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나가세 진엔은 1943년 도야마현 우오즈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년기에 아버지의 직장 관계로 도야마시로 이주했으며, 도야마 시립 야나기마치 초등학교, 도야마 대학 교육학부 부속 중학교, 도야마 현립 도야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도쿄 대학 법학부 제3류(정치 코스)를 졸업했으며, 재학 중 국가공무원 상급 갑종 시험(법률)에 합격했다.
1.1. 초기 경력
1966년 나가세 진엔은 노동성 (현재의 후생노동성)에 입성하여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노동성 재직 중 노동정책국 노동법규과장을 역임했으며, 1988년에 퇴직했다. 노동성 동기 중에는 후일 노동사무차관을 지낸 이토 쇼헤이와 노동성 초대 여성국장을 지낸 오타 요시에 등이 있다.
1.2. 정계 입문 및 활동
1990년, 나가세 진엔은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구 도야마 1구 (정수 3명)에서 자유민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여 득표수 3위로 첫 당선되었다. 이후 7기 연속으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는 1995년 무라야마 내각에서 후생 정무차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듬해인 1996년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신설된 도야마 1구에서 출마하여 신진당 공천의 히로노 마사시를 꺾고 당선되었다. 오부치 내각과 제1차 모리 내각에서는 노동 총괄 정무차관을 지냈으며, 제2차 모리 개조 내각에서는 법무 총괄 정무차관을 역임했다. 중앙성청개편에 따라 초대 법무부대신으로 취임하여 고무라 마사히코 법무대신을 보좌했다. 2002년에는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 수석 이사를 맡았으며, 2004년에는 자유민주당 정무조사회 수석 부회장을 역임했다.

1.3. 주요 공직
2005년, 나가세 진엔은 제3차 고이즈미 내각 (개조)에서 내각관방 부장관으로 취임했다. 이어지는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는 법무대신으로 임명되어 첫 입각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2006년 9월 26일부터 2007년 8월 27일까지 제77대 법무대신을 역임했다. 법무대신 퇴임 후에는 당 노동정책국장과 당 중의원 의원 총회장을 지냈다.
1.4. 정계 은퇴 및 이후
2012년 3월, 나가세 진엔은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불출마하며 정계 은퇴 의사를 표명했다. 2013년 11월, 가을 서훈에서 욱일대수장을 수훈했다. 2014년 11월에는 그의 출생지인 도야마현 우오즈시의 명예 시민으로 추대되었다.
2. 정책과 견해
나가세 진엔은 다양한 정책 분야에서 자신의 견해와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특히 사법, 헌법, 사회 문제에 대해 보수적이고 엄격한 태도를 유지했다.
2.1. 사형 집행
법무대신 재임 기간인 336일 동안 나가세 진엔은 사형수 10명에 대한 사형 집행을 지휘했으며, 이는 당시 역대 법무대신 중 가장 많은 사형 집행 기록이었다.
- 2006년 12월 25일: 4명 - 히로시마 택시 운전사 연쇄 살인 사건의 사형수 (히로시마 구치소 재감) 및 도쿄 구치소 사형수 2명, 오사카 구치소 사형수 1명.
- 2007년 4월 27일: 3명 -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각 구치소 사형수 각 1명.
- 2007년 8월 23일: 3명 - 도쿄 구치소 사형수 2명, 나고야 구치소 사형수 1명.
2.2. 공모죄
제1차 아베 내각에서 공모죄를 신설하는 법안의 통과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2007년 1월 23일 기자회견에서는 "원활하고 조기에 통과시키고 싶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2.3. 소년 범죄 및 형법 개정
나가세 진엔은 소년법 개정과 갱생보호법 제정에 힘썼다. 그는 소년원 송치 연령 하한선을 "14세 이상"에서 "대략 12세 이상"으로 낮추는 데 기여했으며, 경찰관이 촉법소년 의심자를 발견할 경우 임의 조사권을 명문화했다. 또한 자동차 운전 과실치사상죄 신설을 골자로 하는 개정 형법의 통과에도 기여했다.
2.4. 마쓰오카 도시간 농림수산대신 자살
마쓰오카 도시간 농림수산대신의 자살 이후, 아베 신조 내각총리대신이 "수사 당국으로부터 '마쓰오카 대신이나 관계자 조사를 진행한 사실도 없고, 앞으로 조사를 진행할 예정도 없다'는 발언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나가세 진엔은 언론의 질문에 대한 도쿄지방검찰청의 답변 내용이 법무성으로부터 내각관방에 보고되었음을 설명하며 이 문제를 더 이상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2.5. 전후 체제 탈피론
나가세 진엔은 법무대신 취임 당시 "전후 60년을 거쳐 경제 우선, 개인 우선의 풍조를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일본국 헌법 개정보다는 자율 헌법 제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2012년 5월 10일 열린 창생 '일본'(創生「日本」)의 연수회에서는 자유민주당의 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자유민주당 헌법 초안은) 국민주권, 기본적인 인권, 평화주의, 이 세 가지를 견지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세 가지는 더글러스 맥아더가 일본에 강요한 전후 체제 그 자체이다. 이 세 가지를 없애지 않으면 진정한 자립 자율 헌법이 될 수 없다."
이는 나가세 진엔이 일본국 헌법의 핵심 원칙들을 전후 연합국의 강요로 보았으며, 이를 부정함으로써 일본의 완전한 '자주'를 이루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국수주의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2.6. 외국인 노동자 처우 개선
나가세 진엔은 열악하고 저임금 노동으로 이어지는 외국인 기능 실습 제도의 문제점 개선을 위해 자유민주당 국가전략본부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 프로젝트팀 좌장으로서 "외국인 노동자 단기 취업 제도" 창설을 제안했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도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2.7. 기타 정책적 입장
나가세 진엔은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취했다.
-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에 반대했다.
- 인권옹호법안에 반대했다.
-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선거권 부여에 반대했다.
3. 인물과 평가
나가세 진엔은 아베 신조 전 내각총리대신을 지지하고 보좌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3.1. 정치적 지향 및 역할
그는 내각관방장관 시절의 아베 신조를 보좌했으며, "아베 신조를 지지하는 모임"의 핵심 멤버로서 활약했다.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의 정권 구상 및 정권 공약 작성에 관여했다. 또한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자유민주당 도야마현 지부연합회장을 역임하며 지역 정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3.2. 주요 업적 및 기여
나가세 진엔은 의료 제도 개혁 대강이나 저출산 대책 등 정책 마련에 힘썼다. 일본의 재판원 제도 도입에서는 당 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조정 역할을 수행했다. 사회보장 정책, 특히 연금 문제에 정통했다. 호쿠리쿠 신칸센의 정비 촉진, 확정 기여형 연금의 창설, 연금 의료 개호 법안, 재판원 제도 창설, "쇼와의 날" 제정에도 기여했다.
그는 2015년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이 지은 노래비가 다테야마의 무로도 터미널 광장에 세워질 때, 비석의 글씨를 직접 썼다.
3.3. 종교 및 친분 관계
나가세 진엔의 종교는 천리교이다. 그는 일본회의 도야마 회장을 지냈으며, 도야마현 호국신사의 특별 고문을 역임했다.
3.4. 가족 관계
나가세 진엔의 가족 중에는 정치적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많다.
- 조부: 나가세 지로시로 - 전 우에노가타촌 (현 우오즈시) 촌장.
- 부친: 나가세 진쇼 - 전 우오즈시 시의회 의원.
- 모친: 도요 (카쿠마 히사야스의 딸)
- 친척: 카쿠마 히사야스 (조부) - 농업인, 정치인, 전 도야마현 의회 의장.
- 친척: 카쿠마 야스마사 (숙부) - 정치인, 전 참의원 의원.
- 친척: 카쿠마 쇼이치 (사촌동생) - 정치인, 도야마현 의회 의원.
4. 논란과 비판
나가세 진엔은 공적 활동 및 개인적 행보와 관련하여 여러 논란과 비판에 직면했다.
4.1. 국민연금 미납
2004년 일본 정치인의 연금 미납 문제가 불거졌을 때, 나가세 진엔의 국민연금 미납 기간이 5개월에 달하는 사실이 밝혀졌다.
4.2. 정치 자금 보고서 허위 기재
2007년 2월 20일, 요미우리 신문의 조사 결과 2005년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나가세 진엔의 선거운동 비용 수지 보고서에 실제 수지와 다른 내용이 기재되었음이 드러났다. 선거운동 비용 수지 보고서에는 지출로 공비 부담분을 계상하기 때문에, 본래 수입보다 지출이 공비 부담분만큼 많아져야 하지만, 나가세의 보고서는 수입과 지출이 완전히 일치했다. 나가세 사무소는 출납 책임자가 지출액에 포함된 공비 부담분을 잊고 수입액이 지출액과 동일해지도록 자유민주당 지부로부터의 기부금을 맞춰 기재했다고 주장했다. 요미우리 신문의 취재 후 선거운동 비용 수지 보고서와 자유민주당 지부의 정치 자금 수지 보고서를 수정했다. 출납 책임자는 "수입과 지출액을 일치시켜야 한다고 착각하고 공비 부담분을 잊었다"고 진술했다.
4.3. 미등기 주택 논란
2007년 6월 14일, 그가 소유한 도야마현 우오즈시의 본가가 부동산 등기법을 위반하여 현재까지도 미등기 상태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1995년 후생 정무차관 재임 당시에도 미등기 상태가 지적되었으며, 당시 그는 "사회적으로 비상식적이라면 등기하겠다"고 말했지만 이후에도 미등기 상태로 유지되었다.
4.4. 비자 관련 대가성 헌금
나가세 진엔이 상담역을 맡았던 (문제 발각 후 사임) 외국인 연수생 수용 단체 "후진국제사업협동조합"의 요청으로 나가세 사무소가 사증 발급 상황을 법무성 입국관리국에 조회했으며, 그 대가로 해당 조합으로부터 50.00 만 JPY의 헌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문제는 2007년 8월 7일 아사히 신문을 통해 보도되었다.
4.5. 통일교 관련
2006년 5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구 통일교) 관련 단체인 천주평화연합 (UPF)이 합동결혼식을 겸한 "조국 향토 환원 일본 대회"를 일본 국내 12곳에서 개최했다. 나가세 진엔은 이 중 나고야시에서 열린 대회에 축전을 보낸 사실이 확인되었다.
5. 소속 단체 및 의원 연맹
나가세 진엔은 다음과 같은 주요 정치 단체 및 의원 연맹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 창생 '일본' (회장 대리)
-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 신도 정치 연맹 국회의원 간담회
- 헌법 20조를 생각하는 모임
- 한일의원연맹
- 노동정책 추진 의원연맹 (회장)
- "쇼와의 날" 추진 의원연맹 (간사장)
- 건축판금업 진흥 의원연맹 (부회장)
- 배치약 의원연맹 (회장)
- 호쿠리쿠 신칸센 건설 촉진 의원연맹
- 정비 신칸센 건설 촉진 의원연맹
- 사회보험노무사 의원간담회
- 자유민주당 자동차 정비 의원연맹 (간사)
- 병원 물리치료 문제 의원간담회
- 약종상 문제 의원협의회 (간사장)
- 21세기의 사회보장제도를 생각하는 의원연맹
- 저출산사회 대책 의원연맹
- 개호 노동 문제 의원연맹
- 개호 복지 의원연맹
- 자유민주당 전국 보육 관계 의원연맹
- 자유민주당 의원 유도 정복 사회
- 자유민주당 약사 문제 의원간담회 (부회장)
- 확정 기여형 연금 도입 추진 의원연맹
- 재판원 제도 추진 의원연맹
- 교정 시설 과잉 수용 등 긴급 대책 의원간담회
- 농민의 건강을 만드는 모임
- 물과 녹색과 식량을 지키는 의원연맹
- 수의사 문제 의원연맹 (간사)
- 환경 위생 의원연맹
- 정화조 대책 의원연맹
- 전원 주택 건설 촉진 의원연맹
- 혈액 사업 연구 의원연맹
- 일본-네팔 우호 국회의원연맹
- CIQ (세관, 출입국관리, 검역) 체제 확충 정비 추진 의원연맹
- 소프트볼 진흥 의원간담회
- 세무사 제도 개혁 추진 의원연맹 워킹팀
- TPP 협상에서 국익을 지키는 모임
6. 저서
나가세 진엔이 저술하거나 공동으로 집필한 주요 서적은 다음과 같다.
6.1. 단저
- 『실버 인재 센터』 (노무행정연구소)
- 『풍요로운 근로자 생활을 향하여』 (근대노동경제연구회)
- 『확정 기여 연금이 첫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노무행정연구소, 2000년)
- 『새로운 식품 위생법의 개요』 (노무행정연구소, 2003년)
- 『진엔의 재미있는 책』 (나가세 진엔 저술집 간행회, 2014년)
6.2. 공저
- 『노동조합이여, 정신 차려라』 (일본 리더스 협회, 2000년)
- 『일문일답 금고주 해금 등에 따른 상법 개정』 (상사법무연구회, 2001년)
7. 수상 및 명예
나가세 진엔은 다음과 같은 훈장과 명예를 수여받았다.
- 욱일대수장 (2013년 11월)
- 우오즈시 명예 시민 (2014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