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교육
니시다 마스지로는 오사카부에 위치한 메이세이 상업학교에 재학했다. 그는 1914년부터 1916년까지 이 학교의 축구부에 소속되어 활동했으며, 1916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그의 동급생 중에는 하라다 후쿠사부로가 있었고, 1년 후배로는 간다 기요오가 있었다.
2. 선수 경력
니시다 마스지로는 골키퍼 포지션에서 활약했으며, 그의 주요 소속팀은 오사카 SC였다. 오사카 SC는 그의 모교인 메이세이 상업학교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창단된 팀으로, 당시 많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이 팀에서 뛰었다.
3. 지도자 경력
1923년, 니시다 마스지로는 오사카에서 개최된 제6회 극동 선수권 대회 축구 경기에 참가하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일본 대표팀은 니시다의 모교인 메이세이 상업학교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 된 오사카 SC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이 대회에서 일본 대표팀은 두 경기를 치렀다. 첫 경기는 1923년 5월 23일 필리핀을 상대로 진행되었는데, 이 경기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사상 첫 번째 국제 A매치로 기록되었다. 일본은 필리핀에 1대2로 패배했다. 이어서 5월 24일에는 중화민국과 경기를 치러 1대5로 패배했다. 니시다 감독이 지휘한 이 대회에서 일본은 2전 2패의 성적으로 3개 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4. 사망
니시다 마스지로는 1924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메이세이 상업학교 후배이자 제6회 극동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 선수였던 간다 기요오의 회고록에 따르면, 니시다는 제6회 극동 선수권 대회가 끝난 지 몇 달 후에 병에 걸려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이름은 자료에 따라 니시다 마스지로 또는 니시다 마스지로(西田 満寿治郎니시다 마스지로일본어)로 표기되기도 한다.
5. 평가 및 영향
니시다 마스지로는 일본 축구의 초기 발전에 기여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선수로서 골키퍼 포지션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초대 감독 중 한 명으로서 일본 축구 역사상 첫 국제 A매치를 지휘했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비록 그가 이끈 팀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는 일본 축구가 국제 무대에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일본 축구의 초석을 다지는 데 기여한 선구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