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나카지마 시게오(中島 成雄Nakajima Shigeo일본어)는 일본의 전 프로 복서이자 전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이다. 그는 1954년 1월 18일 이바라키현에서 태어났으며, 고마자와 대학을 졸업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복싱을 시작하여 뛰어난 아마추어 경력을 쌓은 후 1976년 프로로 전향했다. 1980년 1월 3일, 김성준을 상대로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을 획득하며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경기에서 그는 경기 중 고막이 파열되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투혼을 발휘하여 판정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같은 해 3월 힐라리오 사파타에게 타이틀을 잃었고, 1981년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골프장 개발 회사의 대표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일본 프로 복싱 협회 산하 '프로 복싱 세계 챔피언회'의 사무총장으로서 사회 공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대학 출신으로는 두 번째로 세계 챔피언이 된 복서로, 일본 복싱계에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2. 생애 및 아마추어 경력
나카지마 시게오는 이바라키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복싱에 재능을 보였으며, 프로 전향 전 인상적인 아마추어 전적을 기록하며 미래의 챔피언으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2.1. 유년기 및 교육
나카지마 시게오는 1954년 1월 18일 일본 이바라키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바라키현립 시모다테 제일고등학교에서 복싱을 시작했으며, 이후 고마자와 대학에 진학하여 복싱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고마자와 대학 동문 중에는 프로 스포츠계에서 활약한 여러 인물들이 있는데, 야구 선수 나카하타 기요시와 스모 선수 아마노야마 시즈오 등이 그의 동기이다.
2.2. 아마추어 복싱 경력
나카지마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 활동하면서 강력한 기량을 선보였다. 그는 프로로 전향하기 전까지 총 95전 80승 15패의 아마추어 전적을 기록했으며, 이 중 48경기를 넉아웃으로 승리하며 뛰어난 결정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아마추어 시절의 경험은 그의 프로 복싱 경력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3. 프로 복싱 경력
나카지마 시게오는 1976년 프로로 데뷔한 이래, 일본 복싱계에서 빠르게 주목받으며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으나, 짧은 기간 안에 타이틀을 상실하고 은퇴에 이르는 과정을 겪었다.
3.1. 프로 데뷔 및 초기 활동
나카지마 시게오는 1976년 7월 12일 도쿄 고라쿠엔 홀에서 프로 데뷔전을 가졌으며, 이 경기에서 2라운드 넉아웃 승리를 거두며 성공적으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초기 활동 중 그는 1977년 8월 당시 일본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인 텐류 카즈노리(Kazunori Tenryū)를 비타이틀 10라운드 경기에서 3라운드 넉아웃으로 꺾으며 인상적인 실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1978년 3월에는 전 WBA 플라이급 챔피언 베르나베 비야캄포와의 경기에서 4라운드 보디 블로우로 넉아웃 패를 당했다. 같은 해 8월에는 미래의 W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김환진에게 판정패했다.
3.2.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십
1980년 1월 3일, 나카지마 시게오는 고라쿠엔 홀에서 김성준을 상대로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에 도전했다. 이 시합을 위해 그는 복싱 이론에 정통하고 훗날 국제 복싱 명예의 전당과 세계 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조 코이즈미의 지도를 받았다. 또한 그가 소속된 요네쿠라 복싱짐의 회장인 요네쿠라 겐지는 나카지마를 자신의 거주지 근처 아파트로 옮겨 매일 아침 로드워크를 시키는 등 철저한 훈련을 시켰다. 경기 중 나카지마는 3라운드에 고막이 파열되고 갈비뼈가 부러졌으며 왼쪽 눈 위에 출혈이 발생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빠른 펀치와 발놀림으로 경기를 이끌어 나갔고, 결국 15라운드 판정 끝에 심판 전원 일치 판정으로 승리하며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챔피언 등극 나흘 후인 1월 7일에는 후지TV의 인기 음악 프로그램인 요루노 히트 스튜디오에 출연하여 사이조 히데키의 신곡 "슬픈 우정(悲しき友情Kanashiki Yūjō일본어)" 홍보를 응원하는 게스트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때 같은 체육관 동료들도 사이조의 백댄서처럼 함께 출연했다.
3.3. 타이틀 방어 및 은퇴
1980년 3월 24일, 나카지마 시게오는 도쿄 구라마에 고쿠기관에서 힐라리오 사파타를 상대로 첫 번째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 방어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그는 근소한 차이의 심판 전원 일치 판정패를 당하며 챔피언 타이틀을 잃었다. 당시 요네쿠라 겐지 회장은 이 판정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기도 했다. 같은 해 9월 17일, 나카지마는 기후시 시빅 센터에서 사파타와의 재대결을 통해 타이틀 탈환을 시도했으나, 11라운드 테크니컬 넉아웃 패배를 당했다. 이후 8개월이 지난 1981년 5월 26일, 그는 논타이틀 10라운드 경기에서 와타나베 노부유키(Nobuyuki Watanabe)에게 8라운드 넉아웃 패를 당했으며,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프로 복싱에서 은퇴했다.
4. 프로 복싱 전적
나카지마 시게오의 프로 복싱 전적은 다음과 같다. 총 19경기에서 13승(7KO) 5패(3KO) 1무를 기록했다.
번호 | 결과 | 전적 | 상대 | 유형 | 라운드, 시간 | 날짜 | 장소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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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패 | 13-5-1 | 노부유키 와타나베 | KO | 8 (10) | 1981-05-26 | 고라쿠엔 홀, 도쿄, 일본 | |
18 | 패 | 13-4-1 | 힐라리오 사파타 | TKO | 11 (15) | 1980-09-17 | 시빅 센터, 기후시, 일본 |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전 |
17 | 패 | 13-3-1 | 힐라리오 사파타 | UD | 15 (15) | 1980-03-24 | 고쿠기관, 도쿄, 일본 |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 상실 |
16 | 승 | 13-2-1 | 김성준 | UD | 15 (15) | 1980-01-03 | 고라쿠엔 홀, 도쿄, 일본 |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 획득 |
15 | 승 | 12-2-1 | 홍수양 | MD | 10 (10) | 1979-11-06 | 일본 | |
14 | 승 | 11-2-1 | 쿠보무라 토미히사 | KO | 3 (10) | 1979-06-12 | 고라쿠엔 홀, 도쿄, 일본 | |
13 | 승 | 10-2-1 | 마르시아노 세키야마 | KO | 7 (10) | 1979-03-27 | 일본 | |
12 | 패 | 9-2-1 | 김환진 | PTS | 10 (10) | 1978-08-29 | 일본 | |
11 | 승 | 9-1-1 | 푸마 코야 | PTS | 10 (10) | 1978-06-30 | 일본 | |
10 | 패 | 8-1-1 | 베르나베 비야캄포 | KO | 4 (10) | 1978-03-07 | 일본 | |
9 | 승 | 8-0-1 | 유키미쓰 콘도 | KO | 3 (10) | 1978-01-24 | 일본 | |
8 | 승 | 7-0-1 | 토라유키 나나샤 | KO | 4 (10) | 1977-11-29 | 고라쿠엔 홀, 도쿄, 일본 | |
7 | 승 | 6-0-1 | 카즈노리 텐류 | KO | 3 (10) | 1977-08-23 | 고라쿠엔 홀, 도쿄, 일본 | |
6 | 승 | 5-0-1 | 코이치 마키 | MD | 10 (10) | 1977-06-21 | 일본 | |
5 | 승 | 4-0-1 | 마사유키 코바야시 | PTS | 10 (10) | 1977-04-02 | 고쿠기관, 도쿄, 일본 | |
4 | 승 | 3-0-1 | 비버 카지모토 | PTS | 10 (10) | 1976-12-14 | 고라쿠엔 홀, 도쿄, 일본 | |
3 | 승 | 2-0-1 | 토시로 후지이 | KO | 5 (8) | 1976-10-12 | 고라쿠엔 홀, 도쿄, 일본 | |
2 | 무승부 | 1-0-1 | 김치복 | PTS | 8 (8) | 1976-09-16 | 부산, 대한민국 | |
1 | 승 | 1-0 | 시게오 마에자와 | KO | 2 (6) | 1976-07-12 | 일본 |
5. 은퇴 후 활동
프로 복싱에서 은퇴한 나카지마 시게오는 다양한 사회적 활동과 직업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활용하며 새로운 경력을 쌓았다.
5.1. 은퇴 후 경력
복싱 경력을 마친 후 나카지마는 골프장 개발 회사의 대표로 활동하며 사업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5.2. 사회 공헌 활동
나카지마 시게오는 현재 일본 프로 복싱 협회 (JPBA) 산하의 '프로 복싱 세계 챔피언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이 단체는 일본의 역대 세계 챔피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회 공헌 활동을 목적으로 한다. 그는 이 역할을 통해 복싱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6. 평가와 유산
나카지마 시게오는 그의 강렬한 복싱 스타일과 불굴의 정신으로 일본 복싱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김성준과의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고막 파열과 갈비뼈 골절이라는 심각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투혼을 발휘하여 승리한 것은 그의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평가된다. 그는 고마자와 대학 출신으로는 로얄 코바야시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 챔피언이 된 복서로 기록되며, 학업과 스포츠를 병행한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은퇴 후에도 '프로 복싱 세계 챔피언회'의 사무총장으로서 사회 공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일본 복싱의 발전과 복서들의 사회적 역할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그의 복싱 경력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긍정적인 유산을 형성하고 있다.
7. 함께 보기
- 일본의 권투
- 일본의 세계 복싱 챔피언 목록
- WBC 세계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목록
- 프로 복싱 세계 챔피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