러로 출연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모리시게 히사야의 애드리브에도 당당히 맞서는 노련하고 개성적인 연기, 그리고 친근한 얼굴과 체형으로 인기를 얻었다. 1977년 TV 아사히 《특수 최전선》, 1978년 니혼TV 《서유기》에서 중요한 역할로 고정 출연했다. 특히 《서유기》에서 저팔계 역할을 맡아 일본 외 지역에서도 '피그시'(Pigsy)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졌다. 1980년에는 니혼TV 《이케추 겐타 80 킬로》와 TV 아사히 《땡큐 선생님》에서 주연을 맡았고, 이듬해인 1981년에는 NHK 대하드라마 《여자 태합기》에서 조연을 맡는 등 연속 드라마에 연달아 출연하며 활약했다.
그는 가수 활동도 활발히 펼쳤는데, 1981년 4월 발매한 《만약 피아노를 칠 수 있다면》(《이케추 겐타 80 킬로》 시즌 2 주제가)은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그의 체중은 81 kg이었다. 니시다는 NHK 홍백가합전에서 사회자, 가수, 심사위원, 응원(내레이션 포함 시 5가지)이라는 4가지 기본 역할 모두를 경험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캐릭터, 능숙한 토크, 탁월한 애드리브 재능, 그리고 코미디언으로서의 면모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과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주목받아 《보기 좋은! 먹기 좋은! 웃음 좋은!》을 비롯한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연극 외 분야에서도 다재다능한 재능을 발휘했다.
1.3. 주요 경력 및 대중적 성공
1986년 니시다 토시유키는 영화 《우에무라 나오키 이야기》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그의 메이지 대학 농학부 선배이자 영화 개봉 2년 전인 1984년 2월 매킨리 산에서 실종된 모험가 우에무라 나오키를 연기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위해 몽블랑(프랑스), 에베레스트(네팔, 중국), 매킨리, 북극 등 우에무라 나오키의 발자취를 따라 5개 대륙 로케이션을 감행했다. 7개월에 걸친 장기 촬영은 매우 혹독한 과정이었고, 니시다는 죽음을 각오하고 임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실제로 대자연과 대면하며 거스를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동시에 대자연 속에 몸을 맡기고 연기하는 경험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주었기에,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2년 뒤인 1988년 6월 개봉한 영화 《둔황》에서도 장기 현지 촬영에 참여하며 한때 '극한 배우'라는 별칭을 얻었다.
1988년부터는 영화 《낚시바보일지 시리즈》에 출연하며 미쿠니 렌타로와 함께 '하마짱'과 '스우상' 콤비로 활약했다. 이 시리즈는 특별편 2편을 포함하여 최종 20편까지 약 22년간 이어지는 장기 시리즈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 참고로 니시다의 영화 첫 출연작은 미쿠니 렌타로 주연의 《누더기 깃발》(1974년, 요시무라 코자부로 감독, 아시오 광독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반체제 농민 중 한 명인 타타라 지헤이 역을 맡았다.
1994년 도호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모리시게 히사야, 카미조 츠네히코에 이어 3대 테비에 역에 발탁되어 이후 7년간 출연했다.
2000년에는 TV 아사히의 《네이처링 스페셜 "풍설의 성지 안데스 종단 4000킬로" - 니시다 토시유키 53세 아메리카 대륙 최고봉 아콩카과 산에 도전하다》 촬영을 위해 남아메리카 최고봉 아콩카과 산 (해발 6962 m) 등반에 도전했다. 당시 그는 불고기와 맥주를 즐겨 마시고 대식가에 애주가였으며, 운동은 몇 달에 한 번 골프 정도만 하고 하루에 80개비 이상 피우는 골초였다. 체중은 94 kg으로 중성 지방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 신체적 불안 요소를 안고 있었지만, 8월부터 네팔에서 고지 훈련을 시작했다. 11월 초에 등반을 시작했으나 강풍과 저온 등 악천후로 인해 일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해발 6830 m 지점에서 등정을 포기했다.
2001년 아사히 방송 텔레비전의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탐정! 나이트 스쿠프》의 2대 국장(진행자)으로 발탁되어 1월 26일 방송분부터 2019년 11월 22일 방송분까지 약 19년간 고정 출연했다. 초대 국장 카미오카 류타로가 2000년 3월 말 은퇴로 하차하자, 니시다는 프로그램 측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대하드라마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 촬영과 앞서 언급된 아콩카과 등반 일정으로 인해 출연이 지연되었다. 결국 니시다는 귀국 직후 ABC 홀로 직행하여 첫 촬영에 임했고, 니트 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수염을 기른 와일드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1.4. 건강 문제 및 활동 지속
니시다 토시유키는 왕성한 활동 중 여러 차례 건강 문제를 겪었다. 2001년 11월 7일, 그는 목뼈가 변형되어 경추 신경이 압박되어 손발이 저리는 '경추성 척수증'으로 입원했다. 15일 신경 압박 부위 제거 수술을 받고 다음 달에 퇴원하여 복귀했다.
2003년 3월 3일 밤에는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긴급 입원했다. 신속한 조치와 안정적인 증세 덕분에 28일에 퇴원할 수 있었다. 이 입원으로 인해 키노쿠니야 홀에서 주연으로 예정되었던 청년좌의 무대 《유방》(이치카와 신이치 작)에서 하차해야 했다. 당시 그는 육식 위주의 식사와 골초 습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입원 중 배우 요시나가 사유리로부터 "담배만은 끊어줘, 니시야마"라는 편지를 받고 금연을 결심했다. 또한 체중도 82 kg까지 감량했다. 복귀 후 인터뷰에서는 "이때 죽으면 유작 제목이 《게롯빠!》가 되는데,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며 출연 영화의 제목을 이용한 농담으로 회복을 알렸다.
2004년 1월 1일, 그는 전날부로 청년좌를 퇴단하고, 오랫동안 매니저를 맡았던 전 청년좌 스태프 코바야시 야스오가 설립한 오피스 코백으로 이적했다. 이는 개인적인 건강 문제와 2001년 10월 18일 그가 사사했던 청년좌 전 프로듀서이자 청년좌 영화 방송 대표이사였던 카나이 아키히사(성우 카나이 미카의 아버지)가 65세로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2008년 11월, 니시다 토시유키는 오랜 기간 연극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자수포장을 수훈했다. 같은 해 4월부터 NHK 라디오 제1 방송의 라디오 드라마 프로그램 《신 일요 명작좌》에 타케시타 케이코와 함께 발탁되어, 50년간 방영되었던 모리시게 히사야와 카토 미치코 콤비의 《일요 명작좌》의 프로그램 형식을 계승했다. 2009년에는 사토미 코타로의 뒤를 이어 일본 배우 협회 제5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배우의 자질 및 지위 향상, 권리 문제 등에도 힘썼다.

2010년 3월, 《낚시바보일지 시리즈》를 통해 22년간 국민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고 일본 영화계에 남긴 수많은 공로를 인정받아 미쿠니 렌타로와 함께 일본 아카데미상 제33회 회장 공로상을 수상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고향인 후쿠시마현도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에 깊이 공감하며 적극적인 지원 활동을 펼쳤다. 그는 지원 라이브에 출연하는 등 재해 이후 월 2~3회는 단신으로 고향 고리야마시에 돌아와 장기 체류하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2012년 3월 15일에는 일본 희극인 협회가 주최하는 희극인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13년 3월 27일에는 《이케추 겐타 80 킬로》에서 연인으로 호흡을 맞춘 사카구치 료코가 57세로 사망하자 "너무 이르다. 앗코... 이케추 겐타는 오열하고 있다"는 추모사를 발표하며 비통함을 표현했다. 이어서 4월 14일에는 《낚시바보일지》 시리즈에서 호흡을 맞춘 미쿠니 렌타로가 급성 호흡 부전으로 사망했다. 7월 19일 그랜드 하얏트 도쿄에서 열린 "작별회"에서 니시다는 제단에 추모사를 낭독하며 고인을 기리고 "정말 훌륭한 생애였다"며 그의 90년 삶을 찬양했다.
2013년 5월 26일 도쿄 경마장에서 열린 제80회 도쿄 우준(일본 더비)에서는 국가 '기미가요'를 독창했다. 이날 경주에서 타케 유타카가 기승한 1번 인기마 키즈나 (경주마)가 우승하자, 니시다도 단승 마권을 구매하며 "제80회라는 기념비적인 일본 더비에서 동일본 대지진 복구의 구호인 '키즈나(인연)'라는 이름의 말과 만난 것은, 제가 피해 지역인 후쿠시마 출신이라 더욱 깊은 인연을 느꼈다. 이렇게 극적인 일본 더비를 경험한 것은 처음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2014년 7월 1일에는 시타마치 코미디 영화제 in 다이토에서 코미디 영예상을 수상하며, 그의 대표작인 《낚시바보일지》 1편이 리스펙트 상영작으로 선정되었다.
2016년 2월 1일, 니시다는 자택 침대에서 떨어져 목 부상을 입어 '경추 아탈구' 진단을 받았다. 출연 중이던 드라마 《가족의 형태》 촬영에는 계속 참여했으나, 2월 12일 오사카 아사히 방송에서 예정된 《탐정! 나이트 스쿠프》 녹화는 건강상 이유로 불참했다. 2월 26일 녹화에 복귀했으며, 4월 19일에는 요추 일부를 경추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담낭염이 발병하여 5월 6일 예정되었던 《탐정! 나이트 스쿠프》 녹화도 취소되었고, 5월 12일에는 담낭 절제술을 받았다. 5월 19일 《인생의 낙원》 내레이션으로 활동을 재개했고, 6월 3일 《탐정! 나이트 스쿠프》 녹화를 통해 텔레비전 화면에 복귀하며 눈물을 흘리며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6월 11일 퇴원했는데, 이때 그의 입원과 관련하여 약물 남용 의혹 등의 유언비어가 유포되자, 소속사는 같은 해 8월 경시청 아카사카 경찰서에 피해 신고를 제출하고 "불법적인 글에 대해 작성자를 특정하고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을 이유로 형사, 민사적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는 경고문을 발표했다. 같은 해 10월 4일 드라마 《닥터-X~외과의·다이몬 미치코~》 (시즌 4) 제작 발표회견에서 니시다는 "입원과 관련하여 인터넷 뉴스에 '각성제 투약 은폐를 위해 입원한 것 같다'는 글까지 올라왔는데, 저는 마약 중독자가 아니니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인터넷상의 소문을 분명히 부인했다.
2017년 7월 5일, 경시청 아카사카 경찰서는 실제로는 약물 사용 사실이 없었으며, 게시글 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하여 남녀 3명을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2018년 4월 춘계 서훈에서 욱일소수장을 수훈했다. 같은 해 7월 30일 후쿠시마현은 니시다에게 '현민 영예상'을 수여한다고 발표했으며, 우치보리 마사오 현지사는 4월의 욱일소수장 수훈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시상식은 같은 해 9월 17일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에서 열렸다.
2019년 11월 22일 방송분을 끝으로 19년간 국장(사회자)을 맡았던 간사이 지방의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탐정! 나이트 스쿠프》에서 하차했다.
2021년에는 《이케추 겐타 80 킬로》에서 함께 출연했던 스기타 카오루와 《닥터-X~외과의·다이몬 미치코~》에서 재회하며 화제를 모았다.
1.5. 사망
2024년 10월 17일, 니시다 토시유키는 도쿄도 세타가야구 자택 침대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수행원에 의해 발견되어 사망이 확인되었다. 향년 76세였다. 그는 사망 당일에도 업무 일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망 전인 같은 달 8일에는 영화 《극장판 닥터X》의 완성 보고 회견에 참석하기도 했다.
시신은 즉시 경찰에 인계되어 검안되었고, 검안 결과에 따라 18일 소속사에서 사인은 허혈성 심장 질환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장례는 같은 달 23일 도쿄도 내의 사찰에서 가족장으로 엄수되었으며, 계명은 '게이게츠인빈나카쿠유코지(芸月院敏那覚優居士)'로 정해졌다.
사망일자로 일본국 정부로부터 종오위에 추서되었으며, 2024년 12월 16일에는 그의 고향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로부터 '명예 시민' 칭호가 수여되었다. 또한 2025년 2월 18일 조조지 코세츠덴(도쿄도 미나토구)에서 추모식이 열려 일반 참배객을 위한 헌화대도 설치될 예정이다.
2. 연기 활동
니시다 토시유키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2.1. 영화 출연
니시다 토시유키는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며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야마다 요지 감독의 '학교' 시리즈를 통해 교사 역으로 큰 감동을 주었으며, '낚시바보일지' 시리즈로 국민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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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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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 || 《오키타 소지》 || 나가쿠라 신파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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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 || 《누더기 깃발》 || 타타라 지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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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 || 《사야마 재판》 || 이치카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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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 || 《떠돌이 고제 오린》 || 스케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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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 || 《백주의 사각》 || 니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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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 ||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 긴다이치 코스케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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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 || 《태양을 훔친 남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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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 || 《호쿠사이 만화》 || 사시치 (교쿠테이 바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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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 || 《형사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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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 || 《로케이션》 || 오타나베 고노스케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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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 || 《천국의 역 HEAVEN STATION》 || 타가와 카즈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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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 || 《우에무라 나오키 이야기》 || 우에무라 나오키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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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 || 《둔황》 || 주왕례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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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2009 || 《낚시바보일지 시리즈》 || 하마사키 덴스케 || 주연, 시리즈 2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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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 || 《추운 동백》 || 토미타 이와고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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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 || 《오로시야 국 취몽담》 || 쇼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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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 || 《천국의 대죄》 || 황항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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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 || 《학교》 || 쿠로이 선생님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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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 || 《남자는 괴로워: 토라지로의 연애 이야기》 || 낚시꾼 (하마사키 덴스케) || 우정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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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 || 《학교 II》 || 아오야마 류헤이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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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 || 《무지개를 잡는 남자》 || 시라가네 카츠오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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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 || 《무지개를 잡는 남자 남국 분투편》 || 긴카츠오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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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 《해는 다시 떠오른다》 || 카가야 시즈오 || 주연 (와타나베 켄과 공동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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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 || 《게롯빠!》 || 하바라 다이스케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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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 || 《절반만 남았다》 || 오구니 카나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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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 《나흘간의 기적》 || 쿠라노 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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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 《더 우쵸우텐 호텔》 || 도쿠가와 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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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 《츠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 츠바키야마 카즈아키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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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 《게게게의 키타로》 || 와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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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 《빙신》 || 이세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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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 《자학의 시》 || 모리타 이세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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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 《음지와 양지에 핀다》 || 모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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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 《파트너 - 극장판 - 절체절명! 42.195km 도쿄 빅 시티 마라톤》 || 키사하라 요시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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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 《언덕을 넘어》 || 키쿠치 칸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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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 《더 매직 아워》 || 텐시오 코노스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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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 《라면 걸》 || 마에즈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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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 《아사히야마 동물원 이야기 펭귄이 하늘을 날다》 || 타키자와 칸지 (원장)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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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 《화천의 성》 || 오카베 마타에몬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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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 《SPACE BATTLESHIP 야마토》 || 도쿠가와 히코자에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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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 《별을 지키는 개》 || 아버지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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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 《탐정은 BAR에 있다》 || 키리시마 토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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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 《하야부사/HAYABUSA》 || 마토바 야스히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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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 《멋진 악몽》 || 사라시나 로쿠베이 || 주연 (후카츠 에리와 공동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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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 《아웃레이지 비욘드》 || 니시노 카즈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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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 《황금을 안고 날아라》 || 할아버지 (사이토 준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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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 《오오쿠~영원히~[에몬노스케·츠나요시편]]》 || 케이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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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 《기요스 회의》 || 사라시나 로쿠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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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 《유체 내일로의 열흘》 || 아이바 츠네오 ||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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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 《종전의 황제》 || 카시마 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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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 《북극 여우 이야기~내일로》 || 내레이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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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 《사무라이의 식탁》 || 후나키 덴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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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 《아침 점심 저녁》 || 사카모토 라이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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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 《마에스트로!》 || 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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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 《지누요 사라바~카무로바 마을로~》 || 신 (나카눗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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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 《러브 & 피스》 || 수수께끼의 노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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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 《갤럭시 가도》 || 도모토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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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 《인생의 약속》 || 니시무라 겐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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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나미야 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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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 《아웃레이지 파이널》 || 니시노 카즈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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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 《임협학원》 || 아키모토 유조 || 주연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공동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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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 《바람의 전화》 || 이마다 노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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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 《신해석 삼국지》 || 소가 무네미쓰 || 내레이션 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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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 《생명의 정거장》 || 센가와 토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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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 《대괴수의 뒤처리》 || 니시오타치메 칸 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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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 《극장판 닥터X FINAL》 || 히루마 시게카츠 || 유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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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텔레비전 드라마 출연
니시다 토시유키는 텔레비전 드라마, 특히 NHK 대하드라마에서 수많은 주연과 인상 깊은 조연을 맡아 '대하드라마의 얼굴'로 불렸다.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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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 《아츠미 키요시의 울게 내버려둘까》 | |||
1970 | 《고마워요》 | 청년 | ||
1972 | 《신 헤이케 이야기》 | 호조 요시토키, 요코야마 사가미스케 | 대하드라마 | |
1972 | 《원생화원 안라코로의 노래》 | 코로스케 | 폴라 텔레비전 소설 | |
1973 | 《나라 훔치는 이야기》 | 야하치 | 대하드라마 | |
1973 | 《북쪽의 가족》 | 시마다 겐타로 | 연속 텔레비전 소설 | |
1974 | 《과학 수사관》 제20화 "남겨진 발자국" | |||
1974 | 《하얀 활주로》 | 모리타 쿠니히코 | ||
1974 | 《돌아보지 마라 츠루키치》 | 토라키치 | ||
1975 | 《안타가타 도코사》 시즌 2 | |||
1975 | 《신 봇짱》 | 야마아라시 | ||
1976 | 《편안한 만점》 | 스기모토 큐에몬 | ||
1976 | 《비단 집》 | 미나미도 | 폴라 텔레비전 소설 | |
1976 | 《삼남삼녀 사위 한 마리》 | 노나카 카즈유키 | ||
1976 | 《고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5화 | |||
1977 | 《하나신》 | 야마가타 쿄스케 | 대하드라마 | |
1977~1979 | 《특수 최전선》 | 타카스기 요조 형사 | ||
1978 | 《서유기》 | 저팔계 | ||
1978 | 《구름을 뛰어넘어》 | 시부사와 에이이치 | 주연 | |
1979 | 《뜨거운 사랑 가족·LOVE》 | 다이몬 코타로 | ||
1979 | 《바람의 하야토》 | 마스미츠 야스노스케 | ||
1979 | 《아메리카 이야기》 | 쿠마가이 타케히라 | ||
1979 | 《행복의 햇살》 | 주연 | ||
1979 | 《더 스페셜 청춘의 쇼와사 II 30초의 저격병》 | 니시무라 요시유키 | ||
1980~1992 | 《이케추 겐타 80 킬로》 시리즈 | 이케추 겐타 | 주연 | |
1980 | 《항구 마을 순정 시네마》 | 사루타 로쿠로 | 주연 | |
1980~1981 | 《혼자 와라 둘이 와라 모두 와라》 | 카네코 사부로 | ||
1980~1981 | 《땡큐 선생님》 | 이시마츠 돈키 | 주연 | |
1981 | 《다운타운 이야기》 | |||
1981 | 《여자 태합기》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대하드라마 | |
1982 | 《외로운 것은 너뿐이 아니야》 | 누마타 카오루 | 주연 | |
1982 | 《여름의 왕》 | 나라 미츠타 | 주연 | |
1983 | 《아카시 칸페이 35세》 | 아카시 칸페이 | 주연 | |
1983 | 《외과의 키도 슈헤이》 제12화 "폭풍을 부르는 남자" | |||
1984 | 《사형 집행 48시간》 | 주연 | ||
1984 | 《산가 모유》 | 아마 타다시 | 주연, 대하드라마 | |
1984 | 《명문 사립 여고》 | 시부키 렌타로 | 주연 | |
1985 | 《참을 인자 하나》 | 타카다 헤이스케 | 주연 | |
1985 | 《충신장》 | 카키미 고로베이 | 연말 시대극 스페셜 | |
1986 | 《백호대》 | 카야노 곤베이 | 연말 시대극 스페셜 | |
1986~1987 | 《니시다 토시유키의 울게 내버려둘까》 | 주연 | ||
1987 | 《쵸짱》 | 내레이션 | 연속 텔레비전 소설 | |
1987 | 《여자는 놀아라 이야기·전국 남편 조종법》 | 이토 / 이토 시치조 | 주연 | |
1988 | 《타케다 신겐》 | 야마모토 칸스케 | 대하드라마 | |
1988 | 《남자다!》 | 나카지마 이치로타 | ||
1988~1989 | 《고양이, 밟았다!》 | |||
1989 | 《날아다니는! 히라가 겐나이》 | 히라가 겐나이 | 주연 | |
1989 | 《사장님은 탈옥수》 | 주연 | ||
1990 | 《날아가는 것과 같이》 | 사이고 다카모리 | 주연, 대하드라마 | |
1991 | 《여자 스모》 | 주연 | ||
1992 | 《합계! 웅장한 코타로》 | 주연 | ||
1994 | 《언제나 마음에 태양을》 | 후쿠다 유지로 | 주연 | |
1994 | 《토야마 킨시로 미용실》 | 토야마 킨시로 | 주연 | |
1995 | 《8대 쇼군 요시무네》 | 도쿠가와 요시무네 | 주연, 대하드라마 | |
1995 | 《오늘 밤도 텔레비전에서 잠 못 들어》 | 주연 (야쿠쇼 코지와 야마자키 츠토무와 공동 주연) | ||
1997 | 《료마가 간다》 | 카츠 카이슈 | ||
1997 | 《대추적! 에도~죠슈~미치노쿠~시코쿠》 | 햐오로쿠 | ||
1998 | 《오다 노부나가 천하를 잡은 바보》 | 사이토 도산 | ||
1998 | 《형사 쿠마상》 | 주연 | ||
1998 | 《까마귀 잉어》 | 오하마 쇼조 | ||
1999 | 《케로리 도톤 히데요시와 여자를 다툰 남자》 | 야스이 도톤 | 주연 | |
1999 | 《고지 가장 사랑하는 아내의 말기암부터 죽음...》 | 쿠마자와 켄이치 | 주연 | |
1999 | 《발견! 저우언라이의 도쿄 체류 일기 이웃의 초상》 | 해설 | ||
1999 | 《빛나는 순간 전투 카메라맨 사와다 쿄이치의 사랑과 청춘! 사랑하는 사람이여! 나는 전장으로 간다 | 꿈에 살고 사랑에 살며, 베트남에서 선명하게 흩어진 생애!》 | 스기모토 | |
2000 |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 | 도쿠가와 히데타다 | 주연, 대하드라마 | |
2001 | 《미야모토 무사시》 | 타쿠안 소호 | 신춘 와이드 시대극 | |
2001 | 《노력하지 않아》 | 오타 아키라 | ||
2002 | 《오리가하루~코바야시 잇사》 | 코바야시 잇사 | 주연, NHK 정월 시대극 | |
2002 | 《서스펜스 희극 멜론 두 개》 | 우리우 타츠 / 아카노 타이진 | 주연 (두 역할) | |
2002 | 《봄이 왔다》 | 지로베이 (츠키가타 코스케) | ||
2003 | 《무사시 MUSASHI》 | 우치야마 한베이 | 대하드라마 | |
2003 | 《텅 빈 엄마》 | 테루코 | 주연 | |
2003 | 《러브 레터》 | 타카노 고로 | 주연 | |
2003 | 《하얀 거탑》 | 자이젠 마타이치 | ||
2003 | 《강, 언젠가 바다에 6개의 사랑 이야기》 | 야지마 타다시 | ||
2004 | 《노력하지 않아 II》 | |||
2004 | 《할아버지~손자와 보낸 여름》 | 카타오카 에이키치 | 주연 | |
2005 | 《타이거 & 드래곤》 | 하야시야테이 돈베이 (야나카 쇼키치) | ||
2005 | 《할아버지 2~손자와 보낸 여름~》 | 카타오카 에이키치 | 주연 | |
2005 | 《히로시마 쇼와 20년 8월 6일》 | 야지마 토시아키 (장년) | ||
2006 | 《특명! 형사 돈카메》 | 카메다 돈 | 주연 | |
2006 | 《천하소란~도쿠가와 삼대의 음모》 | 도이 토시카츠 | 주연, 신춘 와이드 시대극 | |
2006 | 《공명의 갈림길》 | 도쿠가와 이에야스 | 대하드라마 | |
2007 | 《참치》 | 후쿠하라 모토츠구 | ||
2007 | 《아사쿠사 후쿠마루 여관》 | 후쿠마루 다이키치 | 주연 | |
2007 | 《화려한 일족》 | 오카와 이치로 | ||
2007 | 《왕의 심장~리어왕에서~》 | 카리야 이치 | 주연 | |
2007 | 《해바라기~나츠메 마사코 27년의 생애와 어머니의 사랑》 | 인터뷰 출연 | ||
2008 | 《여기 보도진의 카메아리 공원 앞 파출소》 | 고쇼가와라 킨고로노스케사에몬타로 | ||
2008 | 《그 전쟁은 무엇이었는가 미일 개전과 도조 히데키》 | 도쿠토미 소호 | ||
2008 | 《히토미》 | 이폰기 카츠타로 | 연속 텔레비전 소설 | |
2008 | 《도쿠가와 풍운록 8대 쇼군 요시무네》 | 키노쿠니야 분자에몬 | 신춘 와이드 시대극 | |
2009 | 《아버지여, 당신은 훌륭했다~1969년의 아버지와 나》 | 오노데라 토시카즈 | ||
2009~2011 | 《언덕 위의 구름》 | 타카하시 코레키요 | ||
2010 | 《슈샤인 보이》 | 스즈키 이치로 | 주연 | |
2010 | 《세상에 기묘한 이야기 20주년 스페셜·봄~인기 프로그램 경연 편》 "마루코와 만날 마을" | 쿠스모토 이치로 | 주연 | |
2010 | 《충신장~그 남자, 오이시 쿠라노스케》 | 키라 요시히사 | ||
2010 | 《우리 집의 역사》 | 야메 토키지로 | ||
2010 | 《자만 형사》 | 하조 | ||
2011 | 《타로의 탑》 | 호리구치 시게하루 | ||
2011 | 《BOSS》 시즌 2 | 쿠로하라 켄조 | ||
2011 | 《최후의 만찬 ~형사·토노 일행과 일곱 명의 용의자~》 | 산죠 다이사쿠 | ||
2011 | 《멋진 숨겨진 촬영 완전 무결 컨시어지》 | 회사원 | ||
2011 | 《나비 부인~최후의 사무라이의 딸~》 | 오비타니 소시치 | ||
2011 | 《전국 질풍전 두 명의 군사 히데요시에게 천하를 얻게 한 남자들》 | 도요토미 히데요시 | 신춘 와이드 시대극 | |
2012 | 《악녀에 대해》 | 토모야스 세이지로 | ||
2012 | 《고잉 마이 홈》 | 토리이 오사무 | ||
2013 | 《여자 노부나가》 | 오다 노부히데 | ||
2013 | 《게으른 선생님》 | 이로카와 타케히로 | ||
2013 | 《야에의 벚꽃》 | 사이고 타노모 | 대하드라마 | |
2013~2021 | 《닥터-X~외과의·다이몬 미치코~》 시리즈 | 히루마 시게카츠 | 7 시즌 | |
2014 | 《미야모토 무사시》 | 주지 닛칸 | ||
2014 | 《TEAM -경시청 특별 범죄 수사 본부-》 | 야나카 토시야 | ||
2014 | 《아스나로 삼삼칠박자》 | 아라카와 츠요시 | ||
2014 | 《아버지의 등》 제3화 | 코이즈미 킨지로 | 주연 | |
2014 | 《아웃바인 폭력단 여형사·야가미 에이코》 | 치나미 쇼고 | ||
2014 | 《도쿄에 올림픽을 부른 남자》 | 타바타 마사지 | ||
2014 | 《노부나가 콘체르토》 | 사이토 도산 | ||
2014 | 《카게무샤 도쿠가와 이에야스》 | 세라다 지로사부로 / 도쿠가와 이에야스 | 주연 (두 역할), 신춘 와이드 시대극 | |
2015 |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 미키 타케카즈 | ||
2015 | 《대사 각하의 요리사》 | 쿠라키 카즈야 | ||
2015 | 《아임 홈》 | 코즈쿠에 유키오 | ||
2015 | 《민왕》 | 시로야마 카즈히코 | ||
2015~2019 | 《낚시바보일지~신입사원 하마사키 덴스케~》 시리즈 | 스즈키 이치노스케 | 주연 (2017년 스페셜 포함, 2019년 스페셜 포함) | |
2015 | 《드라마 스페셜 가사 도우미는 보았다!》 제2편 | 이와쿠라 쥬사부로 | ||
2016 | 《가족의 형태》 | 나가사토 요조 | ||
2016 | 《몽타주 삼억 엔 사건 기담》 | 사와다 신노스케 | ||
2017 | 《아사다 지로 드라마 스페셜 호박》 | 요네다 카츠미 | 주연 | |
2018 | 《패딩턴 발 4시 50분~침대 특급 살인 사건~》 | 토미자와 신스케 | ||
2018 | 《미스 데빌 인사 악마 츠바키 마코》 | 키타무라 칸지 | ||
2018 | 《천재 바카본 3》 | 카미 히토에 | ||
2018 | 《세고돈》 | 내레이션 / 사이고 키쿠지로 | 대하드라마 | |
2018 | 《닛케이 드라마 스페셜 호박의 꿈》 | 코미나미 리스케 | ||
2019 | 《필살직인 2019》 | 카즈사야 세이에몬 | ||
2019 | 《싸인 - 법의학자 유즈키 타카시의 사건-》 | 효도 쿠니아키 | 대한민국 드라마 리메이크 | |
2019 | 《닥터 Y~외과의·카지 히데키~》 제4탄 | 히루마 시게카츠 | ||
2021 | 《우리 집 이야기》 | 칸야마 쥬사부로 | ||
2022 | 《가마쿠라 도노의 13인》 | 고시라카와 법황 | 대하드라마 | |
2023 | 《픽서》 시즌 1 | 혼고 고이치 | 특별 출연 | |
2023 | 《픽서》 시즌 2 | 혼고 고이치 | 특별 출연 | |
2024 | 《안녕 마에스트로~아버지와 나의 아파시오나토~》 | 코무라 지로 | ||
2024 | 《마지막으로 본 거리》 | 농부 | ||
2024 | 《닥터 Y~외과의·카지 히데키~》 제7탄 | 히루마 시게카츠 | 유작 드라마 |
2.3. 무대 연극 출연
니시다 토시유키는 텔레비전과 영화 외에도 무대 연극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연기의 깊이를 더했다.
- 《정치》(청년좌극장, 1970년)
- 《드라마 나이트》(청년좌극장, 1970년)
- 《포옹 가족》(청년좌극장, 1971년)
- 《샤라쿠 고》(배우좌극장, 1971년; 키노쿠니야 홀, 1972년, 1977년)
- 《비극 여인 계보》(청년좌극장, 1971년)
- 《메이지의 관》(키노쿠니야 홀, 1973년)
- 《신들의 죽음》(키노쿠니야 홀, 1973년)
- 《나는 루비》(배우좌극장, 1975년)
- 《세추안의 선인》(키노쿠니야 홀, 1978년)
- 《메이고 산고 타이세츠》(국립극장 소극장, 1979년)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키노쿠니야 홀, 1979년)
- 《모험 단키치의 모험》(키노쿠니야 홀, 1981년)
- 《에도의 쓸모없는 사람》(선샤인 극장, 1982년)
- 《야지키타》(선샤인 극장, 1985년)
- 《카라유키상》(선샤인 극장, 1990년)
- 《지붕 위의 바이올린》(제국극장, 1994년~2001년; 우메다 코마극장, 2001년)
- 《절실한 빨간 풍차 - 코바야시 잇사》(이케부쿠로 니시구치 텐트극장, 1995년)
- 《리셋》(키노쿠니야 홀, 1999년)
2.4. 더빙 및 성우 활동
니시다 토시유키는 배우로서의 명성 외에 성우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 《힘내라!! 타부치 군!!》 시리즈 (타부치 군 역, 1979년~1980년) - 프로 야구 선수를 모티브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
- 《로봇》 (빅웰드 박사 역, 2005년) - 해외 애니메이션 영화 더빙
- 《모모에게 보내는 편지》 (이와 역, 2012년) - 애니메이션 영화
- 《정글북》 (발루 역, 2016년) - 해외 영화 더빙
- 《얀마 패밀리 아워 날아라! 손오공》 제13~15화 (우마왕 역, 1978년) - 인형극
- 《연속 인형 활극 신 삼총사》 (베르트랑 역, 2009년) - 인형극
- 《부유령 브라질》(산다 역, 2021년) - 라디오 드라마 (NHK-FM)
- 《그날들~시극으로~》(나 역, 2022년) - 라디오 드라마 (NHK-FM)
3. 기타 활동
니시다 토시유키는 연기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대중과 소통했다.
3.1. 음악 활동
니시다 토시유키는 배우 활동과 병행하여 가수로도 활동하며 여러 음반을 발표했다. 1981년 발매한 싱글 '만약 피아노를 칠 수 있다면'은 드라마 《이케추 겐타 80 킬로》의 주제가로 크게 히트하며 그의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는 1971년 돌아온 울트라맨의 삽입곡 'MAT 팀의 노래'를 커버하는 등 아르바이트 삼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1980년 앨범 《바람에 안겨》에 수록된 '시원하게! 이 사랑'은 엘비스 프레슬리 성대모사로 부른 곡으로, 오타키 에이이치가 작사, 작곡, 편곡을 담당했다. 1983년에는 북론의 CM송 '리블록'을 불렀으며, 2012년에는 동일본 대지진 복구 응원곡 '꽃은 핀다'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음원을 발표했다. 그의 음악 활동은 드라마 및 영화 OST 참여로도 이어졌다.
# | 발매일 | A/B면 | 제목 | 작사 | 작곡 | 편곡 |
---|---|---|---|---|---|---|
EMI 뮤직 재팬 | ||||||
1 | 1977년 5월 | A면 | 목화의 애정 | 스기 노리히코 | 아카노 타치오 | |
B면 | 삼류 배우는 눈물을 너무 좋아해 | 타카다 히로시 | 코로쿠 레이지로 | |||
2 | 1977년 11월 | A면 | 여동생 | 이마무라 레이코 | 아카노 타치오 | |
B면 | 추억은 하품 | 시모다 이츠로 | 아카노 타치오 | |||
3 | 1978년 8월 | A면 | 신데렐라 마치 | 스기 노리히코 | 마카이노 코지 | |
B면 | 상냥하게 안녕히 | 코로쿠 레이지로 | ||||
CBS 소니 | ||||||
4 | 1980년 4월 | A면 | 바람에 안겨 | 키타조 타다시 | 요시노 후지마루 | 키모리 토시유키 |
B면 | 딸들이여 | 쇼지 료 | 키무라 쇼 | |||
5 | 1980년 10월 | A면 | 풍향계 이쪽을 향했다 | 미나미 란보 | 야마모토 히로유키 | |
B면 | 청춘 두 사람 | |||||
6 | 1981년 4월 1일 | A면 | 좋은 꿈 꿔라 | 아쿠 유 | 사카타 코이치 | |
B면 | 만약 피아노를 칠 수 있다면 | |||||
7 | 1982년 5월 | A면 | 단 하나의 노래지만 | 유카와 레이코 | 이노우에 다이스케 | 우메가키 타츠시 |
B면 | 울 때는 내 품에서 | 코 사치헤이 | 난고 타츠야 | |||
8 | 1982년 6월 | A면 | 외로운 것은 너뿐이 아니야 | 코무로 히토시 | 아오키 노조미 | |
B면 | 아직 질 수는 없어 | |||||
9 | 1982년 9월 | A면 | 행복의 표지 | 아쿠 유 | 사카타 코이치 | |
B면 | ZOOM IN 너 | |||||
10 | 1983년 4월 | A면 |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 | 니시다 토시유키 | ||
B면 | 노을 | 야마카와 케이스케 | 타키자와 료 | 아오키 노조미 | ||
11 | 1984년 11월 | A면 | 추억의 무대 장치 | 오구라 케이 | 호시 카츠 | |
B면 | 사랑은 어떻게 됐니-oh! 결혼- | |||||
12 | 1984년 12월 | A면 | 르네상스 | 아쿠 유 | 사카타 코이치 | |
B면 | You Are My 미인 Shine | |||||
13 | 1985년 10월 2일 | A면 | 남자의 장면 | 이즈미 츠네히로 | 하기타 미츠오 | |
B면 | 아무도 없어 | 타케카와 유키히데 | 토비사와 히로모토 | |||
14 | 1986년 9월 5일 | A면 | 인생 자장가 | 이케다 미츠오 | 아오야마 하치로 | |
B면 | 마음에 테루테루보즈 | 아키모토 야스시 | 타케카와 유키히데 | |||
15 | 1988년 12월 1일 | A면 | LOVE~러브송을 만들자~ | 아쿠 유 | 하야시 테츠지 | 하기타 미츠오 |
B면 | 사랑은 천재다 | 나카무라 유스케 | ||||
16 | 1989년 3월 1일 | 01 | 시간의 여행자 | 타케다 테츠야 | 호리우치 타카오 | 와카쿠사 메구미 |
17 | 1989년 11월 1일 | 01 | 무지개 | 오오츠 아키라 | 스기모토 마사토 | 난바 마사시 |
02 | 남자들의 자장가 | 타키노 에이지 | 오오키 토오루 | |||
소니 레코즈 | ||||||
18 | 1991년 11월 21일 | 01 | 차가워지지 마 | 아쿠 유 | 타니무라 신지 | 난바 마사시 |
02 | 내가 사랑한 문어 | |||||
19 | 1992년 10월 21일 | 01 | 떠나지 않을 수 없어 | 키타조 타다시 | 야마자키 카즈토시 | |
02 | 마음에 테루테루보즈 | 아키모토 야스시 | 타케카와 유키히데 | 토비사와 히로모토 | ||
20 | 1994년 4월 21일 | 01 | 절대 일등 | 도쿄 바나나 보이즈 | ||
소니 뮤직 어소시에이티드 레코즈 | ||||||
21 | 2001년 8월 1일 | 01 | 일단은 잘 지내자 | 아오시마 유키오 | 코바야시 신고 | |
02 | 내가 사랑한 문어 | 아쿠 유 | 타니무라 신지 | 난바 마사시 | ||
22 | 2003년 6월 25일 | 01 | 하늘에 별이 있는 것처럼 | 아라키 이치로 | 마스모토 나오키 | |
02 | 일단은 잘 지내자 | 아오시마 유키오 | 코바야시 신고 | |||
소니 뮤직 레코즈 | ||||||
23 | 2007년 6월 27일 | 01 | 인생 데☆럭스 | 타카☆라보 | 카토 유스케 | |
JVC 켄우드 빅터 엔터테인먼트 | ||||||
24 | 2007년 11월 7일 | 01 | 둥글게 살아보는 건 어때요 | 마츠이 고로 | 마카이노 코지 | |
02 | 다음에 태어난다면 | 나가이 류운 | 니시히라 아키라 | |||
킹 레코드 | ||||||
25 | 2011년 6월 22일 | 01 | 바톤 터치 | 아키모토 야스시 | 스기야마 카츠히코 | 카시와라 노부히코 |
02 | 그 거리에 태어나서 | 후지이 잇토쿠 |
3.2. 예능 및 진행
니시다 토시유키는 《탐정! 나이트 스쿠프》의 2대 국장으로서 19년간 프로그램의 상징적인 존재로 활약했다. 그는 1975년 마츠자키 시게루와 함께 진행한 TBS 《허슬 긴자》에서부터 재능을 선보였으며, 이후 다양한 버라이어티 및 정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 《허슬 긴자》(TBS) - 마츠자키 시게루와 공동 사회
- 《니시다 토시유키·사쿠라다 준코의 물론 정답》(TBS) - 사쿠라다 준코와 공동 사회
- 《뭐라고 해도 호기심》(후지 텔레비전) - 사회 (이츠미 마사타카 후임)
- 《정답 없는 퀴즈》(후지 텔레비전)
- 《도리후 대폭소》(후지 텔레비전) - 1983년 크리스마스 특집에 두 딸과 함께 게스트 출연
- 《보기 좋은! 먹기 좋은! 웃음 좋은!》(TV 아사히)
- 《오늘 밤은 최고!》(니혼 텔레비전)
- 《대충 하자!》(니혼 텔레비전)
- 《지구는 우리의 보물섬》(아사히 방송) - 사회
- 《헤이세이 신기 탐험대》(아사히 방송) - 사회
- 《이것은 알아야 할 나이트》(아사히 방송) - 사회
- 《니시다 토시유키의 열도 종단 소문난 개그맨 찾기 여행》(텔레비전 도쿄, 2000년 4월 4일)
- 《탐정! 나이트 스쿠프》(아사히 방송 텔레비전, 2001년~2019년) - 2대 국장
- 니시다는 카미오카 류타로의 후임으로 2001년 1월 26일 방송분부터 국장에 취임한 이래, 프로그램 외에서도 '국장'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는 카미오카보다 오랜 기간 국장을 맡았으나, 육체적 한계로 인해 2019년 11월 22일 방송분을 끝으로 하차했다.
- 그는 방송에서 간사이벤을 섞어 사용하며 매우 눈물이 많은 면모를 보였다. 오사카에서 택시를 타면 운전사에게 "왜 저런 걸 보고 우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프로그램 프로듀서 마츠모토 오사무는 니시다의 눈물에 대해 "눈물을 파는 것은 카츠라 코킨지 이래로 니시다가 처음이다. 코킨지는 이야기꾼으로 눈물을 흘리지만, 니시다는 명배우다. 눈물의 가치가 다르다"고 평가했다. 국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그는 프로그램 멤버들과 식사 모임이나 그룹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통해 교류를 이어갔다.
- 《샐러리맨 NEO》 2007년 연말 스페셜 "슈퍼의 남자" (NHK 종합)
- 《BS 엔터테인먼트 "니시다·타케다의 웃음 모드"》(NHK BS2, 2010년 2월 6일)
- 《절대 웃으면 안 되는 열혈 교사 24시》(니혼 텔레비전, 2012년 12월 31일)
3.3. 광고 출연
니시다 토시유키는 특유의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이미지로 수많은 광고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 빅 존(1975년)
- 닛신식품 후토멘 아지스케(1976년)
- 캐논 카드형 전자계산기·캐논 카드(1978년~1979년)
- 라이온 유지 룩·글라스 룩(1979년)
- 프리마햄
- 일본항공(1982년)
- 에쏘(1982년~1983년)
- 유키지루시 유업(현 메그밀크) 네오소프트(1982년~1987년)
- 도쿄 가스 가스 FF 난방기(1983년~1984년)
- 다이이치 생명(1985년)
- 북론(1980년대 후반~1990년) - 리블록
- 다이토 건탁(1990년)
- 미츠칸(아지폰)(1990년~1992년)
- 아사히 맥주
- 에스비 식품(5/8 칩)
- 아사히 솔라
- KDDI의 전신 KDD - CM송 '절대 일등'이 유행
- NTT 서일본
- 하루야마 상사
- 도요타 (캠리)
- 카네보 홈 프로덕츠 (여행의 숙소)
- 닛세키 (닛세키 원업 조키 - 닛세키 이나 브레이크)
- 미쓰비시 전기
- 공공광고기구(현 AC 재팬)
- 삿포로 맥주
- 칼피스 (건차왕)
- 어스제약 (어스레드 시리즈, 2002년~2004년)
- 점보 복권
- 초기에는 니시다 토시유키와 닮은 신인 가수 니시다 유메조라는 설정으로 출연. 니시다 유메조의 생년월일, 출신지, 혈액형은 니시다 토시유키와 동일하게 설정되었다.
- 신 유캔 통신 강좌(2010년 3월~) - 전단지 작업 편 신문 배달소 소장
- 아트네이처
- 에버라이프 (코우쥰)
- 코이케야 (포테이토칩 프리미엄, 2010년 3월~)
- 안경 시장
- 스즈키 (알토 에코) - '발표회' 편에서 카리나와, '지역 캐릭터' 편에서 카리나, 코바야시 세이란과 공동 출연.
- 산토리 위스키 '히비키' (내레이션)
- 미쓰이 스미토모 은행 '이쿠조, 미라이' "투자신탁" 편(2014년 10월~)
- 맥도날드 재팬 '치킨 타츠타' "두 타츠타" 편·"한입 타츠타" 편(2020년 5월 12일~)
4. 사상과 신념
니시다 토시유키는 배우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확고한 사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사회 참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4.1. 반전 평화주의
니시다 토시유키의 강한 반전 평화주의적 신념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는 "전쟁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나의 신념"이라며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늘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 네가 군대에 가는 일은 절대 싫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또한, "전쟁이란 승자도 패자도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강하게 울려 퍼진다"고 언급했다.
1960년대 메이지 대학 재학 시절에는 학생 운동에 참여하여 "후세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위조지폐 제조와 생화학 무기 개발에 관여했던 노보리토 연구소의 터를 일본이 침략 전쟁을 벌였다는 증거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훗날 메이지 대학 평화 교육 노보리토 연구소 자료관 개설로 이어졌다.
그는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국민이 진정한 역사를 알고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야마다 요지, 쿠로야나기 테츠코, 모리무라 세이이치 등과 함께 사진, 실물, 전쟁 체험자의 증언을 통해 731부대와 100세균 부대, 난징 대학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침략 전쟁에서의 만행을 폭로하는 '평화를 위한 전쟁 전시회'(일본 중국 우호 협회 주최)의 발기인을 맡았다.
4.2. 정치적 견해 및 사회 참여
니시다 토시유키는 일본국 헌법 제9조에 대해 "헌법 9조는 절대 지켜야 한다"는 확고한 호헌파(헌법 수호파)의 입장을 보였다. 그는 "평화를 바라는 이렇게 아름다운 조문은 다른 나라에는 없다"며 헌법 9조를 예찬했다. 또한 군국주의와 그 상징이 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 그는 "일본은 평화에 멍해 있다는 말을 종종 듣지만, 왜 긴장을 강요하는가. 평화롭다면 멍해도 괜찮지 않은가"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는 "단카이 세대의 배우로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배우도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러한 진보적인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친구인 타케다 테츠야와 《탐정! 나이트 스쿠프》의 구성 작가였던 햐쿠타 나오키, 탐정이었던 칸닝 타케야마, 고문을 맡았던 카츠라 자코바 등 보수적인 인물들과도 교류하거나 함께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니시다의 서거 당시에도 타케다, 햐쿠타, 타케야마를 비롯해 홍콘 등 여러 동료들이 애도의 뜻을 표했다.
영화 《게롯빠!》와 《낚시바보일지 19 어서 오세요! 스즈키 건설 일행분》 등에서 함께 출연했던 레이와 신센구미 대표 야마모토 타로와는 야마모토가 정치인으로 전향한 후에도 교류를 이어갔다. 그러나 야마모토가 니시다와 달리 후쿠시마현산 식품에 대한 유언비어를 증폭시키는 발언을 한 적이 있어, 니시다를 추모하는 야마모토의 게시글에 "돌아가신 니시다 토시유키 씨를 선거에 이용하지 마라"는 등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4.3. 중국과의 교류 및 우호 활동
니시다 토시유키는 중국과 깊은 인연과 교류를 이어갔다. 그의 본명 '민행'은 '군자는 말에 訥하고 행동에 敏하기를 원한다'는 『논어』 이인편의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저팔계 역을 호연하며 큰 인기를 얻은 《서유기》와 생애 첫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연 남우상을 수상한 《둔황》 모두 중국과 깊은 관련이 있는 작품이었다. 또한 중일 국교 정상화 15주년 기념 중국 대비경 세계 최초 공개! ~환상의 서역~ 판다와 서유기의 고향》의 중국 취재와 《둔황》의 중국 로케이션을 계기로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심화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중국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뜻을 세우고 1987년 일본 중국 문화 교류 협회(중일 우호 7단체 중 하나)에 가입했다. 이후 30여 년간 협회 회원들과 함께 일본 국민에게 중국 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다양한 행사(도쿄 국제 영화제의 '중국 영화 주간' 기획, 차이나 페스티벌 등)를 개설·개최·지원했다. 또한 쓰촨 대지진이나 코로나19 팬데믹 등 재해가 중국을 덮쳤을 때도 주일본 중국 대사관을 통해 의연금을 기부했다.
그는 중일 우호를 강력히 주장하며, 중일 국교 정상화를 실현한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노벨 평화상을 받아도 좋았을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반전 평화주의자이자 대중국 우호 인사로서 중국 팬들로부터 존경받았으며, '민민'(敏敏)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2016년 2월 중순, 니시다가 부상으로 경추 아탈구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같은 날 중국 팬들로부터 1,000통 이상의 위로 메시지가 그의 소속사로 쏟아졌다. 또한 같은 해 2월 27일 중국 국영 텔레비전 방송국 CCTV는 영화 전문 채널 《영인 1+1》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우리 중국 인민의 오랜 친구 니시다 토시유키 씨에게 보내는 위로'라는 제목으로 《낚시바보일지》 19편과 20편을 연속 방영하기도 했다.
그는 매년 춘절(중국 음력 설) 인사를 보내며 영화·텔레비전 업계에서 중일 교류·협력을 심화하고 양국 국민의 마음을 잇는 작품을 많이 만들 것을 호소했다. 중국 외교부는 2024년 10월 니시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마오닝 대변인을 통해 "양국 인민의 우호적인 감정 증진에 기여했다"고 애도를 표했다. 2014년 사망한 타카쿠라 켄 이후 중국 외교부가 사망한 일본 배우에게 조의를 표한 것은 10년 만의 일이었다.
생전에 오랫동안 반전 평화 및 중일 문화 예술 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4년 12월 27일 개최된 제9회 '공자상'(세계 공자 협회·세계 공자 기금회 등 주최) 시상식에서 '공자 평화 예술상'을 추서받았다.
4.4. '다나카 가쿠에이' 역할에 대한 열망
니시다 토시유키는 생전에 일본의 전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는 열망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그는 전일본공수 기내지 '날개의 왕국'(2007년 8월호) 인터뷰, 2016년 10월 출간된 자서전 '배우 인생, 울고 웃다', 2016년 12월 8일 방송된 《테츠코의 방》, 2016년 12월 12일 방송된 《이주인 히카루와 라디오와》, 2017년 1월 8일자 아사히 신문, 2017년 3월 26일 방송된 《하시 유키오의 지구 악단》 등에서 "앞으로는 기회만 된다면 꼭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는 다나카의 매력에 대해 "인간으로서도 정치인으로서도, 선악을 겸비한 매력이 있다. 그 풍모와 야바위꾼 같은 목소리. 사람을 끌어들이는 재능. 하지만 영웅도 악당도 아닌, 평범한 아저씨가 '가쿠에이'를 완벽하게 연기해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일본인은 그런 유형의 아저씨에게 일종의 동경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청렴한 아저씨도 좋지만, 선악을 겸비한 아저씨에게 끌린다. 가쿠에이를 공과를 포함해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니시다는 죽기 전인 2023년에도 사적으로 비슷한 발언을 하며 "다나카의 파란만장한 반생을 사상 등과 관계없이, 그것을 배우로서 꼭 해보고 싶다. 하지만 좀처럼 어렵다고 하더라"고 말했다고 칸닝 타케야마가 전했다.
그는 또한 "오키나와 반환으로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중일 국교 정상화를 이룬 다나카가 수상해도 좋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며, "중국의 최고 수준 배우에게 저우언라이 역을 맡겨서, 중일 국교가 회복되었을 때 저우언라이와 정면으로 마오타이주를 주고받던 명장면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중일 국교 회복 당시 저우언라이와의 교류만을 뽑아 2시간 정도의 드라마를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5. 수상 및 영예
니시다 토시유키는 생애 동안 뛰어난 연기력과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아 수많은 상과 영예를 얻었다.
5.1. 훈장 및 포장
- 2008년: 자수포장
- 2018년: 욱일소수장
- 2024년: 종오위 (사후 추서)
- 2024년: 고리야마시 명예 시민 (사후 추서)
5.2. 영화 및 드라마상
- 1977년: 제15회 골든 애로상 방송상
- 1981년: 제19회 골든 애로상 특별상
- 1988년: 제26회 골든 애로상 영화상
- 1989년: 일본 아카데미상 제12회 최우수 주연 남우상 (《둔황》)
- 1993년: 제31회 골든 애로상 영화상
- 1993년: 닛칸 스포츠 영화대상 주연 남우상 (《학교》)
- 1994년: 일본 아카데미상 제17회 최우수 주연 남우상 (《학교》)
- 2003년: 블루 리본상 주연 남우상 (《게롯빠!》, 《낚시바보일지 14 오헨로 대 패닉!》)
- 2003년: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주연 남우상 (《게롯빠!》, 《낚시바보일지 14 오헨로 대 패닉!》)
- 2003년: 호치 영화상 최우수 주연 남우상 (《게롯빠!》, 《낚시바보일지 14 오헨로 대 패닉!》)
- 2010년: 일본 아카데미상 제33회 회장 공로상 (《낚시바보일지 시리즈》)
- 2011년: 닛칸 스포츠 영화대상 제24회 조연 남우상 (《멋진 악몽》, 《하야부사/HAYABUSA》, 《탐정은 BAR에 있다》)
- 2012년: 제3회 일본 시어터 스태프 영화제 조연 남우상 (《멋진 악몽》)
- 2012년: 제21회 일본 영화 비평가 대상 심사위원 특별 연기상 (《별을 지키는 개》)
- 2013년: 제22회 도쿄 스포츠 영화대상 남우상 (《아웃레이지 비욘드》)
- 2017년: 야마지 후미코 영화상 제41회 문화재단 특별상
- 2018년: 제27회 도쿄 스포츠 영화대상 주연 남우상 (《아웃레이지 파이널》)
- 2018년: 제39회 요코하마 영화제 특별 대상
- 2021년: 도쿄 드라마 어워드 2021 조연 남우상 (《우리 집 이야기》)
- 2023년: (중국) 제1회 골든 판다상 최우수 조연 남우상 후보 (《우리 집 이야기》)
- 2024년: 제37회 닛칸 스포츠 영화대상·이시하라 유지로상 특별상
- 2025년: 제48회 일본 아카데미상 협회 영예상
5.3. 음악 및 기타 수상
- 1981년: 일본 레코드 대상 제23회 금상
- 2012년: 희극인 대상 대상
- 2013년: NHK 방송 문화상 제64회
- 2014년: 시타마치 코미디 영화제 in 다이토 코미디 영예상
- 2024년: 일본 레코드 대상 제66회 특별 공로상 (사후 추서)
- 2024년: 제9회 공자상 (세계 공자 협회·세계 공자 기금회 등 주최) 공자 평화 예술상 (사후 추서)
6. 평가와 영향
니시다 토시유키는 일본 대중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기며 다양한 면모에서 평가받았다.
6.1. 대하드라마에서의 특별한 입지
니시다 토시유키는 NHK 대하드라마에 수없이 출연하며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1972년 첫 출연작인 《신 헤이케 이야기》부터 2022년 방영된 《가마쿠라 도노의 13인》까지 총 14편의 대하드라마에 출연했다. 특히 1984년 《산가 모유》, 1990년 《날아가는 것과 같이》, 1995년 《8대 쇼군 요시무네》, 2000년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 등 4편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이는 총 64편(2025년 기준)의 대하드라마 역사상 최다 주연 기록이다.
그는 역대 도쿠가와 쇼군가의 인물들을 많이 연기했으며, 《8대 쇼군 요시무네》에서는 도쿠가와 요시무네를,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에서는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공명의 갈림길》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연기하며 3명의 도쿠가와 쇼군을 연기했다. 특히 《공명의 갈림길》에서 이에야스를 연기할 때는 이에야스의 수많은 초상화 모습에 가깝게 표현하기 위해 특수 분장으로 큰 귀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여자 태합기》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연기했는데, 니시다의 대사 "오카카"(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실 네네를 부르는 호칭)는 당시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대하드라마에서 전국 3영걸 중 두 명 이상을 연기한 배우는 니시다가 유일하다.
1990년 《날아가는 것과 같이》에서 사이고 다카모리 역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고향(아이즈) 친구에게 상의하자 "죠슈(나가토 번)는 안 되지만, 사쓰마라면 괜찮다"는 말을 듣고 출연을 수락했다고 한다. 이후 NHK 종합 《패밀리 히스토리》(2017년 10월 4일 방송)를 통해 양부(니시다 가문)의 조상이 사쓰마 번 사무라이의 후손이었음이 밝혀졌다.
6.2. 《탐정! 나이트 스쿠프》에 끼친 영향
니시다 토시유키가 장기간 진행을 맡았던 인기 예능 프로그램 《탐정! 나이트 스쿠프》에서 그의 역할은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대중적 인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약 19년간 2대 국장으로서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그는 방송에서 간사이벤을 섞어 사용했으며, 의뢰 내용에 조금이라도 감동적인 요소가 있으면 거의 빠짐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프로듀서 마츠모토 오사무는 "눈물을 파는 것은 카츠라 코킨지 이래로 니시다가 처음이다. 코킨지는 이야기꾼으로 울리지만, 니시다는 명배우다. 눈물의 가치가 다르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그의 감성적인 면모는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변화시키고 시청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니시다가 국장에서 퇴임한 후에도 그는 프로그램 멤버들과 만남을 이어가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6.3. 주요 인물들과의 친교
니시다 토시유키는 연예계의 다양한 인물들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며 그의 삶과 연기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마츠자키 시게루와 니시다는 마츠자키가 24세, 니시다가 26세였을 때부터 술친구였다. 매일 밤 함께 술을 마시며 서로의 불평을 털어놓고 격려하는 사이였다. 그들은 지인이나 선배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들러 요청에 따라 노래를 부르면 공짜로 술과 음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손님이 제시하는 세 가지 '주제'를 넣어 즉흥적으로 노래를 만드는' 삼제고담 같은 재주였다. 마츠자키는 물론 니시다도 가창력과 음악적 센스가 있었기에, 두 사람의 즉흥 듀엣은 당시 롯폰기 일대에서 유명해졌다. 이 소문을 들은 TBS 제작진이 두 사람을 진행자로 기용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허슬 긴자》(1975년)였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시청자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즉흥적으로 노래를 만들어 선보이는 코너가 큰 호응을 얻었다. 이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이듬해인 1976년 마츠자키는 '사랑의 추억'이 CM에 기용되며 스페인 마요르카 음악제 최우수 가창상을 수상하는 등 주목받기 시작했고, 니시다는 TBS 드라마 《삼남삼녀 사위 한 마리》 출연 등을 거쳐 주연을 압도할 정도의 연기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듬해인 1977년에는 두 사람 모두 크게 성공하며 인기를 굳건히 했다. 이후에도 시바 토시오, 타나카 켄, 시가키 타로와 함께 '오인회'를 결성하는 등 친교를 이어갔으며, 평생 무이무이한 절친한 친구 관계였다.
일본 프로 야구는 후쿠시마현 출신이므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팬클럽 명예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본인은 열렬한 한신 타이거스 팬이다. 2006년 5월에는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한신 대 야쿠르트 경기에 시구자로 나서기도 했다. 1979년에는 이시이 히사이치 원작의 애니메이션 영화 《힘내라!! 타부치 군!!》에서 주인공 타부치 군의 목소리를 담당했다. 프로 야구 한신 타이거스 팬이자 《힘내라!! 타부치 군!!》의 타부치 역을 연기한 것을 계기로 영화의 모델인 타부치 코이치와 현재까지 오랫동안 친분을 이어갔다. 니시다가 진행했던 《탐정! 나이트 스쿠프》에도 타부치와의 친분으로 타부치가 고문으로 게스트 출연한 적이 있다.
6.4. 동일본 대지진 복구 지원 활동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니시다 토시유키는 고향 후쿠시마현과 피해 지역의 복구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 활동을 펼쳤다. 그는 나카하타 키요시 등과 함께 복구 응원 CM에 출연했다. 2011년 4월 2일, 그는 고향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의 슈퍼마켓을 방문하여 현지 생산 야채와 딸기, 오이 등을 시식하며 안전성을 홍보하는 데 일조했다. 이때 눈물을 글썽이며 "아름다운 후쿠시마를 더럽힌 것은 누구인가! 누가 후쿠시마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정말 정말 화가 난다. 후쿠시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절규했다. 4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TBS 계열 《미노몬타의 아사즈밧!》에 생방송으로 출연하여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영향으로 후쿠시마현산 소고기에 대한 불안을 부추기는 불확실한 발표가 이루어졌다가 철회·수정된 것에 대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풍평 피해는 일단 퍼지면 불식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같은 날 아사히 신문 조간에는 "참을성 있는 사람이 많은 후쿠시마지만, 이번만은 아니다. 도쿄 전력과 원전을 추진해온 정치인들에게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싶다"는 심경을 전했다.
2019년에는 당시 《탐정! 나이트 스쿠프》에서 함께 출연했던 칸닝 타케야마의 저서 『후쿠시마에 대해 아무도 모르지 않느냐!』 제9장에 등장하여 대담을 나눴다. 이 대담에서 그는 후쿠시마현산 농산물 등에 대한 불매 운동을 비롯한 풍평 피해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며, 도쿄의 한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던 중 "후쿠시마 여자는 시집갈 수 없다"고 큰 소리로 말하는 남성 몇 명을 목격하고 그 자리에서 격분했던 일화를 밝혔다. 이를 들은 타케야마는 "에엣, 그 온화한 국장님이 그러셨어요?"라며 놀라워했다.
2011년 6월 14일, 그는 도쿄도 내에서 열린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 지원 발표회견에 참석했다. NPO 후루사토 회귀 지원 센터 주최로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 3개 현 피해자들을 위한 타 현 이주 지원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후쿠시마현 출신인 니시다는 "원전 반대는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져 왔지만, 허무하게도 사고를 일으켰다"며 분개했다. 미야기현 출신 스가와라 분타도 "원전의 찬반을 묻는 국민 투표를 해야 한다. 스가 총리도 마지막에 큰 일을 해야 한다. 독일도 이탈리아도 탈원전을 결정했다. 좋은 의미의 삼국 동맹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하며 두 사람 모두 "원전은 NO!"라고 말했다. 2020년 개관한 동일본 대지진·원자력 재해 전승관의 해설 영상에서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6.5. 대중적 이미지 및 일화
니시다 토시유키는 유머러스하고 즉흥적인 재능, 그리고 대중에게 사랑받았던 소박하고 친근한 이미지와 관련된 다양한 일화들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미지적으로 '좋은 사람'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하얀 거탑》에서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악역인 자이젠 마타이치를 연기하면서 악랄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가짜 수염과 가발을 착용하자는 제안을 직접 하기도 했다. 제작 발표회 자리에서는 "제 역할 이름이 자이젠 마타이치(又一)이므로, 자이젠 누가 아니니 그렇게 읽지 말아달라"는 말장난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4년 후 《하얀 거탑》과 같은 야마자키 도요코 원작의 《화려한 일족》에서는 마타이치와 비교해 '좋은 사람'인 오카와 이치로 역으로 출연했다. 이 역할은 마타이치와 마찬가지로 주인공 만효 테페이(연기: 키무라 타쿠야) 아내의 아버지, 즉 장인이었다. 또한 택시를 타는 장면에서 동료 배우 카츠무라 마사노부가 얼굴이 알려질까 걱정하며 신경 썼을 때, 니시다가 운전사에게 "배우 니시다 토시유키입니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회식 등에서는 '즉흥 노래' 외에도 왕성한 서비스 정신과 재주꾼의 면모를 발휘하여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의 대표적인 개인기는 엘비스 프레슬리나 탄바 테츠로의 성대모사 등이며, 최근에는 "샹송풍 '요사쿠'"(키타지마 사부로의 '요사쿠' 가라오케 반주에 맞춰, 가짜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샹송풍'으로 노래하는 것으로, 후렴구에서는 '요사쿠'를 '피에르'로 바꿔 말을 건네는 식이다)가 《SMAPXSMAP》 등 게스트로 출연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가쿠켄의 초등학생용 자서전에서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릴 적 감기에 걸려 잠 못 이룰 때 어머니가 니시다 소년의 코에 입을 대고 콧물을 빨아준 일화를 인용하여 어머니의 위대함과 고마움을 아이들에게 전했다.
실현되지 못한 《남자는 괴로워》 제49작 《토라지로 꽃 순례》에서는 마돈나 타나카 유코의 오빠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었고, 《무지개를 잡는 남자》 시리즈는 이 인연으로 주연을 맡았다. 또한 아츠미 키요시의 사망 직후 2대 토라상 역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보도되기도 했다.
7. 저서
니시다 토시유키가 직접 집필하거나 참여한 서적들은 다음과 같다.
- 『말하며, 인생』(신코 뮤직, 1984년)
- 『니시다 토시유키 지구 사랑 일기 알래스카 365일과 적도 횡단 4만 킬로 네이처링 스페셜』(전국 아사히 방송, 1991년)
- 『매료된 이시카와현 니시다 토시유키 씨 등 8명이 말한다』(주디 옹, 마츠이 마사오, 나가이 고, 카츠라 분친, 토쿠다 야소키치, 카와카츠 헤이타, 타케무라 세츠코 공저, 베스트셀러즈, 2007년)
- 『바보 졸업 영화 『낚시바보일지』의 하마짱 역을 말하자』(쇼가쿠칸, 2009년)
- 『배우 인생, 울고 웃다』(카와데 쇼보 신샤,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