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기타모토 구니에(北本 久仁衛きた모토 쿠니에일본어)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지도자이다. 1981년 9월 18일 나라현 나라시에서 태어났다. 주로 수비수로 활약했으며, 특히 센터백과 오른쪽 풀백 포지션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기타모토는 빗셀 고베에서 2000년부터 2018년까지 19년간 한 팀에서만 뛰며 클럽의 상징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빗셀 고베의 J1 승격과 J2 강등을 모두 경험하며 팀의 흥망성쇠를 함께 했다. 2013년에는 악성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으나, 불과 반년 만에 그라운드로 복귀하며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었고, 이는 팀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빗셀 고베를 떠난 후에는 태국 리그에서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선수 은퇴 후 기타모토는 2020년부터 빗셀 고베의 스쿨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으며, 이후 1군팀의 수석 코치와 코치를 역임했다. 2025년부터는 빗셀 고베 U-18 코치로 활동할 예정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삭발 머리스타일과 특정 음악가에 대한 팬심은 팬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개인적인 특징이다.
2. 어린 시절 및 유소년 경력
기타모토 구니에는 일본 나라현 출신으로, 학창 시절부터 축구에 대한 열정을 키워왔다.
2.1. 출생 및 유년 시절
기타모토 구니에는 1981년 9월 18일 나라현 나라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 시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많지 않으나, 어린 나이부터 축구에 재능을 보이며 지역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2. 유소년 클럽
기타모토는 유소년 시절부터 체계적인 축구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나라시 토미가오카 초등학교의 토미가오카 축구 클럽에서 활동했으며, 1994년부터 1996년까지는 나라시 토미가오카 기타 중학교 축구팀에서 뛰었다. 이후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나라 이쿠에이 고등학교에서 고등부 축구 선수로 활약하며 프로 입단의 기틀을 다졌다.
3. 선수 경력
기타모토 구니에는 주로 빗셀 고베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클럽의 핵심 수비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잠시 태국 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을 경험했으며, 국가대표팀으로서도 연령별 대표팀에서 활동했다.
3.1. 빗셀 고베
기타모토는 고등학교 졸업 후인 2000년, J1리그 소속 빗셀 고베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데뷔 첫해에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2001년에 공식 데뷔전을 치렀고, 2002년부터는 팀의 핵심 센터백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빗셀 고베에서 2000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19년간 뛰면서 클럽의 상징적인 선수로 인정받았다. 2010년 빗셀 고베 공식 웹사이트의 선수 소개에는 "클럽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막대하다"고 기재되어 있을 정도였다. 주로 센터백으로 활약하며 수비 라인을 이끌었지만, 2006년에는 오른쪽 풀백으로도 뛰면서 플레이의 폭을 넓혔다. 또한 공격의 시발점 역할도 수행했는데, 2009년 10월 3일 교토 상가 FC와의 홈 경기에서는 통산 200경기 출장을 자축하는 통쾌한 다이렉트 발리슛으로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빗셀 고베가 J2리그로 강등되었던 2006년 시즌에는 다른 J1리그 클럽들로부터 이적 제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팀에 남아 충성심을 보여주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부주장을 맡아 팀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2011년 시즌에는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으며, 시즌 막바지 두 경기에서 연속으로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2012년 시즌에도 주전으로 꾸준히 출전했으나, 빗셀 고베는 시즌 종료 후 다시 J2리그로 강등되었다.
2013년 1월, 기타모토는 건강 검진 중 갈비뼈에서 종양이 발견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3월에 수술을 받았는데, 검사 결과 종양은 악성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기타모토는 암을 극복하기 위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며, 불과 반년 만에 J2리그 제32라운드 기라반츠 기타큐슈와의 경기에서 실전 복귀에 성공했다. 그의 이러한 투병과 극복 과정은 "쿠니 씨의 노력"이라는 표현과 함께 팀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빗셀 고베는 한 시즌 만에 J1리그로 재승격했으나, 2013년 시즌 이후 기타모토의 출전 기회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는 2018년 시즌을 끝으로 19년간 몸담았던 빗셀 고베를 떠났다.
3.2. 태국에서의 경력
빗셀 고베를 떠난 기타모토는 2019년 새로운 도전을 위해 태국으로 향했다. 2019년 2월 5일, 그는 지난 시즌 빗셀 고베에서 함께 뛰었던 태국 국가대표 테라톤 분마탄의 도움을 받아 타이 리그 3 소속의 Simork F.C.시모르크 FC영어로 이적했다. 그러나 시모르크 FC는 곧바로 선수들의 급여 미지급 문제로 태국 축구 협회로부터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아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후 기타모토는 2019년 6월 23일, 또 다른 타이 리그 3 팀인 Chamchuri United F.C.참추리 유나이티드 FC영어와 계약하며 태국에서의 축구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가 참추리 유나이티드에서 얼마나 많은 경기에 출전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3.3. 국가대표팀 경력
기타모토 구니에는 일본의 연령별 대표팀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국가대표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U-18, U-19, U-20 일본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국제 무대 경험을 쌓았다. 이후 2003년과 2004년에는 U-22 및 U-23 일본 국가대표팀에서도 활동했다. 특히 2004년에는 아테네 올림픽 축구 종목의 백업 선수로 발탁되기도 했다.
3.4. 선수 은퇴
2019년 태국 리그에서의 활동을 마친 기타모토 구니에는 2020년 2월 19일, 친정팀인 빗셀 고베를 통해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빗셀 고베는 기타모토의 은퇴를 기념하여 2월 23일 홈 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요코하마 FC와의 J1리그 경기 킥오프 전에 은퇴식을 진행할 것이라고 알렸다.
그러나 2020년 2월 22일, 2019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 예방을 위한 조치로 기타모토의 은퇴식이 연기될 것이라고 빗셀 고베 구단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발표되었다. 이로 인해 그의 은퇴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4. 지도자 경력
선수 생활을 마친 기타모토 구니에는 2020년부터 빗셀 고베의 스쿨 코치로 임명되며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2020년 10월부터 2022년 6월까지는 빗셀 고베 1군팀의 수석 코치로 자리를 옮겨 선수들을 지도했다. 이후 2022년 6월부터 2024년까지는 1군팀의 코치로 활동하며 팀 운영에 기여했다. 2025년부터는 빗셀 고베 U-18팀의 코치로 보직을 변경하여 유소년 선수들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5. 플레이 스타일 및 개인적인 특징
기타모토 구니에는 견고한 수비력과 리더십을 겸비한 수비수로 평가받으며, 그의 외모와 개인적인 취향 또한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주로 센터백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팀의 수비 라인을 이끌었다. 2006년에는 잠시 오른쪽 풀백으로 기용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수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수비적인 기여 외에도 때로는 공격에 가담하여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기타모토의 가장 상징적인 외모는 바로 삭발한 머리스타일이다. 그는 2003년에 당시 팀 동료였던 쓰치야 야스카쓰에게 영향을 받아 삭발을 감행했는데, 원래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다고 한다. 트루시에 감독 시절 일본 대표팀의 '플랫 스리' 전술이 화제가 되었을 때, 쓰치야와 시지클레이 지 소자와 함께 삭발한 기타모토는 '피캇토 스리(번쩍 스리)', '플래시 스리', '플랫 스킨'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기타모토는 나가부치 쓰요시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팀 동료이자 역시 나가부치 쓰요시의 팬이었던 곤도 가쿠토와 함께 우연히 나가부치 콘서트 라이브 영상에 포착된 적도 있다고 한다.
6. 클럽 통계
아래 표는 기타모토 구니에의 프로 선수 경력 동안 소속 클럽별 시즌 기록 및 전체 통산 기록을 보여준다.
클럽 성적 | 리그 | 컵대회 | 리그컵 | 총합 | |||||||
---|---|---|---|---|---|---|---|---|---|---|---|
시즌 | 클럽 | 리그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
일본 | 리그 | 일왕배 | J리그컵 | 총합 | |||||||
2000 | 빗셀 고베 | J1 | 0 | 0 | 0 | 0 | 0 | 0 | 0 | 0 | |
2001 | 6 | 0 | 2 | 0 | 2 | 0 | 10 | 0 | |||
2002 | 22 | 1 | 0 | 0 | 1 | 0 | 23 | 1 | |||
2003 | 24 | 1 | 2 | 0 | 3 | 0 | 29 | 1 | |||
2004 | 27 | 2 | 6 | 0 | 0 | 0 | 33 | 2 | |||
2005 | 33 | 1 | 6 | 0 | 1 | 0 | 40 | 1 | |||
2006 | J2 | 43 | 5 | 0 | 0 | - | 43 | 5 | |||
2007 | J1 | 33 | 2 | 6 | 0 | 2 | 0 | 41 | 2 | ||
2008 | 28 | 0 | 5 | 0 | 2 | 0 | 35 | 0 | |||
2009 | 32 | 1 | 6 | 0 | 3 | 0 | 41 | 1 | |||
2010 | 33 | 0 | 6 | 0 | 0 | 0 | 39 | 0 | |||
2011 | 34 | 2 | 2 | 0 | 1 | 0 | 37 | 2 | |||
2012 | 29 | 0 | 3 | 0 | 0 | 0 | 32 | 0 | |||
2013 | J2 | 10 | 0 | 1 | 1 | - | 11 | 1 | |||
2014 | J1 | 7 | 0 | 2 | 0 | 0 | 0 | 9 | 0 | ||
2015 | 12 | 0 | 2 | 0 | 2 | 0 | 16 | 0 | |||
2016 | 14 | 1 | 3 | 0 | 0 | 0 | 17 | 1 | |||
2017 | 6 | 0 | 3 | 0 | 2 | 0 | 11 | 0 | |||
2018 | 1 | 0 | 6 | 0 | 0 | 0 | 7 | 0 | |||
태국 | 리그 | 컵대회 | 리그컵 | 총합 | |||||||
2019 | Simork F.C. | 타이 리그 3 | 4 | 0 | - | - | 4 | 0 | |||
2019 | Chamchuri United F.C. | 타이 리그 3 | - | - | |||||||
총 통산 (일본 J1) | 341 | 11 | 60 | 0 | 19 | 0 | 420 | 11 | |||
총 통산 (일본 J2) | 53 | 5 | - | 1 | 1 | 54 | 6 | ||||
총 통산 (태국 타이 리그 3) | 4 | 0 | - | - | 4 | 0 | |||||
전체 경력 총합 | 394 | 16 | 60 | 0 | 20 | 1 | 474 | 17 |
- 기타 공식 경기:**
- 2006년 J1·J2 승강 플레이오프: 2경기 출전, 0득점
- J1리그 주요 기록:**
- J1리그 첫 출전: 2001년 6월 16일, 산프레체 히로시마전 (2001년 J1리그 1st 스테이지 11라운드)
- J1리그 첫 득점: 2002년 10월 12일, 가시마 앤틀러스전 (2002년 J1리그 2nd 스테이지 8라운드)
7. 유산 및 평가
기타모토 구니에는 빗셀 고베의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선수로 평가받는다. 그의 헌신과 정신력은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7.1. 긍정적 평가 및 기여
기타모토 구니에는 빗셀 고베에서 1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활약하며 클럽의 상징적인 선수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그는 단순히 오래 뛴 것을 넘어, 팀이 J1리그와 J2리그를 오가는 동안 꾸준히 핵심 수비수로서 팀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2006년 팀이 강등되었을 때, 다른 J1리그 팀의 이적 제안을 거절하고 빗셀 고베에 남아 팀의 J1리그 복귀를 이끈 점은 그의 충성심과 헌신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무엇보다도 기타모토는 2013년 악성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반년 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와 실전 복귀에 성공하며 강인한 투지와 불굴의 정신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이러한 암 극복 과정은 팬들과 팀원들에게 큰 감동과 희망을 주었으며, 그가 단순한 선수를 넘어 인간적인 존경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기타모토는 빗셀 고베의 역사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7.2. 비판 및 논란
선수 생활 중 기타모토 구니에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제기된 큰 비판이나 논란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19년 태국 리그로 이적한 후 소속팀이었던 Simork F.C.시모르크 FC영어가 급여 미지급 문제로 태국 축구 협회로부터 자격 정지 처분을 받고 해체 수순을 밟게 된 사건은 그의 선수 경력 중 불운한 에피소드로 언급된다. 이는 기타모토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클럽의 재정적인 문제로 인한 것으로, 그가 의도하지 않은 논란에 휘말린 경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