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원과 배경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바티아투스의 이름에 대해서는 학문적 논의가 존재한다. 학자 데이비드 R. 섀클턴 베일리는 고대 역사가들이 기록한 '바티아투스'라는 이름이 '바티아'(Vatia라틴어)라는 코그노멘의 변형된 형태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그가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바티아'일 경우, 그는 본래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문에 입양되었거나, 반대로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문에서 태어나 세르빌리우스 바티아에 입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역사학자 로널드 사임 또한 '바티아투스'라는 이름이 '바티아'의 변형이라는 견해에 동의했다.
섀클턴 베일리의 주장에 따라, 그는 서기전 75년에 퀘스토르를 지내고 서기전 72년에 트리부누스를 역임했으며, 서기전 56년에는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의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섰던 그나이우스 렌툴루스 바티아와 동일 인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그가 렌툴루스 가문 출신으로 태어났다면, 그의 친부는 서기전 97년에 집정관을 지낸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일 수 있다. 또한 서기전 102년에 프라이토르를 지낸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가 그의 양부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가 (세르빌리우스 바티아에 입양되어) 평민 출신 렌툴루스였을 가능성은 그가 서기전 44년의 집정관인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의 양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로 설명되기도 한다.
2. 검투사 양성소와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바티아투스는 이탈리아 남부의 베수비오 산 인근 카푸아에 검투사 양성소인 '루두스'(ludus루두스라틴어)를 소유하고 있었다. 서기전 73년, 이 양성소에서 스파르타쿠스를 포함한 약 70~78명의 검투사들이 탈출하는 대규모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도주 과정에서 농기구와 무기를 탈취하여 스스로를 무장하고, 카푸아 외곽의 베수비오 산으로 피신했다. 로마 공화정은 즉각 군대를 파견하여 이들을 진압하려 했으나, 스파르타쿠스와 노예 반란군은 로마군의 허점을 찔러 수 차례 승리를 거두며 세력을 확장했다. 바티아투스의 검투사 양성소에서 시작된 이 탈출은 결국 제3차 노예 전쟁으로 비화되었고, 이는 로마 공화정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노예 반란이자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3. 대중 매체에서의 묘사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바티아투스는 여러 영화와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바티아투스'라는 이름으로 묘사되었다.
-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0년 영화 《스파르타쿠스》에서는 배우 피터 유스티노프가 바티아투스 역을 연기했다. 그는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 2004년 텔레비전 영화 《스파르타쿠스》에서는 배우 이언 맥니스가 바티아투스를 연기했다.
- 스타즈 채널의 텔레비전 시리즈인 2010년작 《스파르타쿠스: 피와 모래》와 2011년작 《스파르타쿠스: 신들의 전쟁》에서는 배우 존 해나가 바티아투스 역을 맡았다. 이 시리즈에서는 그의 프라이노멘이 '퀸투스'로 설정되어 등장한다.
4. 같이 보기
- 고대 로마의 입양
- 로마식 작명법