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유도 입문
나카야 리키는 1989년 7월 25일 일본 에히메현 마쓰야마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 '리키'는 어머니가 프로레슬링 팬이었던 영향으로, 본래는 후지나미 다쓰미의 이름을 따 '다쓰미'로 지으려 했으나 글자 수가 맞지 않아 초슈 리키의 이름을 빌려 '리키'로 명명되었다.
1.1. 유년기와 교육
나카야는 유치원 때부터 형을 따라 미쓰하마 유도회에서 유도를 시작했다. 그는 소년 시절 이요 유도회와의 대항전에서 아사미 하루나와 대결한 경험이 있으며, 이요 유도회의 훈련 방식에 감명받아 형과 함께 이요 유도회로 이적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전국 중학교 유도 대회 73kg급에서 2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신타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는 인터하이 73kg급에서 우승했으나, 3학년 때는 1년 후배인 모리시타 준페이에게 결승에서 패하며 2연패에 실패했다. 전일본 주니어 유도 체급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 때 3위, 3학년 때 우승을 기록했다.
1.2. 주니어 경력 및 성인 무대 전환
나카야는 주니어 유도 선수 시절부터 라이트급(73kg급)에 출전했다. 200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A-토너먼트 U20 대회에서 우승했고, 하이데라바드에서 열린 아시아 유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다. 2008년에는 리옹에서 열린 A-토너먼트 U20 대회와 방콕에서 열린 세계 유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도카이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전일본 주니어 유도 체급별 선수권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전일본 학생 유도 체급별 선수권 대회에서는 대학 2학년과 3학년 때 2연패를 기록했다. 고도칸컵 전일본 유도 체급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미 2위에 오르며 성인 무대에서의 잠재력을 보였고, 이후 3위와 2위를 거쳐 대학 3학년 때 첫 우승을 차지했다.
2. 성인 경력 및 주요 업적
나카야 리키는 성인 유도 선수로서 꾸준히 성장하며 국제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두 차례의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과 올림픽 은메달은 그의 선수 경력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1. 선수 경력의 도약과 첫 세계 타이틀
나카야는 2010년 도쿄에서 열린 유도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첫 시니어 국제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선수 경력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결승에서 동료 선수인 니시야마 유키를 상대로 주지자매(팔가로꺾기)로 한판승을 거두었다.
2011년 2월 파리에서 열린 유도 그랜드슬램 대회에서도 우승하며 그랜드슬램 2연패를 달성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네덜란드의 덱스 엘몽을 8강에서 꺾고, 준결승에서 동료 선수인 아와노 야스히로를, 결승에서는 헝가리의 아틸라 웅바리를 모두 한판승으로 제압했다. 그해 4월에는 세계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직후 열린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개인전에서는 왕기춘에게 패했지만, 단체전에서는 승리했다.
2011년 6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도 그랜드슬램 대회에서도 우승하며 세 번째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다섯 경기 중 세 경기를 한판승으로 이겼고, 결승에서는 포르투갈의 주앙 피나를 한판으로 꺾었다.
2011년 8월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나카야는 아키모토 히로유키로부터 일본 라이트급의 지배력을 이어받으며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그는 결승까지 다섯 경기에서 한판승 위주의 유도(ippon judo)를 선보였고, 준결승에서는 아키모토를 오소토 가리(밭다리걸기)로 꺾었다. 결승에서는 덱스 엘몽과 대결하여 유효 점수 없이 지도를 두 차례 얻어내 승리하며 첫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 우승으로 그는 2011년 9월 라이트급 부문 세계 랭킹 1위에 등극했다.
2.2. 2012년 런던 올림픽과 이후의 도전
세계 챔피언이 된 나카야는 2011년 도쿄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8강에서 러시아의 무라트 코조코프를 꺾었으나, 준결승에서 오랜 라이벌 아키모토에게 한판패를 당하며 5위에 머물렀다.
2012년 알마티에서 열린 유도 월드 마스터스 대회에 첫 출전하여 두 상대를 한판승으로 꺾었다. 준결승에서 다시 아키모토를 만나 지도 차이로 신승했고, 결승에서는 세계 랭킹 2위인 왕기춘과 대결했으나 역시 지도 차이로 패하며 은메달에 그쳤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나카야는 올림픽 두 달 전 열린 전일본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국가대표 자격을 얻었다. 그는 결승에서 미래의 라이벌이 될 오노 쇼헤이를 꺾고 일본 라이트급 대표가 되었다.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첫 두 상대를 한판승으로 제압했으며, 라술 보키예프에게 유효승, 덱스 엘몽에게 지도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러시아의 만수르 이사예프에게 대결하여 카타 구루마(어깨로메치기) 카운터 공격으로 유효를 허용하여 패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사예프의 승리 후 세레머니에 대해 많은 관중과 해설자들이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나카야는 당시 일본 유도 대표팀의 세 명의 은메달리스트 중 한 명이었으며, 마쓰모토 가오리만이 금메달을 획득하여 일본 유도 역사상 최악의 올림픽 성적을 기록했다.
2.3. 두 번째 세계 선수권 타이틀 획득과 라이벌 관계
나카야는 2012년 도쿄 그랜드슬램에서 떠오르는 스타 오노 쇼헤이에게 결승에서 한판패를 당하며 부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2013년 전일본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는 결승에서 니시야마를 꺾고 다시 타이틀을 되찾았다.
2013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는 첫 두 상대를 한판승으로, 타이베이의 황춘다를 절반승으로 꺾었다. 하지만 8강전에서 몽골의 사인자르갈린 냠오치르에게 오소토 구루마(밭다리되치기)로 한판패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머리를 강하게 부딪혀 가벼운 뇌진탕을 일으켰고, 병원으로 이송되어 정밀 검사를 받았다. 이상은 없었지만, 안전을 위해 패자부활전에는 출전하지 못하며 7위로 대회를 마쳤다. 나카야의 부재 속에, 세계 챔피언 타이틀은 3년 연속으로 일본의 오노에게 넘어갔다.
이후 나카야는 "연구가 성공의 비결이다. 나는 항상 상대방에게 어떤 기술이 통할지 알고 있었다. 확실한 것은 없지만, 연구만이 진정으로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유도가로서 진화하는 것도 성공에 필수적이다."라고 자신의 두 번째 세계 타이틀 획득 비결에 대해 언급했다.
2013년 도쿄 그랜드슬램에서 나카야는 모든 상대를 한판승으로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그의 첫 올-한판승 토너먼트 우승이었다. 결승에서는 대한민국의 방귀만을 누르기(Osaekomi-waza)로 제압했다.
2014년 파리 그랜드슬램에서는 이사예프에게 한판패를 당하며 다시 한번 좌절을 겪었다. 2014년 전일본 유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도 라이벌 오노에게 띄어치기(uki otoshi)로 한판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4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나카야는 랭킹 16위로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기 무키와 루스탐 오루조프 같은 신흥 강자들을 꺾으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랭킹 32위인 북한의 홍국현을 상대로 자신의 특기인 업어치기(ippon seoi nage)로 한판승을 거두며 3년 만에 두 번째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또한 이 대회 세계 유도 단체 선수권 대회에서도 일본 팀의 일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2.4. 선수 경력 후반기와 은퇴
2015년 전일본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나카야는 오노 쇼헤이와 함께 동메달에 그쳤다. 이후 라바트에서 열린 유도 월드 마스터스 대회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5년 아스타나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나카야는 결승까지 5경기를 모두 한판승으로 이기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결승에서 팀 동료이자 숙명의 라이벌인 오노 쇼헤이에게 절반패를 당하며 세계 선수권 3번째 우승에는 실패하고 은메달을 차지했다. 또한 이 대회 세계 유도 단체 선수권 대회에서 일본 팀은 우승을 거두었으나, 나카야는 결승전에서 패배했다.
2015년 도쿄 그랜드슬램 대회에서는 '패하면 올림픽 대표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3회전에서 러시아의 무사 모구시코프에게 패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2016년 파리 그랜드슬램에서는 준결승에서 아키모토에게 한판패를 당했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사기 무키에게 유효를 허용하는 과정에서 팔 부상을 입어 기권하며 5위에 머물렀다.
2016년 전일본 유도 체급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다시 오노에게 패배하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이후 7개월 만에 출전한 고도칸컵에서는 결승에서 8년 후배인 다테야마 신에게 패하며 2위에 머물렀다.
2017년 3월 바쿠 그랜드슬램에서는 결승에서 몽골 선수에게 패하며 2위를 기록했다. 4월 체급별 선수권 대회에서는 3위를 차지했으나, 세계 유도 단체 선수권 대회 멤버로 선발되어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체급을 81kg급으로 변경했으며, 고도칸컵에서는 3회전에서 후지와라 소타로에게 패했다.
2020년 12월 14일, 나카야는 소속팀인 종합경비보장을 통해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2021년 1월부터 종합경비보장 유도부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81kg급으로 전환한 후에는 2018년 전일본 실업 유도 개인 선수권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3. 경기 스타일 및 특기 기술
나카야 리키는 오른쪽 굳히기를 주로 사용하는 선수이며, 키 168 cm의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다. 그는 유도 6단이다. 그의 주특기는 등쳐메치기(背負投세오이 나게일본어)와 누르기(寝技네와자일본어)이다. 특히 누르기 기술을 활용한 굳히기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그는 한판승 위주의 공격적인 유도를 지향하며, 상대를 분석하고 경기를 준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두 번째 세계 타이틀을 획득했을 때, 그는 '연구'와 '진화'가 성공의 비결이라고 언급하며 전략적인 접근 방식을 강조했다.
4. 개인 생활
나카야 리키는 2014년 고등학교 때부터 만나던 여자친구와 결혼하여 슬하에 자녀를 두었다. 혈액형은 A형이다. 그는 종합경비보장(ALSOK) 소속 선수였으며, 질레트의 후원을 받기도 했다. 그의 코치는 나카무라 겐조였다.
5. 주요 전적
나카야 리키는 선수 경력 동안 수많은 국내 및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5.1. 승패 기록 개요
그의 전체 유도 경기 기록은 다음과 같다.
유도 기록 | |
---|---|
총 경기 수 | 87 |
승 | 72 |
한판승 | 49 |
패 | 15 |
한판패 | 9 |
(2016년 2월 6일 기준)
5.2. 주요 국제 대회 및 국내 대회 성적
대회 | 연도 | 체급 | 메달 |
---|---|---|---|
올림픽 | 2012년 런던 올림픽 | 73kg급 | 은메달 |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 2011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파리) | 73kg급 | 금메달 |
2014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첼랴빈스크) | 73kg급 | 금메달 | |
2015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아스타나) | 73kg급 | 은메달 | |
2017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부다페스트) | 혼성 단체전 | 금메달 | |
세계 유도 단체 선수권 대회 | 2011 (파리) | 73kg급 | 동메달 |
2014 (첼랴빈스크) | 73kg급 | 금메달 | |
2015 (아스타나) | 73kg급 | 금메달 | |
2017 (부다페스트) | 73kg급 | 금메달 | |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 2011년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아부다비) | 73kg급 | 은메달 |
2013년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방콕) | 단체전 | 은메달 | |
유도 월드 마스터스 | 2012년 유도 월드 마스터스 (알마티) | 73kg급 | 은메달 |
2015년 유도 월드 마스터스 (라바트) | 73kg급 | 동메달 | |
유도 그랜드슬램 | 2010년 유도 그랜드슬램 도쿄 | 73kg급 | 금메달 |
2011년 유도 그랜드슬램 파리 | 73kg급 | 금메달 | |
2011년 유도 그랜드슬램 리우데자네이루 | 73kg급 | 금메달 | |
2011년 유도 그랜드슬램 도쿄 | 73kg급 | 동메달 | |
2012년 유도 그랜드슬램 도쿄 | 73kg급 | 은메달 | |
2013년 유도 그랜드슬램 도쿄 | 73kg급 | 금메달 | |
2017년 유도 그랜드슬램 바쿠 | 73kg급 | 은메달 | |
세계 유도 주니어 선수권 대회 | 2008년 세계 유도 주니어 선수권 대회 (방콕) | 73kg급 | 동메달 |
아시아 유도 주니어 선수권 대회 | 2007년 아시아 유도 주니어 선수권 대회 (하이데라바드) | 73kg급 | 은메달 |
2008년 아시아 유도 주니어 선수권 대회 (사나아) | 73kg급 | 은메달 |
나카야 리키의 상세한 국내 대회 기록은 다음과 같다:
- 2004년 - 전국 중학교 유도 대회 2위
- 2004년 - 전일본 선발 소년 유도 대회 2위
- 2006년 - 인터하이 우승
- 2006년 - 전일본 주니어 유도 체급별 선수권 대회 3위
- 2007년 - 러시아 주니어 국제 대회 우승
- 2007년 - 인터하이 2위
- 2007년 - 전일본 주니어 유도 체급별 선수권 대회 우승
- 2007년 - 고도칸컵 2위
- 2008년 - 체급별 선수권 대회 3위
- 2008년 - 프랑스 주니어 국제 대회 우승
- 2008년 - 전일본 주니어 유도 체급별 선수권 대회 우승
- 2008년 - 학생 단체 체급별 선수권 대회 3위
- 2008년 - 고도칸컵 3위
- 2009년 - 체급별 선수권 대회 3위
- 2009년 - 학생 체급별 선수권 대회 우승
- 2009년 - 학생 단체 체급별 선수권 대회 우승
- 2009년 - 고도칸컵 2위
- 2010년 - 월드컵 빈 2위
- 2010년 - 체급별 선수권 대회 3위
- 2010년 - 월드컵 살바도르 우승
- 2010년 - 학생 체급별 선수권 대회 우승
- 2010년 - 그랑프리 로테르담 5위
- 2010년 - 학생 단체 체급별 선수권 대회 2위
- 2010년 - 고도칸컵 우승
- 2011년 - 월드컵 부다페스트 3위
- 2012년 - 선발 체급별 선수권 대회 우승
- 2013년 - 선발 체급별 선수권 대회 우승
- 2014년 - 선발 체급별 선수권 대회 2위
- 2015년 - 선발 체급별 선수권 대회 3위
- 2016년 - 선발 체급별 선수권 대회 2위
- 2016년 - 고도칸컵 2위
- 2017년 - 선발 체급별 선수권 대회 3위
- 2018년 - 전일본 실업 유도 개인 선수권 대회 3위 (81kg급)
5.3. 세계 랭킹 변동 추이
나카야 리키의 국제 유도 연맹(IJF) 세계 랭킹은 다음과 같은 변화를 보였다.
연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
순위 | 19 | 1 | 1 | 9 | 9 | 7 | 31 |
(2018년 9월 3일 기준 570포인트로 34위)
5.4. 주요 라이벌과의 대전 기록
나카야 리키가 주요 라이벌 선수들과 맞붙은 경기 결과 및 전적은 다음과 같다.
국적 | 선수명 | 전적 |
---|---|---|
일본 | 아키모토 히로유키 | 2승 3패 |
대한민국 | 왕기춘 | 1승 3패 |
네덜란드 | 덱스 엘몽 | 3승 0패 |
우즈베키스탄 | 나프루즈 유라코빌로프 | 1승 0패 |
몽골 | 사인자르갈린 냠오치르 | 1승 1패 |
러시아 | 만수르 이사예프 | 0승 2패 |
일본 | 오노 쇼헤이 | 1승 3패 (2012년 전일본 우승, 2012년 그랜드슬램 도쿄 결승 패배, 2014년 전일본 결승 패배, 2015년 세계선수권 결승 패배) |
6. 평가와 유산
나카야 리키는 일본 유도계에서 2010년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두 차례의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우승과 2012년 런던 올림픽 은메달이라는 빛나는 업적은 그의 뛰어난 실력과 꾸준함을 입증한다. 특히 그의 한판승 위주의 공격적인 유도 스타일과 끊임없는 연구를 통한 전략적 접근은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는 선수 생활 동안 아키모토 히로유키, 왕기춘, 오노 쇼헤이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유도 경기의 박진감을 더했다. 특히 오노 쇼헤이와의 맞대결은 일본 유도 팬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부상과 부진을 겪으면서도 끈기를 잃지 않고 재기에 성공한 그의 정신력 또한 높이 평가된다.
현역 은퇴 후 코치로 변신한 나카야는 자신의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세대 유도 선수들을 육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일본 유도의 미래를 책임질 지도자로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