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김영희 선수는 대한민국 울산광역시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신장을 보였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유년기부터 키가 컸던 김영희는 부산광역시의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처음에는 배구 선수로 운동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농구로 종목을 전환한 후, 동주여자중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장신의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이후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을 거쳐 농구 명문인 서울특별시의 숭의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학업과 선수 생활을 병행했다.
1.2. 초기 경력
숭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영희는 실업팀 한국화장품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프로 농구계에 발을 들였다. 한국화장품에서 그녀는 뛰어난 신장을 바탕으로 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하며 유망주로서의 잠재력을 꽃피웠다.
2. 선수 경력 및 업적
김영희는 국내 실업팀과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여러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구기 종목 사상 최초의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1. 실업팀 경력
국내 리그에서 김영희는 한국화장품 소속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1983년 12월 11일 조흥은행 여자농구단과의 경기에서 52득점을 기록하며 오랫동안 깨지지 않는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또한 당시 태평양화학 여자 농구단의 센터 박찬숙과의 라이벌 대결은 국내 농구 팬들에게 큰 볼거리를 제공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1984년 농구대잔치에서는 베스트5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2.2. 국가대표 경력
김영희는 숭의여자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이후 은퇴할 때까지 꾸준히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했다. 그녀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과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 여자 농구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두 대회 모두 은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2.3. 올림픽 참가
김영희의 선수 경력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참가였다. 이 대회에서 그녀는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하여 팀의 역사적인 은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대한민국 구기 종목 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3. 플레이 스타일 및 신체적 특징
김영희 선수는 그녀의 독보적인 신체적 특징을 바탕으로 경기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녀의 플레이 스타일은 강점과 함께 국제 무대에서의 몇 가지 약점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3.1. 신체적 특징
김영희는 205 cm라는 압도적인 신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그녀가 센터 포지션에서 압도적인 리바운드와 블록슛 능력을 발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코트 위에서 그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대 팀에게 큰 부담을 주었으며, 골밑에서의 득점력 또한 뛰어났다.
3.2. 플레이 스타일
김영희는 국내 무대에서는 신장을 활용한 골밑 플레이와 득점력으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국제 대회에서는 그녀의 느린 스피드가 몇 가지 단점으로 작용하여, 주전으로 많은 시간을 뛰지는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신체적 우위는 팀의 전술에 중요한 요소로 활용되었다.
4. 개인사 및 건강 문제
농구 코트 밖에서 김영희 선수의 삶은 말단비대증이라는 질병과의 힘겨운 투병으로 점철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대중 매체를 통해 사회에 알려지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경각심을 주었다.
4.1. 말단비대증과 투병
김영희는 1987년 훈련 중 갑자기 쓰러진 후 말단비대증 진단을 받았다. 이 질병은 흔히 '거인병'으로도 불리며, 그녀는 이 질병으로 인해 오랜 기간 힘든 투병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질병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는 삶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았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2003년부터 그녀를 경기위원에 임명하여 병원비 일부를 지원하는 등 그녀의 투병을 도왔다.
4.2. 대중 매체 출연 및 사회적 조명
김영희 선수의 사연은 여러 대중 매체를 통해 소개되며 사회적 조명을 받았다. 2009년 2월에는 KBS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간극장'에 출연하여 그녀의 투병 생활과 역경 극복 의지를 진솔하게 보여주었다. 또한 2021년 11월에는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을 통해 다시 한번 대중에게 근황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았다. 이러한 출연은 그녀의 개인적인 어려움을 공유하고, 질병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5. 사망
김영희 선수는 오랜 투병 끝에 2023년 1월 31일 별세했다.
5.1. 사망 당시 상황
김영희는 2023년 1월 31일, 뇌암 투병 중 급성 호흡부전으로 인해 향년 5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녀는 사망 당시 요양 생활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6. 유산 및 평가
김영희 선수는 대한민국 농구계에 큰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질병과의 싸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6.1. 수상 및 영예
김영희는 선수 경력 동안 여러 차례 개인적인 수상과 국가적 영예를 받았다. 그녀는 1980년 체육훈장 백마장을 수훈했으며, 1984년에는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훈하며 국가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6.2. 특별한 인정
김영희는 205 cm의 신장으로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최장신 여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그녀의 농구 선수로서의 상징적인 특징이자, 그녀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한 부분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